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디에고가 황궁 감옥에서 사라졌습니다. 아, 물론 아들 쪽이요.”
……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디에고가 사라졌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라, 사라지다뇨?”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됐다고?
펠로스는 예의 그 심드렁한 태도로 말했다.
“자세히 좀 말해 봐요. 사라졌다는 건 그러니까…… 설마…….”
“걱정 마십시오. 죽은 건 아닙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걱정을 눈치챈 듯 펠로스가 빠르게 덧붙였다.
“그런 흔적은 없었습니다. 끌려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떠난 것 같아요.”
“떠나다니, 감옥이라는 곳이 스스로 떠나려고 하면 떠날 수 있는 곳인가요?”
황당함에 묻자 펠로스가 싱긋 웃었다.
“그렇죠. 탈출했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군요.”
“탈출이라니…….”
“혼자 저지른 일 같지는 않습니다.”
“네? 그럼요? 설마 누군가가 킬리언을 도와줬다는 말인가요?”
“예. 애초에 황궁 감옥은 외부의 도움 없이 탈출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누군데요? 킬리언을 도와준 게 누구죠?”
펠로스가 쿠키를 하나 집어 나에게 건넸다. 됐다는 뜻으로 고개를 젓자, 어깨를 으쓱하며 제 입에 넣었다.
“당연히 제가 아실 거라고 확신하시는 말투네요.”
“알진 못해도 의심 가는 사람은 있을 거 아니에요. 천재라면서요.”
“숨기고 싶었지만, 차마 부정할 수가 없군요.”
“누구죠? 누가 킬리언을 감옥에서 빼돌린 거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좀 앉으시죠, 목이 아픕니다.”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던 펠로스가 말했다.
“그리고 차 한 잔 할 수 없겠습니까? 쿠키가 참 퍽퍽하군요.”
“……차를 대접받고 싶으셨으면 창문이 아니라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오셨어야죠.”
“아참, 그렇죠.”
펠로스가 제 옷을 한 번 훑어봤다. 창문으로 몰래 들어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침대 근처에 있는 물병을 가져와 펠로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거라도 드세요. 차는 아니고 물이지만.”
“감사합니다.”
펠로스가 물병에 그대로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며칠이나 물을 못 마신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좀 살겠군요.”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죠.”
“아, 그래요. 그럼 먼저, 레이디는 당신의 오라비가 아비를 어떻게 죽였는지 알고 있습니까?”
살벌한 이야기를 하면서, 배려 하나 없는 평온한 말투로 펠로스가 물었다.
“……어떻게 죽였다뇨?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요.”
꿈속에 나왔던 디에고 백작의 끔찍한 모습이 떠올라 몸을 잘게 떨었다.
“아,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제 말은……. 음, 그러니까 디에고 백작을 죽인 이후, 무슨 일을 한지 아시냐고 묻는 겁니다.”
“죽인 이후요?”
죽인 이후엔 내 결혼식에 온 게 아니던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펠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을 죽인 이후, 작은 디에고…… 그러니까 킬리언은 저택에 불을 질렀습니다.”
“……네?”
불을 질러? 커다랗던 백작가가 떠오르자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 큰 곳에 불을 질렀다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아, 다행히 사용인들은 모두 대피한 뒤였습니다. 불을 지른 장본인이 미리 예고했거든요. 다행히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나 봅니다.”
“…….”
“사람을 죽일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불을 지른 걸까요? 더군다나 불길은 저택 전체를 휘감지도 못하고 중간에 소화됐습니다.”
“……백작의 시체를 태우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럴 듯한 답변이었습니다만, 그것도 아닙니다. 백작의 시체는 그의 개인 집무실 안에, 그러니까 저택의 3층에 그대로 보존돼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혹은 없애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겠죠.”
숨기거나, 없애기 위해서? 저택 안에 킬리언이 없애야만 하는 게 있었다고?
킬리언이 그저 내가 한 말 때문에, 반쯤 미쳐서 백작을 충동적으로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발화지점을 찾았습니다. 지하실이더군요.”
움찔 몸이 떨렸다.
“아마도 창고로 사용됐을 거라 추정되는 지하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숨겨져 있어, 저택 안의 사용인들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더군요.”
창고는 무슨. 그 지하실이었다. 나와 킬리언이 고문 당하던, 바로 그 지하실.
“킬리언은 왜 창고에 불과한 지하실을 태우려고 한 걸까요? 어쩌면 그저 우연일까요?”
펠로스가 테이블 위로 턱을 괴곤 물었다. 나를 꿰뚫을 듯이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느새 장난기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킬리언은 왜 지하실을 태웠을까. 나는 그 이유를 완벽하게 알 순 없었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백작을 죽일 용기가 있었다면. 백작을 죽이고 백작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나 역시 가장 먼저 그 지하실을 없앴으리라.
