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9화 (9/152)

■ 제 9장

의외로 어려 보이는 인간 소년이 있었다. 가진 내공으로 보면 천상 선인의 능력을 가졌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 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은성이는 천년 오공이 바라보자 씨익 웃어 주었다. 순간이었다. 순박하게 미소를 짓던 은성이가 날카로운 비 명을 질렀다.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허벅지를 짧게 문 후 몸을 뒤척이며 다시금 천년 오공에게로 달려들고 있 었다. 그리고 그 뒤로 금색 빛줄기 4개가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사왕과 금사의 무리였다.

생각이 필요 없었다. 천년 오공의 명문혈에 대고있던 오른손을 급히 떼어내 사왕을 후려쳤다. 하지만 사왕이 어떠한 영물이던가. 은성이가 후려치는 손목을 나선형으로 파고들며 몸을 피한 후 천년오공에게로 나아갔다.

일순 안되겠다 싶은 은성이가 본능적으로 오지를 쫙 피면서 내공을 주입시켰다.

'그 동안 수련한 보람이 있었던가'

생각이 일자 마자 진기가 오지 끝으로 퍼져 나갔고 급히 손목을 회전시키자 철벽의 방패가 형성되었다.

"꽝"

자신의 몸체의 단단함을 철썩같이 믿던 사왕은 낭패를 당해 한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주변과 색을 동화시켜 보이지 않던 사왕은 전신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읔"

은성이가 재차 소성을 질렀다. 사왕을 재지하느라 자신에게 달려들던 금사 무리를 방조한 결과였다. 이미 금 사의 머리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외부의 충격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호신강기를 뚫고 몸을 파고드는 것이다.

어깨와 허벅지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낀 은성이가 급하게 오행진기를 운용하자 은성이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 가던 금사 4마리가 주춤하였다. 하지만 선천진기에 대항하여 몸속으로 계속해서 파고 들려고 발악을 하는 과 정에서 은성이는 더욱더 큰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사왕에게 물린 허벅지 부위는 감각이 거의 없어졌으며 금사에게 물린 부위도 독기에 당해 감각이 무디 어 졌는데도 불구하고 통증이 이다지도 심한 것을 보면 은성이의 몸속에 틀어박힌 금사의 머리 부분이 요동치 고 있는 것 같았다. 호신강기의 강도를 조금더 높이자 드디어 견디다 못한 금사가 은성이의 몸에서 튕겨져 나 갔다. 기를 운용하여 독기가 심장으로 가는 것을 막던 은성이는 사왕의 보라색 몸통이 서서히 꿈틀거리는 것 을 발견하였다.

강력하기가 검강에 비할 바 있는 오행진기를 운용하여 내리 쳤는데도 죽지 않은 것 같았다. 서서히 주변색과 동화되어 가는 사왕을 보던 은성이는 튕겨져 나간 금사들이 죽지 않고 다시 달려들자 다른 방도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행진기중 진금기만을 운용한 것이다. 진금기를 운용하여 오른손에 집중시키자 은성이의 오른손이 백색으로 변화 되었다. 그리고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쾌의 구결대로 휘둘렀다.

"캑"

제일 앞에서 달려들던 금사 한 마리가 오른손에 날카롭게 절단되어 버렸다. 절단된 금사의 붉은 피가 확 흩뿌 려 졌다. 그러자 피가 닿은 작은 모래들이 피시식하며 연기를 내며 녹아 들어갔다. 금사들은 강하기가 이를데 없는 자기 동료의 몸이 너무도 쉽게 절단돼 버리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달려들던 몸을 뒤집어 회피 동작을 하 였다.

그 동작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던지 마치 이어진 한동작 같았다. 또한 물러나는 속도가 달려들던 속도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았다. 나직이 감탄을 하면서도 은성이의 손은 쾌자결을 운용하여 금사를 후려쳐 갔다. 아무리 금사 가 빨라도 고금의 절기인 쾌자결을 응용한 은성이의 손 기술 보다는 빠르지 못하였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은성이의 손은 목적한 금사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단된 부위는 목적한 금사의 꼬 리 부분에 불과 하였다. 꼬리가 잘린 금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미처 막지 못한 금사 두 마리가 은성이의 몸 바로 앞까지 달려들때쯤 은성이의 피부 바깥쪽에 쳐진 호신 강기가 더욱 두터워졌다.

