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장
일행이 계곡을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계곡을 넘어가기 전에 큰 바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바위 앞에는 조금 넓은 평지가 보였다. 그런데 그곳을 바라보던 은성이가 일행을 멈추게 했다.
"잠깐"
은성이가 외치자 일행의 발길이 멈춰졌다. 은성이는 재빨리 앞장선 경묘 앞으로 다가가서 전방을 주시했다. 어느새 다가선 기진도 어깨를 마주하고 넓은 평지를 바라 보았다. 평지의 길이는 사방 20장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토양이 검은 색이었다. 이상한 것은 또 하나가 있었다. 바위산에도 풀들은 자라는데 흙으로 이루어진 땅위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땅위에는 지금까지 지나쳐온 길에서 보았었던 것보다 몇배는 진한 묵기가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 묵 기는 평지 앞에 있는 바위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한참 전방을 주시하던 기진의 눈에서 이채가 발해졌다. 평지 위에 대치하고 있는 생명체들을 발견한 때문이다.
묵기가 스며 나오는 바위를 경계로 오른 쪽에는 뱀들이 그리고 왼쪽에는 두꺼비 모양의 독물들이 대치하고 있 었다. 그런데 대치하고 있는 진열을 자세히 보고는 다시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군기가 엄정한 군대 에서 병사들이 진열하는 듯한 형세를 유지하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뱀 진영에서는 제일 앞줄에는 2촌쯤의 길이에 금색 빛을 발하는 뱀 3마리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 뒤로 는 족히 3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묵망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한자쯤 되는 흑색 뱀이 40여마리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뱀들이 계속 진영을 이루고 늘어섰는데 놀랍게도 기진이 알고 있던 독기 가 치명적인 독사들이 무리의 뒤쪽에서 몇 마리 눈에 띄였다.
오독사, 칠보 추혼사, 단장사 등...
한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칠흙처럼 검은 묵린을 반짝이며 머리위에 독각이 달린 거대한 묵망이 작은 금색 뱀 뒤쪽에 있다는 것과 금색 뱀 3마리가 평행한 상태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만한 독물들 을 다스리려면 영도하는 독물이 있어야 하고 약육강식의 동물의 생리상 우두머리가 정해질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맞은 편에도 비슷한 진세가 펼쳐져 있었다.
제일 앞쪽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새하얀 두꺼비가 있고 그 뒤로는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큰 두꺼비 한 마리가 있으며 그 뒤쪽으로는 붉디붉은 삼목섬여가 60여 마리가 있고 다시 그 뒤쪽으로는 초록 바탕에 검붉은 반점이 7개 나 있는 칠성 두꺼비 수백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각양각색의 두꺼비 수만 마리가 질서 정연하 게 대치하고 있었다.
숫적으로는 두꺼비가 훨씬 많았다. 이 두 진영은 5장여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는 벌써 전쟁을 치뤘는 지 두꺼비와 뱀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저 뱀이예요."
은성이가 기진에게 손가락으로 묵망뒤의 흑사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경신을 습격한 뱀 종류를 가 리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기진은 분노보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검으로도 벨 수 없고 육안으로 관찰하기도 어 려울 정도의 민첩성을 갖고 있는 흑사가 40여 마리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흑사보다 강해 보이는 묵망이 있다. 그럼 그 묵망앞에 있는 금색 뱀들의 위력은...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려 내렸다. 이런 뱀무리에 한치도 밀리지 않고 대치하고 있는 두꺼비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진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은성이는 금빛 뱀 무리앞에 검은 땅색과 눈빛 마저도 완전히 동화되어 육안으로 판별키 어려운 반자 정도의 뱀 한 마리와 귀엽게 생긴 순백의 하얀 두꺼비 옆에 너무나 투명하여 검은 땅빛 조차도 그대로 투영돼 보이는
주먹만한 두꺼비 한 마리를 더 볼 수 있었다. 두 독물 무리는 팽팽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뱀 무리의 뒤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독사들이 있는 곳의 흙을 뚫고 튀어 나온 회색 두꺼비들 이 있었던 것이다. 두꺼비들이 땅을 뚫고 공격한다는 것은 기상 천외한 일이었다.
