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그렇게 속삭이며 다가오는 남자의 낯은 자못 친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인의 이름이 자카리이며, 이교도들의 교단장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저는 당신을 강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대답해 드릴 테니 물어보세요.”
……라는 말과 함께 미소 짓는 것까지도 그러했다.
친절하면서 동시에 음산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티스베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그녀를 감금해 놓고 친절함을 가장하는 자카리의 태도가 아니었다.
“……보라색 눈을 가졌군. 내가 알기로 그 색은 마물의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려울 텐데 말이야.”
마물의 마나는 생물을 변질시킨다. 개중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눈동자 색이었다.
처음에는 보라색으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새빨개지는 것이다.
경계심 어린 티스베의 목소리에 남자가 아, 하는 탄식을 뱉었다.
“생각해 보니 당신은 알고 계셨겠군요. 그 마도서를 읽으셨을 테니.”
“……네가 마도서의 존재를 어떻게 알지?”
“왜 모르겠습니까? 저희 손에는 시간을 다루는 마물이 존재하는데요. 미래를 볼 순 없더라도 과거를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게 없었더라면 이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도 퍽 어려움이 많았겠지요.”
“차라리 네놈이 교황과 손을 잡았다는 게 더 신빙성 있겠는데. 과거를 보는 것만으로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마도서를 티스베에게 전달한 것은 교황 칼뱅이었다.
설마 칼뱅이 자신을 속이고 이교도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모를 의심에 티스베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자카리는 도리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황이라니, 그럴 리 있습니까? 왜 아무것도 모른다는 반응이신지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로 당신만큼 이 세계에 대한 기억을 많이 지니고 있었을 사람은 없을 텐데.”
“……그게, 과거가 확실한 건가?”
“어째서 그렇게 의문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운 자카리가 성큼 다가왔다. 마치 티스베의 낯을 살피려는 듯.
“이 시간에서 처음 눈을 뜨기 전부터 기억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당신이 이곳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물론, 이전 시간을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그건…… 책이잖아?”
“……책이요? 그렇게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나는 이곳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어. 여긴 책 속이고.”
티스베의 설명에 자카리의 표정이 묘연해지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당신이 그렇게 증오를 잊어버린 이유. 하하, 그런 방식이었을 줄이야! 미안하지만, 여긴 책 속이 아닙니다.”
“뭐? 그렇지만 내 기억은-”
“이 세계라고 믿고 있는 책을 제외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드러났던지, 자카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건 책이 아닙니다. 당신은 과거 이 세계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아주 매몰차게 버림받았고, 아주 잔혹하게 끝을 맞았지요.”
그렇게 죽은 이후 영혼은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몸을 찾는다.
그러니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거기서 살고 있어야 했던 거 아니야? 왜 내가 여기로 돌아온 거지?”
“간단합니다. 시간이 돌아갔으니까요.”
“그런데 왜 나는 기억이 멀쩡한 건데?”
“시간이 돌아가기 직전, 당신이 시간을 다루는 마물과 일체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부르는, 그리고 고대하는 ‘재앙’의 정체였다.
“우리 교단은 언제나 마물이 가진 권능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사실 이단이 된 이유도 그런 개념이죠. 허락되지 않은 힘을 추구한 바.”
자카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매 안쪽에서 작은 칼을 꺼내더니, 제 팔을 죽 그었다.
그러자 팔에서 피 대신 검은 액체가 후두둑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검은 독수리의 형상으로 변해 자카리의 팔에 앉았다.
검은 액체가 진득하게 흘러내리던 팔은 이미 흔적도 없이 아문 상태였다.
“이것이 저희가 이룩한 결과입니다. 신체 능력은 이루 말로 할 것 없이 향상되었고, 마물을 다루거나 그 권능을 빌리는 것도 가능하지요. 그러니 시간을 다루는, 바꾸어 말해 부활이 가능한 마물을 인간과 일체화시킨다면 죽은 이를 살리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죽은 나를 시간을 다루는 마물과 일체화시켜서 부활을 시켰다고?”
티스베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마물을 이용해 부활을 시킨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그런 방식이었을 줄이야.
“대체…… 왜? 왜 나를 되살린 거야? 그럴 이유가 있었던 건가?”
“이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당신은 본인이 뱀주인자리이면서,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아하게 여겨 본 적이 없습니까?”
“그건…… 내가 성녀이기 때문에,”
멍하니 대답하던 티스베의 말이 뚝 그쳤다.
분명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것은 티스베가 성녀이기 때문이라고, 칼뱅은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성녀라면 대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던 걸까.
왜 그렇게 비극에 내몰려 재앙이 되어야 했던 걸까.
티스베가 말을 잇지 못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자카리가 입을 열었다.
“물론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권능을 빌리는 존재들이 특별히 사랑하여 만들어 낸 필멸자.”
개중에서도 황도 12궁, 조디악의 총애를 받는 그들의 주인.
그것이 티스베라고.
“조디악의 모두가 사랑하니 특별히 어느 별자리를 지정할 수가 없어 뱀주인자리로 넣은 것이지요. 총애가 넘치니 당연히 마나를 제 몸처럼 다룰 수밖에 없을 테고, 어떤 별자리든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같은 성녀인 에스텔은 어째서…….”
“사랑받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짐작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티스베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마물들이 황도 12궁에 포함되지 않은 별자리들의 권능을 담고 있다면.
그리고 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성녀라는 존재이며 티스베가 황도 12궁의 사랑을 받는 성녀라면.
“……에스텔은 황도 12궁을 제외한 모든 별자리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인 거군.”
“정확합니다.”
자카리가 활짝 웃으며 칭찬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원한 겁니다,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 모든 황도 12궁의 권능을 가져올 수 있는 당신이 마물의 권능까지 가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대적할 길 없는 존재가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미쳤군.”
이 제정신 아닌 계획에, 티스베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적할 길 없는 존재에 대한 열망을 토해내는 자카리의 모습과, 호수 밑바닥의 환영이 보여주었던 ‘재앙’의 기억이 겹쳐진 까닭이었다.
그 절망뿐이던 대학살극.
“그 학살을 만들어 낸 게 고작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알량한 연구심 때문에? 너희 때문에 몇이 죽어 나갔는데, 그 짓거리를 다시 만들어 내서 얻는 게 뭐라고-”
“화를 내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들의 죽음을 딱히 동정하지 않잖습니까?”
그 말에, 티스베의 입매가 일자로 다물렸다.
“솔직해집시다. 정말 중요한 건 이로써 당신이 평화로운 일상을 잃게 되는가. 이것이 아닙니까? 저는 당신의 본질이 무자비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재앙을 만들겠다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건 바뀌지 않지.”
티스베의 일갈에, 자카리가 능청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제가 언제 ‘재앙을 만들겠다.’고 했습니까?”
“뭐?”
“설마 당신이 부활하고 나서 곧장 재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분노와 증오심 때문에?”
자카리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당신은 다시 태어난 직후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긴 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며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당신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카리가 꺼낸 것은 티스베의 그 어떤 기억에서도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티스베의 등줄기를 타고 불안이 엄습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당신도 차마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어떤 원망도 무용지물이었죠.”
“……설마.”
“당신이 차마 원망할 수 없었던 유일한 사람.”
티스베를 마지막까지 믿었던, 그리고 티스베에게 이용당하면서도 원망 한마디 하지 않았던 사람.
“소어 아르망 살바토르. 그가 당신을 우리에게 데려왔습니다.”
당신을 부활시켜 달라고 말입니다.
덧붙여진 말에, 티스베의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