■ 제 10장 : 신검 출현
계룡산을 지나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금룡각의 기진이 동방파의 마니산 까지는 칠일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은성이의 발걸음이 빨라서 이정 도의 속도라면 동방파까지 이틀 정도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서산은 바닷가에 기이묘묘한 산세가 어우러져 있고 천하의 절경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이었다.
다소 때에 절은 백의 장삼을 걸친 은성이가 서산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다. 서산에 도착한 은성 이는 이곳 서산의 분위기가 다른 지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 묘한 열기까지 휩싸여 있었다.
길거리에는 그동안 가끔씩 밖에 볼 수 없었던 무술인 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고 있었으며 배가 고파 찾은 객점 에도 모두 무술을 익힌 흔적이 보이는 무술인들로 가득하였다. 모두들 잔뜩 흥분해 있고 또한 초조해 있는 것 같았으며 서로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대고 있었다. 식사를 주문한후 기다리는 동안에 따로 공력을 운기 하지 않았는데도 기연으로 인해 발달된 청각 덕분에 무술인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모여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신검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은 관계로 객점의 한쪽 구석에 위치된 2인용 탁자에서 국밥을 주문한 다음 느긋하게 식사를 하던 은 성이는 놀랄만한 단어를 듣게 되었다.
"여보게! 저기 앞쪽에 앉아 있는 도인들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처음 보는 도사들 인데 왜 아는 사람들인가?"
"흠, 비록 한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눈이 보통 눈인가?, 분명 동방파의 삼신룡중 한명인 백운검 김장로가 분 명하네"
식사중 우연히 듣게된 '동방파' 라는 소리에 은성이의 눈은 자연스럽게 음성의 발현지로 향해졌고 또한 그들 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향해졌다. 흰 도포에 흰 수염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나이든 도인과 30대의 청색 도인이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아! 얼마나 반가운 사문의 존장들인가'
은성이는 식사를 중도에 그만둔 후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제의 도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저, 혹시! 동방파의 사숙님들이 아니신지요?"
은성이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며 조그만 목소리로 묻자 도인들은 안면이 없는 어린아이 인지라 대답을 늦추 었다.
"음, 맞네만. 소형제는 누구신가?"
젊은 도인이 동방파의 도인인 것을 시인하자 은성이는 즉시 객잔 바닦에 무릎을 꿇고 나이든 도인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허선도 장로님의 속가 제자이며 동방파 26대 제자인 이은성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음, 허선도 장로의 속가 제자라고? 그래 일단 자리에 앉거라!"
주변은 매우 시끄러웠고 자기들 끼리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느라고 그런지 동방파 일행에 큰 신경을 쓰지 않 는 분위기였다.
"내 허선도 장로에게 예전에 총명한 속가 제자 한 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 아이인가 보구나?"
"예..." 하며 호칭을 몰라 은성이가 말을 얼버무리자 옆에 있던 젊은 도인이 눈치 빠르게 설명을 해 줬다.
"본파의 9대 장로중 한명인 김재두 장로이시다! 그리고 나는 김사부님의 제자인 배석승이다. 네가 허사숙님의 제자라 하고 나이는 나보다 어리니 사형이라고 부르거라!"
"예!, 배사형"
친절하고 싹싹한 사형이 맘에 들었는지 아니면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동방파의 사숙과 사형을 만나서 마음이 든든해 졌는지 은성이의 대답 소리가 매우 시원스러웠다.
식사중 은성이의 무공 실력을 알기 위해 은성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김장로는 과거 허선도 장로가 몇년동안 무술을, 그것도 가끔씩 가르쳐 준 것 밖에 동방파의 무술을 배운적이 없다는 은성이의 설명에 다소 난감해 졌 다. 이번 신검 출현 때문에 난다 긴다하는 무술인들이 대거 모여있는 곳이 이 곳 서산이었다. 용호상박의 와 중에 무술을 모르는 어린애가 끼여 있으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같이 내려온 제자 배석승은 자신의 첫째 제자이자 그 능력이 가장 특출난 제자였다. 자질은 물론 무공의 성취도가 매우 뛰어나 장래 동방파를 짊어질 인재들인 동방삼룡중의 하나로 불리우고 있는 고수인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안위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정도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이라고는 동방파의 입문 무공만을 배운 어린 아이는... 그렇다고 위험스런 장소에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석승아! 사제를 잘 챙기거라!"
