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화살은 그대로 날아왔더라면 에스텔의 몸통을 관통하는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앞뒤 잴 겨를 없이, 티스베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우드득.
그러자 에스텔의 등 뒤로 땅이 솟아올라, 날아오던 화살을 먹어치우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신성력에 해당하는, 개중에서도 땅을 다루는 전갈자리의 권능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여태 여러 별자리의 차용을 방에 틀어박혀 연습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생겨난 흙더미가 무너진 것을 본 에스텔이 화들짝 놀라 티스베에게로 달려왔다.
“고, 공녀님? 이게 무슨-”
“화살이에요! 어디에서 또 날아올지 모르니 내 옆에 붙어 있어요. 여길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성역에 폭탄과 함께 이교도가 잠입해 있다고 해요.”
“네? 하지만 여긴 성역인데요?”
“신전 사제로 위장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성역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건 신전의 사제들이 유일했다.
그리고 이교도들 대부분은 신전에 소속되어 있다가 파문을 당한 경우이니, 아마 잠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폭탄이라니.’
그렇다면 이교도들의 목적은 단순히 에스텔을 죽이는 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성역을 파괴하려는 거겠지.’
성역과 성화대는 신전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장소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 이교도들 입장에서는 이걸 부숴서 신전의 권위를 망가뜨리고 싶을 게 당연하다.
문제는.
‘성역이 망가지면 안 돼!’
성화대가 성물이라는 것이다.
신전에서 나눠 주는 그 납작한 빵 말고, 진짜 성물!
현재는 그 용도를 잘 알지 못해 성화를 올리는 용도로만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에스텔이 마물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진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금단의 실험을 통해 마물이 탄생했을 때 그 마물에 대항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성역이 무너지면 성화대도 망가질 게 뻔해.’
설령 망가지지 않더라도 무너진 산에서 그걸 찾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여기에 이교도만 숨어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지.’
과연 에스텔을 향해 날아온 화살이 이교도의 소행인 걸까?
티스베의 계획대로 범인이 에스텔을 노리고 있었던 거라면?
‘킬리안이 범인일 수도 있고, 에스텔이 성역에 들어온다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으니까.’
굳이 티스베가 함께 간다는 이야기가 없더라도 범인이 미리 에스텔을 노리고 사람을 숨겨 놓았다는 가설 역시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
그러니 이교도들이 숨어든 현재, 범인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 배로 어려워진 셈이고.
‘범인 한번 잡으려다가 이게 무슨 난리야, 빌어먹을!’
티스베는 이를 악물고 빠르게 마법식을 계산했다.
그러자 티스베와 에스텔을 중심으로 둥글게 투명한 돔 형태의 방벽이 쳐졌다.
황소자리의 권능의 일부인 보호 마법이었다.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사실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주변을 둘러싼 숲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화살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쩌적!
화살이 박혀들자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방벽을 새로 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콜록!”
문제는 성역 특유의 환경 때문에 고작 이 정도로도 마나가 역류하려고 든다는 점이다.
“공녀님! 괜찮으세요?”
“콜록, 콜록! 난, 콜록, 괜찮아요.”
티스베는 서둘러 기침을 잠재우고 허리를 곧게 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맹수의 것처럼 형형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렇게 됐다면 단순히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는 안 돼.’
그렇다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다.
어떻게든 폭발을 막고, 뭐가 됐든 싹 다 소탕한다.
티스베는 요동치는 마나서클을 꽉 붙잡았다.
‘여기서는 성좌를 소환할 수 없어.’
성좌 소환은 마나 효율이 너무 나빴다.
그동안은 공기 중의 마나를 걸러서 그 단점을 보완해 왔지만.
‘성역은 공기 중 마나 농도가 너무 높아.’
마나를 제대로 걸러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성좌 소환처럼 마나 효율이 나쁜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지금 가능한 건 성좌의 힘을 빌리는 차용과 성좌가 몸에 깃들게 하는 강림이 최대.
‘한 번에 두 가지 이상도 가능할까?’
소환은 단순히 불러내기만 하면 성좌들이 알아서 움직여주니 여럿을 불러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차용도, 강림도 모두 시전자가 부담해야 하는 일들.
