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4화 (4/152)
  • ■ 제 4장 :

    <노부는 동방파의 덕수라 한다.

    무공에 뜻을 두고 나아가기 50여년, 뜻한 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동방파를 세우고 제자를 두어 어느 정도 토대를 이룰 수 있었다. 스스로도 문파를 세우기 잘 했다고 생각되던 어느날 그 동안 추구하던 진정으로 강한 무학을 연구하기 위해 다시 속세에 발을 딛게 되었다. 전국 산천을 유람 하던중 산의 정기가 맑고 깊은 미륵산의 자운곡에까지 발길이 닿게 되었다.

    자운곡의 독기가 서린 안개와 가끔씩 괴물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에 자운곡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운명적으로 이 동굴에서 말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자운곡은 천지 음양의 기운이 화하여 오행으 로 변화되는 비선지곡 이었다. 예로부터 미륵산은 부처님이 환생한다는 영산이고 또한 산의 정기가 충만한지 라 요괴들과 기수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인중의 대 선인 한분이 자운곡에 거주한 후 부터는 그러한 요괴 기수들이 차츰 없어져 갔다고 한다.

    그 선인은 자운곡의 오행의 기운이 무르익을 때 자운곡에 찾아와 인연을 맺을수 있도록 예정된 연자를 위하여 안배를 했다고 한다. 미륵산에 살던 요괴중의 요괴인 "자린 천사" 라는 커다란 구렁이에게 선술의 비법을 조 금 가르친 후 교화하였다는 것이다.

    자린 천사는 지하 깊숙이에 있는 은하 폭포 아래 웅덩이 심처에서 살면서 도행을 닦고 있다고 하였다. 음기가 충만한 보름이면 웅덩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순음지기를 섭취하고 배가 고프면 기이한 괴성 을 낸다고 하였다.

    그 괴성은 최음의 효과가 있어서 왠만한 요괴, 기수 들이 자진하여 지하 깊숙이에 있는 은하 폭포의 웅덩이로 몸을 날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자린 천사는 선인이 가르친 선술의 비법을 연마하고 부터는 숨을 내쉴 때마 다 독성이 강한 자색 독기를 내 뿜었는데 이 독기는 쉬이 없어지지 않고 자운곡 상부에 엉키었고 세월이 흐른 후 부터는 자운곡 전체를 이 독기가 가로 막아 자운곡을 외부와 차단 하였고 이 골짜기의 이름도 자운곡으로 인구에 회자 되었다고 하였다.

    선인이 계획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는데 오행의 기운이 무르익은 후 하늘이 정한 연자가 자운곡에서 인연을 맺 도록 기타 범접한 것으로부터 이를 보호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린 천사에게 자색 독기를 내 뿜으면서 술법을

    익히도록 가르친 것이었다.

    노부는 은하 폭포 소리에 이 근처로 왔다가 동굴 근처에서 수행하던 한 선인을 만나서 자운곡의 비밀을 듣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노부는 그 선인이 이곳 자운곡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나 자신은 자운곡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선인은 나에게 교묘한 안배를 한 것이었다. 비록 노부가 떠나고 안 떠나고는 노부의 마음에 달렸지만 그 안배는 너무나 치밀하고 강력해서 노부는 구속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동굴 상부에 적혀 있는 천부경 때문이었다. 몇 번을 읽는 동안 노부는 그 현묘함에 빠져 들었고 그 후 부터는 촌각의 시간도 아까웠다. 동굴에서 생식을 하며 천부경 81자를 연구 했는데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 현묘함에 더욱더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이곳 자운곡에 온후 30여년이 지났지만 노부가 그 동안 연구하고 깨달은 것이 천부경에 담긴 광대 무변한 진 리의 1푼도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다. 알면 알수록,깊이 파고 들면 들수록 더욱 어렵고 더욱 가치 있는 것이 천부경 이란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범인은 억겁을 연구해도 그 뜻을 다 헤아리기 가 어렵기에 대 선인께서도 그 대 연자를 그토록 기다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내가 깨달은 내용만 가지고도 말로 표현 할려면 책으로 열 수레 분은 되리라. 하지만 지식이 지혜가 아니고 또한 그대의 깨우침에 나의 사족은 선입관을 만들지도 모르기에 그 동안 노부가 연구했던 부분은 따로 저술하지 않겠다. 아마도 노부는 저승에 가서도 계속 못다한 연구를 계속할 지도 모르겠다.

