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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8화 (8/121)

8화

티스베는 당장 손을 들고 사회자에게 정중히 묻고 싶었다.

저기, 혹시.

그 마지막 상품이라는 마리에트의 저주받은 반지는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불운해지는 효과가 있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도대체 소어가 왜 여기 있는 건데!’

암시장의 경매장. 순수하고 선한 데다 굉장히 반듯하고 도덕적인 성품을 가진 소어 아르망 살바토르라는 인간과는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어야 하는 장소다.

마음 같아서는 눈 딱 감고 자신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마냥 부정하기에는, 그녀는 이미 소어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았다.

로브를 뒤집어썼지만 여전히 빛을 받아 반짝였던 금발도. 아름다운 눈동자도.

그리고, 티스베 자신을 불렀던 그 낮은 목소리까지.

티스베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끄집어냈다. 제발 소어가 아니길 기대하며.

“소, 소어?”

“예, 접니다. 여기서 만나 뵐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그녀의 기대는 처참히 배반당했다. 와중에 이런 곳에서 만났다고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소어의 얼굴이 더욱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는데…….’

하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인 소어에게 들켜 버리다니.

소어의 착하고 선한 면을 자신이 온전히 다 따라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암시장이나 들락거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나 속으로 절규하는 티스베와 달리, 소어는 조금 의아한 듯한 표정이었다.

“혹, 몰래 오셨던 겁니까?”

“네……. 살펴볼 게 있어서요.”

그렇게 대답하고, 티스베는 멈칫했다. 그리곤 서둘러 덧붙였다.

”미리 말하지만 암시장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말로.”

“그렇습니까. 티스베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다니 기쁩니다.”

소어가 그렇게 속삭이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주변이 왠지 밝아진 것 같은 건 역시 기분 탓일까.

일단 절망뿐이던 티스베의 마음이 햇살 쨍쨍한 여름날보다 환해졌다는 건 확실했다.

아, 역시 내 천사.

여전히 소어에게 들킨 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소어라면 분명 침묵을 잘 지켜 줄 것이었다.

‘본인도 썩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해소되자, 그 다음에 드는 것은 소어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여긴 암시장인 것도 모자라 곧 살인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공간이었으니까.

원작에서 소어가 경매장에 있었다는 서술이 있었는지는 당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니 차치하고.

티스베는 소어의 손을 덥석 잡고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여기 온 거예요?”

“아, 그게……”

소어는 손이 붙들리자 크게 당황한 듯 보이더니,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새빨개졌을지도.

그는 한참이나 안절부절못한 끝에야 겨우 대답을 내어놓았다.

“……당신이 지난번에 이 경매의 광고를 보셨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 반지에 흥미가 있어 하시는 듯해서…….”

“아.”

광고와 반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을, 소어는 티스베가 반지를 가지고 싶어 했던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반지는 정말 예뻤으니, 아마 이런 일이 아니었더라면 조금은 탐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소어가 그렇게 추측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당신께 심란할 일이 많으신 듯하여,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소어의 추측이 틀렸든 어쨌든 이렇게 말하는 상대 앞에서 “난 반지 따위는 관심 없어요.”라고 매정하게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솔직한 심정으로는 광고에 관심을 보여 놓고 해명도 하지 않아서 괜히 소어를 여기까지 끌고 오게 만든 과거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것이 없잖아 있지만.

티스베는 이성을 잘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소어. 아는 사람을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저도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었는데, 당신을 보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찾아온 거예요? 얼굴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

“아, 조금 전 티스베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확인차 와 보았더니.”

“……목소리 하나만 가지고 날 찾아온 거라고요?”

분명 티스베의 목소리가 이 넓은 홀에 전부 울려 퍼진 순간이 있기는 했다.

바로 경매에 참여한 순간.

경매의 진행은 간단하다. 각자 입장과 함께 건네받은 소리 증폭기를 잘 가지고 있다가, 경매에 참여하고 싶을 때 그걸 켜서 금액을 부르는 것이다.

‘마도서를 살 때 경쟁을 좀 붙긴 했지.’

그래서 몇 번 입을 열긴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자신이라는 걸 알아봤다고? 거기다가 증폭기를 써서 위치도 다소 불분명했을 텐데, 그걸 곧장 찾아오기까지 하다니.

“굉장히…… 감이 좋네요, 소어.”

“당신에게 한정된 겁니다. 전 당신이 어디 있든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으흠, 내가 아무 말도 안 해도요?”

“오감 중 하나만 닿는다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든, 소리로 듣든 그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였다.

“당신에게 닿을 때의 감각은 특별하니까.”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왜 그렇게 간질거렸는지.

아마도 속삭인다는 그 사실 자체가 조금 간질거리는 의미라서 그랬을 터다.

그렇다고 경매가 끝나지도 않았으니 속삭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경매는? 루넷 영식은?

티스베가 고개를 돌린 순간,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3억 2천만 골드! 낙찰되었습니다! 경매를 종료합니다!”

땡땡땡!

경매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다시 경매장 안이 서서히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극이 끝났을 때와 같은 효과로, 모든 행사가 종료되자 목소리를 키워 떠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 분명 이 때를 틈타 루넷 영식은 살해당할 것이다.

아직 불은 완전히 켜지기 전이었고,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러울 때야말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제일 좋을 때였으니.

다른 때였더라면 루넷 영식이 살해당할 때까지, 혹은 경매장을 나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소어가 있었다.

정략에 의해 약혼한 게 고작인 티스베를 위해서 이런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어 온 이 착한 청년이.

“티스베, 상품 수령은 저쪽에서 한다는군요.”

“……아, 같이 갈까요?”

“기꺼이.”

상냥하게 대답한 소어가 손을 내밀었다. 티스베는 그 손을 잡으며, 흘긋 시선을 돌려 마흘론과 눈빛을 교환했다.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는 눈짓 몇 번과 턱짓이면 충분했다.

‘마히, 표적을 마저 따라가. 살인은 막을 수 있지?’

‘그런 건 맡겨 두시라니까요.’

마흘론은 다소 장난스럽고 껄렁해 보여도, 일 하나만큼은 똑바로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티스베가 다른 이들을 두고 굳이 마흘론을 데려온 것이기도 했고.

‘마흘론에게 맡기면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티스베는 마지막으로 루넷 영식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소어를 따라갔다.

우선은 자신 때문에 이런 곳까지 오게 된 소어에게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일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 * *

티스베는 마도서를 수령해, 소어의 마차를 타고 귀가했다. 원래는 하녀를 재워 둔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귀가할 생각이었지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귀갓길에 동행해도 될까요? 이렇게나 잠깐 뵙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이렇게 말하며 눈가를 붉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매몰차게 “괜찮지 않아요. 혼자 돌아가세요.”라고 말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물론 하녀를 재워 둔 마차를 타고 셋이서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하녀를 재워 둔 이유부터 설명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녀는 하녀를 재워 둔 마차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소어의 마차를 타고 돌아왔다.

그와 헤어졌을 때는 벌써 야심한 시각이라, 달이 많이 기울어 있었다.

티스베는 마도서를 안고 터벅터벅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것도 안 했는데 피곤한 기분이야.’

루넷 영식을 죽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너무 날을 세웠더니, 오히려 금세 피로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어서 씻고 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층계를 오르려는데, 1층의 방에서 소란한 소리가 났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할아버지 칼릭스트 공작의 방에서.

“가주님, 이건 모두 칼릭스트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공녀는 존재만으로도 칼릭스트의 명예를 깎아 먹는 존재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에스텔 일레르에게 칼릭스트의 성을 주어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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