한 번에 하나씩은 어렵지 않게 가능하지만 그 사이사이 공백이 생긴다.
운이 나쁘다면 그 공백에 티스베나 에스텔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동시다발적으로 마나를 운용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능력은 두 가지.’
숲에 숨어 있을 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천칭자리의 천리안과, 지금 유지하고 있는 방벽 마법.
그리고 여유가 난다면 궁수자리의 공격 마법까지.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한 번에 시도해 봤을 때는 계산이 꼬여서 나를 공격할 뻔했지.’
그런데다 성역의 악조건까지 있으니.
한마디로 도박인 셈이다.
하지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도 화살은 시시각각 날아들고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힌 방벽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금이 잔뜩 간 상태.
“공녀님! 벽이 곧 깨질 것 같아요!”
“알겠어요!”
티스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내가 언제는 그렇게 바른 길로만 살았다고.
안 되면 죽게 생겼는데, 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티스베는 눈을 감고 마나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그만큼 마나가 빠르게 역류하려는 조짐을 보이며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 따위에 방해받을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나를 중심으로 공간을 넓혀가, 오감이 아닌 공기 중의 마나를 통해 세상을 느낀다.
마법도 신성력도 결국 갈래가 나뉠 뿐 마나라는 같은 매개를 이용한 것.
마나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만 있다면 두 개 이상의 마법과 신성력을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파앗-!
마법식 계산을 마친 티스베가 허공으로 손을 뻗은 순간, 부서지기 직전이었던 방벽 위로 새로운 방벽이 덧씌워졌다.
그러나 처음의 방벽보다 배는 두껍고, 견고한 모양.
그것을 만들어 낸 장본인의 몸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몸 전체를 맴돌고 있었다.
“고, 공녀님…….”
그 모습을 본 에스텔은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며 한 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분명 모습은 같은 사람인데, 느껴지는 기운이 확연히 달랐다.
‘저 사람이 공녀님이 맞나?’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텔은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원래 티스베의 마나에서는 조금은 공허하면서도 부정하지 못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 티스베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저.
‘오만하고 고고한 기운.’
그리고 동시에 경외감이 들 정도로 차갑고 두려운 느낌뿐이다.
에스텔은 떨면서 조심스럽게 티스베를 불러 보았다.
“공녀님…… 맞으시죠……?”
그러자 눈앞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부를 것 없어요. 맞으니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으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 같은 음성.
에스텔이 알 방법은 없었겠지만 사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티스베의 몸에는 현재 궁수자리의 권능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그 증거로 티스베의 몸 전체에서는 이질적인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으며, 이마에서는 같은 빛으로 새겨진 화살 모양의 궁수자리 기호가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보여.’
정확히 말하자면 느낄 수 있다.
나무 사이에 숨어 티스베와 에스텔에게 활을 쏘아 대던 이들의 기운을.
‘하나, 둘, 셋…… 여덟이라.’
천칭자리의 권능 중 일부인 천리안은 이 자리에서도 나뭇가지 위의 사람들이 시위에 화살을 장전하는 모습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그들이 심장에 하나씩 가진 마나서클까지도 선명히 느껴진다.
이곳이 마법국 세이즈가 아닌 이상, 마나서클을 가졌다는 건 곧 신전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뜻.
‘이교도들이군.’
티스베와 에스텔을 둘러싼 마나가 달라졌다는 것을 그들 또한 느꼈는지, 조금 전까지 쏟아지던 화살이 멈추었다.
이교도들이 주춤거리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도.
그뿐이 아니다.
온몸에 흘러넘치는 궁수자리의 권능이, 마치 자신이 성좌 본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티스베가 활을 쏘는 자세를 취하자, 어느새 마나로 구현된 푸른 빛무리의 활이 그녀의 손에서 시위를 팽팽히 만들었다.
퉁, 가볍게 손을 놓자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쐐액 소리와 함께 숲을 향해 쏘아졌다.
푹!
“커헉!”
단말마의 비명, 그리고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까지.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이는 소리가 성역을 울렸다.
고요를 가장하고 있던 숲에 전율이 맴돌기 시작한 순간.
[이야…… 이게 되네?]
어쩐지 얼이 나간 듯한 티스베의 음성이 부근 일대의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아로새겨졌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직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