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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을 치료하고 도망쳐버렸다-61화 (61/123)

61화

정말 신력을 사용해도 되는 걸까?

불안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블린, 문제가 있나?”

내 낯빛을 계속 살피고 있던 건지, 데반이 예민하게 물어왔다.

“……아니에요.”

하지만 방금 전, 정체 모를 것에 중독된 우리도 신력으로 치료했었으니까.

조금 사용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거기에, 죽음이 앞당겨지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코델리아가 이렇게 된 건 모두 내 탓이었으니까.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원작대로 데반에게 납치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디에고 백작과 신전에 복수를 마친 후, 데반과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겠지.

이미 마음대로 흐트러진 원작을 그녀에게 돌려줄 수는 없었다. 돌려주면 죽는 건 내 쪽이 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죽게 놔둘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자꾸만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바라보는 데반의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신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걸 코델리아의 몸 쪽으로 이동시켰을 때였다. 내 신력이 그녀의 몸에 맞닿은 순간―

“허억!”

“에블린!”

코델리아의 손을 잡기 위해 움츠렸던 어깨가 튕겨져 나갔다.

마치 정면에서 거센 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뒤로 꺾였다.

절로 손이 놓아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신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내 몸과 코델리아의 몸 사이에 하얀빛이 생겼다.

그녀와 다른 이들 사이에 연결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이들은 실같이 얇았고, 내 것은 그 몇 배나 되는 굵기였다.

“에블린!”

괴상하게 꺾인 내 몸을, 데반이 당황하여 붙잡았다.

그는 내 허리를 껴안고 코델리아에게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얀빛은 그의 손길을 튕겨냈다.

이 상황에 가장 당황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제 3자라도 된 것처럼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쓰러져 있는 코델리아와, 그녀에게 신력을 빼앗기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어떻게든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하는 데반을.

‘이게 대체…….’

입을 벌려 말을 했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내 몸을 더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형체가 없었다.

그저 이곳에 존재할 뿐, 아무런 부피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꼭 영혼만 남은 채 육체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신력을 사용하고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대로 내 신력이 그녀에게 모두 옮겨간다면? 그래서 그 자리를 흑마법이 대신 채운다면? 그렇게 되면 난…….

그때였다.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다.

<너구나.>

퍼뜩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내 육체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힐다?’

그 목소리는 분명 힐다의 것이 아니었다. 매번 킬킬거리며 웃는 장난스러운 어조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힐다라고 생각한 것은, 어쩐지…… 발화 방식이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초월적 존재였다. 힘의 근원이었다.

<힐다? 그게 무엇이지?>

목소리는 내 질문에 응답했다. 그것만으로 한시름이 놓였다.

난 서둘러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내가 어떻게 된 거죠? 날 원래대로 해줄 수 있나요?’

목소리의 주인이 어딘가 오만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신이라고 부르더구나.>

‘뭐?’

<그래, 네가 바로 섞여 있는 아이구나.>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죠? 신이라니, 거기에 제가…….’

<미안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꾸나.>

‘시간이 다 됐다뇨?’

<네 힘이 모두 사라지면 우리는 이야기 할 수 없으니까.>

‘힘이요?’

<거기에 그 일을 해야 하는 건 그 아이거든, 내가 아니라. 그것까지 빼앗아 가면 크게 화를 낼 거야.>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육신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론 안 되는데, 더 할 얘기가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신이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렴.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허억!”

그리고 번쩍 눈을 떴을 땐, 어느새 나는 다시 육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에블린!”

데반이 나를 껴안은 채 흔들었다.

“허억, 하아…….”

심장께를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나와 코델리아 사이를 잇던 하얀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괜찮은 건가? 에블린!”

천천히,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봤다.

내 의지 따윈 없이 제멋대로 굴던 몸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날 부여잡고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데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에 놀란 모양이었다.

“……괜찮, 아요.”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기분 탓인지 속이 매스꺼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 여자가 네 신력을 빼앗은 건가?”

꼭 코델리아가 잘못하기라도 했다는 듯, 데반의 싸늘한 시선이 그녀를 향해 꽂혔다.

난 황급히 그의 팔목을 붙잡고 말했다.

“생존 본능일 거예요. 신력이 모두 사라지면 죽으니까……. 저들의 신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몸이 알고 있겠죠.”

혀를 찬 그가 내 몸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정말 괜찮은 건가?”

“괜찮대도요. 그보다 방금…….”

“방금?”

난 잠시 망설였다.

방금 전 있었던 일이 내 망상이나 환상이 아니라면.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면…….

난 신의 목소리를 들은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신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는데도.

입 안 여린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데반은 재촉하지 않고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걱정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신을 만난 것 같아요.”

*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신전을 빠져나왔다.

당장 내일이 결혼식이었다. 그러니 본래라면 밤새 정화 의식을 마친 후, 그대로 신전에서 결혼식까지 올려야만 했다.

멋대로 빠져나왔다는 걸 안다면 신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이 빠진 채 쓰러져 있던 코델리아와 수많은 인간, 그리고 신.

신. 신이라니. 거기에 ‘그 아이’는 또 뭘까.

어스름한 밤길을 지나 별궁으로 향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방금 전 겪은 일로 가득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럼, 내일 봐요.”

마침내 별궁에 도착해 내 방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에블린.”

데반이 나를 붙잡았다. 그는 싱숭생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궁금하겠지. 신을 만났다는 말을 끝으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으니.

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내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 나조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조금 상황이 진정되면 다 말씀드릴게요.”

“뭐?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자리를 뜨려는 나를 데반이 다시 한 번 저지했다.

복도에는 사용인들이 모두 자고 있어 희미한 불빛만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에 데반의 곤란한 얼굴이 비쳤다.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게 아닌가?

의아한 얼굴로 데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따로 할 말이 있으세요?”

“그게 아니라 나는…….”

말을 몇 번 가다듬다가, 데반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꼭 제 부관을 다독이기라도 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데반?”

“그냥… 걱정 말라고. 코델리아라는 그 아이도, 네 시녀나 대공 저의 병사들…. 모두 구할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아…….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그가 별궁으로 오는 내내 말 한 마디 없었던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꾸만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눈빛도.

데반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 사람 된 도리로 걱정을 해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데반이 하는 위로는 어딘지 낯설었다.

데반이 이런 얼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나를 바라보는 데반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인사는 나중에.”

“네?”

“고맙다는 인사는…… 모든 걸 해결한 후에 받지.”

데반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저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고, 정말로 이 모든 일을 자신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다.

나는 그를 마주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방금까지 술렁거리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그래,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오래전 신력을 빼앗기고 그곳에 갇힌 아이들도, 유니스와 병사들도, 그리고 코델리아도.

모두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내일 아침에 보지. 우리의 결혼식에서 말이야.”

데반은 홱 몸을 돌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그의 너른 어깨를 비췄다.

나는 데반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결혼식을 언급하던 데반의 목덜미가 조금 붉게 달아오른 거 같았는데.

……그럴 리가. 내가 잘못 본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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