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8화 (8/152)
  • ■ 제 8장

    귀곡성 같은 소리가 흘러 나오자 지네들은 머리를 땅속에 더욱 깊이 처 박았다.

    귀곡성이 흘러 나오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뱀과 두꺼비떼의 상당수의 눈동자가 풀려 가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풀려 가는가 싶던 독물들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땅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광장 안에 있는 뱀과 두꺼비떼의 반수가 미쳐서 땅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기진도 내공을 돋우어 소리를 차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귀곡성이 시작 되자 머리가 어지러워 오기 시작했던 것 이다. 급히 전음을 날려 경인, 경묘에게 상인들과 경신의 귀를 막고 경인과 경묘에게고 귀를 막을 것을 지시 했다. 옆의 은성이를 보니 운기 행공 중인지라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기색이 없는지라 나름 대로 잘 대처하고 있으려니 생각 하였다.

    그리고 기진 자신도 내공을 돋우어 외부의 소리를 모두 차단했다. 은성이는 귀곡성을 차단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한 후 귀곡성의 인체 및 독물들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묵상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많은 독물들이 땅위를 구르기 시작했고 미친 듯이 땅위를 구르던 일부 독물들은 서서히 그 움직임을 멈추어 갔다.

    하지만 하나같이 눈동자가 하얗게 돌아가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이었다. 땅속에 머리를 박고 있던 청지 네 한 마리의 몸이 툭하고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 희끗한 것이 빠져 나왔다. 그것은 빠져 나 오자 마자 기음을 지르기 시작 하였다.

    '휘리리리릭 ! 휘리리리리릭!'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려 나오자 땅위를 구르고 있던 뱀들중의 상당수의 눈동자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 오기 시작 하였다. 그러자 귀곡성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기진도 귀곡성 소리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더 내공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

    뱀과 두꺼비 떼가 휩쓸고 간 자리에 머리가 으깨어져 죽어있던 청지네 한 마리가 갑자기 두둥실 떠 오르기 시 작하였다. 그리고 청지네의 중심 부분에서 금광이 떠오르는가 싶자 이내 청지네는 땅바닦에 떨어졌다.

    금광은 허공에서 잠시 머무르더니 서서히 땅위로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내려 앉으면서 금광이 서서히 얇아 졌 는데 그 속에서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 하였다. 작고 투명한 두꺼비, 바로 섬왕 이었다.

    '꾸웍'

    섬왕의 울부짖음이 평야를 뒤흔들어 놓았다. 섬왕이 울자 섬왕의 뒤로 언제 나타났는지 모습을 보인 백색 두 꺼비도 같이 울기 시작 하였다. 섬왕 보다는 못하지만 거의 못지않은 크기의 기음이었다. 날카로운 귀곡성과 휘파람 소리가 섬왕과 백색 두꺼비가 거의 동시에 내 뱉은 굉음에 묻혀져 버렸다.

    두꺼비의 울부짖음에 땅위에서 뒹굴던 두꺼비들 상당 부분이 정상을 되찾아 버렸다. 하지만 귀곡성은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으며 섬왕과 백색 두꺼비가 괴음을 터트린 후 잠시 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평야는 인면 오공의 귀곡성과, 사왕의 휘파람 소리, 그리고 섬왕과 백색 두꺼비의 괴음으로 가득 찼다.

    귀곡성은 이각이나 더 지속된 후 멈춰졌다. 그러자 아직까지 살아 남은 독물들이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 가기 시작하였다. 장내는 처참 지경이었다. 뱀과 두꺼비 떼의 팔할 정도가 귀곡성에 당해 땅위에서 아직도 뒹 굴고 있거나 아예 움직임이 멎어 버린 것이다.

    지네는 땅속에 머리를 박으면서 뱀과 두꺼비 떼들에게 당한 일할을 포함해서 2할 정도가 죽었을 뿐이다. 호각 지세를 유지하던 뱀과 두꺼비와 지네의 싸움은 너무나도 가공한 인면 오공의 살상음에 지네무리의 승리로 급 작스럽게 기울어져 버렸다.

    은성이는 독물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그 원인이 분명 검은 묵기로 뒤덮인 부분에 있을 것으로 생각 되었다. 중단전 까지도 개방한 은성이는 대다수의 후천지기와 일부 선천지기를 몸 구석구석에 보내 몸 외부를 감싸 보호한 후 모든 역량을 검은 묵기 부위로 집중하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좌선하고 있는 은성이의 몸 주위로 투명한 막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정수리 부위에서 희미한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주먹만한 크기의 영상은 곧바로 검은 묵기가 일렁이는 곳으로 날아갔 다. 사라진 희미한 영상은 은성이의 정수리와 아주 가늘고 흰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는 옆에서 아직도 내공을 돋우며 귀곡성을 차단하고 있는데 열중하는 기진도 그리고 정작 당사자인 은성이도 모르는 기 현상이었다.