은성이는 물론 기진 및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던 기사이리라. 전방은 묵기에 덮여 은성이와 기진만이 자세 히 관찰할 수 있었으며 경묘와 경인도 대강 형세 파악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인들 눈에는 묵망과 큰 두꺼 비가 싸우기 위해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만으로도 바위에 몸을 찰싹 붙인체 숨을 죽이고 지켜 볼만한 충분히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이 었기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빤히 전방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땅을 뚫고 공격한 두꺼비들은 100여마리 정도 되었다.
그 두꺼비들을 보면 두꺼비는 느리다는 통속적인 관념이 아예 무시되어 버렸다. 그 회색 두꺼비들은 땅을 뚫 기 쉬운 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 강한 송곳니, 그리고 길고 단단한 몸통까지도 말이다.
공격 방법은 특이 하였다. 뱀들에게 육탄 돌격해 날카로운 이빨로 뱀 머리를 물어뜯어 버리는 것이다. 일부는 뱀 머리를 물기 이전에 뱀에게 먹혀 버리기도 하였지만 뱀 독에는 내성이 있는거 같았다.
수많은 뱀들이 회색 두꺼비에게 머리가 깨져 죽고 피하느라 어수선해지자 앞쪽의 묵망 뒤에 포진해 있던 흑사 중 20여 마리가 재 빠르게 뒤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속도가 무림 고수 보다도 더 재빠른 데다가 가까운 거리라서 순식간에 회색 두꺼비에게 달려들어 날카롭게 목젓 아래로 파고 들어 목젓을 끊어 버렸다.
옆에 있던 회색 두꺼비가 잽싸게 흑사의 머리를 덥썩 물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흑사의 머리는 멀쩡하였다. 물 고 있던 두꺼비의 목젓을 확실하게 끊어 놓은 후 자기 머리를 물던 두꺼비를 머리를 흔들어 저만큼 나가 떨어 지게 한후 잽싸게 달려들어 목 아래로 파고 들었다.
일당 백의 정예들이었다. 두꺼비와 뱀 무리가 검은 평야에서 1차 접전을 벌인후 대치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 지만 사실은 땅속에서 치열한 2차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적의 후면을 기습 공격하려고 땅굴을 파며 기세 등등하게 쳐 들어가던 독사 지하기습조를 맞이한 것은 사전에 이를 눈치채고 땅속에 매복해 있던 회색 두꺼비 들이었다. 이 두꺼비들은 별종으로 일반 두꺼비 와는 달리 동작이 빠르고 사나우며 맹독을 가지고 있지만 심 산유곡 땅속에서 뱀이나 지네등 맹독류만을 잡아 먹으며 살아가는 종류로서 그 동안 운 좋게 인간들 눈에는 띄이지 않았던 종이었다.
어쨋든 기세 등등하게 땅굴을 파며 쳐 들어오던 뱀 무리를 무찌른 두꺼비들은 뱀들이 파들어온 통로를 역이용 하여 조금씩 넓히며 파 들어가 재빠르게 기습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된 상태에서 대단한 위력을 자랑하던 흑사의 반수가 빠져 나가자 이때라고 생각 되어 졌는지 두꺼비들의 제일 앞 에 있던 투명한 두꺼비의 입에서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꾸억'
이에 두꺼비들이 일제히 쳐들어가고 이에 질세라 뱀들도 쳐 들어와 바야흐로 3차 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두꺼비 들이 먼저 쳐들어 갔지만 동작은 뱀 때들이 더 빨랐다. 특히 흑사들은 일행도 그 빠르기를 익히 경험 한 터였다. 흑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흐릿한 흑영만이 머물고 있었다. 금사 3마리는 원형진을 형성한후 꼬리를 안쪽으로 밖을 향해 둘러싸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거대한 묵망도 또아리를 벗고 두꺼비 떼들에게로 달려 들었다. 워낚 덩치가 크다보니 깔려죽는 두꺼비들도 있 었는데 묵망은 오직 한 방향, 커다란 두꺼비 만을 목표로 연녹색 안광을 반짝이며 다가가고 있었다.
