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소어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유구한 일이었다.
그는 기억하는 아주 처음의 순간부터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것을 꺼렸으니까.
아니, 사실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소어는 정말로 자신이 타인을 꺼렸는지 꺼리지 않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단지 그는 제가 가진 아주 처음의 기억에 이런 언쟁이 있었다는 것만을 기억했다.
“소공작께 대인 기피증이 있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당장 쌓아야 할 인맥이 몇 갠데, 그걸 벌써 저버리시면 안 되지요! 가주님, 소공작께서는 살바토르의 명운이십니다!”
“하지만 소어가 통 입을 열질 않는데 어쩌겠습니까? 그 애는 사람이 싫다 합니다. 그러니 백부께서도 그 애에게 너무 강요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요라뇨, 이게 강요처럼 보입니까? 이건 모두 소공작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어머니라는 분이 이렇게 유약하셔야 되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소공작께서 가주님을 닮아 많이 유약하신 것 같던데, 이런 모습 보여서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아아, 됐습니다. 그 애는 저 하고픈 대로 키울 겁니다. 백부님께서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콜록, 강인함은 무형에서도 나오는 법입니다. 유약하더라도 속은 단단히 키울 테니 백부님도 걱정은 그만 거두세요. 또 압니까, 자라다 보면 사람 대하는 게 쉬울지, 콜록, 콜록!”
밭은기침이 소어의 어머니, 전대 살바토르 공작의 목소리를 잘랐다.
그녀는 소어를 낳았을 당시 이미 선천적인 폐병이 심각하여 살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본디 이렇게까지 심한 병은 아니었으나 기사였던 남편이 전장에서 명을 달리한 이후 그 충격으로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깐깐하고 강퍅하던 성정은 훨씬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심해져 가는 병세는 그를 가중시킬 뿐이었다.
하여 소어는 거의 매일같이 어머니가 살바토르의 장로들과 언쟁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어머니를 찾아온 그녀의 백부와, 어머니가 언쟁을 하느라 집무실 바깥까지 날 선 말들이 새어 나오던.
그들은 아마 문밖에서 여덟 살 소어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어른들은 으레 자란 키만큼이나 높아진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신경 쓰기 마련이니까.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가끔은 아이를 위해 허리를 숙이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이고, 도련님. 또 여기 계셨군요.”
“……집사.”
노회한 살바토르 저택의 집사는 소어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눈에 띄게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애써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긴 놀 거리도 없는데 왜 여기 계세요. 그러지 말고 정원에 나가 노는 건 어떠십니까.”
“밖은 사람이 많잖아. 오늘도 모르는 사람이 다녀갔어.”
“그, 그렇지요. 가신들이…….”
집사는 창밖을 흘끔 내다보았다.
잘 조경된 정원에, 오고 가는 손님들이 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이 모두 일고여덟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하나씩 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살바토르 공작이 병으로 오늘내일하고, 가문에는 어린 후계자만이 남은 상황.
모두가 어린 후계자와의 관계를 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로들은 가신들의 엉덩이를 쿡쿡 찔러 댔고, 가신들은 덩달아 저들 자식들을 떠밀었다.
‘그러니 어쩌면 도련님께서 사람을 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시겠지…….’
집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의 정서 상 썩 좋은 내용이 들려올 리 없는 집무실 앞에 소어를 계속 세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집사는 머리를 굴리다 제법 괜찮은 생각을 떠올렸다.
“도련님. 정원이 싫으시다면 아예 저택 밖으로 나가는 건 어떠십니까? 그렇지, 신전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듣자하니 오늘은 칼릭스트의 성녀님도 신전에 가는 날이라더군요.”
정말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소어는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았으니까.
그래서 어린 소어는 흔쾌히 집사의 제안에 응했다.
누구도, 소어가 그곳에서 어떤 변화를 겪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짓을 하게 될지도.
* * *
‘무, 물건을 훔쳤어. 내가.’