    은성이는 의식이 집중되자 검은 부위쪽의 전경이 눈에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검은 부위 안쪽으로 더욱더 의식을 집중하자 자기 자신이 안쪽으로 직접 파고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며 안쪽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들 어오기 시작하였다.

    안쪽은 직경 2장 정도의 넓이였다. 거기에 인면 오공이 있었다. 푸른 머리를 길게 기르고 상반신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가 검은 묵기 바깥쪽을 향해 귀곡성을 발하고 있었다.

    우연히 인면 오공의 얼굴을 본 은성이는 하마터면 감탄사를 내 뱉을뻔 하였다. 서책에 나오던 경국 지색의 미 인이라던 양귀비나 서시가 아무리 예뻐도 이 얼굴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허리 아래 부분은 아 직도 진화가 덜 된 것 같았다. 납작한 지네와는 달리 조금 통통하였는데 푸른색 비늘 사이로 퇴화된 발가락들 이 조그맣게 보였다.

    인면오공의 뒤쪽에는 단로가 하나 있었다. 인간이 만든 단로였는데 세 개의 발에 사면이 청룡, 주작, 백호, 현무등 사신도가 매우 섬세한 솜씨로 양각된 귀하게 보이는 단로였다. 그 단로에서 조금씩 녹색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로의 아래 부분에는 옥같이 하얗고 섬세한 인면 오공의 왼쪽 손이 닿아 있었다. 별로 힘든 기색도 없이 앵 두같은 입술로 귀곡성을 발하던 인면 오공은 사왕이 휘파람을 불자 귀곡성 소리를 더욱 크고 날카롭게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섬왕까지 가세하자 이마에 땀방울이 돋히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이를 악물며 귀곡성을 발 하던 인면 오공의 얼굴색이 하얗게 되더니 이윽고 귀곡성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오른손 까지도 단로의 아래 부분에 대는 것이었다.

    아마도 인면오공은 체내의 원영 진기를 이용하여 연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적과 내공 대결을 하면서 도 연단을 멈추지 않고, 무리한 내공 대결로 인하여 내공 손실이 많아지자 잔당을 모두 처치할 수 있는 절호 의 기회인데도 연단을 위하여 귀곡성을 멈춘 것을 보면 매우 귀중한 연단인 것 같았다.

    단로 뒤쪽은 절벽 이었는데 매우 평평하였다. 평평한 부위 하단 쪽에는 '원극선인' 이라고 음각돼 있었으며 음각된 글자 위쪽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갑자기 단로에서 나오는 푸른 연기가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단로 아래쪽에 양손을 대고 있던 인면오공의 얼굴에 구슬같은 땀방울이 맺혀져 갔다. 귀곡성을 발하느 라 내공 소모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연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인면 오공이 연단에 혼신 을 다하자 인면 오공과 단로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묵기가 다소 흔들리고 잠시 엷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약간의 푸른색 연기가 새어 나갔다. 인면 오공은 이를 보고 움찔하였지만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일각도 안되어 다시금 묵기가 흔들리고 연기가 조금더 새어 나갔다. 그리고 인면 오공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의 양도 많아졌으며 안색도 조금씩 창백해져 가기 시작하였다.

    비록 강한 독물들만은 살아 남았지만 사왕과 섬왕은 이미 전세가 기울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왕과 섬왕은 모두 영성이 강한 독물들이었다. 계룡산에 무리를 이끌고 온 후 처음에는 삼파전이 되어 싸웠지만 상대방들의 전력을 금새 파악할 수 있었다.

    사왕쪽에서 먼저 섬왕에게로 합작 제의를 했다. 어차피 목표는 지금 저 눈앞에 검은 묵기로 감싸인 곳에서 연 단되고 있는 선약 이었다. 그것만 얻을수 있다면 천룡이 되어 구만리 창천을 날고 호풍환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리라.

    섬왕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단로는 사왕이나 섬왕 단독으로는 난공 불락이었다. 두 무리가 합세한다 고 해도 진세를 뚫을 수 없는한 선단을 차지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어렵게 합작하고 살을 주고 뼈를 얻는다 는 계책으로 수많은 동족들을 희생시켜가며 간신히 진세를 뚫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천려 일실이라고 인면 오공이 연단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예상 했는 데 귀곡성을 발할 수 있을 줄이야...