묵망이 다가오자 큰 두꺼비의 입에서 붉은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묵망도 검은 독무를 뿜어대기 시작 하였다. 아마도 서로간에 상대방이 갖고 있는 독기를 탐색해 보려는 것 같았다.
곧 묵망과 큰 두꺼비 주변에는 붉고 검은 독무로 가득차고 이 독기는 서서히 주변으로 확산 되어져 갔다. 흑 사의 무리가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두꺼비 무리중 동작이 빠른 회색 두꺼비와 그에 못지 않은 칠성 두꺼비 들이었다.
하지만 10여마리만이 이들을 공격하고 나머지는 뒤에서 굼뜨게 기어오고 있는 삼목 섬여에게로 짓쳐 들어갔다.
익히 흑사들의 위력을 알고 있는 칠성 두꺼비들과 회색 두꺼비 들은 일부는 흑사들을 피해가고 일부는 10여 마리씩 무리를 지어 흑사 1마리씩 상대했다.
칠성 두꺼비 1마리와 회색 두꺼비 3마리를 순식간에 목젓을 물어 트려 숨통을 끊어놓던 흑사 한 마리가 다시 재빠른 동작으로 칠성 두꺼비에게 달려들자 왕방울 같던 큰 눈을 굴리던 칠성 두꺼비의 입에서 긴 혀가 튀어 나왔다. 긴 혀는 순식간에 흑사의 눈 위로 스쳐 지나 갔는데 그렇게 기세 등등하던 흑사가 멈칫 하더니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보검 조차도 자르지 못한 흑사에게도 약점은 있었던 것일까...?
흑사의 두 눈동자가 검은 연기를 피어대며 녹아들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회색 두꺼비가 냉큼 달려들어 흑 사를 머리부터 삼키기 시작했다. 흑사를 삼킨 회색 두꺼비의 배가 울록볼록 하게 춤을 추는가 싶더니 기어이 잠잠 해졌다.
재수가 무지 없는 흑사 한 마리가 장열하게 전사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흑사들은 종횡무진이었다. 한 마리의 흑사를 대적하기 위해 10여마리 이상의 맹독을 가진 두꺼비들이 달려 들었지만 중과 부적이었던 것이다...
삼목 섬여에게로 달려간 흑사들의 사투는 더욱더 치열하였다. 삼목 섬여는 동작은 다소 느리지만 머리가 영리 하고 지닌 독의 지독함은 감히 흑사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붉은 독무 사이로 간간이 내비치는 혈홍색 독 기는 그 무엇이든 녹여 버릴 수 있었다. 무적을 자랑하던 흑사의 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아는지 흑사들도 붉은 독무를 뚫고 들어가다가 혈홍색 독기만 내 보이면 재빨리 몸을 틀어 피해갔다. 삼 목섬여가 한 마리면 충분히 혈홍색 독기를 피해가며 접근할 수가 있을 터인데 숫적으로 매우 불리했다.
흑사 1마리에 삼목 섬여가 3마리 정도씩 붙어 있는 것이다. 간간이 삼목 섬여의 합벽진에 걸려 온몸이 녹아드 는 흑사도 있었지만 흑사는 죽는 순간까지도 몸을 날려 두꺼비의 목젓을 끊어 놓는 지독함을 보였다. 게다가 어떤 흑사는 삼목 섬여의 합벽진을 깨고 목젓 밑으로 파고 들어 가기도 하였다. 흑사가 회색 두꺼비와 칠성 두꺼비 떼의 일부와 삼목 섬여를 상대하는 동안 평야에서는 그 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 지고 있었다.
이미 수천 마리의 두꺼비와 맹독을 가진 독사들이 죽어 넘어져 있으며 평야는 가지 각색의 독기에 싸여 일행 들의 시야를 어둡게 만들어 갔다. 한쪽에서 싸우고 있던 묵망과 큰 두꺼비는 뿜어 대던 독의 강도를 높였는데 평야를 더욱 더 붉고 검은 독기로 가득 채워 갔다.