재차 튕겨져 나가는 금사를 보며 내심 안도하던 은성이의 눈에 다급한 빛이 어렸다.

눈앞에 있던 사왕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왼쪽 옆구리에 다시금 따끔함을 느낀 은성이의 시선이 그 부위로 돌아갔다. 공기의 색과 동화되어 거의 보이 지 않는 사왕의 흐릿한 모습이 오른손이 닿기 어려운 왼쪽 어깨부위를 물고 있었다. 은성이의 강한 호신강기 조차 뚫고 또한 공격하기 어려운 부위를 지능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사왕도 은성이의 호신강기를 뚫고 피부속으로 지독한 독액을 뿜어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은성이 가 호신강기의 일부를 방어가 아닌 공격용으로 변환해 몇배의 위력으로 뿜어낸 까닭이다. 급기야 오행진기중 진화기를 집중시켜 반탄진기를 형성해 뿜어 대자 사왕이 더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기력을 회복한 금사들은 은성이를 포기하였는지 목표를 바꿔 천년 오공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천년 오공은 비 록 죽음의 순간에서 은성이의 심후한 내력에 의해 자기 내공의 1할 정도를 회복하여 죽음의 위기는 넘길 수 있었지만 아직 싸울만한 기력은 없는 상태였다.

이를 알고 있는 은성이는 다급한 김에 왼쪽 허리춤에 있던 청은검을 뽑아 들었다. 발검과 동시에 앞으로 뻗어 나가는 청은검에는 언제 운기되었는지 옅은 푸른색 검기가 서리어 있었다. 금사들은 푸른빛이 어리는 청은검 의 검기를 두려워하는지 또는 은성이가 다급하게 펼친 검망을 뚫기 어렵다고 생각되어졌는지 잽싸게 뒤로 물 러났다.

그리고는 정신을 재차 차리고 은성이를 사악하게 노려보고 있는 사왕의 뒤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묘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기 몸을 돌보기조차 바쁜 천년 오공을 안다시피한 은성이는 왼손은 단로에 대고 오른손 을 청은검을 쥔채 사왕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과는 달리 두 마리의 금사가 적어진 사왕과 금 사 두 마리가 푸르스름한 바탕에 백색의 눈을 빛내며 은성이를 노리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사왕은 영수 중에서도 영물이었다. 검으로도 자를 수 없는 단단한 몸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이한 능력 그 리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조차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에다 한 방울이면 능히 일만 마리의 황소를 죽 일 수 있는 가공할 독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능은 거의 인간 수준에 필적하였다. 평소 동물들이 피와 쓸개를 즐겨 먹는 사왕은 동물들을 사냥할 때 독살시키지는 않았지만 매우 잔인하게 죽였다. 호랑이나 곰 같은 맹수들을 즐겨 사냥하는 사왕은 사냥감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냥감의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마치 물고기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같이 아무런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는 심장으로 접근하여 이제 막 생성 되어 순후해진 피를 양껏 마시고는 다시 쓸개즙을 마시고는 빠져 나오곤 하였다. 맹수들의 동작이 아무리 빨 라도 사왕의 눈에는 벌레들의 행동처럼 느릿느릿 하게 보였다. 독을 사용할 기회는 적었지만 그는 자신의 독 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앞에 있는 인간이 2번이나 물린 것이다. 비록 자신이 알고있는 인간이란 존재의 일반적인 능력 에 비해 엄청나게 강한 족속이지만 앞으로 일각을 버틸 수 없으리라. 사왕이 이렇듯 자신하는 것에는 물론 이 유가 있었다. 전에 사왕은 무술인들과 싸운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여타 인간에 비해 동작이 빠르고 은성이가 사용하는 것 같은 무기를 사용하였었지만 자신과 대적했던 오명중 사명은 심장이 꽤 뚫리고 몸이 뚫려지지 않고 이상한 기운으로 자신을 튕겨 내던 인간도 자신의 독아 한방에 나가 떨어져 시커멓게 녹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물린 부위에서 시커먼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 나오고 있는 은성이는 사왕의 바람대로 녹아 내 리지 않고 있었다. 반대로 사왕의 기다림에 시간을 번 은성이는 채내의 오행진기중 진화기를 이용하여 몸속으 로 유입된 독기를 태우며 몸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세맥이 뚫리고 진기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 능한 은성이는 금사와 사왕에게 물린 부위를 즉시 폐맥하여 진기는 물론 혈액조차 흐르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지독한 독도 심장으로 침투하지 못하면 큰 효과가 없고 독에 당한 부위만 중독되고 마는 것인데 세맥 이 모두 뚫리고 진기와 혈액조차 자유자재로 활용 가능한 은성이는 이미 허무경 4단계는 12성 수련하였고 현 재 허무경 6단계를 수련 중이었다.

