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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3화 (3/121)

3화

그러나 안타깝게도, 티스베는 소어의 표정 변화를 볼 수 없었다. 티스베가 말을 꺼내기 전에 소어가 신문을 집어 들어 둘 사이의 시선을 차단한 탓이었다.

그래서 티스베는 아무것도 모른 채, 티스푼을 들어 공연히 찻잔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기사 보면 알겠지만, 조금 생뚱맞은 사고라고 하더라고요. 마차의 바퀴가 헐거워져서 발생한 사고인데…….”

“마네트 후작의 마차는 일주일 전에 제작된 것이라, 그럴 일이 없다고 쓰여 있군요.”

“맞아요. 그래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행일 거라는 쪽으로 의견이 많이 몰린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 범인을 당신으로 생각한다는 겁니까?”

대답이 돌아온 목소리가 많이 낮았다. 신문이 소리까지 가려 줄 수는 없었기에, 이번에는 티스베도 소어가 굉장히 언짢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아주 당연하다는 듯 티스베의 결백을 믿는 목소리였다. 그리 놀랍지는 않은 일이다.

‘소어는 선한 사람이니까.’

소어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단역이지만, 티스베는 그가 책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조금은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하고, 사람의 선한 면을 믿는 남자.

그래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티스베에게 모두가 등을 돌릴 때에도 그럴 리 없다며 그녀의 곁을 꿋꿋이 지키다, 결국 티스베에게 이용당해 죽는 미련한 남자.

‘분명 독살 시도였지, 원작에서 티스베가 소어에게 시킨 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독살을 사주한 것은 아니었다. 티스베는 소어를 속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뒤에 있는 건국제.

티스베가 사교계에 데뷔한 12살 이후, 건국제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는 언제나 그녀가 담당해 왔다.

당연한 일이다. 티스베는 제국의 모두가 떠받드는 신탁의 아이, 성녀였으니까.

성화는 티스베가 성녀로 담당해 온 거의 유일한 공적인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작년까지의 일이다. 진짜 성녀가 티스베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진 이후, 성화는 에스텔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티스베가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약을 준비해, 소어에게 부탁했다.

-소어, 이걸 에스텔의 찻잔에 몰래 타 줘요. 나는 에스텔과 독대하는 것이 금지됐지만, 당신은 아니잖아요.

-……이게 뭡니까? 설마 독은,

-그런 거 아니에요. 3일 정도 몸살을 일으키는 약일뿐이에요……. 정말이에요. 못 믿겠다면 당신이 먹어 봐도 돼요.

-티스베. 그래도 이건…….

-난 도무지 그 애가 나 대신 건국제에서 성화대에 서는 꼴을 볼 수가 없어요. 제발, 소어. 한 번만 도와줘요. 당신이 아니면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티스베는 눈물로 애원했다. 자신은 가문에서도 지위를 박탈당했고, 신전에서도 쫓겨났다고. 당신이 아니라면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당신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자결할 거예요.

마음 약한 소어가 티스베의 눈물어린 협박을 차마 외면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티스베의 말만 믿고 건네받은 약을 에스텔에게 먹이는 짓 또한 그의 윤리에는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소어는 직접 그 약을 먹어 봤다.

놀랍게도 티스베의 말은 옳았다. 그는 딱 3일만 몸살로 앓아눕고는,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므로.

그래서 소어는 티스베가 크게 악한 마음을 품지 않았을 거라 판단하고 약을 에스텔의 찻잔에 탔다.

만약 그 약이 홍차의 성분과 만나면 독약이 된다는 것을 소어가 알았더라면, 소어는 목숨을 부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만약이다.

에스텔은 독을 먹고 쓰러지고, 소어는 투옥된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소어가 자신이 티스베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티스베를 고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어가 아니라고 해 봐야 범인이 티스베일 게 뻔해서 조사를 피할 순 없었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되면 티스베 얘기를 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할 수도 있을 텐데. 소어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티스베에게 혐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며 옹호하기까지.

‘책을 읽을 때는 뭐 저런 멍청한 애가 있나 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멍청은 무슨. 소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하고 순수하고, 심지어는 책임감도 넘치는 남자였다.

그러니 티스베도 태연히 자신을 욕하는 기사를 넘겨줄 수 있었던 거고.

소어는 티스베의 예상대로 언짢은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드물게 그 고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모두 최근 당신과 부딪혔으니 당신이 범인일 거라니, 이게 무슨 무책임한 기사입니까.”