소어는 덜덜 떨리는 손을 꼭 말아 쥔 채 품 안을 내려다보았다.
품 안에는 납작한 아이 손바닥 정도 크기의 빵이 들어 있었다.
조금 전 사제들이 바구니에 담고 나누어 준 성물이었다.
“자, 이건 사제들이 성력을 이용해 만든 성물입니다. 이걸 먹으면 몸이 정화되고 신의 은총이 몸에 깃들지요. 자애로우신 저희의 창조주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드세요.”
다른 때였더라면 귓등으로 듣고 말았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걸 먹으면 몸이 정화된다니.’
그렇다면 어머니의 병도 나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어는 어머니와 빈말로도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녀는 애초에 썩 온정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던 데다, 병이 악화된 이후로는 쉽게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어는 어머니를 싫어하지 않았다.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데다, 얼굴에 병색이 완연해 조금 두려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꼿꼿한 고목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강퍅함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지만, 소어는 어머니를 꽤 좋아했다.
그녀가 자신을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바라보다가, 한 번씩 쓰다듬어 줄 때의 느낌을 좋아했다.
물론 자신을 귀찮아한다는 느낌이 역력하긴 했지만…… 싫어하지 않는 게 어딘가.
‘분명 날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언성을 높일 때의 일은 대부분 소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소어의 유약한 면모, 대인기피증, 잦은 잔병치레까지도.
장로들은 그것들을 두고 전부 소어의 어머니 탓을 했다.
그녀가 제 욕심에 아들을 망친다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얼마나 펄펄 뛰며 화를 냈는지 알기에, 소어는 그녀의 분노가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봐 두려웠다.
소어는 고작 여덟 살이었고, 아직 한창 사랑이 고플 나이였으니까.
그래서 소어는 늘 착한 아이로 살아왔다.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성가시게 굴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
그러던 와중 신전에서 성물을 받은 것이다.
사제의 말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를 내용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는 그저 기적처럼 보였다.
“이 성물을 밖으로 가져가셔서는 안 됩니다. 절대! 먹지 않고 가져가는 것은 그분의 은총을 도둑질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반드시 여기서 드시고 가셔야 합니다.”
사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소어는 성물을 아무도 모르게 품에 넣었다.
도둑질이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 때문일까.
도무지 큰 길로 갈 수가 없었다.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소어는 결국 담벼락을 돌아 아무도 없을 만한 곳으로 도망쳤다.
아니, 도망치려 했다.
담벼락을 돌아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았더라면.
“뭐야? 응? 성물이네?”
그리고…… 넘어지면서 품에 꼭꼭 넣어 두었던 성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이거 밖으로 못 가져가게 하는데. 어떻게 들고 나왔어?”
머리가 새하얘지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대의 물음에 소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난 끝이야.’
들고 나와서는 안 되는 성물을 들고 나온 걸 들켰으니, 분명 크게 혼이 날 것이다.
그러면 신전에서는 살바토르로 연락을 취할 테고.
어머니는 또 길길이 화를 내시겠지.
그럼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뇌리를 장악한 아이의 눈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어, 어? 울리려던 게 아닌데? 왜 울어?”
“흑, 흐윽, 자, 잘못했, 끅, 잘못했어요…… 마, 말하지 말아 주세요…….”
소어의 눈물에 둥글었던 상대의 눈이 더 둥그레졌다.
“마, 말하지 않을 테니까 울지 마. 응? 난 우는 애는 달래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소란 피우면 들킬지도 몰라! 뚝! 뚝!”
“……히끅, 들킨, 다니……?”
“나 지금 도망 나온 거란 말이야. 저긴 사람이 너무 많아!”
“그, 그러면 혼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다들 내가 몸이 약한 줄 알거든.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고 하면 돼.”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그렇지. 뭐 어때? 잘못을 저지르는 게 두려워? 하지만 남들은 다 그러고 사는걸.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거야.”
들키지 않으면, 잘못도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