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화 (1/152)

(작가: 임원영)

■ 제 1장 : 초금 의가

'미륵산'

장차 미륵불이 현신(現身)한다는 산이다. 산세가 험하고 괴이막측한 봉우리들은 안개속에서 만년의 신비를 머 금은 채로 와호잠룡(臥虎潛龍) 인양 웅크리며 앉아 있다. 미륵불 현신의 전설 때문인지 이산은 영산이라 불리 워진다.

산중에는 미륵사, 심곡사 등 유명 사찰이 많고 또한 산의 영기를 이용하여 도를 완성하려는 도관 또한 많다.

이 미륵산의 최 북쪽 능선 사이로 붉은 단풍이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유달리 붉은 단풍이 곱게 들은 능선을 따라 올라 가다가 보면 적송이 붉은 용인양 또아리를 틀고 있는 산중턱에 검은 기와로 지어진 건물이 눈에 띄 인다.

'초금의가(草金醫家)'

일필휘지로 쓰여진 듯 생동감 넘치는 초서체가 풍상에 시달린 듯한 낡은 간판 위에 쓰여 있다.

의원으로 보이는 백의인이 뒤편의 한 채의 기와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루종일 환자들을 돌보느라 피곤할 만 도 한데 그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 보인다. 아마도 이 방문 안에는 그의 삶에 활력소를 제공하는 그 무엇인 가가 있는가 보다.

'삐이걱'

방문을 열자 백의인의 콧속으로 매캐한 서향이 물씬 풍겨져 왔다. 그리고 백의인의 눈에는 책장들로 둘러싸인 서탁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방문여는 소리에 고개를 쳐든 어린 소 년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보였다. 약 7∼8 살 정도의 총명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버지!"

백의인을 본 소년이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보고 있던 책에서 눈길을 떼었다. 서탁 위에는 초롱불이 켜져 있다. 불빛에 반사된 책의 표지에는 올챙이가 지나간 듯한 이상한 형상의 문자가 보였다. 그리고 소년이 내려 놓은 책 옆에는 역시 올챙이가 지나간 듯한 문자가 가득히 쓰여진 한지들이 붓과 벼루와 함께 사이좋게 놓여 져 있었다.

"아버지! 벌써 저녁 식사 시간이예요?"

소년은 너무나 야속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듯 아쉬운 눈길로 덮여진 책을 응시하며 말했다.

사슴과 같이 큰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아들을 바라보는 백의인의 눈에는 자식에 대한 다사로운 애정과 기특함이 가득 담겨져 있다. 서가에 있는 책들은 3부류로 나뉘어져 보관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제자 백가의 서책들

두 번째는 당금 초금의가의 명성을 이어 주고 뒷받침해주는 의학 서적들과 조상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지면서 연구되고 발전되어진 조상님들의 의학에 대한 깨우침과 난치병 치유 사례들을 적어 보관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교, 도교 관련 서적들과 기타 잡다한 서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백의인의 눈이 은성이의 얼굴에서 서탁에 놓여 있는 붉은 표지의 책으로 향했다. 그 책은 백의인의 6대조 할 아버지께서 금강산에 약초 채집차 가서 밤에 길을 잃고 헤메다가 낙뢰에 벼랑이 무너지며 들어난 이름 모를 산골의 한 동굴에서 우연히 발견된 후 지금까지 서가에서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보관되어 있었던 책이었다.

어떠한 종류인지는 몰라도 엷고 맨들맨들 하며 아주 질긴 짐승 가죽에 글자를 새기고 표지에 붉은색 물감을 입힌 좀 두꺼운 책이었다.

백의인도 젊은 시절에 한 번 살펴본 적이 있는 책이었는데 가끔씩 그려져 있는 인체와 인체내의 주요 혈도에 이상한 문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의학에 관련된 책자인 것으로 나름대로 판단했었다.

하지만 백의인이 알고 있기에는 혈도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인체 부위에도 점을 찍고 줄을 그어 이상한 문 자를 써 놓은 그 책자는 기호인지 문자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지라 곧 덮어 지고 바로 잊혀졌으며, 그 후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은성이는 그에게 문자를 가르친 후 3살 때 여의었던 어머니가 항상 독서하는 은성이의 모습을 보고 칭 찬해 주었던 기억들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여느 어린이들이 한참 장난치고 철없이 뛰어놀 그때부터 편집광적으 로 독서에만 매달렸다.

