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뭔가 이상하다.
그것은 여기가 책 속 세상이며, 자신은 여주인공을 시기하며 갖은 악행을 저지르다 죽게 될 악녀라는 것을 알게 된 티스베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 결론의 근거는, 다름 아닌 티스베의 손에 들린 신문이다.
티스베의 시선이 손에 들린 신문으로 향했다. 귀족들의 가십을 모아 만든 일간 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 이런 헤드라인으로 적혀 있었다.
[마네트 후작, 마차 사고로 즉사…… 사고인가, 타살인가?]
벌써 이번 주로 해서 일곱 번째 사망 소식이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근 일주일 내내 사망 소식이 하나씩 들려왔다는 뜻도 된다.
‘어제는 체르닐 경관이었나.’
월요일에는 실족 사고, 화요일에는 낙마, 수요일에는 멀쩡한 유람선이 침몰하고, 목요일에는 티파티에서 음독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까지도 전부, 성실한 사망 소식들.
피해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티스베를 조롱했다는 점.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티스베의 손에 죽게 된다는 사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상하다.
이번에는 내가 안 했는데.
* * *
로맨스 판타지 소설, <괴물을 길들인 꽃>.
그 어떤 생명체와도 공존할 수 없는 돌연변이 생물체, 통칭 마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이 제국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사랑도 쟁취한다는 내용의 책.
물론 여느 소설이 그러하듯, 여기에도 장애물과 난관이 있다. 여주인공이 가진 힘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며 제국을 속인 악녀가, 여주인공의 등장으로 모든 걸 잃고 그녀에게 앙심을 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여느 소설이 그러하듯, 악녀는 죽는다. 여주인공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오려고 시도하다가 모두 실패하자, 결국 여주인공을 죽이려 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탓이다.
결과는 당연하지만 여주인공의 승리.
악녀는 처형당하고, 여주인공은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여느 소설이 그러하듯.
그리고 그 악녀의 이름은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책 속의 악녀로 환생했다는 거지.’
물론 티스베가 처음부터 본인이 환생한 곳이 책 속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환생한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던 게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귀가하던 중에 차에 치이고, 눈을 떠 보니 병원이 아니라 요람이었다.
다행히 갓 태어난 수준은 아니었던지 눈도 제대로 보이고 소리도 제대로 들렸지만, 그걸 가지고 ‘아, 내가 환생했구나’하고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하물며 환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조차 이럴진대, 책 속이라는 건 또 어떻게 바로 알겠는가.
살면서 읽은 책이 몇 갠데.
티스베라는 이름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티스베는 자신이 아이로 환생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제법 태평했다. 어차피 요람에 누운 아이에게 주어지는 과제란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기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운 방이 아이의 시야라는 걸 감안해도 굉장히 으리으리했던 것이, 꽤 돈 많은 집에 태어났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태평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머잖아 티스베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 아이가 티스베인가?”
“예, 각하.”
“제 어미를 많이 닮았군. 제 아비를 닮았으면 좋으련만.”
“생전에는 도련님을 영 탐탁지 않아 하시더니.”
“그랬지. 그것도 아들이라고……. 손녀 하나 남겨 두니 생각이 자꾸 나는군. 못난 것.”
티스베를 돌보는 하녀들은 많은데, 그들의 주인이자 티스베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꽤 노회한 듯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
대화를 들어보니 티스베의 부모님은 티스베를 낳고 머잖아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는 것 같았다.
부잣집에 태어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부모님을 여의다니.
확실히 충격적이었지만, 티스베가 느낀 이상함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도련님 내외께서 신탁의 아이를 남겨 두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바로 이 부분.
“아가씨께서 제국을 구하고 모두의 영광이 되기 위해 태어나셨으니, 칼릭스트의 이름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도련님 내외께서도 분명 기뻐하시겠지요.”
신탁의 아이라는 이 거창한 호칭이 요람에 드러누운 티스베의 옆구리를 자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티스베는 ‘비가 오려나…….’하고 생각했지만, 그리 머잖아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이 지금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를.
* * *
‘분명 처음 알았을 때는 충격이었지.’
하고, 티스베는 턱을 괸 채 생각했다.