    천기를 보건데 노부가 이승에 머물날도 멀지 않은거 같다. 비록 30여년 동안 천부경 밖에 생각한 것이 없었지 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선인이 비록 나를 속박했지만 천부경 속에서 노부는 세속적인 삶보다도 훨씬 크고 원 대한 삶을 느끼고 살았기에 선인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연자에게 하나 부탁 할 것이 있다. 이승에 별 미련은 없지만 노부가 세운 동방파에 다소나마 심려가 미칠 뿐 이다. 노부는 천부경 속에서 깨달음을 토대로 다수의 무공을 창안 하였다. 훗일 연자가 동방파를 방문한 후 동방파가 계속해서 정의롭고 노부가 동방파를 처음 세우면서 그 뜻을 두었던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문파 로 남아 있다면 이 무공을 동방파에 전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천부경은 천지간의 다시 없는 비밀이라 그대가 동굴을 떠날 때 노부의 검법으로 바위에 세겨진 천부경을 제거해 주기 바란다...>

    밤이 되면 자운곡을 떠나려던 은성이는 자신이 속가 제자로 있는 동방파의 개파 조사의 부탁 아닌 부탁을 아 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무엇으로 어떻게 새겼는지는 몰라도 밑에서부터 2장 정도 의 높이에 2치 정도의 깊이로 깊게 음각되어 있었다. 게다가 글씨의 크기가 커서 사방 1장 정도의 넓이에 걸 쳐서 새겨져 있었다.

    진기를 운행하여 몸을 날린 은성이는 2장 정도까지 뛰어 오른 후 칼을 비스듬히 하여 검은 바위에 새겨진 천 부경을 비스듬하게 후려쳤다. 평소의 수련 정도에 기연까지 얻었는데다 사부께서 하사하신 청은검이 있으니 나름대로 자신하였던 은성이었다. 하지만 바위가 깍여 나가는 소리대신 이상한 소리가 났다.

    '캉!'

    불꽃과 함께 쇠와 쇠가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나온 것이다. 그리고 기대와는 달리 천부경 81자중 은성 이가 내리친 中자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그제서야 은성이는 이 검은색의 바위가 평범한 바위가 아님을 알아

    차렸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쉬이 지울 수가 없는 것으로 조사의 부탁을 들어주자니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태산같을 아버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사의 부탁을 듣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은성이는 이윽고 결심을 하였다. 어 차피 집에 가는 것은 예정보다 늦어진 일이었다. 비록 아버님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지 못하고 걱정을 끼 쳐드려 죄송하지만 이왕지사 어차피 늦은 것으로 오늘 가던지 나중에 가던지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고기밀이라는 천부경을 없애고 떠나라는 조사님의 유명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집에 가서 사실을 말하고 다시 와서 없앨 수도 있으나 집에서 이 위험한 자운곡에 다시 오지 못하도록 할 것은 정한 이치였다.

    마음을 정한 은성이는 천부경의 글씨를 없애기 위해 조사가 남기신 무공을 익히기로 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히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민생고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금아를 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근처를 돌아다니던 은성이는 냇가에 있는 산천어들을 볼 수 있었다. 2∼3자 정도 깊이의 맑은 물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은빛 산천어들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은성이는 청은검을 빼어 들고 망 설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장단지 까지 잠기는 냇가에서 숨을 죽이고 있자 물고기들이 다가왔다. 그중에 그래도 큰 물고기를 향해 은성 이는 청은검을 내리쳤지만 안타깝게도 목표했던 물고기는 잡을 수가 없었다. 검이 물을 내리치는 순간 검의 속도가 느려졌으며 그 파동에 영향을 받은 물고기가 위험 감지를 하고 잽싸게 도망가 버린 것이다.

    몇 번을 시도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은성이가 이번에는 청은검을 거꾸로 들고 작살처럼 찌르기를 시도했다.