    청지네에게 먹힌 후 청지네를 이용해 지네 무리의 중심부로 진입해 들어가고자 하는 치밀하고 기발한 계책도 배속에서 세뇌하려던 청지네가 갑자기 두려움에 가득차서 세뇌할 수도 없는 정신 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땅속 으로 머리를 들이밀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 하였다.

    사왕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냉정히 상대방의 전력을 분석해 보기 시작 하였다. 섬왕쪽도 막대한 피해를 입 고 자신들과 엇 비슷한 정도의 전력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네 무리는 연단을 중심으로 포진한채 땅 속에 처박았던 머리를 세우고 질서 정연하게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과 섬왕의 무리를 합친 것보다도 최소한 3배는 넘는 전력이었다. 사왕의 머리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오늘 이대로 물러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인면 오공이 연단에 성공 한 후 선단을 복용하면 틀림없이 복수를 할 것이고 그때는 하늘 끝이나 백장 지하의 깊은 땅속으로 숨은 후 숨조차 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숱한 무리들을 이끌고 산천 초목을 누비며 호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전력으로는 불가항력 이었다. 아쉬움이 분노가 되어 빨갛게 충혈되며 붉은 섬광을 줄기줄기 피워대던 사왕의 눈에 이채가 띄여졌다. 검은 묵기를 철통같이 감싸며 지키고 있던 지네들의 일부 진영이 흐트러진 것이다.

    뱀과 두꺼비 떼에게 시선을 집중시킨채 지금까지 동요 한번 없이 진용을 흩으리지 않은 체로, 마치 철벽과도 같은 위용을 보이던 지네떼들 중에 연단이 되고 있는 검은 묵기 가까이에 있는 일부 지네들이 이성을 잃은 듯 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치리리릭'

    '치리리리릭'

    날카로운 기음을 발하며 날뛰던 지네 무리의 소란이 잠시 가라앉는가 싶더니 다시금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하 였다. 처음보다도 휠씬 더 많은 무리들이 기음을 질러대고 검은 묵기가 흐르는 부분에 몸을 부딪히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밖에 뱀과 두꺼비 떼의 최 정예병들이 아직도 새파란 안광을 반짝이며 대치하고 있는데도 안하 무인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천 오공들은 검은 묵기의 위쪽으로 날아올라 검은 묵기 주변을 배회하고 일부는 검은 묵기 쪽으로 달려 들 다.반탄력에 땅으로 나가 떨어지기도 하였다. 인면 오공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고 가냘퍼 보이는 몸은 부들 부들 떨려 오기 시작하였다.

    연단은 1∼2년 동안 공들인 것이 아니었다. 운 좋게 태어난 장소가 선인이 수련하는 동굴 내부이었고 살생을 꺼리는 선인의 자비와 경세 기연을 만나 환골탈태하는 행운을 만났다. 기연으로 인하여 수명이 길어진데다가 영성이 트여 선인의 수행을 조금 훔쳐 배울 수 있었다. 선인에게 잘 보 이기 위하여 살생을 피하고 부단한 수 련을 한 결과 선인의 은혜를 입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비법을 전수 받은 것이 천여년 전이었다.

    비록 선인은 우화 등선하여 천상계로 떠났지만 한시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반 인간으로 환체할 수 있었다. 지네의 형상을 벗고 탈피하여 반 인간으로 환체하는 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몇 일간을 엉엉 울었었다. 미물 의 껍데기를 벗고 완전한 인간이 되면 자신도 수련을 거듭한 후 우화등선하여 천상계에서 살수도 있는 것이다.

    이후 인간의 문자와 언어를 익히고 절벽에 선인이 새겨 놓은 선약 제조 비법을 보고 희열에 떨던 수많은 날들 ...

    단로를 구하고 선약에 필요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산천을 헤메고 다니던 숱한 세월 다행히 영산인 금 강산에서 마지막 필요한 약초인 천년묵은 동충하초를 구한 것이 백년 전이었다. 연단을 위하여 진세를 설치하 고 만일을 위하여 선불암 지하에 있는 쌍두오공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이곳을 보호하도록 명령하였다.

    연단이 진행되면 단로에 있는 향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었다. 선약의 냄새를 맡으면 모든 동물의 이 성이 마비되고 선약을 차지하고자 하는 본능만이 남아 단로로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단로에 있는 선약의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통제하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었다. 단로를 포함 하여 자신의 주변으로 직경 2장을 둘러싸는 강력한 진세를 다시금 설치하였고 자신의 진기로서 통제 가능하도 록 해 놓았다.