기진 조차도 평야에 있는 작은 뱀과 두꺼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야가 짙은 독무로 가득 찰 때쯤 지금까지 한쪽에 서 관망만 하고 있던 금색뱀 3마리와 주변과 몸색을 동화시켜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뱀들의 왕 즉 사 왕(蛇王)과 흰색 두꺼비 그리고 투명하여 역시나 모습을 찾기 어려운 두꺼비들의 왕 즉 섬왕(蟾王)이 몸을 날 렸다.
평야의 독기가 계속하여 주변으로 확산되어 일행이 몸을 숨기고 있던 전망좋은 바위 뒤쪽까지 덮어 오자 기진 은 일행을 독기가 침입하지 않는 30여장 뒤로 후퇴 시켰다. 물론 언제 달려 들지 모르는 독물들을 방비하면서 경신과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인과 경묘도 함께 후퇴 시켰다.
내공을 운행하여 독기를 막으면서 관전하던 기진은 작은 독물들 만이 아닌 거대한 묵망과 큰 두꺼비까지 보이 지 않았건만 옆에 있는 은성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야를 계속 바라보자 해연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 금룡각에 입각한 후 끊임없이 내공을 쌓아온 데다 금룡각 24장로들의 눈에 띄여 벌모 세수의 기연을 얻은 기진이었다. 그의 내공은 젊은 층에서는 따라올만한 자가 드물었고 심지어는 금룡각의 24장로라 해도 그 보다 크게 뛰어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금룡각의 내공 심법이 어떠한지는 그 자신이 충분히 알고 느끼고 있었다. 금룡각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무수한 연구와 발전이 되어온 심법이었다. 해동에서는 물론 중원의 수많은 내공 심법에 비해서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 는 심오하기가 이를데 없는 내공 심법이었다.
동방파의 내공심법이 심오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금룡각의 내공 심법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금룡각의 장로원에서 연구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금룡각의 내공 심법이 해동 제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말도 되지 않는 현상인 것이다. 동방파의 나이 어린 제자가 아닌 자기와 동년배의 제자라 하더 라도 기진 자신보다는 내공이 뛰어 나기가 어렵다는 결론인데 이제 14살 밖에 안된 은성이에게서야... .
하지만 옆에 있는 은성이의 수련 정도는 그 자신이 측량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물론 내공이 절대적으로 내공심법에 의존하지도 그리고 내공을 쌓아온 시간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기진이었다.
개인의 자질에 따라 그리고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내공의 깊이도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기본적 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식도 상식 나름인 것이다.
기진 자신을 기준으로 해도 그렇다. 그가 누구인가... 사문에서 천생 무골 이라는 장로들의 칭찬과 함께 장로 들이 수십년 동안 쌓은 진기의 일부를 소모해 가면서까지 벌모세수를 행할 정도의 자질을 가진 그가 아니던가.
자부심 만이 아닌 확신 이었다. 자신 보다.자질이 좋은 사람은 찾기도 어렵거니와 설혹 있다고 치더라도 미세 한 차이밖에 날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앞의 독무 때문에 시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은성이를 설득해 물러 나기는 창피한 일 이었다. 이는 금룡각의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주변의 독기가 짙어지자 더욱 더 내공을 높여 얇은 막을 형성 해 독기를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시각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청각에 의지해 상황이 어떻게 돼 가는지 나름대로 판단 할 수 밖에 없었다.
전방을 주시하던 은성이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로 달려들던 사왕과 섬왕이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고 독 기만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이 아니라 허공으로 내뿜고 있었다.
무슨 춤이라도 추는지 왔다갔다.하며 허공이나 아무 것도 없는 측면에다 대고 독기만을 뿜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왕과 섬왕의 녹색과 청색 독기는 워낚 짙어서 검고 붉은 독연 속에서도 확연히 보였다. 치열하게 얽 히던 독기가 서서히 옅어져 갈 때 쯤이었다. 싸우면서도 큰 소리를 외쳐대던 사왕과 섬왕의 소리가 점차 약해 지다가 일순간 보다 날카롭게 외쳐댔다.
"휘리릭" 사왕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에 "꾸웩" 이에 질세라 섬왕도 묵직한 소리를 내 질럿다.
