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소어와의 만남 이후로 티스베와 관련된 살인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티스베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잠잠함이, 폭풍의 종결이 아니라 본격적인 폭풍을 앞둔 고요에 불과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탓이다.
‘원작에서 유일하게 티스베의 살인 정황에 대해 나온 게 루넷 영식이었지.’
그것도 제법 세세하게 나온다. 아무래도 티스베가 스스로를 곤경으로 몰고 간 주요 사건이다 보니 그 진상을 밝히며 어느 정도 서술이 된 것이다.
날짜는 신전에서 진짜 성녀가 누군지 정정하는 공문을 내린 바로 그 다음날.
그리고, 위치는 어느 암시장의 경매장.
이렇게만 놓고 보면 그 날이 닥치기 직전까지는 정확히 어느 날짜와 어느 장소인지 다소 불분명한 부분이 있지만, 다행히도 티스베에게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
‘분명 루넷 영식이 죽은 건 저주받은 마리에트의 반지가 매대에 오른 경매장이었다고 했지.’
그리고 약 2주 전, 티스베는 신문에서 그 저주받은 반지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하나 발견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저주받은 반지라고 쓰여 있는 광고는 아니었다.
-이거 봐요, 소어. 이 광고 좀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이 말입니까?
-광고 사진은 반지인데, 적힌 건…… 아무리 봐도 고양이의 열망이에요.
고양이의 열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글이었다.
광고와는 전혀 연이 없어 보이는 글자들의 조합.
그 해답은 함께 있던 소어가 알려 주었다.
-이건…… 암호화된 내용이군요.
-풀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리 어려운 암호는 아니니까요.
그는 시종에게서 펜을 받아 오더니, ‘고양이의 열망’의 철자들을 나란히 적어 분해했다.
그리고는 다시 조합해 티스베의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처음과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어 있었다.
-……저주받은 반지?
-광고의 사진에 대한 설명 같습니다. 아마 상품이겠죠.
저주받은 반지, 그리고 굳이 암호화를 해서 그걸 광고로 올린 것까지.
전형적인 암시장의 광고였다.
그 정도만 있어도 유추는 충분했다.
암시장에서 경매에 오르는 저주받은 반지와, 때마침 에스텔의 능력이 드러난 지금.
그 경매가 작중에서 무슨 용도로 나오는지 모른 척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티스베는 그 자리에서 소어에게 마저 부탁해, 광고에 적힌 다른 문구들을 해독했다.
일자와 장소까지 아주 친절하게 적힌 광고였던 덕분에, 그 이상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살인 사건이 그렇게 일어나서 살인 혐의가 씌워지지만 않았더라면, 티스베가 그곳까지 굳이 갈 필요는 없었으리라.
‘물론 소어는 내가 암시장에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해독해 준 모양이지만.’
애초에 암시장에서 열리는 경매이기도 하고, 암호화된 내용으로 광고할 정도라면 초대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수준의 보안일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겉으로 보자면 티스베가 그런 쪽과 엮일 일은 없으니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티스베는 속으로, 작게 소어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소어.’
사실 경매장 티켓, 이미 구했어.
* * *
원작, <괴물꽃>은 소위 말하는 모험물이다.
모험물의 특징이라 하면, 주인공이 여러 미지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건 사고를 겪는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조력자를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괴물꽃>의 여주인공인 에스텔 역시 많은 조력자를 두고 있었는데, 개중에서도 작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게 있었다.
바로 카페로 위장한 정보 길드 조디악.
대륙 전 범위에 걸쳐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다른 길드에 끼치는 영향력 역시 막강한.
전 대륙에 5개 밖에 없다는 S랭크의 정보 길드.
티스베는 조디악의 실소유주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드의 숨은 주인이라고 해야 하나.
원작대로라면 조디악과 티스베 사이에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겠지만.
‘원작의 정보를 뻔히 알면서도 놔둘 필요는 없었으니까.’
티스베가 조디악을 손에 넣기로 결심한 건 불과 열 살 무렵이었다.
당시 성녀라는 직함은 직접적인 추앙의 대상보다는 정치적인 의미가 컸기 때문에, 티스베는 하루 건너 하루 밤 손님을 맞곤 했다.
그러니까, 암살자를 말이다.
다행히 공작가의 경비가 삼엄한 덕분에 직접적으로 티스베의 코앞까지 왔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겨우 열 살에 제가 살아온 햇수만큼이나 목에 칼이 들이밀어져 본 애늙은이 꼬마 티스베는 생각했다.
