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70화 (70/121)

70화

소어가 추방당한 접경지의 이름은 칼데일.

소어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자, 천 년의 분쟁지로 불리는 곳이다.

다른 접경지도 쉽게 해결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북쪽 위치해 설산까지 걸쳐 있는 칼데일은 기후마저 극심한 탓에 특히나 그 정도가 심했다.

병사들이 늘 주둔하고 있지만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없는 분쟁지.

그게 바로 칼데일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소어가 총사령관으로 간 곳이기도 하고.

‘젠장!’

일이 안 풀리는 놈은 뭘 해도 안 풀린다더니.

고작 일주일 사이에 소어가 추방을 당할 건 또 뭔가!

처음에 티스베는 도저히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방에 틀어박힌 것이 고작 일주일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 사이에 사람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말이 돼?”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이벨이 티스베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고, 재판이 열리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러니 소어에 대한 처분이 나더라도 수색 시간이 있을 테니 판결까지 못해도 보름은 걸려야 정상이 아닌가?

티스베가 그에 대해 이 일의 총책임자의 멱살을 잡고 물어보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본인이 원한 일이었다.”

“……뭐?”

“본인이 원한 일이었다고. 이교도의 배후에서 그들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을 자백하고, 최대한 빨리 자신을 추방시켜 달라더군. 그대로 두면 없는 범행까지 만들어 줄줄 읊을 것 같아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다.”

“그래도……… 네가 총책임자고 소어는 살바토르인데. 어떻게 조치할 수는 없었어?”

킬리안은 제 멱살을 움켜쥔 티스베의 손을 잡아 천천히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티스베, 소어의 죄목이 뭔지 알아?”

“국교에 반발하여 분란을 꾀한 것?”

“그렇지. 하지만 그건 최소로 줄인 거고, 가만 뒀으면 이교도들의 살인에 대한 책임까지 살바토르 공작이 전부 뒤집어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줄이고 줄여서, 이교도를 지원한 것에 대한 죄목만 물은 것이다.

“그 이하로는 신전이 워낙 강경해서 어려웠다. 추방 10년이면 그렇게 가혹한 형벌도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그렇지.”

티스베의 기세가 한풀 가라앉자, 킬리안은 티스베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가 앉아서 업무를 보던 와중 티스베가 벌컥 쳐들어 온 탓에, 티스베가 앉아 있는 킬리안의 손을 쥐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또 그런 얼굴을 하는군.’

티스베를 올려다보는 킬리안의 시선이 짙어졌다.

느리게 오르내리는 눈꺼풀에 킬리안의 적안이 가리었다가, 드러났다.

“……좋게 생각해. 어차피 네게는 해가 갈 일이 없잖아.”

“아니, 해가 가. 그것도 심각하게.”

“무슨?”

“소어랑 얘기를 해 볼 생각이었는데, 소어가 이렇게 사라져 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킬리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그러나 이건 티스베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상태면 떠날지 말지도 결정을 못 하잖아!’

이런 찝찝한 기분으로 대체 뭘 하라고?

지난 일주일 간, 티스베는 단 한 번도 소어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마 소어를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계속 앙금으로 남겠지.’

그런 건 싫었다.

“……역시 안 되겠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소어를 만나야지.”

“지금은 못 만나잖아?”

“만날 수 있게 만들면 되지!”

티스베의 선언에, 킬리안이 살짝 질린 표정을 했다.

“뭘 하든 이번에 날 끌어들일 생각은 마라. 지금 굉장히 불길한 기분이 드니까.”

“불길한 기분은 무슨. 넌 당연히 껴야지. 너 때문에 내가 파혼장을 다 받았는데.”

사실 이 모든 건 킬리안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킬리안이 소어에게 티스베가 파혼을 고려하고 있노라고 심술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모든 건 평화로웠을 테니까.

소어는 티스베의 곁에 여전히 있었을 테고, 티스베는 소어와 함께 잘 지내고 있었겠지.

“킬리안, 넌 예로부터 늘 입이 문제였지.”

싱긋 웃는 티스베의 주위에서 어느새 화병에 꽂혀 있던 꽂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 꽃들의 잘려나간 가지 끝이 날카롭게 킬리안을 겨누고 있었다는 점이지만.