그러자 뒤에서 흰색 두꺼비만을 노려보고 있던 금색 뱀 2마리가 사라지고 한 마리는 발라당 누워 버렸다. 그 옆에서 노려보던 흰색 두꺼비도 평야에서 사라져 인근 숲속으로 들어갔다. 치열하게 싸우던 흑사와 삼목 섬여 도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몇 마리는 숲속으로 사라지고 몇 마리는 죽은 듯이 누웠으며 몇 마리만이 계속 싸움 을 계속 하였다. 하지만 형식 적으로 싸우는 것 같았다.
한참 치열하게 싸우던 두꺼비와 뱀들의 대다수가 죽지도 않았는데 싸움을 멈추고 죽은 듯이 들어 누웠으며 일 부분만이 싸우는 흉내를 냈다. 사왕과 섬왕의 싸우는 소리가 멎어들 때쯤 큰 두꺼비가 처절한 울부짖음과 함 께 쓰러지고 묵망은 주변을 잠시 훓어 본 후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전장에서 벗어나 숲쪽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런데 쓰러진 두꺼비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삼목 섬여와 기타 맹독의 두꺼비 들이 큰 두꺼비의 입 틈새로 숨죽여 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입을 다문 큰 두꺼비는 눈을 닫고 이윽고 숨조차 죽여 버 렸다.
그런데 공기보다 무거워 땅위에서 흩어지지 않고 뭉쳐 떠다니던 독기들이 서서히 엷어지기 시작했다. 평야 주 변으로 흩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검은 독무가 최초에 흘러 나오던 검은 바위 쪽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아니 검은 바위 쪽에서 무엇인가가 빨아 들이고 있는거 같았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던 기진도 주변 경관이 희미하 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일각도 안되어 그 짙던 독기가 대부분 검은 바위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땅위에는 아 직도 싸우고 있는 몇백 마리의 독물들과 독사와 두꺼비들의 시체, 그리고 상처 입은 독물들의 육신 뿐이었다.
이때였다. 묵기로 뒤덮인 검은 바위 속에서 묵기가 크게 일렁이더니 묵기 속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홍운이 튀어 나왔다. 홍운은 갑자기 뿔뿔이 분산되더니 곧 평야를 뒤 덮었다.
"아!"
기진의 입에서 조그마한 놀람의 탄성이 튀어 나왔다.
홍운은 붉은색 지네 무리였던 것이다. 붉은색 지네는 몸통의 길이가 2자는 되어 보였는데 상당히 빨랐다. 순 식간에 1000여 마리가 튀어나와 평야에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뱀떼와 두꺼비떼 그리고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독물들에게 달려들었다. 아직도 평야에는 500여 마리의 뱀 무리와 1000여 마리 정도의 두꺼비 떼가 싸우고 있 는 중이었다.
지네때는 뱀과 두꺼비떼 모두에게 달려 들었다. 이미 치열한 접전으로 독기가 거의 고갈 당하고 체력도 떨어 진 뱀과 두꺼비가 지네의 날카로운 독아와 독기운에 죽어 나자빠져 갔다. 공동의 적이 나타나서 인지 뱀과 두 꺼비는 서로간의 싸움을 멈추고 무자비한 학살자 지네에게 공동으로 대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전세가 달라졌다. 거의 죽고 패잔독물 들만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싸움터로 향한 적린오공 1000여마리 와 뱀과 두꺼비 떼가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흑 사 10여 마리와 삼목섬여 50여 마리에게 달려드는 적린오공은 처참지경이었다.
막강한 적수끼리 심력까지도 소모해가며 싸우고 있던 흑사와 삼목 섬여는 뱀과 두꺼비가 합세하는 분위기가 되자 일단 한시름을 놓게 되었던 것이다.
적린오공들이 달려들자 '이게 왠 잔챙이냐' 하며 날카로운 독아와 가공할 독기로 패퇴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 에 질린 적린 오공들이 흑사와 삼목섬여 이외의 독물들에게로 방향을 틀자 이제는 반대로 사냥에 나서 버렸다.
역시 사냥에 가장 능숙한 것은 흑사였다.
삼목 섬여가 가공한 독기는 있지만 속도가 느린 반면 흑사는 아직도 체력이 많이 남았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적린오공 사이로 파고들어 적진을 헤집어 놓아 버렸다.