은성이의 대응이 빨랐기에 물린 부위를 포함하여 외부 내부로 두치 정도만이 중독된 것이다. 하지만 워낙 사 왕의 독이 지독한지라 중독된 부위의 절독을 화기로 태우고 내몰았지만 그 부위의 살들은 조금씩 녹아 있었으 며 재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사왕은 은성이의 중독 부위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짙어지지 않고 계속 옅어지다가 일순 그치자 믿어지지 않는 듯 은성이의 시선을 직시하였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자 근처에 섬왕과 백색 두꺼비가 쌍두오공 무리와 다투고 있었는데 막상막하의 국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처럼 날뛰던 지네 무리가 다시금 진세를 유지 하고는 기타 뱀과 두꺼비 무리가 더 이상 안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모처럼의 호기가 은성이 한 사람 때문에 허무하게 사라져 간 것이다. 은성이를 직시하던 사왕이 천년 오공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휘리리리릭"

영수끼리는 뜻이 통하는지 천년 오공이 다소 힘없는 소리로 귀곡성을 발했다.

"이히히히 히히히히"

이에 쌍두오공과 싸우고 있던 섬왕도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꾸워웍"

다시금 천년 오공이 귀곡성을 발해준 후 시선을 지네 무리에게 향한 후 목소리를 높여 귀곡성을 발했다.

"이히히히 히히히히"

그러자 사왕과 섬왕이 금사와 백색 두꺼비와 함께 달아났다.

워낙 동작이 빨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막을 의사가 없었는지 지네 무리가 다소 길을 트자 사왕과 섬왕은 날카 로운 소성을 발하고는 각각의 무리를 이끌고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은성이는 청은검을 검집에 꽂고 오른손을 다시금 천년 오공의 명문혈에 댄 후 운기 행공 하였다.

천년 오공은 피로한 상태에서 마지막 기력을 다해 귀곡성을 울려서 그런지 기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물 밀 듯이 흘러 오는 내력을 받아들여 다시금 자신의 흩어진 기력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1시진 정도 지나자 연단 위에 어리던 빛이 백청색에서 백색으로 띄게 되었다. 차 한잔 정도 마실 시간이 다시 지나자 백색의 빛 조차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지끔껏 은성이의 내력을 받아들여 기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도 끊임없이 단로만을 응시하던 천년 오공이 은성이의 왼손을 살며시 쥐고 단로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은성이의 목을 꼭 껴안았다. 천년 오공의 난데없는 행동에 놀라던 은성이는 목위로 소리 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물방울 들과 소리죽여 오열하던 천년 오공의 상체가 떨려 오며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 하자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

가슴속으로 뿌듯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상체는 인간의 모습이었으며 몰래 살펴본 결과 인간과 비슷한 지능에 감정조차도 풍부하였다. 한 소녀를 도운 것 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이윽고 한참을 울 던 천년 오공은 다시금 삼장 넓이로 주위에 진세를 치기 시작하였다.

