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잠깐.”
데반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에서 오래있고 싶지도 않았고, 지체할 시간도 없었기에 난 인상을 팍 찌푸렸다.
“서둘러야 한다니까요.”
“아니, 이상하지 않나?”
“뭐가요?”
“왜 아무도 없지?”
“네?”
“아이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야 지금은 새벽이니까요. 모두 자고 있겠죠.”
“지키는 이 하나 없이?”
나는 순간 멈칫했다. 신전은 절대로 우리들, 그러니까 신력이 있는 아이들을 소중하게 지키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한 것도 아니었다.
혹시나 아이들이 도망치거나, 다쳐 힘을 못 쓰게 되면 곤란했으니까.
그러니…… 말하자면 보호자보단 감시자에 가까운 사람이 항상 아이들의 곁을 지켰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아무도 없는 것은 묘했다.
“그냥…… 잠시 자리를 비웠나 보죠.”
“자리를 비워? 이 새벽에?”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정화 의식을 하는 날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다. 데반이 미간을 지그시 찌푸렸다.
“그리고 여기, 복도에 먼지가 가득하다. 꼭 몇 년이고 청소를 하지 않은 것 같아.”
먼지라고?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제 방과 복도를 쓰는 게 일과였는데…….
난 고개를 거칠게 털었다. 데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묘한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더럽게 지냈나 보죠.”
그러나 데반은 의심을 거둘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가 자세를 낮추더니 문틈 사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무리 지저분하게 지냈다 하더라도 문 앞은 먼지가 쌓이지 않는 게 맞지. 적어도 누군가가 방에 드나들었다면 말이야.”
희뿌연 먼지가 데반의 손가락에 가득 묻어났다.
“……아무도. 방에 드나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건가요?”
“그래. 먼지의 양을 봐선 몇 달, 아니 몇 년인가.”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복도에 내려앉은 기묘한 정적이 돌연 섬뜩하게 느껴졌다.
술렁거리는 두려움이 몸을 감쌌다.
데반이 내 쪽을 빤히 바라봤다. 발걸음을 멈춘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에블린.”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곳에 아이는 없어, 적어도 최근 몇 년간은.”
팔로 스스로를 껴안았다. 한기가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아이가 없다니 그게 무슨……. 뭔가, 뭔가 착각한 거예요.”
“……이 복도 전체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적어. 네가 어릴 땐 정말 이곳에 살았던 건가?”
“……그럼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어떻게 이곳을 알았겠어요.”
순간 힐다가 떠올랐다.
설마, 그녀가 또 기억을 조작한 건가? 이곳에서 살았던 내 기억이 모두 거짓인건가?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조차 거짓일지도 몰랐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어릴 때의 기억은 내가 겪은 게 정말 맞나? 지금의 나는? 내가 정말 살아남아 이곳에 돌아온 게 맞나?
아이가 죽었던 것처럼, 내 시야조차 꾸며낼 수 있는 거라면…….
“에블린!”
데반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착각했다. 넌 이곳에 살았던 게 맞아.”
그가 방문에 적혀 있는 문패를 톡톡 두드렸다.
어두워 미처 보지 못했던 건데, 자세히 보니 작은 나무토막이었다.
“이걸 봐.”
나무토막엔 긁힌 자국이 가득했는데 자세히 바라보자 글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씨?”
“정확히는 이름이지. 거기 말고 뒤.”
그의 말을 따라 나무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에블린.’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제야 기억났다. 이 나무토막이 무엇인지.
“여기에 네가 있었던 건 확실해. 아무래도 네가 나간 후에 뒷면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적어서 새로 명패로 활용한 것 같은데…….”
“제가 나간 게 벌써 십 년도, 아니 십삼 년도 더 된 일인 걸요!”
“그러니 이상한 거지. 네가 나가고 몇 년이 되지 않아 이 층은 폐쇄된 거야.”
“……다른 곳으로 옮겼나 봐요. 그도 그럴게, 고아원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없었잖아요.”
데반이 내 이름이 적힌 문패가 달려 있던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나무로 만들어진 잠금쇠는 그의 손짓에 허무하게 부서졌다.
“그건 아닌 것 같군.”
난 그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방 안엔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낡은 이불이 가득했다.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며 한 구석에 떠놓았던 차가운 물도, 잠이 들기 직전까지 읽어야 했던 성서도 그대로였다.
그것들 위로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꼭, 이 방의 시간만 십 수 년 전에 멈춘 것처럼.
“네 말대로 다른 곳으로 옮긴 거라면 이런 것들을 가져가지 않을 리가 없지. 이 장소를 이렇게 방치했을 리도 없고.”
데반이 방 안으로 들어가 성서며, 낡은 이불을 들췄고 그럴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사래를 쳤다.
“……그만 가요.”