못내 걱정스러운 김장로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예! 사부님"
그때였다. 식당 입구로 검정색 낡은 도복을 입은 도인 두명이 들어섰다. 키는 크지만 몸이 왜소한 늙은 도인 한명과 배사형 나이 또래의 얼굴이 다소 창백해 보이는 도인이었다. 늙은 도인은 식당안을 휘돌아 보더니 은 성이가 앉은 원형 식탁으로 거침없이 걸어왔다.
그리고는 김장로에게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니! 백운검 김재두님 아니십니까? 오래간만에 뵈오니 더욱 청수해 지신 것 같습니다."
"허허, 고진인 이시구려! 오히려 고진인님이 반노환동 하시는거 같습니다. 자리가 비었는데 여기 앉으시지요. "
"고맙습니다. 한데..."
고진인이라는 도인이 장로님과 친분이 있는거 같자 앉아 있는 것이 민망하여 일어서서 정세 파악을 하던 배사 형과 은성이가 포권을 하며 인사를 드렸다.
"동방파 26대 제자인 배 석승입니다"
"이은성 입니다"
"음, 대단한 인재들이구만, 동방파가 날로 융성해가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만."
하면서 2명을 쓰윽 훓어 봤는데 은성이를 스쳐보는 눈가에 이채가 띄여졌다.
"김선경입니다"
고진인의 제자 또한 김장로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역시, 귀선문의 잠재력은 대단하군요., 고진인의 대단한 능력은 모두가 부러워 하는데 그 제자분은 청출어람 이군요. 일인 부전의 귀선문이 강호에서 수위를 다투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그려 "
대충 인사말이 끝나자 차를 주문한 고진인이 말을 이었다.
"허허, 그놈의 신검 나부랑이가 이제는 청수하신 김장로 까지 불러 드렸구려, 김장로님이 오신 이상 아무리 신검이 신출귀몰해도 정체가 밝혀지기는 여반장일 겁니다."
"무슨 겸손한 말씀이십니까. 부족한 저의 재주가 어찌 고진인의 도력과 신기한 술법에 미치겠습니까, 고진인 이 오신 이상 저희는 뒷짐지고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 동방파의 '백운검 김재두' 하면 천하가 알아주는 검객이신데 너무 겸손하십니다. 그리고 신기 묘 묘한 금나술까지 곁들였는데 명년 오늘이 신검의 제사날이 될 겁니다."
검은 도포에서 다소 창백한 왼손을 들어 턱밑에 조금난 염소 수염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 진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 삼년전 그놈이 출현할 때에 하도 소문이 무성해서 저도 한번 도전해 봤었습니다. 불가 항력이더군요. 저의 능력의 보잘 것 없음을 깊이 통탄하며 삼년동안 고진 수행을 하고 비기도 얻었지만 사실 오늘 저녁도 자 신이 없답니다."
"아니! 신검의 위력이 그 정도 입니까"
김장로가 다소 놀라며 되물었다.
"신검이 처음 출현한 것이 9년 전이고 3년마다 한번씩 출몰하니 3년전이라면 3번째 출몰하던 때이군요"
"예! 맞습니다. 3년을 주기로 3월 보름날 자정에 출몰하여 한시진 정도만 미쳐 날뛴 후 사라져 행적을 감추니 ..."
김장로와 고진인의 대화를 경청하던 은성이는 이제서야 이곳 서산에 그 많은 무술인들이 모여있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오늘 저녁에 신검이라는 신비지검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귀선문의 고진인께서 3년전의 경험도 있으시고 비기까지 얻으셨다니 신검을 얻기에는 가장 유리하실 것 같습 니다. 저희는 들리는 소문이나 확인해 보려고 나들이겸 와 본 것이지요."
하얀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보기만 해도 도사이구나 할 정도로 청수하게 생긴 김장로가 앞에 놓인 작설차 를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신검은 빛살같은 빠르기로 혼자 날아 다니고 날카롭기는 대적할 만한 것이 없 다는데 사실인지요?"
다소 호기심 어린 김장로의 말에 고진인이 싱긋이 웃었다.
"말도 마십시오, 그 동안 신검에게 잘린 신병이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중에는 금강산 유정사의 진 산지보인 묵룡검 뿐만이 아니라 금룡각의 금사검도 있답니다."
꽤나 비밀스러운 말인지 고진인의 목소리는 매우 작아졌다.
