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피 끓는 단말마와 함께 사이벨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교단장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신전에서 사용하는 방식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두 손을 모아 죽음에 대한 가벼운 경의까지 표한 뒤에야 교단장은 몸을 돌렸다.
조금 전 한 생명의 불씨를 꺼트린 누군가라고는 결코 보이지 않을 태연함이었다.
그를 뒤따르는 그림자에서 사내 하나가 느리게 모습을 드러냈다.
“교단장님. 사체는 치우지 않는 겁니까?”
“그래. 목격하는 이가 있어야 의미가 있을 테니.”
“외람되오나……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좋지 않을 이유가 있나. 이제 겨우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교단장이 경쾌한 투의 목소리로 대꾸했다.
굳이 목소리에 담긴 가벼움이 아니더라도, 그의 입술에 걸린 미소가 그의 기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건 그가 쾌락 살인마라거나, 사이벨에 대한 어떤 악감정이 있었던 탓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 가는 것에 대한 기쁨.
오래도록 고대해 온 일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에 대한 격앙이다.
“비체. 너는 내가 그분과의 조우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그날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저 보잘것없는 신전에서 우두머리 놀이 따위나 하고 있었겠지.”
단 한 번도 그날의 기억을 잊어 본 적이 없다.
한갓 주교에 불과했던 그가, 신전의 금서들을 이용해 금지된 힘을 발현하는 데 성공했던 날.
처음 그의 목적은 그저 허락되지 않은 힘에 대해 아는 것뿐이었다.
그는 늘 그런 의문을 가져왔던 것이다.
-왜 황도 12궁의 권능만 빌릴 수 있는 걸까? 하늘에 별자리는 저렇게나 많은데.
-마물들이 가진 능력을 우리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만 쓸 수 있다면 마물들에게 그렇게 벌벌 떨지 않아도 될 텐데.
대부분의 연구가 그렇듯 그것은 처음에는 썩 악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선민사상에 가까웠다.
마나와 성좌의 권능을 다루는 건 신께서 내려 주신 힘이고, 개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자신이야말로 이 연구를 성공시켜 사람들을 마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어쩌면 그 자신감은 아주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연구를 성공했으니까.
마물과 스스로를 인위적으로 연결해 마물이 가진 이능을 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됐다! 드디어 이능을…… 큭!
그러나,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마물의 이능을 빌리기 위해 마물과 스스로를 연결하면, 단순히 이능만 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이…… 이 기억은 뭐지? 저 여자는 뭐야! 으아악!
그건 실험이 가진 부작용의 일종이었다.
단지 그 부작용이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파괴적이었을 뿐.
그는 그렇게 밤새도록 부작용에 시달렸다.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덮쳤고, 머릿속은 흘러들어온 기억으로 엉망이 되었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단순했다.
검고 또 검은 종말.
절망적일 정도로 강하고, 모든 생명을 증오하며, 동시에 한때는 그들을 사랑했던…….
“……그분을 빨리 만나고 싶군.”
“뜻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비체의 충직한 대답에, 교단장이 빙긋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그 탓에 소맷자락이 흘러내려가며 그의 손목을 드러냈다.
세례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는 손목.
그가 다른 손으로 칼을 꺼내 가볍게 손바닥을 긋자, 피 대신 검은 무언가가 흘러내리더니 순식간에 검은 독수리의 형상이 되었다.
“이본, 그만 돌아가자.”
이본이라고 불린 검은 독수리가 교단장의 말에 화답하듯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머잖아 지하 감옥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그저 죽음이 차게 식어가는 피를 굳히고 있을 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재앙의 전조였다.
* * *
“그때 잡아넣었던 이교도들의 주교가 죽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티스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혀 신뢰하지 못한다는 태도에도 소어는 별달리 억울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제법 시일이 지난 일이 되었지요. 수도에서 살바토르까지는 아무래도 전달되는 데 시간이 드니 말입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있던 놈이 왜 죽는데? 사형을 집행한 것도 아닐 거 아냐.”
티스베가 소어의 손에 들려 있던 서신을 가져와 다시 읽었다.
서신의 수신지는 당연하지만 그들이 있는 살바토르 성.
작성 일자는 사흘 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사이벨이 죽은 것은 그보다 더 된 일이라는 것이다.
‘사인은 복부에 난 관통상. 기타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자살로는 추정되지 않는다.’
티스베는 서신의 글씨를 되짚어 보며 자신이 만났던 사이벨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티스베에게 죽고 싶지 않아서 소어에 대한 증언을 한 사람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생에 대한 의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는 것.
굳이 서신에 적힌 정황 증거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더라도 자살일 리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타살이라는 건데.’
이게 내가 놓치고 있던 전조였던 건가?
티스베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그녀가 살바토르 성으로 돌아온 건 조금 전의 일이었다.
에스텔과 대화를 끝마친 직후 티스베는 소어를 찾아왔다.
딱히 소어를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소어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말하면 소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소어는 티스베에게 있어 유일하기까지 한 걸림돌이었으니까.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내 눈을 가리고 내 앞길을 방해하고 싶었다면.’
분명 소어를 이용했을 거라는 확신이 티스베의 뇌리를 치고 갔다.
물론, 소어의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소어에게 근황을 물어보면서 놓친 게 없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는데.
“아, 티스베……. 오셨습니까.”
문제는, 소어의 안색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티스베를 보고 무척 기쁜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은 여전했지만…… 뭐랄까.
“어디 아파요, 소어?”
“네? 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얼굴색이 나쁜데.”
“……제가 그래 보였습니까?”
“그래요. 이것 봐요. 눈도 평소보다 덜 뜨고 있고, 입도 평소보다 덜 웃고 있고.”
결정적으로!
소어의 얼굴이 ‘해사’했다.
평소에는 ‘화사’한데!
라스가 티스베의 말을 들었더라면 손을 들고 “저 혹시 귀 좀 씻고 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티스베의 눈에는 그 차이가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마치 함박눈과 싸라기눈의 차이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티스베의 눈은 정확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조금 민망하지만…… 마무리가 덜 된 일이 있는데 그 일 관련해서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이교도…… 들과 관련한 일입니다.”
소어는 그렇게 말하며, 건국제 이후 줄곧 이교도의 잔당을 찾아다녔음을 고백했다.
“이교도라면…… 그때 당신이 전부 잡아오지 않았나요?”
“분명 그랬습니다. 하지만 심문을 해 보니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교도가 두 개의 교단으로 분파를 해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던 것이 사이벨이 속해 있던 교단.
그리고 사이벨이 속해 있던 교단이 성역에서의 테러 미수 사건으로 검거당하자, 다른 교단에서는 발 빠르게 꼬리 자르기를 해 버렸다.
“통상적으로 파악된 숫자와 이교도들이 말하는 숫자가 달라서 조사를 해 보니 그런 식으로 암막을 해 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추적을 하고 있던 차였는데…….”
문제는 추적이 썩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현재 검거된 이교도들 중 혀가 멀쩡한 놈이 거의 없었으니 수색이 원활할 리 있나.
“하여 수도로 사람을 보내 두었습니다. 성역에서 곧장 검거된 이들을 심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만,”
“주교의 죽음 소식이 대신 들려온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현재 혀가 붙어 있는 주교가 사이벨 하나뿐이었는데, 그런 그가 죽어 버렸으니 고급 정보에 대해 캐낼 수 있는 상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필 티스베가 놓친 것이 있는지 확인하러 돌아온 순간.
아주 절묘하게, 증거가 티스베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셈.
‘이 정도면 아주 대놓고 눈치채라고 외치는 수준이다.’
이교도들이, 그녀의 목적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