    물에 닿는 부위가 적으며 충격도 적고 물에 이는 파동도 적어서인지 5마리의 산천어를 잡을 수가 있었다. 하 지만 너무 적었나 보다. 잡는 족족 받아먹은 금아는 아직도 부족한지 그 큰 눈을 들어 은성이에게 더 많은 물 고기를 잡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할 수없이 냇가로 나가려는 것을 포기한 은성이는 반시진을 더 소비하고서야 금아를 충족시키고 냇가로 나갈 수가 있었다.

    금아를 안고 동굴로 오며 식용 약초들과 연한 솔잎 그리고 금아의 상처에 발라줄 약초를 채집 하였다. 동굴 한쪽에 놓아둔 금아는 약간은 생기가 도는 눈빛으로 누운 채 은성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금아를 치료한 은성이는 식용 약초를 복용 하였다. 다행히 자운곡의 골짜기는 오행의 기운이 성한 곳인지라 인체에 유익한 약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인지 속세에 나가면 매 우 비싼값에 거래될만한 오래 묵은 약초들이 많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은성이는 조사가 남기신 무공서를 들춰 보았다. 무공은 1식의 보법과 3절의 검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법의 명칭은 일시 무시일 이었다. 그런데 보법의 내용이 매우 단순 하였다. 바로 한 발을 내 딛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한 발을 내 딛는 자세에 대한 설명은 매우 길었다. 내 딛을 시의 몸의 자세, 힘의 분포, 기의 흐름, 상황에 따라 맞은 편의 발이 보조해 줘야 하는 자세, 그리고 내 딛는 목적에 따른 착지 방향, 방 법 및 효용 까지 자세히 기록 되어 있었다.

    검법의 제 1절은 석삼극 무진본 이었다. 1절은 3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졌다.

    - 무진쾌

    - 무진중

    - 무진변

    검법의 제 2절은 천지인 이었다. 2절도 3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졌다.

    - 천일일

    - 지일이

    - 인일삼

    천일일은 검을 들어 하늘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대성하면 자연의 풍운 조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하였다. 지일이 는 검을 땅에 박고 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대성하면 땅에 발을 대고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좌지 우지 할 수 있고 지진조차 일으킬 수 있다 하였다. 인일삼은 선인지로와 같이 검을 들어 정면을 가리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제 3절은 일종무종일 이었다. 검없이 시전하는 채 미완인 상상만의 무공이었다.

    제 3절 밖에 없는 검법이었지만 원영이는 내용의 심오함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사의 말씀을 이행하고자 암벽에 있는 천부경을 지우려면 제 1절의 2번째 초식인 무진중을 익힐 수 밖에 없었다.

    무진중을 익히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 정신 집중 및 검에 내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는 허무경의 4단계 수련법을 완성하고 5단계 수련법을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은성이는 바로 허무경의 4단 계 수련법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운기 조식하여 내부의 진기의 흐름을 이리저리 조정하여 보았다. 진기를 느 리고 빠르게 운행해 보고 경락중 일정 부위에서는 빠르게 그리고 일정부위에서는 느리게도 운행해 보았다.

    경락의 경맥중 원하는 곳에 더 많은 진기가 머무를 수 있는지를 시험한 후 원하는 속도에 원하는 만큼의 진기 가 원하는 장소에 이동할 수 있도록 맹 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한달여를 더 소비한 후 경혈의 위치를 이동 시 킬 수 있었다.

    이미 12정경 및 기경 팔맥이 순조롭게 운행되고 기연으로 인하여 막대한 진력이 단전에서부터 샘솟아 나오는 은성이였기에 생각보다는 쉽게 허무경상의 4단계 수련법이 익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육개월여 정도가 지 나자 은성이는 경락중 큰 줄기인 경맥과 경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가지 즉 락 맥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여 신체 내부의 조직 및 기관 뿐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신체로 유입되는 물질들 까지도 기로서 조정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4단계를 수련한 후 8개월만에 수련을 마친 것이다. 8개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외우며 그 뜻을 음미해본 천 부경 덕분인지 이상스럽게 정신이 맑고 집중력이 높아져서 그전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허무경 상의 내용들도 그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심상이 맑고 깊어져서인지 진기도 뜻하는 대로 조정되 어진 결과이었다.