“한 가지 더.”
“……네?”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저택을 쥐 잡듯이 뒤진 결과, 없어진 물건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그게 뭐죠?”
“서류입니다.”
“서류?”
“킬리언 디에고가 디에고 백작가의 사람이라는 서류. 그가 디에고 가문의 장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서류 말입니다.”
“……그게, 없어졌다고요?”
“원래는 백작의 집무실 안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더군요.”
그걸 도대체 왜? 낮은 신음을 내뱉자, 펠로스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이제야 궁금한 얼굴을 하시는군요.”
“네? 아니…….”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하다 물었다.
“그래서요? 그게 왜 없어진 줄 당신은 알고 있나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과 백작의 연결 고리를 끊고 싶었던 거겠죠. 디에고 백작이 너무나 증오스러워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펠로스의 말은 꼭 킬리언이 디에고를 증오해 죽였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니까, 백작을 죽여 달라는 내 말을 따른 게 아니라 그저 개인의 복수일 뿐이라고.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킬리언은 분명, 내가 입양되기 전까지 디에고 백작에게 학대를 당했다.
내가 입양된 후에는 그게 나에게로 향했고. 물론 그 후에도 킬리언이 제 아비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죽일 정도로 증오했다고?
평소의 킬리언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증오하기보단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었고.
“그리고 레이디.”
펠로스가 상념에 빠진 나를 깨우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뭐죠?”
“그 금고 안에는 당신의 서류도 존재했습니다.”
“……네?”
“당신이 디에고 가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 말입니다. 금고에, 킬리언의 것과 나란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제 서류도…….”
“당신의 서류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뭐라고?
킬리언이…… 부러 금고를 연 후에, 자신의 서류만 없앴다 이건가? 내건 그대로 남겨두고?
“어째서…….”
“그 이유야 본인밖에는 모르겠지요. 하지만 제 생각엔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의 것에 정신이 팔려 당신의 것을 보지도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됐다.
“나, 나는…….”
괜히 변명을 늘어놓으려는데, 펠로스가 내 말을 뚝 끊었다.
“레이디. 데반에게 들었습니다.”
“……뭘요?”
“그 자가 마지막에 한 말 말입니다.”
마지막에 한 말이라면…….
‘에블린, 네가 나한테 부탁한 게 아니냐! 에블린!’
펠로스가 그 말을 들었다고? 내가, 내가 킬리언에게 백작을 죽이라고 부탁했다는 걸…….
나는 달달 떨리기 시작한 손을 테이블 아래로 겨우 감췄다. 치맛자락을 꼭 붙잡은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건……. 그건 그러니까…….”
“아닙니다.”
“……네?”
“제가 왜 이 말을 전하고 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나는 멍하니 펠로스를 바라봤다.
“레이디의 부탁 때문에 백작을 죽인 거라면…….”
그저 가정일 뿐인데도, 몸이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어째서 레이디의 서류를 챙기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말이 이상하죠. 왜 자신의 서류를 챙겼겠습니까. 그저 죽이기만 하면 될 것을요.”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잖아요.”
“백작의 몸에는 수많은 자상이 나있었습니다. 모두 이미 죽은 후에 생긴 거라고 하더군요.”
“…….”
“시체에 상처를 낼 정도로, 킬리언의 원한이 상당했다는 소리입니다.”
펠로스는 계속해서 한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킬리언이 백작을 죽인 건 내 부탁 때문이 아니라고. 그저 스스로의 원한 때문이라고.
“절…… 절 위로하시는 거죠. 제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레이디는 제가 그렇게 상냥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펠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저는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제가 레이디를 위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 아닐까요?”
와작, 펠로스가 쿠키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지금 디에고 백작이 죽은 게 레이디의 탓이 아니란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마주한 펠로스의 얼굴에서 감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동정심, 안타까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라도.
그러나 펠로스는 나에게 죽음을 고할 때와 마찬가지로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할 뿐이라는 태도로.
“펠로스…….”
“아, 레이디. 제발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레이디는 이제 엄연히 남편이 있는 몸이고, 저는 신에게 묶인 존재란 말입니다.”
“……저는 그저―”
“고맙다는 말도 부디 넣어두십시오.”
펠로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눈을 휘었다. 입고 있는 낡은 옷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미소였다.
“우리 사이에 그런 간지러운 말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난 고개를 숙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역시 레이디는 웃을 때가 가장 낫군요. 그나마 말입니다.”
“펠로스.”
“농담, 농담입니다. 레이디는 언제나 아름다우시지요.”
“……고마워요.”
한 박자 늦은 인사를 건넸다. 방심하고 있던 펠로스가 당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넣어두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쓸 때가 따로 있을 텐데, 거참.”
진지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장난기 섞인 표정에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어느새 머릿속을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