“겉으로 보자면 공교로워 보이긴 하잖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사실 파악도 하지 않고 이런 기사를 내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피해자들과 부딪힌 건 사실이라고 해도, 먼저 공격한 건 그쪽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티스베는 지난 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티스베는 소어와 함께 오페라 극장에 갔었다. 원래 가문에서 시킨 건 주말에 한 번 만나 차를 마시라는 거지만, 말수가 지독히도 적은 남자를 앞에 두고 몇 시간이나 함께 있으라는 건 티스베에게도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소어와의 약속을 다른 곳에서 잡곤 했다.

물론 그때도 신문이 한몫했다. 신문을 뒤적이던 와중 흥미로운 극 홍보가 있었던 것이다.

-소어, 이거 봐요. <델로네 부인의 은밀한 밤>이 극으로 상영된대요!

-보고 싶은 겁니까?

-그럼요!

불륜 막장에, 19금으로 유명해 귀부인들이라면 모름지기 한 권쯤 은밀히 갖고 있을 만한 그 소설이 극으로 나온다니!

-마침 날짜도 다음 주 일요일이네요. 소어, 같이 보러 갈래요?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왜 안 되는데요? 아, 혹시 이런 건 별로 안 좋아하나요?

-아, 아닙니다. 티스베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좋습니다.

티스베의 물음에 소어는 그 상앗빛 뺨을 살짝 물들이며 기쁜 듯이 대답했다.

아마 소어도 분명 <델로네 부인의 은밀한 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극이 궁금했던 것이리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약혼녀와 마주 앉아 무료하게 차를 마시는 것보단 그 편이 소어에게도 나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갔는데, 마네트 후작에게 시비가 걸릴 줄이야.

-하하. 신탁의 아이니, 성녀니 말만 많더니. 결국 저게 사기꾼이 아니면 뭔가? 와중에 약혼자를 끼고 오페라를 보러 오다니, 비위도 좋지.

-후, 후작.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공녀가 듣겠습니다.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사냥터에서 출몰한 마물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제 입으로 자신은 성녀가 아니라고 했다지? 뻔뻔하고 한심하기 그지없군. 나 같으면 당분간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과연 엑스트라다운 말버릇이었다.

마네트 후작은 분명 티스베가 상처받길 바라며 그렇게 입을 나불댔겠지만, 안타깝게도 티스베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입을 놀리니까 단명하는 거지.’

그 정도 생각 뿐.

아, 그리고 같이 나온 소어에게 괜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것 정도?

그래서 티스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소어의 팔을 서둘러 당겼다.

-소어, 미안해요. 나 때문에 괜히 저런 소리를 듣게 해서.

-……아닙니다. 저보다는 티스베가.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난 괜찮아요. 지난번 살롱에서도 비슷한 일 있었잖아요? 사람도 많으니까 조용히 넘어가죠.

티스베가 아무렇지 않게 웃자 소어는 눈썹 끝을 내리며 속이 상했다는 것을 드러냈지만, 티스베의 말에 반발하진 않았다.

나름대로 다행인 일이었다. 소어가 나섰더라면 분명 상황은 악화되었을 테고, 소문은 더 거세졌을 테니.

무엇보다 티스베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기도 했고.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마네트 후작의 모욕보다 극장에서 무슨 음료를 주문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살롱에서 모욕을 줬던 귀부인도, 마네트 후작도 모두 죽었다.

그러니 더 오래 살게 된 건 티스베 쪽임이 분명해졌지만, 그녀는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졸지에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해 혐의를 떠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소어랑 얘기하니까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걸.’

에스텔이 진짜 성녀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 티스베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다들 겉으로 인사 한두 마디는 해도, 딱 그 뿐.

제게 돌아올 득실을 따지는 사교계다운 냉정한 논리란 걸 알면서도 여러모로 씁쓸했는데.

소어는 기사를 보자마자 티스베의 결백을 믿어 주었다. 고맙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대로라면 소어의 고운 미간에 잡힌 주름이 도저히 펴질 것 같지 않으니, 티스베는 대화를 환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소어. 난 결백하니까, 분명 진상은 밝혀지겠죠. 표정 풀어요.”

“알지만, ……당신이 받는 오욕이 신경 쓰입니다.”

윽, 저렇게 애처로운 눈으로 보는 건 역시 반칙이다. 티스베는 결국 고민 끝에 손을 뻗어 소어의 뺨을 감쌌다.

소어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듯 보이더니, 티스베의 손에 낯을 기댔다. 옷깃 새로 드러난 목덜미가 붉었다.

“티스베는 늘 괜찮다는 말을 하지만, 그러다 정말로 괜찮지 않은 상황에 놓일까 걱정입니다.”

“알아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걸요?”

“진정이십니까?”

“물론이죠. 난 이 행각을 벌인 범인을 잡을 생각이거든요.”

티스베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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