    검은 막으로 철통같이 보호되는 진세는 밖에서 안쪽을 전혀 볼 수도 그리고 영향력을 끼치기도 어려웠다. 비, 바람, 눈보라 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대신 안쪽에서는 밖의 전경이 환히 보이고 또한 전음 등도 보 낼 수가 있었다.

    이곳 계룡산에서 자신이 거느린 지네 무리를 뚫고 이곳으로 쳐들어올 세력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천고의 마 물인 쌍두 오공도 있었으며 또한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일까...?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이제 몇 시진만 보내면 연단이 마무리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연단이 실패하면 약초 준비에서부터 다시 시 작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 3백년은 걸리리라. 그리고 천년 묵은 동충하초 등 그 숱한 영물, 신초들을 다시 또 구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절대로 여기에서 연단을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상태는 최악이었다.

    귀곡성을 발하느라 소모된 내공이 너무 많았다. 귀곡성을 발할 시 소모되는 내공 정도는 물론 잘 알고 있었고 적절히 내공 소모를 조절하며 귀곡성을 발했는데 사왕과 섬왕 그리고 백색 두꺼비의 능력은 그의 상상 이상이 었다. 침입자들을 일거에 무찌르기 위해 무리해 가면서까지 귀곡성의 강도를 올렸는데도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고 침입자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무리에 무리를 하다가 연단에 필요한 진기까지도 고갈돼 가는 것 같자 어쩔 수 없이 귀곡성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원영 진기까지 소모해 가며 연단을 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진기가 끊어지 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시나 자기의 진기와 연결해 있던 진세가 조금 흔들리고 진세안의 선단의 냄새 가 조금 세어나가 버렸다.

    설상 가상 이랄까... 선약의 냄새를 맡은 지네들의 일부가 미쳐 날뛰고 진세안으로 몸을 부딪쳐 오자 위태위 태 하던 진기의 흐름이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밖의 상황도 좋지가 않았다. 일부 지네 무리들이 날 뛰기 시작하자 오합지졸같이 무리져 있던 뱀과 두꺼비가 서서히 진영을 유지하고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진기는 거의 고갈돼 가는데 연단을 중지할수도 그리고 진세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진기를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만 더 진세가 흔들리고 연기가 세어 나간다면 미쳐 날뛰는 지네 무리가 늘어나고 진세에 가하는 충격이 많아지면 진세가 허물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는 연단은 실패하고 진기가 고갈된 자신의 목숨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천년 꿈이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은 명백해져 갔다. 건헐적으로 각각 진세에 부딪혀 오던 지네들이 본능적으로 작당을 했는지 한꺼 번에 진세로 부딪혀 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천년 오공은 은성이를 볼 수 없었지만 은성이는 천년 오공의 표정 하나하나 까지 바라 볼 수 있었다. 은 성이가 흉측한 지네 무리를 보며 생각 하던 바와는 너무나 다르게 청초함 그 자체인 천년 오공의 커다란 눈망 울에서 처연히 흘러 내리는 이슬 방울을 볼 수 있었고 아쉬움과 비련에 젖은 천년 오공의 표정은 물론 이상하 게도 마음이 동화 되었는지 천년 한 까지도 하나하나 은성이의 마음 속으로 와 닿는 것이었다.

    지네 무리가 한꺼번에 진세로 부딪혀 오자 은성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함에 가슴 한 곳이 무너져 내리 는 거 같았다. 그리고 천년 오공의 눈물이 방울져 내릴 때 은성이의 눈에서도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 다.

    상상할 수 없는 애처로움에 위기 의식을 느낀 은성이는 급히 정신을 육체가 있는 곳으로 소환하였다.

    은성이가 천년 오공의 마음과 동화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순수한 원영이 육체 이탈해서 어떤 현상을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원영을 만들어 육체 이탈 한다는 것은 반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육체 이탈된 원영은 인간과 같은 만물의 영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동 식물과 마음의 전이는 물론 그 영혼까지 도 지배할 수 있었다. 은성이는 자기의 원영이 육체 이탈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진세 안으로 집중하여 우연히 진세 안쪽을 엿볼 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자기의 능력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쨋든 천년 오공의 심정을 마음의 전이를 통해 알게 되자 급히 집중을 해제하고 몸을 띄웠다. 땅을 한 번 박차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세까지 다가와서 진세 주위로 달려들던 오공의 무리를 향해서 검기를 뿜어대기 시작 하였다.