현재 은성이의 나이는 8살 이었다. 은성이는 편집광적인 독서열로 인해 5년 동안에 서가에 있는 책들을 모두 섭렵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은성이가 그 책을 처음 접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괜히 두껍기만 하고 전혀 보지도 못했던 이상한 문자 로 된 책을 번역할 방법이 없어 포기 할까도 했지만 서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읽었는데 그 한권만 읽지 않는 것은 괜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또한 그 이상한 문자에 대한 호기심도 매우 컸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 탁한 후 초금의가에서 30년 동안 집사 일을 해오던 정 집사와 함께 그 문자에 대한 관련 서적을 찾아 다녔다. 다행히도 집을 나선지 한달여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미륵산의 서쪽 수미봉 아래에 조그맣게 지어진 도관에 현인(賢人)이 거처하고 있 었던 것이다. 은성이가 몇줄 필사해온 문자를 보던 현인(賢人)은 자신도 그 문자를 익힌 적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문자를 번역할 수 있는, 고대 문자만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자를 젊은 시절에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억을 되살려 고대 문자 번역본의 위치를 가르켜 준 현인(賢人) 덕분에 은성이는 바 라마지 않던 고대문자 번 역본을 마침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그런데 그 두꺼운 책 번역은 잘 돼 가고 있느냐?"

"예! 아버지 "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은성이는 말을 이었다.

"이 문자가 신시 문자예요. 책 제목이 '허무경' 인데 앞 내용을 번역해 보니 호흡하는 방법이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그 방법이 매우 특이해요. 그런데 뒷 부분으로 번역해 나갈수록 이해하기가 어렵고 너무 신 묘해요."

"하하하! 우리 은성이가 강적을 만났구나. 아무리 어려운 책도 몇 일만에 다 읽고 이해하더니... 그런데 은성 아! 지금 누가 와 있는지 알겠느냐?"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아버지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은성이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혹시 사부님이 오신거 아니예요. 맞죠?"

"그래 맞다. 네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너의 사부님이 오셨다. 안방으로 가자 은성아"

"예! 알겠어요"

하면서 행여 조금이라도 늦을까봐 재촉하는 아들을 보며 신초금의는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녹향목 탁자위에 난과 수석이 어우러져 은은한 아취를 풍기고 있는 방안에 반백의 머리를 도관에 감추고 대추 빛 얼굴을 하였으며 관운장의 수염처럼 길게 턱수염을 기른 도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죽향차를 마시면서 노안을 반개한 채 어스름이 진 창가를 초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예전부터 왜구들의 침략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학문과 함께 무술을 익히게 하였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는 무술도장이 산재해 있었고 많은 문파와 그에 따른 많은 무 술의 종류 그리고 무술의 달인도 많았다. 무술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동방파는 이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많이 알려지고 고수들도 많이 배출한 명문정파였다. 그래 서 모두가 자재들을 동방파에 가입시키려고 했지만 워낙 엄선하는지라 자질이 없다면 아예 가입할 생각도 못 해 볼 일이었다.

이 동방파의 장로중 한 명인 자운검 김선도는 2년전 해안가를 침략한 후 약탈 중이던 왜구들과 싸우던 중 근 처의 미륵산으로 쫒겨 들어간 왜구 고수들을 추격하다가 암습에 걸려 독 암기를 맞고 가까운 초금의가에서 치 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독 암기에 맞자마자 운기하여 혈맥을 보호하고 달려들던 왜구들을 모두 처치하였지만 그 와중에 무리를 하면 서 혈맥 속으로 침투된 독 기운에 간신히 초금의가까지 도착 하였던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의료 경험을 쌓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조해 주던 은성이를 보게 되었는데 영리 하고 근골이 무술을 익히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지라 마음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왜구와 싸우다 독상을 당 한 것을 알자 굳이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는 신초금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초금의에게 자기가 동방파의 장 로인 것을 밝히고 은성이를 제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신초금의도 은성이가 그 유명한 동방파 장로의 제자가 되면 독서에만 열중하느라 약해진 심신을 단련하고 언 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험악한 주변환경에서 일신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기꺼이 이 를 허락하였다.

사제 지간이 맺어진 후 자운검은 은성이에게 기초 체력 단련법과 간단한 권각법만을 알려 주고는 2∼3 개월에 한 번씩 찾아와 자세 교정 및 새로운 권각법을 가르쳐 주었다.