은성이의 내력에 의해 다시금 기력을 조금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단로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백색으 로 된 작은 자기를 꺼냈다. 백색 자기 역시 인간이 만든 것처럼 보였는데 표면에 청학 2마리가 나래를 펴고 어울리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천년 오공은 도자기에 다시금 내력을 돋우며 마구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미 준비된 듯한 흰 천을 몇 겹으로 바닦에 깐 후 그 위에다 도자기를 내려놓고 살며시 내력을 가하였다. 그러자 백색 자기는 마치 칼로 자른 듯이 두 조각이 나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두 알의 금색 단환이 흰천 위에 떨어져 내려 왔다.

일시에 주변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상쾌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천년 오공은 그 중 작은 금환을 들어 은 성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윽한 시선으로 은성이를 바라본 후 은성이의 입술에 단환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 자신도 즉시 나머지 한 개의 단환을 복용하였다.

어!어! 하는 사이에 자의에 상관없이 단환을 먹은 은성이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내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중단전이 발달되고 오행 진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은성이는 더 이상 영약이 필요없고 또한 아무리 좋 은 영약이라도 그에게는 큰 효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 하였지만 천년 오공의 정성을 뿌리칠 수가 없어 내력을 운용하여 단환의 약효를 흡수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은성이가 복용한 금환은 일반 영약이 아니었다. 천년 오공이 선인의 처방에 따라 몇백년 동안 약재를 모으고 다시 100년 동안 연단한 선단이었던 것이다. 내력을 운용함에 따라 은성이의 얼굴이 붉으스름 하게 변 하고 머리 위에 오기 조원의 홍, 묵, 백, 청, 황의 오색 꽃이 피어나더니 이윽고 5가지의 꽃이 하나로 합쳐지 는 것이었다. 천지 관일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5색의 꽃이 하나로 합쳐지자 꽃은 점점 커지고 형형색색의 무지개 빛이 일더니 이윽고 찬연한 서기를 띈 금색 으로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일다경 정도 지난후 금색으로 찬연히 빛나던 꽃이 다시금 대롱부터 은성이의 백회 혈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은성이의 몸 전체가 금색 서기에 휩싸이며 공중으로 3자 정도 떠올랐다.

부공삼매에 든 은성이는 느낄 수 있었다.

깨달음이 있은 후 중단전에 머물던 오행 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가 싶더니 경락 하나하나를 관통해 나가고 있 었다. 통합된 오행진기는 전과는 달리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액화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회음혈에서 몸 뒤쪽으로 백회혈을 지나 미간으로 이어지는 독맥과 역시나 회음혈에서 시작하여 몸 앞쪽을 돌 아 천돌혈을 지나 미간까지 이어지는 임맥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양쪽에서 올라오는 기세는 백회혈에서 부 딪혔는데 부딪힌 기운은 백회혈에서 회음혈까지 이어진 기경 8맥중 충맥을 따라 회음혈로 내려갔다.

무림인들이 꿈에서라도 갈망하는 생사현관이 타통된 것이다.

평상시 오행진기가 철저히 배척하던 내가 진기도 오행진기가 통합된 진기에 일순간 흡수돼 버렸다. 한참을 경 락 및 세맥을 순환하던 진기는 서서히 하단전 및 중단전으로 모여 들어갔다. 오행진기가 통합되어진 진기라 그런지 오행진기가 머물던 중단전이 더 좋았는지 칠할 정도가 중단전으로 그리고 삼할 정도는 하단전으로 모 여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전신 경락의 경맥의 락맥의 맥혈에는 통합 진기의 상당량이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잠시 후 눈 을 뜬 은성이는 전신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연을 얻은 후로는 몸의 무게가 무겁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가볍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사왕에게 물린 부위는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1차 기연때 환골 탈퇴한 덕분인지 윤기가 흐르는 주변의 피 부와 같이 완벽한 상태로 복원된 것이다. 앞에는 천년 오공의 내력 운행이 한참이었다.

상서로운 기에 둘러싸인 천년 오공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 본 은성이는 몸을 돌린 후 발 끝에 힘을 주었다.

진세를 빠져 나가는 데에도 진세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아마 천년 오공의 내력과 비슷한 종류라 이질감이 없어서 그냥 통과된 것 같았다. 진세 밖에는 무수히 많은 지네들이 여전히 진을 치고 있었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못하였다. 도약하자마자 진세를 뚫고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기진의 옆까지 도달하였던 것이다.