"아니! 심해의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못베는 것이 없다는 금사검이 말입니까?"
매우 놀란 듯한 김장로의 시선이 제자에게로 쏠렸다. 지금까지 고 진인의 말에도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만을 짓고 있던 배사형의 안색도 다소 변했다. 금룡각이라는 단어를 듣자 자연스럽게 경묘 일행을 떠올리던 은성이 가 사형의 허리춤을 보니 매우 오래 된듯한 검집에 역시 고풍스러운 손잡이를 단 검이 매달려 있었다.
일순 상황을 파악한 듯 고진인이 김장로에게 말했다.
"동방파에도 명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태아검' 이라고... 하지만 제 소견으로는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김장로가 침음성을 흘렸다.
"금룡각의 금사검이 못 당할 정도면 어쩔수 없군요. 하지만 아무리 신검이 날카롭기로서니 금사검이 잘리다니 ..."
한동안 침묵하던 김장로는 오늘 일이 생각보다 어려울 듯하자 각오를 다지고 심신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 해서는 지금부터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으로 판단 되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일어 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오늘저녁 동방파의 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고진인과 포권을 하며 인사를 나눈 일행은 식당 위층에 연결된 숙소로 향했다.
"석승아! 일단 네 방에서 은성이와 함께 있거라! 해시쯤에 보자"
"예 사부님"
"편히 쉬십시오 사숙님"
은성이는 진장로가 들어간 바로 옆방에 있는 사형의 방으로 같이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동방파 및 오늘 있을 신검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술시가 되자 둘은 좌선을 한후 내기를 다스렸다. 한시진 정도 운공 조식한 후 은성이가 먼저 조식을 끝내자 조금 후에 사형이 조식을 풀었다. 혹시나 빠진 물건이 없나 주변을 살핀 후 방문을 나서려는데 김 장로님이 문을 두드렸다.
"다 준비 되었으면 가자"
객점 밖으로 나오니 생각외로 사람들이 적었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무술인들의 방향이 한곳으로 일정하자 은성 일행도 경공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은성이 가 걱정되어 앞에 가는 무술인들보다 훨씬 늦은 속도로 달려가던 김장로는 쫒아오는 은성이가 힘들어 하는 기 색이 없자 달려가는 속도를 빨리하기 시작 하였다.
조금 무리하자 계속 멀어지던 앞의 무술인들이 이제는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은성이의 얼굴은 시 종 여유가 있어 보였다. 김장로가 속도를 늦춰 은성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말을 걸었다.
"힘들지 않느냐?, 좀 천천히 달릴까?"
"아니! 괜찮습니다.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전혀 지친 기색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은성이의 목소리에 김장로는 물론 바로 앞에서 달리는 사형 까 지도 놀랐다. 배석승 자신이 생각해 봐도 지금같이 달리면서 사제보다 안정된 목소리를 낼 자신이 없었기 때 문이다.
"음"
다소 놀란듯한 김장로는 어쨌든 흐뭇한 일이기에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하였다.
'휘익, 휙'
일행이 다다른 곳은 근처에서 제일 높다는 검시봉이었다.
지난 9년 동안 신검이 나타나는 장소가 이 근처이었지만 항상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야 자정부터 나타났지만 장소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9년 동안 항상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검 출현시 한눈에 보일 수 있는 이곳 검시봉으로 모여든 것이다.
원래는 '일락봉' 이었지만 신검이 출현한 뒤부터는 신검이 출현하기 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신검의 출현 장 소를 찾는다고 하여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검시봉으로 불리워 졌다.
검시봉 정상은 조금 평평하였지만 500여 명의 무림인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지형지세였다. 그 때문에 자리 다툼은 치열하였다.
동방파 일행이 검시봉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자정이 되려면 꽤 있어야 하는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정상 부근에 는 무림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할수 없이 정상 조금 밑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자정을 기다렸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산 정상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다! 북동쪽이다!.'
그 많던 무술인들이 일각도 안돼 북동쪽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 가고 검시봉에는 싸늘한 한풍만이 나돌고 있었 다. 일행을 따라 몸을 날리던 은성은 북동쪽에서 하얗게 빛나는 물체를 볼 수 있었다. 동방파 일행이 검이 있 는 곳까지 당도 하였을 때에는 신검과 이를 차지하려는 무술인들간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검시봉에 있던 500여명의 무술인들중 무공이 고강하여 먼저 도착한 50여명의 사람들이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 분투하고 있었다.
