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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67화 (67/121)

67화

재판소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그도 그럴 게, 근 몇 달 간 끊임없이 화제가 된 바로 그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의 재판이 아닌가!

사람들은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흥미로워하며 재판소로 몰려들었다.

웅성거리며 떠드는 말들에는 저마다의 감상이 담긴 채였다.

“성녀의 재판이라니…….”

“나는 오늘 재판 결과를 꼭 두 눈으로 봐야겠네.”

“자네는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나는 유죄에 한표.”

“에이, 그래도 명색이 칼릭스트인데 하나 있는 후계자를 내쫓기야 하겠나? 어떻게든 구명하겠지. 나는 무죄로 보네.”

“어허, 그게 됐으면 여태 이러고 있었겠는가? 지은 죄가 있다면 권력이 아무리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근데 정말로 공녀님이 저지른 일일까?”

“증언을 했다잖아. 공녀님이 저지른 일이겠지! 그간 평판이 오죽 안 좋았어? 공녀님이 저지른 게 아니면 더 이상하겠다.”

사람들의 의견은 저마다 분분했다.

티스베가 몇 번씩이나 피를 쏟아 가며 신성력을 쓰는 모습이 담긴 영상구에 크게 감명을 받은 누군가는 그럴 리 없다며 티스베를 변호했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극적인 모습도 연출이 된 거라고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가 이 재판의 결과를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티스베의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나쁜 결과만은 아니어야 할 텐데.’

에스텔은 마음을 졸이며 난간 아래의 재판장을 내려다보았다.

기본적으로 관중석은 재판장보다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 있어도 티스베가 재판소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말 무슨 생각이신 걸까.’

이렇게 망명을 하는 게 티스베가 원하는 걸까?

정말로?

분명 그것은 티스베가 바란 것의 일부일 수는 있겠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에스텔은 확신했다.

‘공녀님은 고작 망명을 하겠다고 이렇게 일을 벌일 분이 아니셔.’

그것보다는 뭔가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단지 에스텔로서는 그것을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을 뿐.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에스텔 뿐만이 아니었던지, 좀 더 상석에 앉은 킬리안의 낯 역시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뭘 하려는 거냐, 티스베.’

알마스 역시 티스베의 무죄 판결을 위해 힘썼지만, 작금의 킬리안만큼 힘쓴 사람을 또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사이벨의 입에서 배후로 티스베의 이름이 거론된 순간부터 그는 이 사실을 무마하려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정보를 채간 신문사가 없었더라면 분명 성공적으로 그걸 덮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무마는 실패했고, 일은 더 이상 킬리안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번져 나갔다.

그런데도 정작 티스베 본인은 태평했다.

“소어를 아무리 찾아가도 볼 수가 없네. 파혼을 해도 친구로는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랑 아예 안 볼 생각인 건지……. 한 번만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는데.”

고작 이딴 걸 고민이라고 얘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끝에 티스베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재판정에 소어가 올까?”

정말 어찌나 태평한지, 울화통이 다 터지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오겠지! 그럼 안 오겠냐! 그자가 널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데!”

“왜 화를 내? 그냥 물어본 건데.”

고작 두 마디로 티스베는 킬리안의 속을 한층 더 답답하게 만들어 주고는, 정작 본인은 무슨 생각인지 턱을 괸 채 발끝을 까딱이고만 있었다.

“……안 왔으면 좋겠다.”

하고 중얼거린 게 전부.

그 뒤로는 킬리안도 티스베를 만나보지 못했으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알 길은 없었다.

그러니 여태 속이 답답할 수밖에.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의 속이 타들어가든 말든 재판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판사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고, 이번 사건을 담당한 킬리안의 대변인으로서 그의 보좌관인 밀렌 자작이 따라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티스베와 칼릭스트 공작, 알마스였다.

티스베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마찬가지로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순식간에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악녀!”

“저 여자를 추방해라!”

“더러운 사기꾼!”

계란을 던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야유는 거셌다.

그녀의 최근 평판 회복이 극적이었던 만큼 그 반발심 또한 거셌던 것이다.

물론 저것이 완벽히 민중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신전에서 심어 놓은 몇몇 사람들이 분탕질을 한 결과물이겠지만.

어쨌든.

땅땅땅!

“정숙! 좌중 정숙!”

판사석에 앉은 이 중 가장 가운데에 앉은 재판장이 법봉을 세 번 내리쳐 야유를 멎게 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재판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의례적인 절차를 거치고, 증언이 한 번 더 언급되었다.

다른 때였더라면 증언을 한 사이벨이 직접 재판정에 서서 재차 증언했겠으나, 사이벨의 심신 미약으로 인해 이번만큼은 증언을 기록한 내용으로 대체했다.

“-하여, 해당 증언을 토대로 피고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 기소하였습니다.”

“위증입니다!”

피고석에서 알마스가 버럭 소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소에 대한 근거는 증인의 증언을 제외하면 오직 빈약한 상황 판단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그 어떤 것도 피고의 혐의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언이 나온 이상 이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공작.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 자료가 없는 이상 섣부른 반박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밀렌 자작의 말이 맞습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공작.”

재판장이 알마스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티스베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피고, 해당 증언에 대해 발언하시겠습니까?”

마치 단두대에 서기 전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길 기회를 주겠다는 듯.

베일 아래 티스베의 시선이 느리게 좌중을 훑었다.

그녀의 시선은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한 사람만을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지 않았나 보네.’

그래, 차라리 잘됐다.

티스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의자 끌리는 소리와 걸음마다 드레스자락이 사부작거리며 내는 작은 소음만이 재판정을 울렸다.

그렇게 그녀가 발언을 위해 단상에 올라서려는 순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판정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내가 뛰어들어왔다.

흐트러진 금발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급한 낯에 박힌 파란 눈동자가.

갑작스러운 등장에 좌중이 술렁이는 사이, 사내는 숨도 고르지 않고 이어 외쳤다.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에 대한 증인의 증언은 거짓입니다!”

“……소어 아르망 살바토르 공작. 작금의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법정을 모독하는 자는,”

“거짓된 증언보다 법정을 모독하는 행위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사내, 소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무언가를 든 채로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와 티스베보다도 먼저 단상에 섰다.

그리고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았다.

“해당 증언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교도에게로 돈이 송금된 내역입니다. 송금된 출처와 발신인 및 수신인 또한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조된 증거가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 겁니까?”

“황실에서 운영하는 수도 은행에서 공증된 내역서입니다. 위증은 없습니다.”

소어의 말에, 재판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도 은행의 공증은 대기 인원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못해도 보름이 걸리는 일이니, 만약 티스베에 대한 증언이 퍼진 이후 소어가 움직였다면 분명 시간이 적잖이 걸렸을 터다.

“여태 칼릭스트는 기소를 뒤엎을 만한 증거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공작께서 가져오신 증거가 사실이라면, 이는 판결에 큰 영향을 줄 터.”

다만 이 사건을 판결하는 위치에 선 사람으로서,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작께서는 그 증거를 어떻게 입수하셨습니까? 불법적인 행위로 입수된 증거는 효력이 없음을 미리 고지하겠습니다.”

“……불법이 아닙니다.”

소어는 말을 뱉어 놓고,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럴지언정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티스베를 향하지 않았다.

찰나의 간극, 그 끝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들에게로 돈을 송금한 발신인은 살바토르 공작…… 본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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