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실험은 이틀 간 이어졌다. 코델리아와 나는 몇 번 만에 사람을 조종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조종이라는 게 생각처럼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조종은 최면과 같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의 명령, 궁극적인 목표를 머릿속에 심어두는 정도였다.
마치 오래전 우리를 덮쳤던 마물들이 마차를 부수거나, 감시하거나, 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처럼.
또한 조종당한 이는 앞선 명령을 수행하기 전까진 어떤 조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마디로 내가 먼저 유니스에게 ‘저 나무 끝까지 걸어갔다 오라.’고 조종한다면, 돌아오기 전까진 코델리아가 어떤 명령을 걸어도 듣지 않았다.
모종의 이유로 앞선 명령을 행할 수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카렌을 맨손으로 쓰러트려라.’와 같이 유니스가 물리적으로 행할 수 없는 명령을 하게 된다면 그녀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카렌에게 달려들었다.
내 쪽에서 조종을 멈추기 전까진 내내 그랬다. 코델리아가 그만하라고 명령을 해도 결코 듣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신전의 조종을 막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조금 더 힘을 빼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양이 많아서 쉽게 지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러네요.”
코델리아와 내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한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비슷한 과거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다른 이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훨씬 낫네요. 몸에 무리가 덜 가는 느낌이에요.”
“그렇죠? 신전에서 배운 게 고작 이런 거네요.”
가령 이런 식이었다. 십수 년간 쉬지 않고 신력을 사용했던 경험으로, 코델리아는 나에게 효율적인 신력 사용법을 알려줬다.
우리는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단순히 비슷한 성향을 지닌 것뿐 아니라 우리는 성격 자체가 꽤나 잘 맞았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님, 코델리아 아가씨!”
우리 사이를 가르듯 유니스가 손을 붕붕 흔들며 뛰어왔다.
그녀는 방금 내 명령을 따라 연무장 끝으로 가 카렌과 악수를 나누고 온 참이었다.
“보셨어요? 제가 카렌 경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을요! 훈련 중이셨는데 막무가내로 손을 잡았어요!”
“다치진 않았어?”
“그럼요!”
유니스가 팔랑거리며 손바닥을 흔들어댔다.
“그럼 이걸로 실험은 끝난 건가요?”
“그래.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방금 전 마지막 확신을 얻기 위해 한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는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작전을 수행할 차례였다.
실험이 끝났다는 소리에 유니스가 풀 죽은 얼굴을 했다. 그녀는 꼭 자신이 딴사람이 된 듯한 감각이 들어 재미있다며, 조종당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도 조종당할 때 기억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조금 무서울 것 같으니까요!”
“그러게.”
조종당했던 마물은 하얀 마석이 제거되자 곧바로 기절하듯 쓰러졌었다. 때문에 유니스도 그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아마 마석이 아닌 내 신력을 직접 주입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내 신력은 마석과 달리 제거나 회수되지 않고 유니스의 몸 안에 계속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요, 왠지 몸도 더 건강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 역시 신력의 힘이리라. 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유니스를 빤히 바라봤다.
“유니스……. 정말 괜찮겠어?”
“또 그 소리세요, 마님? 정말로 괜찮아요! 안전한 것도 다 확인했잖아요.”
“하지만 신전이 무슨 수를 쓸지는 아무도 모르잖니.”
“재미있는 모험엔 위기가 따르는 법이죠. 신관님이 얼마나 부러워할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조종당하는 기분에 대해 상세히 알려달라고 하실 게 분명해요.”
싱글벙글 웃는 유니스는 정말로 이 일에 한 치의 걱정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그녀는 평생을 대공 저가 있는 제도 끄트머리 마을에 살았으니.
제도에 오는 것만으로도 눈을 반짝거리며 빛냈던 아이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에 설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마 그 기저에는 자신의 인생에 절대로 불행한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겠지.
“아, 말이 나온 김에 신관님을 뵙고 와야겠어요! 조금 이따가 드실 식사 준비도 하구요!”
“뭐? 하지만―”
어지간히 신난 모양인지, 유니스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튀어 나갔다.
원래 저런 성격이었는데 숨기고 있었던 건지, 흥분한 탓인지, 그게 아니면 신력 때문인지……. 오늘의 유니스는 꼭 한 마리의 조랑말을 보는 것 같았다.