    5단계 수련법은 기의 신체 외부로의 운용이다. 단전이 있는 중부혈에서 시작하여 엄지 손가락에 있는 소상혈 까지 이어지는 수태음폐경으로 기를 이동시킨 후 진기를 청은검으로 불어 넣었다. 진기를 검 손잡이 부위로 방출해내자 검신에 옅은 푸른색 검기가 피어났다.

    무진중 요결의 내용대로 검신의 한쪽 면을 타고 흘러간 내기가 검신의 다른 쪽 면을 타고 회수되어 은성이의 검지 손가락 끝인 상양혈에서 시작하여 수양명대장경을 따라 올라가 몸속 내기와 같이 운행되기 시작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검신에 흐르는 푸른색 검기가 더욱 짙어졌다. 동굴 바닦도 검은색 바위의 일부인지라 은성이는 검기로 충만된 검을 내려뜨려 바닥을 살짝 내리쳤다. 날에 검기를 운용하지 않은 채 내리칠 때에는 불꽃만 튀 겨 내던 단단한 바위가 한치 정도 파여 들어갔다.

    크게 기뻐한 은성이는 밤인데도 청은검을 들고 나가 바위 앞에 섰다. 그리고 서서 내력을 운기하고는 이를 청 은검에도 운행케 한후 뛰어올랐다. 하지만 뛰어 오르느라 내력을 흐트린 탓인지 아니면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서인지 청은검에 일었던 검기가 흐트러져 버렸고 내리친 바위에서는 여전히 불꽃만 일었다.

    '캉!'

    실망한 은성이는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운기 조식을 조금 더하고는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자운곡에는 동물들이 거의 없었다. 물고기와 곤충들은 있었지만 특이하게 큰 동물들과 새들은 한 마리도 없었 다. 새들은 아마도 하늘 위쪽에 펼쳐 있는 자색 독무에 죽은 것이리라. 자운곡은 사방 10리 밖에 되지 않았는 데 분지와 같이 파여 있었다. 하지만 비가 와서 냇물이 불어도 모두 지하로 스며드는지라 물이 고이는 조건은 아니었다.

    사면이 높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분지 위쪽에는 죽음의 자색 독무가 있는지라 외부와의 접촉이 없이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것 같았다. 그동안 은성이의 의술과 극진한 간호 덕분에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금아도 자 색 독무가 두려운지 독무 아래로만 날아 다녔다. 금아는 이제는 은성이가 친밀해졌는지 은성이가 안아도 얌전 히 있으며 부리를 은성이의 가슴에 부비며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다음날 아침 청은검을 들고 밖으로 나온 은성이는 유운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점 막힘도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원활했다. 몇 번을 시도 하던 중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간 은성이는 내기를 서서히 청은검에 불어 넣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청은검에는 옅은 푸른색 기가 흘러 나왔다. 은성이는 잘 모르고 있겠지만 은성이가 이곳 자운곡에 들어선 후 보낸 약 1년여의 시간은 은성이의 내공 증진에 획기적인 도약의 연속이었다.

    입곡전에 은성이가 허무경을 익히면서 단련한 단전 및 경락이 비록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기연으로 인해 일시 에 유입된 내가 진기를 전부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기연이었다. 비록 기연으로 인한 약력이 일시에 폭 출하지는 않고 몸 이곳 저곳에 스며든 채로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반인이, 아니 설령 무공을 익힌 고수라도 모두 소화하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약력은 대단하였다.

    사실 스스로의 운기 조식으로 자연스럽게 서서히 단련되어진 내가 진기 외에 누군가에게 전수 받은 공력이나 영약을 통해 급작스럽게 얻은 공력은 당사자의 자질에 따라 다르지만 일이할 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서서히 피부 및 배설물로 빠져 나가게 되어 있다.

    영약을 먹은 사람의 대소변은 양약에 버금갈 정도의 약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도에 약간이라도 인연이 있 는 사람에게는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련한 내가 진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된다면 대문 파의 선택된 몇 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공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장로나 죽음 직전의 고수들이 내공을 물려주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수련하여 얻지 않은 내 공은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은성이가 허무경에서 익힌 호흡법은 진기 를 그 성질에 따라 오행으로 나누어 단련하는 수련법이었다. 호흡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생성되는 내가 진 기의 특성이 다른 것을 깨달은 진인이 태극에서 천지인 삼제에 기초한 우주 상생 상극의 오행법칙을 소우주인 인간의 신체에 결부시켜 진경으로 들 수 있도록 만든 비급이었다.

