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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5화 (5/121)
  • 5화

    아무래도 소어 역시 이 신문사의 흥행 가도를 바라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원작에서 소어가 얼마나 성인군자처럼 구는지를 생각한다면 조금 놀라운 일이지만, 제 편을 들어 주겠다는데 싫지는 않다.

    ‘어차피 신문사는 원래 망할 곳이기도 했고.’

    정확히는, 티스베가 망하게 만들 예정이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건 사람들의 목숨조차 빼앗는 악녀인 티스베가 자신에 대한 불순한 추측을 적어서 온 나라에 퍼트린 신문사를 가만둘 리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역시 엑스트라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괴물꽃>에서는 신문사가 망했고, 그것이 티스베의 소행이라는 정도만 서술이 되는데.

    ‘빚더미에 앉아 있었을 줄이야.’

    직접 겪어 보니 이야기가 생각보다 자세했다.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면 원작에서 티스베가 망하게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았을 테니까.

    다만, 티스베가 아니어도 원래 망할 곳이었다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이다.

    덕분에 티스베의 얼굴 역시 소어의 것 못지않게 상쾌해졌다. 안색이 핀 티스베를 본 소어가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그 소식이 꽤 기쁘셨던 모양입니다.”

    “물론이죠. 아주 좋아요. 완전히 패가망신하면 더 좋고요.”

    “티스베가 바라시는 대로 될 겁니다.”

    단순히 위로차 하는 말이겠지만, 소어의 목소리는 어쩐지 진실되어 보였다. 물론 티스베는 소어의 그런 진실됨을 좋아했다.

    이 세상은 다시 말하지만 티스베에게 너무 가혹했으므로. 티스베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탓이다.

    ‘성녀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기 전에도 앞에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날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지.’

    정말로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성녀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매도할 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거기엔 좀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칼릭스트, 혹은 티스베에게 개인적인 열등감이 있다거나 시기하는 경우.

    오페라 극장에서 티스베를 공공연히 모욕하며 떠들다 소리도 없이 죽어 버린 마네트 후작 역시 그쪽에 속했다.

    ‘마네트 후작은 할아버지한테 된통 당한 적이 있으니까.’

    조세법 개정을 두고 마네트 후작과 티스베의 할아버지, 칼릭스트 공작이 대치한 적이 있다. 당시 황제는 칼릭스트 공작의 편을 들어주었고, 이 때문에 마네트 후작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마네트 후작은, 황제가 칼릭스트 공작의 편을 든 것이 바로 티스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칼릭스트는 성녀를 데리고 있으니 칼릭스트에게 알랑대려 그런 것이라고.

    그만큼, 신탁의 주인공은 그 존재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가 컸다.

    덕분에 지금 티스베가 필요 이상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도 있고.

    ‘어쨌든 내가 세이즈로 떠나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신문사도 알아서 망해 준다고 하니.

    만족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티스베가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범인만 잡으면 되겠네요.”

    그리고, 소어의 표정이 다시 미미하게 굳어 들었다. 물론 티스베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태양이 잠깐 구름에 가려지는 것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차게 식어 버린 찻잔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쥔 소어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정말 범인을 찾을 생각이신가 보군요.”

    “내가 언제 빈말한 적 있던가요?”

    조금 전처럼 눈썹 끝이 내려간 채로, 소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순종적인 모습에 티스베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걱정이 되는 건 알아요. 하지만 누명은 벗어야죠.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거물을 죽이진 않았지만, 곧 죽이게 될 수도 있잖아요.”

    사실, 바로 저게 문제였다.

    거물을 죽이게 되는 것.

    ‘지금까지의 순서대로라면 이 다음 타자는 분명히 문제가 된다.’

    티스베에게 시비를 걸었던 순서대로 죽고 있으니 마네트 후작 그 다음은 분명 루넷 변경백의 아들일 것이다.

    루넷 변경백의 아들, 그러니까 루넷 영식은 딜루아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티스베를 만나 신나게 입을 털었다.

    -꼴이 그렇게 됐는데 살바토르 공작의 약혼녀라고 기세등등하기는. 하긴, 길거리 작부들이 고개는 늘 꼿꼿하기 마련이지?