신검은 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신검에서는 검기처럼 하얀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하얗게 빛을 내는 신검이 이를 차지하려는 무술인들의 사이로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다.
검에 귀신이 달라 붙은 것인가? 아니면 검 자체가 귀신이런가...?
놀라운 일이었다. 신검은 무술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비무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신검의 나아감을 막고자 검이나 도를 들이댄 자들의 병기가 신검의 검무속에 조각조각 잘라지고 신검의 손잡 이를 잡아채려고 몸을 날린 자의 금나수를 교묘하게 피한 검날이 그자의 수염을 멋들어지게 절단했다.
몇겹으로 꽈지며 신검을 묶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채찍이 잘게 터져 나가고 신검의 측면을 노리며 날아오 는 검을 한 마리 뱀처럼 휘어지며 타고 오르더니 일순간에 6조각으로 끊어 냈다. 천라지망처럼 하늘을 덮은 '천망추'라는 그물도 동해어옹의 명성에 상관없이 종이장처럼 찟겨져 나가고 섬전수라는 명호를 가진 낙뢰파 제일 고수의 수망에서도 신검은 무사하였다.
그때 은성이는 볼 수 있었다. 금룡각의 기진 일행이었다.
그들의 '다른 일'이라는 것이 바로 신검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검이 금룡각 일행 근처로 오자 기진이 땅을 박찼다.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신검에게로 날아가는 기진의 검은 옅은 검기가 흐르고 있었다. 신검의 검 날을 공격함은 전혀 소용이 없다라는걸 알고 있는 기진의 검이 신검의 검배를 노리고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기진의 빠르기 때문인지 기진의 검은 어느새 신검의 한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기변인가?
신검이 갑자기 직각으로 빙글 도는 것이었다. 기진의 검이 손잡이 앞까지 갈라져 나갔다.
'악'
검이 갈라지는 와중에도 기진이 검기를 더욱 점증시켰는지 기진의 검도 환한 빛을 뿜어대며 갈라졌고 이윽고 검이 손잡이 근처까지 절단되자 기진은 전 내력을 다해 잘라진 검과 함께 신검을 지면으로 내던졌다.
지면으로 낙하하던 신검이 기진의 검을 마저 자른 후 위로 솟구쳐 오를 때 경묘의 검이 신검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하나인데 검영은 3개나 되었다. 어느 곳을 노리는지조차 알수 없는 경묘의 검영 사이로 신검이 날카롭게 휘어지며 솟아올랐다. 마치 경묘의 검 풍을 타고 오르는 부드러운 깃털처럼 솟아 오르는 신검에게로 무서운 힘이 몰아 닥쳤다. 경인의 72근 파산도가 대지를 박살내려는 기세로 신검에게로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파산도는 경묘의 검을 피하기 위해 부드럽게 솟아오르는 신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이때 신 검의 검배를 노리는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경신의 섬전추였다. 줄 끝에 매달린 날카로운 접시 모양의 하얀 금속이 일초에 천번씩은 회전하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신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두 무기중 한가지는 최소한 귀검의 비행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때를 대비한 듯 손에 금속성의 빛을 내는 장갑을 끼고있던 기진의 신형도 파산도를 따라 신 검에게로 덮쳐 내려오고 있었다. 세 무기가 맞닿은 곳에서 일순 빛이 번쩍거렸다.
신검이 굴복되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인가?
아니었다. 파산도가 신검과 막 부딪히는 찰나 경인은 신검에게서 순식간에 뻗어 나오는 패도적인 검기에 오싹 한기를 느 끼었다. 그리고는 느낄 수가 있었다. 신검에 닿기도 전에 파산도가 산산이 파쇄되는 것을 ...
경신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기이신랄한 자신의 섬전추가 신검의 검배를 때리려는 순간 신검이 노룡처럼 몸을 틀고 섬전추를 이어 주는 천 잠사로 만든 줄을 타고 오르며 가닥가닥 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신검은 파산 도의 파편과 패도적인 검기에 일순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기진의 머리위로 몸을 틀었다.
'싸악'
기진의 머리 위를 타고 넘어간 검이 노룡인양 하늘로 솟구친 후 다시금 다른 무림인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기진은 넋이 나간 듯이 서 있었다. 기진의 왼손이 앞머리 부위로 올려졌다.