“뭐?”
“그만 가자고요! 시간이,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와 달리 난 도무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들어가는 순간, 꼭 일곱 살짜리 아이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내가 미친 건 아닌지, 모든 게 내 망상은 아닌지 고민하며 전생의 기억에서 허우적대던 그 어린아이로.
“……그러지.”
낌새를 눈치챈 듯 데반이 다른 말 없이 방에서 나왔다.
방문을 닫은 그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뒤늦게 내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듯이.
그리곤 복도 앞을 턱짓했다.
“앞장서.”
별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고, 난 앞장서 걸었다.
자꾸만 먼지가 가득 쌓인 방의 풍경이 떠올랐지만, 애써 구석으로 밀어냈다.
이제 와서 지나간 일에 휘둘리는 건 질색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는 거지? 이곳에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확신하는 건가?”
꼭 화제를 돌리기라도 하듯 데반이 물어왔다.
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 도면상의 위치는 적어도 이쪽이 확실해요. 나머진 몇 층이냐 뿐인데,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여기, 지하 삼층이 가장 유력하겠죠.”
차라리 이쪽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다른 일을 생각하다 보면, 방금 전 본 그 풍경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숨겨진 공간으로 가는 길은?”
“아까 그 방에 조각상이 있었잖아요. 그걸 보니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조각상?”
그의 시선이 복도 끝을 향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도 끝.
신보다는 악마가 있는 게 어울릴 것만 같은 어둠이었다.
“그게 저기에 있다는 건가?”
“네.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신전 내에 비밀 공간이 있다면 아마 저곳일 거예요.”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까부터, 아이들의 방을 봤을 때부터 목에 무언가 턱 걸린 기분이었다.
기어코, 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이들은…….”
데반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데반과 눈을 마주쳤다.
“에블린.”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데반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후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히 방 안에 들어가, 내가 원하지 않는 주제를 헤집어 놓은 것에 대해.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나는 탄식처럼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신전은 계속해서 아이들을 들여왔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아무도 없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조차 없다. 들어온 아이는 있는데, 지내고 있는 아이는 없다.
“……나중에 알 수 있겠지.”
데반이 날 앞질러, 성큼성큼 나아갔다.
나중에라.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난 입술을 짓씹으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걸을 때마다 쌓여 있는 먼지가 이리저리 흩어졌고, 그게 이 긴 세월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데반이 복도의 끝에 당도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개가 뒤로 꺾일 정도로 위를 올려다보다, 말문이 막힌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 크기가…….”
그곳에 조각상이 있었다.
천장을 꿰뚫고 있는 조각상, 정확히 말하자면 조각상의 종아리가.
고개를 한없이 꺾어도 그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커다랗고 위압적인 신의 모습이었다.
데반의 옆에 서서, 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만하게 내려 보는 표정이 똑같지 뭐예요. 그래서 기억났어요. 이 공간이.”
“……그렇군.”
“이 조각상이 신전의 첨탑이에요.”
“……하.”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첨탑의 정 가운데에 시계가 달려 있잖아요. 제국의 모두가 그 시계를 보기 위해 첨탑을 올려다보죠. 실상은…….”
“그 안의 신을 보는 거다?”
“그런 의미인 거죠.”
“마음이 담기지 않아도 우러러보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그들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신의 종아리로 다가갔다.
“어릴 때는 이게 뭔 줄 몰랐어요.”
“그럴 만도 하군. 너무나 거대한 일부는 때론 전체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니.”
조각상은 석고로 만들어져 가까이에서 보면 크고 작은 균열이 보였다. 난 그 균열을 더듬었다.
“선생님……. 아니, 신관들이 이곳으로 오는 걸 엄격하게 금지했어요.”
“그럴 거면 아예 막아두면 될 것을.”
“그러게요. 어쩌면 우월감을 느꼈는지도 모르죠. 모두가 우러러보는 게 신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달칵― 균열이 옆으로 움직이며 천천히 열렸다.
“종아리 안의 비밀 공간이라. 정말 신을 숭배하고 있긴 한 건지.”
“제가 가장 의문인 점이 바로 그거라니까요.”
내가 막 종아리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잠깐, 내가 앞장서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데반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검도 없는 주제에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몰랐지만,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반이 고개를 약간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의 뒤에 딱 붙어 따라갔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와 달리 환한 빛이 눈앞으로 들이닥친 탓이었다.
“뭐가 보여요?”
그의 등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눈이 부셔서 도통 뭐가…….”
뚝― 데반의 목소리가 멈췄다. 발도 함께였다.
그는 내 앞에 우뚝 선 채로 미동도 없었다.
“데반?”
난 가물거리는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데반, 왜 그래요?”
그가 돌연 홱, 몸을 돌렸다. 그리곤 그대로 날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