    마네트 후작과 달리 그가 시비를 턴 포인트는 바로 ‘공작의 약혼녀’라는 부분이었는데, 그 이유는 루넷 영식이 소어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한테 한 번 차이기도 했고.’

    루넷 영식은 소어에게 품은 열등감을 티스베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두뇌, 검술, 명성, 그 무엇으로도 소어를 이길 수 없으니 티스베를 유혹해 그의 것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이 무슨 구시대적이고 악역다운 발상인지. 티스베는 악역인 자신보다 훨씬 악역다운 루넷 영식-이름조차 외우고 싶지 않았다-에게 그에게 꼭 어울리는 답례를 해 주었다.

    루넷 영식과 비밀리에 교제 중인 영애가 있는 티파티에서, 고민을 얘기하는 척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사실 저도 요즘 고민이 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제게는 약혼자가 있지 않나요. 그런데 지나치게 구애해 오는 분이 계셔서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답니다. 거절해도 자꾸만 마음을 고백해 오셔서…….

    -세상에, 공녀께 약혼자가 있다는 걸 모를 분이 없을 텐데. 누가 그런 무례한 짓을 하는 거죠?

    -여러분께 이걸 말씀드려도 될지 조심스럽네요. 그분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요.

    -하지만 이건 자칫하면 공녀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모두에게 알리는 건 조심스럽더라도 저희는 비밀을 지킬 테니 믿고 말씀해 보셔요. 대체 어떤 무뢰한인가요?

    -다들 정말 상냥하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께만 말씀드릴게요.

    그 말 뒤에 루넷 영식을 주저하듯이 부르는 것이 얼마나 짜릿했던지.

    그날 이후로 루넷 영식이 티스베에게 추근거림을 멈춘 것은 물론, 얼굴에 푸른 멍을 하나 달고 다녔다는 것은 그리 비밀도 아닌 이야기였다.

    그러니 루넷 영식이 티스베를 싫어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루넷 영식이 아니라, 루넷 영식의 아버지, 루넷 백작에게 있다.

    ‘루넷 영식의 죽음으로 루넷 백작이 나한테서 등을 돌리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니까.’

    루넷 백작은 분명 본인의 아들을 한심하게 여기기는 했으나, 하나뿐인 자식의 죽음마저 외면할 정도로 매몰찬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는 루넷 영식의 죽음이 티스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피눈물을 흘리며 티스베에게서 등을 돌린다.

    만일 그가 평범한 백작이었더라면 별 타격은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국경에서 언제나 마물과 싸우고 있는 변경백 중에서도 그 수장급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가진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이는 칼릭스트에서 티스베를 내치고 그녀가 죽음에 이르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루넷 영식이 죽는다면.

    ‘진위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루넷 백작은 나를 등지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어져, 진상을 밝히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의 범인이 노리는 것이 그것일수도 있고.

    티스베는 검지로 팔걸이를 일정하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외통수에 몰릴 거예요. 그렇게 둘 수는 없죠.”

    그리고 소어는 그 말에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까지의 죽음들이 당신을 기쁘게 만들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쁘긴 해요. 속이 꽤 시원하거든요.”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한테 그 화살이 돌아온다는 게 문제죠. 다들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저도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당연히 당신과는 무관하게 여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매일 죽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매일. 매일이 문제였군요.”

    “그래요. 매일 죽는 건 너무 수상쩍잖아요. 기왕 죽을 거라면, 나랑 관련이 없어 보이게 죽어 줬으면 좋겠어요.”

    소어는 티스베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럼 그들의 죽음 자체는 당신을 기쁘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참고하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에 참고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어는 기뻐 보였다.

    모처럼 기뻐 보이는 소어에게 차마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어서, 티스베는 의문을 대충 넘겼다.

    소어가 기쁘면 됐지.

    소어가 그 말 이후에 자신 또한 범인을 잡는 걸 돕겠다고 했으니, 아마 돕는 것에 참고하겠다는 뜻이었으리라.

    그 속 편한 생각에는, 당연하게도, 소어가 설마 이 모든 사건의 범인일 거라는 의심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채였다.

    그날의 그 속 편한 생각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될 거라는 예상 역시.

    당시의 티스베는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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