지네 무리에게 불리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공할 검은색 독무로 큰 두꺼비를 죽이고 슾쪽으로 사라졌던 묵망이 다시금 숲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묵망은 큰 몸통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지네 무리에게 달려와서 양떼 속의 사자처럼 날뛰기 시작하였다.
적린오공은 검은 독무에 녹아 죽고, 채찍같이 유연하고 날카로운 묵망의 혓바닥 공세에 죽어가고, 꼬리에 치 여 죽고, 깔려 죽었다.
의외로 전세가 급 반전하자 묵기로 뒤덮인 검은 바위에서 다시 묵기가 크게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이번은 처음에 비해 매우 큰 규모로 묵기가 일렁이었다. 감각을 모두 열어 놓고 전방만이 아닌 사방을 주시하 던 은성이는 묵기가 일렁일 때마다.사악한 기가 묵기에 묻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악하다'
이는 단순한 동물들이 아무리 잔인하고 포악해도 내뿜을 만한 기의 성질이 아니었다. 오직 인간이나 인간과 버금갈 정도의 이성적 능력을 가지 존재에게서만 흘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크게 의아심을 느낀 은성이는 동 물들간의 싸움이라는 다소 흥미 진진한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번 일에 알 수 없는 흑막이 있을 수도 있다 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에 경각심을 느낀 은성이는 전방을 주시하던 시각을 거두고 가부좌를 틀었다. 곁에 있던 기진은 은성이가 가부좌를 틀자 의아해 했지만 전세가 워낙 흥미진진하게 흘러가자 이내 평야로 눈길을 돌렸다.
깨달음이 있은 후 은성이는 오행진기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오행진기는 내가진기가 머무르는 하 단전과는 달리 중단전에 머물렀다. 무술을 익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공을 운행하면 하단전에 있는 진기를 운 행하지만 중단전이 개발된 은성이는 다른 사람들과 매우 달랐다. 중단전이 개발되자 하단전에 있는 내가진기 는 다스리기가 매우 수월해졌다. 진기 도인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생각만으로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만큼의 진기가 원하는 속도로 이동되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이 있은 후로 오행진기는 각각의 오행진기끼리 중 단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서로 방해하지도 않으며 서로간에 보완하고 상생 작용을 하였다. 오행 진기는 내가 진기에 비해 그 능력이 탁월하였다. 내가 진기가 고 농도로 농축된 것처럼 오행 진기의 능력은 가공하였는데 검기를 일으킬 정도 내가진기의 삼할 정도 양의 선천 진기는 검강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였다.
오행진기를 운행하여 전신에 퍼트리자 은성이의 오감이 최고조로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눈을 뜬 기진은 전방 에 보이는 부분만을 주시할 수 있지만 눈을 감은 은성이는 사방 100장 이내의 모든 부분을 통찰할 수 있었다.
묵기가 일렁이는 바위 뒤쪽에는 매우 많은 수의 독물들이 있었다. 이 독물들은 '키리릭. 키리릭' 하며 기음을 내뱉고 움직이면서 수많은 발가락이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판단컨대 거의 다 지네 무리였다.
검은 바위 안쪽의 형세를 자세히 알아 보려던 은성이는 평야 주변에도 이와 못지 않은 기운들이 숨어 있는 것 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싸움중 숲쪽으로 달아난 뱀떼와 두꺼비 떼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평야에 나타나지도 않고 숨어 있었던 뱀떼와 두꺼비 떼가 싸움에 가담했던 무리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았다.
이들은 모두 소리를 죽이며 묵기가 일렁이는 바위 쪽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다시금 검은 바위쪽으로 감각을 동원시킨 은성이는 묵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검은 바위는 형체가 있는 물체가 아니 었던 것이다. 검은 바위라 여겼던 것은 진세에 의해 형성된 검은 묵기가 바위같이 막을 형성했던 것이다.
오행진기를 운행하지 않고 시력만을 가지고 판단하면 기진뿐만이 아니고 은성이 조차도 속아 넘어갈 정도의 가공할 진세였던 것이다. 그 진세속에 포진해 있던 지네 무리들이 진세 밖의 독물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지 네중의 일부를 밖으로 내 보내야만 했다.