한껏 피어난 꽃들의 수호를 받으며, 티스베가 가볍게 머리칼을 손등으로 날렸다.

느슨히 들이치는 햇볕을 받으며 찰랑이는 은발과 우아한 미소는 늘 그렇듯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만큼, 위험한 게 문제지만.

“어떻게 할래, 킬리안. 이 사달을 낸 책임을 질래? 아니면 날 도울래.”

안타깝게도, 킬리안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 * *

그로부터 약 보름 뒤.

‘요즘 좀 이상하군.’

황실의 군사령관, 빌헬름 무어는 지도를 내려다 보며 생각했다.

요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연 혹은 기우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의심은 확신이 되어 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도에 남은 기사가 한 부대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은 동부 르나르 숲이었지.’

약 열흘 전.

동부 르나르 숲에 주둔하던 부대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거대 마물이 셋 이상 출몰한 것으로 확인. 인력 지원을 요청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

숲에서 마물이 출몰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빌헬름은 기사를 일부 차출하여 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루아힌에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눌란 산맥에서도 왔습니다!”

“나, 남부 해안에서도 마물이 출몰했다는 소식입니다!”

제국 곳곳에서 마물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속속들이 빌헬름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빌헬름도 덩달아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기사들을 이곳저곳으로 보내 댔다.

“섣불리 마물을 상대해 전력을 낭비하지 마라! 인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내버려 두어야 한다!”

“마물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겁니까?”

“필요하다면 죽여야겠지. 하지만 병력을 지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함이다. 섣부르게 덤볐다가 인명 피해가 더 커지는 경우도 있으니 선공은 하지 않는다.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이상이 없다면 복귀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지원 요청에까지 기사를 보낸 상황.

이때까지만 해도 빌헬름은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수도에 주둔하는 기사들을 대거 차출했으니 부대를 재편성할 생각으로, 수도에 남은 기사의 수를 파악해 보기 전까지는.

“수도에 남은 황실 기사의 수가…… 열둘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그마저도 황제의 근위대를 합친 숫자였다.

그걸 빼고 나면 지휘부 몇몇이 전부였으니, 실질적으로 대동할 수 있는 기사의 숫자는 0에 가까운 상황.

빌헬름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군.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대항할 여력이 없을 텐데…….”

그의 혼잣말에 옆에서 서류를 챙기던 흑발의 청년, 킬리안이 픽 웃었다.

“빌헬름. 자네도 나이가 드니 걱정이 느는 모양이군. 무슨 일이 날 게 있겠나?”

“면목이 없습니다, 전하. 말씀대로 나이가 드니 걱정이 느는 것 같군요. 하지만 기사가 없다고 하니 염려가 되어서.”

”어차피 병사들은 전부 있지 않나. 수도에 마물이 나타날 것도 아닌데 웬 걱정은. 여차하면 다른 가문에 기사 증원을 요청해도 되지 않겠나?”

“그것도 맞긴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해 수도 안에 기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황실 기사가 모자랄 뿐.

귀족 가문에 기사 증원을 요청하면 그건 분명 그 배로 돌아온다.

‘귀족들은 대가 없이 황실을 돕지 않으니까.’

수도에 황실 기사가 거의 남지 않을 때까지 황실군에서만 기사를 차출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다른 가문에서 기사 증원을 요청하려면 일반 귀족 가문을 골라서는 안 된다.

‘하자가 있는 가문을 골라야지.’

다른 귀족 가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무언가를 던져 주고 기사를 뽑아올 만한 가문을 골라야 하는데…… 문제는 보통 그런 가문에는 쓸 만한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보낸 기사를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고.

‘기우인가?’

사실 킬리안의 말마따나 당장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빌헬름의 기민한 감이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기사가 빠져나갔던 적이 있단 말인가?’

수도에 기사가 한 부대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 정말 우연이라는 건가?

이건 마치.

‘누군가 일부러 이 상황을 노린 것 같은…….’

그때.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리고, 병사 하나가 급히 뛰쳐들어왔다.

“비, 빌헬름 사령관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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