“에블린.”
황당한 눈으로 유니스가 떠난 자리를 보고 있는데, 코델리아가 나를 불렀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돌아보자, 그녀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쉽게 깨달았다.
우리와 달리 유니스는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고, 때문에 불행이 얼마나 순식간에 인생을 지배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라고.
그 불행을 미리 겪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유니스가 내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뿐이라고.
맑은 코델리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코델리아.”
“네?”
“괜찮다면 당신도 함께 하는 게 어때요?”
“함께라니, 뭘…….”
“신전을 무너뜨리는 거요.”
코델리아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그 얼굴엔 당황과 두려움, 긴장,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당신도 신력을 쓸 수 있잖아요. 만약의 경우에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내 신력은… 보잘것없는걸요. 알고 있잖아요. 에블린이 나를 구해준 뒤로….”
분명 다시 깨어난 그녀의 신력은 원래의 양에 비하면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신력을 다루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잖아요.”
“…….”
코델리아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 않아요?”
움찔, 그녀의 몸이 떨렸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에 제안하는 일은 아니었다.
직접 봐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그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거대해 보였던 그들이 그저 개개인의 인간일 뿐이며, 저보다 약한 인간을 괴롭히는 야비하고 졸렬한 족속들이라는 것을.
그녀나 나나 두 눈으로 똑똑히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과거를 덮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나는 이곳을 떠나 엘리운으로, 그녀는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대공비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
“그래서…… 코델리아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데반 란티모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에블린을 바라봤다. 코델리아를 끌고 다이닝룸으로 데려온 것부터 영 이상하다 했더니, 작전을 함께 하겠다고?
“그러니까, 뭐랄까. 혹시나 제가 신력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코델리아가 도와줄 수도 있을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는 신전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아요.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데반의 눈빛을 오해한 듯 에블린이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데반이 걱정하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는 코델리아가 작전에 개입하든 안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신력 실험을 부탁했을 때부터 이미 그녀와 한배를 탄 셈이 아니던가.
평생을 학대당하며 살아온 코델리아가 저희들을 배신하고 신전에 붙을 리도 없었고, 그녀 하나 때문에 작전이 어그러질 리도 없었다.
데반이 의아한 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델리아가 불편한 티를 팍팍 내던 에블린이 돌변했다는 점이었다.
“실험을 한다고 가더니…… 친목 도모를 하고 온 건가?”
“그건…… 겸사겸사요. 걱정 마세요. 실험은 무사히 끝났으니까.”
“이미 유니스에게서 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고요.”
덥석 끼어든 펠로스의 말에 에블린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맞아요. 저번에 우리가 생각한 게 맞았어요, 펠로스. 이젠 제대로 된 작전을 짜기만 하면 돼요.”
에블린은 금세 기운을 회복하고 펠로스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데반은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졌다.
왜지? 왜 심기가 불편하지?
웃기는 일이었다. 그녀가 코델리아와 잘 지내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에게는 이렇다 할 또래 친구 하나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사귄다면 좋은 일일 테다.
그래, 친구가 생기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데반의 시선이 이번에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 신나게 웃어대는 펠로스에게 날아가 꽂혔다.
……그런데 펠로스는 왜 저렇게 친한 척이지? 둘이 저렇게까지 친했었나?
데반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실험의 결과에 대해 상세히 말하고 있었다.
실험 결과를 말하는데 왜 웃는 걸까. 웃긴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데반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제 안에 들끓는 것을 느꼈다.
에블린의 사르르 접힌 눈과 올라간 입꼬리를 바라보자, 그 거북한 감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고 보니…… 에블린이 펠로스의 얼굴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지 않던가?
데반은 아주 오래전, 데뷔탕트 파트너를 정하며 에블린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주 보잘것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에 가까웠던 그 말을.
‘제 취향은 카렌 경보단 펠로스 쪽이거든요.’
그 말이 꼭 방금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울렸다.
데반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끌리는 드르륵 소리가 크게 울렸다.
“데반?”
에블린의 동그란 눈동자가 마침내 이쪽을 향했다.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 것도 잠시, 데반은 다시금 기분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을 느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네?”
“지금…….”
스스로의 충동을 억제해야 된다는 것도 채 깨닫지 못하고, 데반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순식간에 테이블 건너편으로 도착해, 펠로스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방금까지 에블린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그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