처음같이 몸집이 작은 소형지네 1000여 마리만을 내 보내려면 진세를 허물지 않아도 되지만 몸집이 큰 지네등 을 대거 진세 밖으로 내 보내기 위해서는 일시동안 진세를 거둬야만 했던 것이다. 진세를 거두는 과정에서 진 세를 이루고 있던 묵기가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진세가 거둬지자 검은 바위쪽에서 수많은 지네들이 일시에 몰려 나왔다.
뱀떼와 두꺼비떼가 계룡산으로 1달 전부터 들어온 후 계룡산에는 그 동안 무수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래도 지 네 무리의 성지인 이곳만은 철저하게 방어가 되었는데 몇일 전부터 두꺼비떼와 뱀떼가 이곳을 노리고 쳐들어 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오공 무리의 우두 머리는 예사 독물이 아니었다. 천여년을 살아오며 약간의 도행까지 이룬 인면 오공 이었던 것이다. 성지 주변에 진세를 설치하고 그 안에 모든 지네 무리를 숨겨둔체 쳐들어온 뱀떼와 두꺼비떼 가 서로 상잔하도록 유도했다.
이제 그 목표가 거의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 능력을 다 알 수 없는 사왕과 섬왕은 양패구사 되었는지 널부려 져 있고 지네 무리에게 악의 화신으로 까지 불리우던 흑사도 몇 마리 남지 않았으며 가공할 독기를 가진 삼목 섬여도 별로 없는 것이다.
비록 거대한 덩치의 묵망이 남았지만 그 묵망을 상대할 지네도 선정해 놓았다. 진세를 해체하고라도 나가서 살아남은 뱀과 두꺼비 떼를 섬멸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게다가 방금전 뱀떼와 두꺼비떼가 싸우면서 내 쏟 은 무수한 독기를 빨아들여 유사시를 대비한 최후의 진세를 강력하게 보충해 놓은 상태였다.
묵기가 일렁이며 조금 옅어지는가 싶더니 검은 바위 속에서 수많은 지네들이 튀어나왔다. 크고 작은 형형 색 색의 지네들이 기어오고, 뛰어 오고, 그리고 일부는 날아오고 있었다. 일각도 안되어 평야는 지네떼로 뒤덮이 고 일부 살아남은 뱀떼와 두꺼비 떼는 무리지어 달려드는 지네들의 협공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묵망도 지네떼의 인해전술 앞에 움직임이 서서히 둔탁해져 갔다. 1장 길이의 청지네 1마리가 죽어있는 사왕을 입에 물고 씹으려다.이가 안 들어가자 날름 삼켜 버렸다. 옆에 있던 청지네도 마찬 가지로 날름 섬왕을 삼켜 버렸다. 검은 바위 속에서는 아직도 지네때가 튀어 나오고 있었다.
이때였다. 검은 바위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제일 가까운 숲속에서 10여 줄기의 금색 섬광이 진세 안쪽으로 파 고 들었다. 이어서 100여 줄기의 흑색 섬광이 파고 들었으며 그 뒤로 수많은 독사들이 진세 안쪽으로 파고 들 어가기 시작 하였다. 때를 같이 하여 검은 바위 오른쪽 숲속에서도 회색 섬광과 함께 수많은 두꺼비들이 튀어 나와 진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난데없는 뱀떼와 두꺼비 떼에게 허를 찔린 지네 무리는 허둥대기 시작 하였다, 진세 안쪽에서 튀어 나오던 지 네들은 뱀떼와 두꺼비떼가 진세 안쪽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벌써 동작이 빠르고 강한 일부 적들의 침입은 허용된 후였다.