동방파의 무술은 초식끼리 서로 이어지는 것을 장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동방파의 고수에게 밀리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당하기가 일반이었다.

처음 은성이가 배운 것은 해동권 입문이라는 권각법 이었는데 이 권각법은 얼핏보면 무용처럼 보이는 권각법 이었다. 이 권각법을 시전하려면 동작과 호흡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손동작 및 보법 그리고 발동작 하나 하나 가 서로 이어지고 모든 동작은 호흡의 장단 및 심약에 맞추어서 하여야 됐다.

그래서 이 권각법을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단전 호흡이 될 수 있도록 배려 되었고 권각법을 몸의 흐름과 순행 시켜 건강을 유지함은 물론 생활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권각법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하였다.

2년이 지난 지금 은성이는 동방파에서 가장 기초로 삼고 있으면서 또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며 초기 입문자 들에게 전수되고 있는 해동권 입문 이라는 권각법과 마찬가지로 초식간의 연결성과 자연스러움에 중점을 둔 동방파의 대표적 검법인 유운검법을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신초금의와 은성이가 함께 안방으로 들어간 후 은성이는 사부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엄숙한 표정으로 절을 받은 자운검이 온화한 미소로 말했다.

"그래, 은성아! 무술 연습은 열심히 하고 있느냐?"

"예, 사부님"

"음"

대견하다는 듯이 은성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자운검의 시선이 신초금의 에게 향했다.

"은성이 아버님, 제가 이번에 사문의 일로 중원에 가게 됐습니다. 적게 걸려도 4∼5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하는 자운검의 비장한 얼굴에는 몇 년 동안 보지 못할 제자에 대한 애틋함이 깊이 감추어져 있었다.

"사부님! 아주 중요한 일인가 보죠"

서운함과 함께 호기심이 동한 은성이의 말에 자운검은 엄숙하게 말했다.

"그렇다, 이 일은 본 파의 매우 중차대한 일이란다. 은성아!"

"예! 사부님"

"비록 내가 없더라도 수련에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씩씩한 은성이의 대답에 신초금의도 안심이 되는가 보다.

"선생님 못난 제 아들에게 이렇게 노심초사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 합니다. 선생님이 안계시는 동안만은 제가 아들놈 수련에 신경을 써서 선생님의 바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은성이의 자질은 저의 제자중에서도 특출한 편이라서 후에 본파의 명예를 드높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도 중원으로 떠나기 전에 몇 일 동안이라도 본파의 절기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운검의 칭찬에 신초금의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신초금의와 자운검의 담화는 술시(21:00시)가 끝날 무렵까지 계속 되었다. 그 날부터 자운검은 한달 여를 머 물면서 그 동안 은성이가 익힌 해동권 입문의 미진함을 보완해주고 그보다 한 단계 진 일보된 해동권법과 아 직 초식조차 다.가르치지 못한 유운검법의 나머지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수련시 자운검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몸의 균형과 힘의 배분, 자연스러움 그리고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되 항상 깨어 있도록 하는 것이었 다. 자신이 현재 익히고 있는 무술 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환경 및 움직임에는 배우고 깨달을 만한 정화나 진수가 숨겨져 있으며 이것들을 찾아내고 이해하며 더욱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는 마음 자세가 필 요 하다는 것이었다.

백야(白夜)... 달빛에 부서지는 흰 눈속으로 고요함이 조용히 녹아 드는 밤.

밤이 깊어서인지 혹은 겨울이 깊어서인지 영산인 미륵산조차 흰 이불을 덮고 조용히 잠을 자고 있다. 고요한 초금의가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유독 고요함이 물씬 풍기는 방이 있다. 달빛이 살짝 창문을 넘자 가부좌를 튼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착각일까!

소년의 몸 뒤쪽으로 오색기가 엷게 배어 나오고 있다. 눈을 반개한 소년의 감각은 지금 내면 깊숙이로 침잠되 어 있었다. 고요하고 깊은 들숨이 은은하게 단전으로 유입되면 단전에서는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하여 들어온 지기와 머리위 백회혈을 통하여 들어온 천기가 합해져 몸의 원정 진기로 융화되어졌다.