기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귀곡성에 내상을 입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운기 조식 중이었다. 이미 운기 조식이 절정에 달했는 듯 기진의 머리 위로는 하얀 백기가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하얀 백기가 기진의 코속으로 흡수되면서 기진은 눈을 뗬다. 옆에는 여전히 은성이가 운기 조식을 하 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기진이 깨자 마자 은성이의 운기 조식도 끝이 났다. 기진은 한바탕 꿈을 꾼 것 같 았다. 귀곡성과 사왕과 섬왕의 내공 대결에 그만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아마도 조금만 더 귀곡성이 오래 끌 었으면 내상에서 그치지 않고 목숨까지도 위험했었었다. 이를 생각하자 등 위에서 식은 땀이 절로 났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지네 무리와 그 가운데의 검은색 빛 무리를 보고는 이내 꿈이 아님을 실감 하였다. 그 무섭던 뱀과 두꺼비 떼는 시체들을 제외하고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슬쩍 진저리를 친 후 옆 을 보니 은성이도 태연한 기색으로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형제! 그래 몸은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은성이의 심오한 내공에 놀라는 기진이었다. 기진과 은성이가 뒤쪽에 머무르는 일행의 곁으로 다가 갔다. 경신의 상처는 한결 나아져 있었다.

"좀, 괜찮습니까?"

"음! 소형제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 같네. 부기도 거의 빠졌고 말이야."

"다리를 똑바로 펴고 앉아 보세요."

은성이는 부탁대로 다리를 똑바로 펴고 앉은 경신의 상처 부위의 상부 매듭을 푼 후 금침을 꺼내 상부와 하부 쪽에 몇 개의 금침을 박았다. 그리고 금침을 박은 부위의 바깥쪽에 태극 진기를 몰고서 위아래 양쪽 방향에서 상처 부위로 진기를 서서히 몰아갔다.

이윽고 상처 부위에서 독기에 중독된 묵혈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잠시동안 진기를 운행하자 묵혈이 희미해지 고 혈홍색의 피가 흘러 나왔다. 그러자 은성이는 경신에게서 손을 떼고 다시금 봇짐 안에서 녹색곽을 꺼내 알 약 한 개를 경신에게 복용시켰다.

"한번 일어나 보시죠."

"동생! 다 나았어?"

곁에서 지켜보던 경묘가 신기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아마 그럴거예요."

자신만만한 은성이의 장담에 반신반의하던 경신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중독되었던 발을 땅에 대어 본 경신은 금룡각의 간단한 발기술을 조금 시전해 보이고는 신기한 듯 은성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씻은 듯이 나았네!. 소형제! 고맙네!."

"하!하! 뭘요. 이래봬도 재가 꽤 유명한 의원의 아들이라고요."

"아니야! 우리 은성이도 명의인 것 같은데... 이렇듯 감쪽같이 치명적인 독상을 치료하다니, 분명 명의가 분 명해."

경신의 중독에 꽤나 걱정되었었는지 경묘가 매우 쾌활한 목소리로 은성이를 추켜 세웠다. 이제는 걸음을 걸을 수 있게된 경신 때문에 일행의 발걸음은 다소 빨라질 수 있었다. 천년 오공의 안부가 걱정된 은성이가 걷다가 가끔씩 뒤돌아 보았지만...

계룡산 정상을 넘어 반정도 넘어 왔을까, 다소 어스름이 지려고 하는 유시 무렵 잠시 소변을 본다던 상인 한 명이 볼일을 마치고 뛰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와! 저거봐요, 서기인가 봐요?"

일행들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계룡산 능선을 몇 개 지난 후방에서 서기가 빛나고 있었다. 서기는 일각이나 지속된 후 멈추었다. 잠시 쉬며 서기가 지는 것을 구경하던 기진 일행은 혹시 기진 이보가 출현했나 궁금해 했지만 다시금 어스름만이 밤하늘을 감싸자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일행이 계룡산을 넘어 객점을 찾은 것은 해시 초입이었다. 객점은 식사와 숙박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다 목적용 이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계룡산을 넘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식당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상인들이 식당 한 개를 차지하고 조금 떨 어진 곳에 금룡각의 무사 네명과 은성이가 원탁에 앉아 식사를 즐기 었다.