-도저히 이러고는 못 살겠다.
내가 원해서 신탁의 아이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죄 없는 아이한테 칼 들이미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게다가 정말로 자신이 신탁의 아이가 맞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이 고난은 내가 다 겪고, 나중에 꿀 빠는 건 에스텔이잖아!
물론 그것 역시 딱히 에스텔의 잘못은 아니니 에스텔에게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에스텔에게 돌아가야 할 조력자 몇 개 정도만 미리 빼다 쓰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유혹은 있었을 뿐.
그래서 티스베는 곧장 카페를 하나 인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카페에서 거두어들인 어느 거지 소년, 마흘론이 미래에 S랭크 정보 길드장으로 자라기 때문에.
그녀는 미리 선수를 쳐서 마흘론과 친분을 다져 놓기로 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너무 잘 다져 버려서 길드의 숨은 실세가 되어 버렸지만.’
덕분에 경매장의 티켓을 구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썩 나쁜 결과는 아니다.
티스베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지금 루넷 영식의 살해 현장이 될 경매장에 와 있었다.
벌써 경매가 시작한 지 좀 되었던 탓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러웠던 경매장은 막이 오른 뒤의 극장처럼 무대 위를 제외하면 몹시 조용한 상태였다.
단지 극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똑같은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써서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점 뿐.
암호화를 한 광고를 띄울 정도로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경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하네.’
티스베의 시선이 루넷 영식이 있는 쪽에 머물렀다. 그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는 이미 조디악을 통해 알아낸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살인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상태.
기껏 감시역인 하녀를 수면제까지 써 가며 재워두고 온 것이 무색할 정도다.
티스베가 두리번거리자, 그녀의의 옆에서 목을 덮는 짧은 머리를 꽁지로 묶고 있던 남자, 마흘론이 불쑥 고개를 들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음, 왠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서.”
“보통은 그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오늘은 왠지 아무 일도 없을 거 같고요.”
조디악의 길드장인 마흘론은 티스베에게 경매장의 티켓을 구해다 준 장본인인 만큼 오늘 그녀가 왜 암시장에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티스베가 무엇을 계획하는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그녀의 조력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도 표적 관찰은 슬슬 그만두고 물건 구입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안 돼.”
물론, 가끔 의견 충돌이 있긴 하지만.
티스베의 완강한 태도에, 마흘론이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왜 저만 안 된다는 겁니까. 아가씨도 아까 마도서에 홀리셨으면서.”
“그건.”
티스베의 말문이 막혔다. 마흘론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조금 전 경매의 매대에 마도서가 올라온 순간, 티스베는 잠깐 이성의 끈을 놓고 자신의 번호를 외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잖아. 국내에서 마도서를 구하는 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니까.”
“알고는 있습니다만, 저도 국내에서 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물건 몇 가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목적은 물건 구매가 아니잖아.”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직접적으로 루넷 영식을 주시하고 있는 마흘론이 눈을 돌리면 조금 곤란해진다.
“아까 한눈팔았으니 이제는 정말 눈을 떼서는 안 돼. 살인이 일어날 거라니까.”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사람도 많은 경매장 한복판에서 도저히 살인이 있을 것 같지 않다니까요. 아가씨가 말씀하시니 따르기는 합니다만, 저는 영 못 미덥습니다.”
마흘론의 말은 옳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일 때 경매장 한 가운데서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작의 티스베는 그렇게 한다.
굳이 인파가 많은 속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죽이면 자신에게 혐의가 오지 않을 거란 사실 때문에.
게다가 이곳은 어둡고 전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곧바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모두 마흘론에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티스베는 대충 마흘론의 입에 돈주머니를 물려 조용히 만들고는, 루넷 영식의 옆으로 보냈다.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곧장 저지하고 자신을 부르라는 지령과 함께.
‘정말로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마흘론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경매는 벌써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때문에 티스베의 긴장의 끈 역시 점점 팽팽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잠잠했던 것은 경매의 클라이막스, 마지막 경매품이 나올 때 죽이기 위함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대 위 사회자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자, 오늘의 마지막 상품입니다! 마리에트의 저주받은 반지!”
그리고 무대 위에 불빛이 비춰지며 사위가 밝아지는 아주 잠깐의 순간.
“……티스베?”
소어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