티스베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이름 때문도, 신탁의 아이라는 거창한 호칭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괴물을 길들인 꽃>, 줄여서 <괴물꽃>의 첫 시작이 되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올해 칼릭스트의 숨을 이어받은 여자아이가 제국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것이다.]
라는, 여느 판타지 소설다운 예언 한 문장.
근 100년 만에 내려온 신탁이라는 진부한 설정도 가지고 있는 이 예언은, 당연하게도 모두의 기대 속에 한 여자아이를 내몰았다.
바로 칼릭스트 공작가의 유일 공녀,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를.
누가 보기에도 예언은 티스베를 가리키는 것 같았고, 때문에 티스베는 태어나면서부터 제국의 구원자, 신탁의 아이, 혹은 성녀로 통칭되며 모두의 기대를 떠안아야 했다.
그것은 책 속에서 겨우 한 문장으로 서술되지만, 티스베가 직접 겪어 보니 그것은 상상 이상의 미친 짓이었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건 학대나 다름없다고.’
신탁의 아이라는 이름은 그저 족쇄일 뿐이다.
제국을 구할 신탁의 아이, 칼릭스트의 성녀는 평범해서는 안 되었으므로.
티스베는 천재를 연기해야 했다.
무엇이든 특출 나다는 평가를 위해 갖은 교육을 다 받았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검을 들었고, 남들은 모국어를 배울 시기에 그녀는 대륙 공용어와 외국의 귀족 언어를 두 개씩은 더 배웠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티스베에게조차 살인적인 수업 강도에 숨이 턱턱 막혀도 어쩔 수 없었다.
-너는 훗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티스베.
그녀는 그런 운명을 부여받았다고, 모두가 옆에서 말을 해 왔으니까.
그러니 티스베에게는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지나친 투정이었다. 신탁의 주인공으로 태어나 남들의 모든 기대를 업었으니,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하나뿐인 가족인 할아버지, 칼릭스트 공작은 엄격했고 사용인들은 모두 티스베를 선망의 대상으로 취급해 기댈 구석조차 만들 수 없었다.
상냥한 마음씨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알려진 칼릭스트의 성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을까?
그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신탁의 해석이, 사실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칼릭스트의 피를 이어받은 여자아이는 티스베 말고도 또 있었다는 것을.
분명 신탁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제국을 위협으로부터 구할 이는 칼릭스트의 피를 타고났다.
단지, 그 피가 조금 옅을 뿐.
진짜 성녀인 여주인공, 에스텔 일레르는 칼릭스트의 먼 방계 가문의 딸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만약 전생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 사실을 알고 미쳐 버렸을지도.’
내가 세상을 구해야 하니 너는 완벽해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구석으로 몰아 놓고, 정작 진짜 신탁의 아이는 따로 있었다니.
심지어, 책 속에서는 진짜 신탁의 아이가 나타나자 티스베는 제국을 속인 거짓말쟁이 악녀로 매도당하기까지 했다.
‘가문에서도 버려지고, 어딜 가나 손가락질당하고.’
성녀라고 추앙했던 이들이, 그녀의 완벽을 바랐던 이들이 가장 앞장서서 티스베에게 돌을 던졌다.
그러니 티스베가 여주인공 에스텔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한평생 노력해 왔던 그 자리를 그저 운으로, 신의 총애를 조금 가졌다는 이유로 냉큼 가져가 자신을 몰락시켰으니.
하지만, 그건 책 속의 티스베고.
‘나는 아니지.’
다행히도 티스베는 이런 미래를 전부 알고 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제 앞에 신탁의 내용이 들이밀어졌을 때, 티스베는 빠른 현실 자각과 함께 생각했다.
어차피 죽는 건 악녀라는 사실 때문이니까, 착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고.
인생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티스베 루이사 칼릭스트는 몹시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평균 이상이었다. 이런 삶을 살게 됐는데 괜히 성녀 타이틀 탐내다가 죽을 필요가 있나.
‘생각보다 교육 강도가 너무 높아서 몇 번 때려치울 뻔하긴 했지만.’
이만하면 성공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원작에서 자신의 손에 죽는 엑스트라들이, 갑자기 줄줄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어느 일요일 오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