소년은 4년 전부터 호흡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봄인 1, 2, 3월은 간의 기운을 돋우기 위하여 인시에 일어나 호흡을 하였고 여름인 4, 5, 6월은 심장의 기운 을 돋우기 위하여 축시에 일어나 호흡을 하였다. 가을인 7, 8, 9월은 폐의 기운을 돋우기 위하여 아침 일찍이 일어나 호흡을 하였으며 겨울인 10, 11, 12월은 신장의 기운을 돋우기 위하여 인시에 일어나 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사계절 월말 열 여드레간은 비장의 기운을 돋우기 위하여 인시에 일어나 호흡을 하였다.

현재 소년은 신장의 기운을 돋우기 위하여 인시에 일어나 호흡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그 누가 다가와 소년의 코 앞에 깃털을 갖다 대어도 깃털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년의 심취 상태는 깊었고 호흡의 깊이 또 한 심해처럼 끝이 없었다. 마치 입적한 고승처럼 고요함에 빠진 고요함처럼 유중무의 경지에 당도해 있는 것 이었다.

묘시가 시작될 즈음하여 만개한 소년의 눈이 뜨여졌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일어나더니 방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별빛이 어스름을 지키고 있었고 세상은 고요 속에 묻혀 있었다.

이 소년은 다름 아닌 은성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련한 호흡법은 바로 허무경 후반부에 씌여 있는 내용으로서 그 신묘함을 짐작하지도 못한 채 허무경 전반부에 씌여 있는 의학적 지식과 함께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은성이의 집안이 의가이어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의학 서적을 독파한 원영이는 음양 오행 및 진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그리고 무술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운기 조식으로 내공을 단련하여야 한다는 것은 무술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운기 조식으로서 얻을 수 있는 진기는 운기 조식의 방법, 수련 기간, 수련자의 개인 역량 등에 따라 천양지차 가 난다. 그렇기에 평범한 개인이 진수가 깃들이지 않은 방법으로 10년을 수련하여도 훌륭한 스승 밑에서 1년 을 수련함만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무술을 가리키고 있는 각 문파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된 운기 조식 방법이 있었으며 이 방법 은 그 문파가 오래된 문파일수록 그리고 깊이 깨우친 선각자가 많을수록 더욱 다듬어지고 오묘해져 왔다.

그리고 이 운기 조식 방법은 타 문파에 전해질 수 없는 그 문파만의 최대의 비밀로서 문파내에서도 일정한 수 준에 이른 고수나 지명제자 외에는 그 진수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래서 무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스승과 비전의 내공 수련법이 있는 유명 문파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허무경 전반에 걸친 의학과 인체에 대한 설명들은 그 동안 다른 의학서들을 탐독할 때 느꼈었던 모순이 전혀 없었으며 그때까지 은성이가 의학을 익히면서 가졌었던 많은 의문을 해소하고 의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 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은성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허무경에 씌인 호흡법을 수련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스승도 없이 책만 보며 혼자서 수련하기 때문인지 단전에 쌓이는 내가진기의 양은 수련 후 1년 정도까지는 매우 빠른 속도 로 늘어 나다가 그 이후로는 별 진전이 없었다. 그래도 운기행공 후에는 기분이 상쾌하고 특히나 마음이 명경 지수처럼 맑아지기 때문에 한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눈 덮인 대지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후 은성이는 그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한 권법 및 검술을 다시금 반복하기 시작했다.

먼저 해동권 입문을 펼치고 이어서 해동 권법을 시전하였다. 학이 춤을 추는 듯, 잉어가 폭포수를 뚫고 오르 는 듯, 용이 꿈틀대며 몸을 트는 듯 허리와 몸놀림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유연하게 돌아갔고 보법은 종잡을 수 없으며 수동작 및 발기술은 완벽한 균형 속에서 때로는 작고 날카롭게 때로는 크고 강력하게 신법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해동 권법의 수련이 끝난 후 바로 유운 검법의 수련에 들어갔다. 은성이의 붉은 수실이 달린 검이 허공에 휘 둘러지면 석양에 물든 붉은 구름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둥글게 몸을 감고 빙빙 돌다가 앞으로 쏘아 나가기도 하고 서서히 나아가다.갑자기 붉은 갈기를 휘날리며 치닫기도 하며 천변만화를 다 부렸다. 마치 하늘에서 내 려온 선동이 백색옷에 붉은 너울을 몸에 두르고 공중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울 아침은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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