'부스스'
앞머리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솔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기진의 이마에서부터 백회혈까지 이어지는 부 위가 고승의 머리처럼 머리카락 한올 없었다. 검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스스로 심력을 가지지 않는 한 기진의 골상을 따라 이처럼 정밀하고 섬찟한 실력으로 검을 조정할 수는 없 으리라. 막강한 내공을 가진 기진이었지만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몸을 흠찟 떨었다. 하얀 노룡인양 무림인들 사이로 질주하던 신검이 이윽고 동방파 일행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신검이 다가오자 김장로의 몸이 사라졌다.
'이형환위'
놀라운 신법이었다. 어느새 신검의 앞에까지 다가선 김장로의 수영이 하늘을 덮을 것 같은 도포자락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양 손이 음양의 이치에 따르고 도포 자락이 소음, 소양으로 변화되어 이를 보좌해 준다는 동방파 비젼의 '사상 금나술'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신기 묘산의 술수를 부리던 신검도 천고의 기망에 걸린 것처럼 김장로의 수중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 고 있었다. 가까스로 벗어 났는가 싶으면 김장로의 이형환위 신법에 금새 가까워지고 신검의 손잡이를 중심으 로 한자 이내에는 김장로의 수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검의 길이는 손잡이 부위를 제외하고는 3자 정도였다. 하지만 이 길이로 인해 오히려 행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철판처럼 단단한 도포자락이 교묘하게 휘어지며 신검의 검배를 공격하면서 신검의 공격력을 무마시켰으며 열 손가락을 난초 꽃잎처럼 벌리며 신검의 움직임에 따라 천변 만화시켜 다가오는 금나술에 일 순 신검의 손잡이가 접근을 허용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천분의 일초 정도의 순간일 뿐이었다. 신검에서 폭발할 듯이 일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기경에 김장로의 몸이 튕겨져 나왔다. 3장여를 튕겨져 나가던 김장로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으나 입 밖으로 흘러 나 오는 선혈로 보아 큰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이얏'
신묘 막측한 사부의 무술 실력에 자유자재로 운신을 하지 못하는 신검을 보며 한껏 사문의 무술과 사부인 김 장로의 대 제자라는 신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배 사형이 신검을 향해 뛰어 나갔다. 뛰어가는가 싶더니 어 느새 귀검앞에 이른 배사형의 전면으로 햐얀 빛이 번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부의 부상에 노기가 일어 뛰쳐나간 배사형은 신검이 배사형을 지나 저편으로 날아 가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허리를 굽혀 지면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반짝'
잘려진 검봉이 달빛에 빛을 발했다. 고진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노기가 깃든 배사형이 순간적으로 사문의 기 보인 태아검을 빼어 신검을 향해 휘두른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도 허망하였다. 끊어진 검편을 집어 들 고 사부에게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배사형은 은성이가 사부를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발걸음을 빨리 하였다.
사부의 안위도 문제이지만 내상을 당한 사부를 아무렇게나 치료하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상의가 벗겨 진 사부의 몇 군데 중요 부위에는 은빛의 침이 박혀 있었고 은성이는 사부의 뒤쪽에 정좌한 후 사부의 명문혈 로 기를 넣어 사부의 내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보름달이 하늘을 지키고 있지만 지금은 한 밤중이었다. 이처럼 어두운 밤에 경솔하게 침술을 시전하고 내력도 미약하면서 사부에게 내력을 도인하고 있다니... 조급한 마음에 은성이를 밀어내고 사부에게 내력을 도인하려 던 배석승의 얼굴이 문득 의아함에 빠졌다. 그토록 심한 타격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부의 얼굴이 평온한 상태이고 또한 사부의 백회혈로 뜨거운 기운이 조금씩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심신이 안정되고 상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섣불리 치료에 열중하고 있는 은성이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이제야 편안하게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사부의 몸에 꽂혀 있는 은침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혈도가 위치돼 있는 자리에서 한치의 어 긋남이 없이 위치돼 있었다.
왜 그 혈도에 은침이 시술돼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섣불리 시술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부의 얼굴이 계속 평온해 보이자 석승은 두눈을 신검에게로 향했다. 신검이 무림인들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 산 봉우리에서 붉은 빛이 날아 들었다. 붉은 빛은 눈깜짝할 새에 신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를 보던 무술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게 타오르는 검을 든 검은 도복의 도인이 하얀 검 위에 올라탄 채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