    허무경에 따른 내가 진기 수련을 하면 천지인 삼재가 단전에서 화합하여 내가 진기를 생성시키고 다시 이 내 가 진기는 운기 행공시 인체와 친화력을 가지면서 다시 오행진기로 나누어져 서서히 관련된 오장 육부로 스며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동안 은성이가 놀라운 심취력과 집중력으로 내가 진기를 수련 하였지 만 공력이 달려 독맥과 임맥의 일부 경락밖에 타동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은성이는 비록 단전 및 임·독맥의 단련 정도는 얕았지만 일반인과 달리 진기를 오행으로 구분하여 흡수할 수 있는 무한한 창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은성이가 우연히 복용한 오행화는 천지간에서도 완벽한 오 행지기가 겹쳐진 이곳 자운곡에서 오행지기의 진수만을 머금고 피어난 천초의 정수이었다.

    예전에는 생성된 내가 진기가 행공으로 인하여 인체와 친화력을 가진 후 관련 장부로 스며 들어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연으로 인해 막대하게 유입된 오행지기가 장부로부터 스며나와 운기행공에 동참하기 시작 하였다.

    인체와 어느정도 친화력을 습득한 오행지기는 다시금 관련 장부로 들어가고 친화력을 얻지 못한 오행지기가 계속해서 운기 행공에 동참하며 수련을 도왔지만 입곡전 도인하던 내가 진기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충만된 내 가 진기가 운기 행공에 동참하였다.

    '천운은 타고 나는 것인가?'

    은성이만을 위한 배려인 듯 하늘은 오행화의 효과를 은성이가 100% 흡수하도록 안배하였던 것이다...

    은성이가 무아지경의 상태로 유운검법을 펼치자 처음에는 들쑥 날쑥하던 검기가 매우 고르게 형성되어 졌으며 검기도 푸른 빛에서 짙 푸르게 변화했다. 한참을 무아지경 속에서 노닐던 은성이는 '초로롱' 하는 소리에 문 득 정신을 차리고 검무를 멈추었다. 미시 말(오후 3시)부터 시작했던 검무였는데 벌써 유시 초(오후 6시)가 된 것이다.

    '초로롱',

    '초로롱 '

    은성이가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혼자서 검법만 익히고 있자 심심했던지, 아니면 식사 시간이라고 알려 주려고 했는지 낮게 하늘을 날며 금아가 소리친 것이다.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청아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금아가 어 깨 위로 내려와 앉자 은성이는 오늘도 금아의 저녁을 해결하러 냇가로 향했다.

    냇가에 이른 은성이는 좀더 효과적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내었다. 어제 저녁 운공중 비록 움직이면서 청은검에 검기를 일으키는 데에는 실패 했지만 정지돼 있는 상태에서는 검기를 일으킬 수 있었던 기억을 살려 물고기를 잡는데 검기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선 상태로 내기를 모아 청은검에 집중한 은성이는 청은검을 슬며시 다가온 물고기를 향해 겨누고는 진기를 집 중 하였다. 검끝에서 순식간에 뻗어 나간 검기가 물고기를 반으로 갈랐다. 몇 번을 시도하여 물고기를 잡던 은성이는 검기가 청은검을 움직이면서도 마음 먹은대로 그리고 생각보다 강력하게 쏘아 나가자 재미가 붙었다.

    점차 손목을 빠르게 움직였는데도 마음먹은 대로 검기가 뻗어 나갔다. 금아를 배불리 먹인 은성이는 동굴로 돌아와 무공서를 다시금 읽었다.

    조사의 설명대로 라면 무공서 검법 3절의 초식중 제 1절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것이 무진중이라 설명되어져 있었다. 천년 거암이 땅에 뿌리 박힌 듯 몸이 대지에 밀착돼 있어야 하며 몸에 있는 기운들을 검에 집중시키 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신 수련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무경을 익히고 기연을 만난 은성이에게는 가장 쉬운 초식이 되어 버렸다.