    줄기 줄기 뿜어대는 검기가 일부 지네들의 발작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순식간에 너무 나 많은 수의 지네무리가 진세를 향해 몸을 부딪혀 갔기 때문이다. 은성이가 펼친 검기가 달려들던 지네들의 절반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시기적으로나 수적으로나 너무나 열세 이었다.

    꽈꽈광...

    진세의 한쪽 구석이 찢겨져 나가고 푸른 연기는 더욱 더 많이 새어져 나왔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지네들이 진세의 찟어진 부분으로 새어 들어갔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것인가.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던 사왕과 섬왕의 무리가 지네 무리가 자중지란을 일으 키자 진세를 노리고 다시금 짖쳐 들어 오기 시작하였다. 천녕 오공에게는 절대 절명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상황이 너무나 위급해 지자 은성이는 급히 진세 안쪽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리고는 재빨리 천년 오공의 등뒤에 앉아 등 뒤 명문혈로 진기를 불어 녛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은성이 가 천년 오공의 명문혈로 진기를 넣어 주자 천년 오공이 매우 괴로워 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나마 찢긴 진세는 완전히 허물어 졌으며 단로에서는 지금까지의 옅은 연기가 아닌 짙고 푸른 연기가 줄기차게 뿜어져 나 가기 시작하였다.

    순간 은성이는 아차 하였다. 천년 오공이 은성이의 이질적인 내공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도와 준 다고 하던 은성이의 호의는 천년 오공에게는 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천년 오공에게 불어넣어 주는 진기를 오행 진기중 대지의 기운인 진토기 로 바꾸고 단로 주위로는 급하게 호신 강기를 펼쳐 내었다. 다행히 오행진기중 진토기는 천년오공의 내공과 쉬이 융화가 되었다. 새파랗게 질려 있던 천년 오공의 안색이 안정되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태가 양호한 방향으로 풀려 가는가 싶었다. 천년 오공은 내력을 회복해 가고 있었으며 단로에는 은성이가 진토기로 황색 호신 강기를 펼친 덕분에 더 이상 푸른 연기가 세어 나가지 않았다. 천년 오공은 죽음의 기로 에서 갑자기 닥친 괴한에 의해 명문혈로 진기가 유입돼 올때는 크게 놀라지 않았었다.

    어차피 포기한 삶이었다. 연단을 포기하고 일신상의 안위만을 챙기려 해도 사왕과 섬왕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이 또한 불가능 하였다.

    속절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명문혈로 이종의 진기가 유입돼 올때도 죽음의 화살이 이상한 방향에서 날아 왔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이종의 진기가 그나마 미약하게 유지해가던 진기를 처참하게 유린해 갈때에도 이상 하게도 그 이종의 진기를 발한자를 원망하는 마음이 떨끝만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집착이 없어지고 진기가 고갈되자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선인이 선문답식으로 툭툭 던진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떠오르는 그 순간 그 것은 깨달아 지기 시작하였다. 몸은 죽어 가지만 정신은 한없는 열반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이종의 진기가 친숙한 대지의 진기로 바꾸어 명문혈로 유입돼 오자 몸은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시작 하였다.

    유입돼 오는 진기를 능동적으로 유인하여 전신을 일주천 시키면서 몸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진기들을 다시 금 단전으로 모이도록 한 것이다.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유입돼 오는 진기와의 동화 정도도 깊어져서 유입돼 오는 진기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기처럼 느껴지며 황폐해지고 소멸돼 가던 기력을 복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유입된 기는 순간적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자기 소유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입된 기가 거두어져 가기 전에 최대한도로 자기의 기력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유입된 기가 너무 나도 순후하고 충실했으며 또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와 동화되는 정도가 높았기에 천년 오공은 자기의 평소 가지고 있던 기력의 1할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 그 혼자서 자기 자신의 내상을 치료하고 기력의 1할을 회복하려면 1달은 족히 걸릴 정도로 몸 상태가 치 명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회복 속도였다. 단로 주위로는 흐릿한 막이 쳐져서 지네등 독물등이 침투하지 못하고 푸른 연기도 새어 나가지 않았으며 뒤에 있는 괴인영이 한손은 자기 명문혈로 그리고 다른 한손은 단 로에 댄채 끊임없이 내력을 불어넣고 있기에 연단이 실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불어 넣어 주는 내력에 비해 괴인영이 불어 넣어주는 내력이 순후해서 인지 연단위에 어렴풋이 어리는 빛은 푸른빛을 지나 벽청색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연단은 중요한 고비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일단 한 시름 놓게 된 천년 오공은 서서히 목을 돌려 뒤편에 있는 괴인영의 정체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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