평야로 미리 빠져 나갔던 지네 무리들이 급히 방향을 틀어 진세 입구 쪽으로 가서 침입하려는 뱀과 두꺼비 떼 들을 상대하기 시작 하였다. 기습을 당했다 하지만 이곳은 계룡산 이었다. 원래부터 지네가 많기로 소문난 산 인 것이다. 지네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종류도 천차 만별이었다. 그 중에서는 빠르고 잔인하며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네들도 많았다. 진세안으로 파고 들던 선두의 뱀과 두꺼비들은 모두 싸움이라면 역전의 용사들로 주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세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네 무리와 이제는 평야에 펴져 있던 지네 무리까지도 진세 쪽으로 몰 려와 협공을 하자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때를 대비한 전술이었는가... 돌연 평야에서 죽어 나자빠져 있던 뱀과 두꺼비들의 상당수가 되살아나 다 시 지네들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지네들의 협공에 온몸이 찢어지고 녹아든 묵망 옆에 죽어 있던 큰 두꺼비의 눈이 번쩍 뜨여 졌다. 그리고는 껑충 뛰어 지네 무리 뒤쪽에 다가가서 입을 벌리자 입속에 서 삼목섬여와 칠성 두꺼비들의 독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지네 무리를 향해 붉은 독무를 쏟으며 좌충우돌 하자 다시금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진세 안에 서도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부 덩치가 작고 빠른 독사와 두꺼비떼가 침입하여 지네떼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위력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10여 마리 2촌 길이의 금색 뱀들은 가공 무쌍 이었다. 악의 화신이라고 불리우던 흑사들도 비교가 안 되었다.
아무리 단단한 이를 가진 지네에게 물리어도 껍질이 손상되지 않았으며 왠만한 독은 정통으로 맞아도 아무 이 상이 없었다. 그리고 빠르기는 흑사보다.최소한 2배는 더 빠른 것 같았다. 이들을 막기 위해 지네 측에서는 최고의 전력이랄 수 있는 쌍두 오공 15마리가 모두 동원 되었는데 그런데도 전세는 막상 막하였다.
쌍두 오공은 2자 길이로서 한쪽은 백색 그리고 다른 한쪽은 적색의 몸통을 가진 지네였다. 적색의 몸통을 가 진 지네는 화독을 지니고 있었으며 백색의 몸통을 가진 지네는 빙독을 지니고 있는 천고의 마물이었다.
계룡산에서도 가장 깊은 삼불암의 지하 200장 아래에는 자연의 신비인지 낮에는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바람이 그리고 밤에는 만년 빙암과도 같은 차가운 기운이 불어대는 동혈이 있다. 이 동혈에 서식하는 쌍두 오공은 지 상으로 올라오는 일은 드물었는데 이번에 인면오공의 반 강제적인 초청에 의해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금사의 공격에 두 머리가 협공을 하며 한쪽은 빙독을 한쪽은 화독을 쏟아내고 있었다. 왠만한 독에는 끄덕도 없는 금사도 쌍두 오공의 독에는 당할 수 없었는지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한쪽 땅위에는 목젓이 끊기고 머리가 녹아 죽어있는 쌍두 오공 2마리와 꽁꽁 언채로 죽어 있는 금사 한 마리 가 널부러져 있었다. 이때 진세 안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퍼져 나왔다.
'취리리리리리릭'
그러자 진세가 일시에 무너져 버리고 진세 안쪽이 훤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뒤쪽은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그 중심 아래 부분에는 검은 묵기가 둥그런 형태로 덮여 있었다. 날카로운 소리는 그 안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검은 묵기로 뒤덮인 부분의 앞에는 몇만 마리의 지네들이 질서 정연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기진은 내심 의아심을 느꼈다.
지네떼의 진영이 위풍 당당하고 형세가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진세를 거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또 하나가 있었다. 지네 무리들이 적들을 눈앞에 두고 모두 머리 부분을 땅에 박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진세 입구에서 뱀과 두꺼비 떼를 상대하던 지네들도 급하게 물러서서 땅을 파고 한사코 머리를 땅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은 뱀과 두꺼비떼가 머리를 땅에 박은 지네들을 공격 하였는데 지네들은 죽어가면서도 머리 를 땅속에서 떼어 내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머리를 땅위에 내 놓는 것이 죽음 보다도 더 두렵기라도 하듯이. ...
그 원인은 바로 밝혀졌다. 지네들이 포진하고 있는 안쪽의 검은 묵기로 뒤덮인 부분에서 기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히히히히히히 ! 히히히히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