    은성이는 이미 허무경 4단계를 수련하며 무공서 검법 제 1절 무진쾌를 익히기 위해서 반드시 수련되어야만 하 는 내기를 조정하는 수련을 끝마친 상태였다. 무진쾌를 위해서는 내기가 단전에서부터 흘러 나가서는 늦었다.

    집중하고자 하는 부위에서 가장 가까운 경맥에서 뻗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빠른 속도로 말이 다.

    이를 위해서는 경락에 항상 진기가 흐르고 있고 충분해야 하며 경락 자체도 단련 되어져야 하지만 진기의 호 수인 경맥도 유사시 사용 가능한 진기가 많이 저장될 수 있도록 크기를 넓히고 단련 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극도의 쾌를 위해서는 회전력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를 받쳐 주기 위해 유연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했다. 무진변을 익히기 위해서는 기의 조절이 자유로워야 한다. 심지어는 육체가 아닌 정신으로 기를 조절해야만 한다. 기의 량, 속도, 그리고 방향까지 말 이다. 한참을 수련하던 은성이는 청은검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바위 앞에서 운공을 하여 내공을 족소양 담경에 운기를 한 후 몸을 띄웠다. 천부경이 세겨진 부위보다 높이 도약한 은성이는 내공을 발바닥의 용천혈 부위로 뿜어내서 몸을 가볍게 하여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물속에 배가 가라앉듯 서서히 내려오는 은성이는 눈앞에 천부경이 보이자 검기를 청은검에 주입 시킨 후 비스듬이 암 벽을 갈랐다. 일시에 집중시킨 검기라고 생각 되지 않을 정도로 짙푸른 검기가 일어나며 쇠같이 단단하던 검 은 암석의 겉면을 두부 베듯 베어 버렸다.

    "사각"

    몇 번의 손놀림 끝에 내려오는 부위에 있던 문자를 모두 깎아 낸 은성이는 진기를 다시금 끌어올려 한 마리 물찬 제비같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올라간 후 다시금 천천히 내려오며 암벽의 천부경 81자를 잘라냈다.

    바닥의 돌 조각들은 검기에 잘리고 바스라져 어떤 형체도 없는 돌 부스러기로 화해 있었다. 동굴에 들어가 무 공서를 품속에 갈무리하고 금아를 불러 품에 안은 은성이는 조사님의 무덤에 큰 절을 올린 후 몸을 날렸다.

    처음에 내려왔던 부위까지 도착한 은성이는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한 마리 새같이 몸을 날린 은성이는 3장에 한번씩 들고 있던 청은검으로 벼랑을 치는 반동력을 이용하여 무사 히 자운곡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색 안개가 있는 부위에서는 비록 희미하지만 호신강기를 뿜어내어 금아 까지도 보호했음은 물론이다.

    집 떠난지 일년여 만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자시말쯤 되어 초금의가에 들어선 은성이는 핼쓱해진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은성이가 타고 내려간 밧줄을 잡아 다녔는데 불에 타 버린 밧줄만이 올라 왔다는 정집사의 눈 물 젖은 목소리에 신초금의의 낙담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자운곡에 의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몇번이나 가서 목청껏 불러보고 찾아 보았으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자 한숨 과 시름으로 밤잠을 못 이루었다. 그런데 오늘 그토록 걱정하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고 피곤할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에 보자하는 아버지의 초췌한 얼굴을 본 은성이는 눈물이 핑 돌 았다.

    금아는 창공에 오르면 하늘의 제왕이었다. 일단 창공에 오르면 일반 새들이 오르는 높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 을 정도로 높이 올라 주유하곤 했다. 미륵산 북쪽 창공을 주름잡던 송골매들이 날던 높이보다 몇 배는 높이 나는 것 같았다. 내공을 운기해야만이 쪼그만 점으로 가까스로 보일 정도로 높은 위치에서 금아가 날면은 그 동안 푸른 하늘이 좁다고 날아다니던 송골매들 이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삐이이익'

    은성이가 입에 검지와 중지를 넣고 휘슬을 불자 금아가 내려 왔다. 그 내려오는 속도는 밤하늘의 유성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쿠우우우우'

    금아가 내려오면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은성이의 앞에 까지 당도하자 급작스럽 게 속도를 줄이고 사뿐히 날개를 접고 은성이의 어깨 위에 내려 앉았다.