"소형제! 동방파의 어느 분에게서 무술을 사사 받으셨나?"

식사를 하던 기진이 은성이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이름은 허자, 선자, 도자 인에요."

"음, 자운검의 제자이구먼. 그분의 무명은 대단하지, 하지만..."

"왜요? 사형!"

평소 과묵한 사형이 은성이에게 호기심을 보이자 호기심 덩어리인 경묘가 즉각 호기심을 띄며 물었다.

"아니! 의술은 그렇다쳐도 내공이 매우 정심한거 같아서 말이다."

"아! 그래요. 우리 은성이가 한 내공 하는가 보죠. 호! 호! 호!"

"그래, 소형제! 그럼 동방파에서 무술을 익히다가 잠시 집을 다녀오는가 보지?"

꽤 호기심이 짙었는지 기진이 재차 물었다.

"아니요. 사부님이 6년전에 집에 다녀가신 후 소식이 없어 사문에 한번 가 볼려고..."

담담한 은성이의 말이다. 하지만 기진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잠시후 기진이 다시 물었다.

"혹 다른 스승을 모신 적이 있는가?"

"아니요."

"어! 그래."

"사형! 은성이가 진짜로 내공이 정심해요? 하지만 나이가 있는데..."

경묘의 말이 다.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기진이 은성이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 동방파의 무술은 많이 익혔나?"

"쪼금요, 예전에 스승님께서 동방파 권법 두가지 하고 검법 한가지를 배웠어요."

"음. 그래"

약간의 안위가 되는 것인가. 기진의 안색이 매우 밝아졌다.

금룡각에서 은성이 나이 또래의 제자들, 그러니까 8대 제자들도 비록 내력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대부분 삼사 가지의 권법과 역서 이삼가지의 검법을 익힌 상태이다. 물론 몇몇 기재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공을 습득 한 상태이고 말이다. 익힌 무공의 수에 따라 무공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내공의 강약에 의해서만 무 공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내공과 외공, 초식의 완성도와 임기응변 그리고 실전 경험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진정한 강자가 되 는 것이었다. 은성이의 정심한 내공에 금룡각이 동방파에 밀리는 것 같아서 의기 소침해 있던 기진이었다.

"동방파는 마니산에 있으니 앞으로 일주일은 더 가야겠구만. 섭섭하지만 우리는 일정이 바쁘고 가는 방향이 달라 내일 새벽 인사도 못하고 먼저 떠나야 할 것 같네 "

"예, 어쨌든 덕분에 수월하게 계룡산을 넘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경묘를 바라보는 은성이의 눈길이 다소 애틋해졌다.

"그래, 나도 나중에 우리 귀여운 은성이 꼭 봤으면 좋겠다. 그때도 꼭 누나라고 불러야 돼, 알았지? 은성아!"

"예"

다소 수줍은 듯한 은성이의 말소리가 밤 공기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평소의 습관대로 묘시초에 눈을 뜬 은성 이는 운기 조식에 들어갔다. 완벽하게 주변과 동화되어서인지 운기조식 와중에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룡각 무사들이 짐을 꾸려 떠나고 조금 있자 어제 저녁 일행의 식대를 자기들이 내겠다며 꿋꿋한 의지로 이 를 성취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상인들도 떠나갔다.

운기조식하며 마음을 밖으로 돌리자 밖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심지어는 몇 번째 건너편 방에 누워 있는 사 람의 불규칙한 숨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고 그러다가도 마음을 안으로 거두자 몸 밖의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몸은 고요하고 광활한 우주에 홀로 위치돼 있는 듯이 철저히 혼자만의 세계로 몰입 되어졌다.

몸안의 모든 기의 흐름과 장기의 움직임과 소리가 직접 눈으로 보는 듯이 그려지고 들려 왔다. 재미가 있었는 지 마음을 신체 내·외부로 왔다갔다 하며 집중하던 은성이는 진시쯤에야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세면을 하고 조식을 한후 객점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벌써 계룡산 꼭대기에 걸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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