    금아의 사냥 솜씨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높이 나는 만큼이나 멀리 그리고 광범위한 범위를 볼 수 있고 먹이 감이 발견되면 그 빠른 속도로 내려와 강철보다도 단단한 발톱으로 먹이를 채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금아가 내려올 때 나는 괴성에 오금이 저려 최면에라도 걸린 듯 옴짝달짝 못하다가 금아 의 먹이가 되곤 했다.

    금아와 사냥을 나가는 새로운 취미가 붙은 은성이에게 금아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같이 하는 시간이 많은 지라 금아에게 말을 가리키기 시작했는데 금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익혀 나갔다. 아마도 전에 말을 배웠던 경 험이 있는 듯, 아니면 영물이라 매우 영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리키는 은성이가 매우 신이 날 정도로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것이었다.

    사냥이 없는 날은 금아를 창공으로 날려 보내고 은성이는 아버지와 함께 환자들을 치료 하였다. 신초금의는 은성이가 자운곡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죽었다고 생각하던 하나뿐인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은 하늘님의 보살핌 이라며 더욱 더 자식 사랑에 각별히 정을 쏟았다. 그리고 초금의가의 의맥을 잇고 자기 보다도 더욱 뛰어난 명의가 될 수 있도록 은성이에게 의료 경험을 쌓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 ! 이분은 어제 저녁에 오신 것 같네요? 어제만 해도 없었는데.."

    "응급 환자란다. 어제 저녁 해시쯤에 피를 많이 흘리며 본가에 왔는데 도상 뿐만 아니라 내상까지도 겹친 중 환자란다."

    30살 정도 먹어 보이는 구렛나룻이 무성한 환자는 옆구리 부위를 하얀 무명 천으로 꼭꼭 동여맨 체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내상 때문인지 얼굴이 파란 색으로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는데 사 내는 신음을 참고 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환자의 손톱과 눈빛을 본 은성이는 사내의 손목을 잡고 진맥해 보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응급 처치를 하신 때 문인지 장기들은 모두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상 말고도 신체에 큰 타격을 받았는지 오장이 정 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12경락 중에서도 족궐음간경에 문제가 있음이 발견 되었다.

    "아버지 이분은 내상을 당할 때 간이 파열된 것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 하느냐?"

    "눈빛이 흐리고 손톱이 얇고 검 푸르며 윤이 없는 것을 보고 간이 부실한 것으로 판단 되었는데 맥박과 기의 흐름을 보니 간이 파열되어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된 것 같아요."

    신초금의의 눈에 이체가 띄였다.

    사실 직접 환자의 몸 이곳 저곳을 만져보고 진찰자의 손끝으로 대어 보거나 눌러 보아 진찰하는 것은 절진이 라고 하여 일반 의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진찰 법이었다. 일반적으로 맥박 촉진을 살펴보거나 경맥이나 낙맥 의 일정 부위를 눌러 여기에 나타나는 아픈 반응들을 근거로 어느 장부에 병이 생겼는가를 가려내는 경맥 압 진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한 차원 높은 명의들은 문진 이라고 하여 환자들에게 생긴 이상 현상을 물어 진찰하는 것이다. 오장육부 등에 병이 생기면 환자 스스로만 알 수 있는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발전하면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아 진찰하는 방법이 있다. 환자의 몸에서 나는 소리 즉 목소리, 기침 소리, 숨소리 등과 몸에서 나는 냄새로 오장육부 머리에 병이 생겼는가를 진찰하는 것이다.

    망진은 눈으로 보고 진찰을 하는 것이다. 망진을 잘하면 신의로 불리워질 정도로 가장 어렵고 지고 무상한 경 지이다. 망진은 인체의 겉에 나타나는 이상한 증상을 보고 진찰하는 것으로 특히 오장육부에 병이 생기면 얼 굴 빛, 눈빛, 눈물, 피부, 손톱, 입술등에 병이 생겼다는 신호가 오는데 이것을 보고 진찰하는 것이다.

    예컨대 몸의 특정부위 즉, 얼굴색으로 병을 진찰하는 것으로 이것을 오장과 오색의 관계라고 한다. 환자를 진 찰하는 은성이의 수준이 거의 망진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신초금의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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