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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장. 고언(2) (1,282/1,284)

1307장. 고언(2)

고언(苦言).

당장 듣기에는 쓰고 몹시 거슬리나 결국 도움이 되는 말.

보통 충신이라 하는 자들이 왕에게 뱉는 말이다.

‘갑자기 고언이 왜?’

비공식적인 만남으로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모임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에도 많은 말들이 서로 간에 오갔다.

김현재 대표가 정중하게 조언을 구했고 그에 장태산 회장이 화답했다.

셰익스피어부터 시작해 정사구불용에 한국판 뉴딜, AI와 스마트시티 등등.

의미 있는 여러 사안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당연히 그 말들에 대한 결과는 좋게 나왔다.

그날 이후 양우석은 김현재의 최측근이 되었다.

김현재가 대놓고 밀어줄 정도가 됐다.

지금에 와서는 양우석이 야당 쪽에서 거물이 됐다.

대권 주자의 최측근이 되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리다.

아무리 다선 의원에 그들이 누리는 권력이 대단하다지만 대통령이 가진 힘과 비교 불가한 건 당연했다.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 각 당의 최우선 목표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대선 주자의 최측근이 된 양우석은 자신만의 계파를 자연스럽게 꾸릴 수 있게 됐다.

야당에서 그에게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신분이 된 셈이다.

암암리에 뒤에서 자신을 밀어주던 김현재 대표가 장태산 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당연히 기분 좋게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 대 대통령이 될 분이라고 예언하던 장태산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장태산 회장은 김현재 대표를 위해 산삼까지 준비해 놓았다.

편안하고 부담 없는 덕담이 오가는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고언.

장태산 회장의 눈빛이 본 적 없는 눈빛으로 심상치 않았다.

그의 앞으로 만날 일이 없다는 말은 더더욱 심상치 않다.

양우석 의원의 뱃속에 들어간 200년 묵은 무가 울컥 넘어오려 했다.

지금 옆에 모시고 있는 김현재 전 대표는 진짜로 유력한 대권 후보가 됐다.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이다.

이미 물밑에서 여야 간 의원들의 협상이 끝난 마당이다.

며칠 후면 조근영 대통령의 탄핵이 통과될 것이다.

결과는 불 보듯 빤하지만 여당 측 의원들은 갈등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전부 내부에서 합의한 쇼였다.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기 위한 위장 처세였다.

정치는 그야말로 가장 파악하기 힘든 능동적 생물체나 다름없었다.

한때 물심양면으로 모시던 주군이었던 조근영을 치는 데 최측근들이 가장 선두에 나섰다.

대한민국 정치의 처절한 민낯이 여실하게 드러난 셈이다.

빛이었던 자가 어둠에 들고, 어제의 동지였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

권력은 인간이 탐하는 것들 중 가장 강렬한 욕망 중 하나다.

동시에 가장 영향력이 크고 파장이 넓은 데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김현재는 그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음 대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의 주인으로 또 권력자로 낙점받았다.

현재 당에서도 김현재를 향해 쓴소리할 만한 인물이 없다.

그런데 그런 김현재에게 장태산 회장은 거침없이 고언을 언급했다.

양우석은 김현재 대표와 장태산 회장의 미세한 심기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현재 대표는 그런 장태산을 고맙게 여겼다.

지난 만남 때 던졌던 장태산 회장의 의견을 김현재는 무시하지 않았다.

그 뒤 장태산 회장이 언급한 부분들에 대한 공부를 했고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교통사고 회복 뒤 더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강단 있게 전진했다.

양우석은 그런 김현재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김현재를 보필하며 그의 진면목을 지척에서 제대로 확인한 셈이다.

장태산 회장이 비밀에 싸인 후원자라면 김현재는 마음을 다해 뒤따르고 싶은 지도자였다.

그런데 가볍게 술이 한 잔 돌자마자 고언을 입에 올린 장태산.

“고맙게 경청하겠습니다.”

김현재가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전혀 고까워하거나 기분 상해하는 모습이 아니다.

다음 대 유력 대통령 후보임에도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역시 김 대표님!’

양우석은 그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뿌듯했다.

자신을 발굴하고 지원해 준 이가 장태산이었고 김현재는 앞으로 닮아가고 싶은 정치 스승과 같았다.

“공부 많이 하셨습니까?”

“하하. 장 회장님 덕분에 사법시험 볼 때보다 더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 고언이 되는 자리에서도 김현재는 너털웃음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

김현재 대표의 말에 장태산 회장이 의외의 말을 뱉었다.

양우석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과거처럼 오고 가는 대화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말에 감춰진 의미가 그만큼 깊었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오늘 이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장태산 회장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인사다.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 들어 옆에서 고언하는 분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다들 입술에 꿀을 바른 것 같습니다.”

김현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다.

누가 봐도 확실한 대선 승리 후보다.

누가 있어 감히 그에게 들어서 쓴말을 뱉을 수 있겠는가.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라고 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면 다른 이의 말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장태산 회장.

‘……대단해. 저 나이에 저런 확고한 심지를 소유할 수 있다니……’

양우석은 장태산 회장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을 품었다.

나이와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사람이다.

오래도록 수행한 선지식들처럼 미래를 예견했다.

가늠하기 힘들 만큼 품도 넓었고 갖고 있는 계획 또한 거대했다.

양우석은 장태산 회장이 품고 있는 뜻을 아직 일부도 파악 못 했다.

“……아시겠지만 제게 기회가 왔습니다. 장태산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예견처럼 말입니다.”

김현재 대표가 단단한 눈길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네.”

“……오늘 고견 잘 부탁드립니다.”

스윽.

김현재 대표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학생의 자세처럼 부끄러움이나 자존심 같은 건 세우지 않았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장태산 회장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시고 싶은 일 다 하십시오. 그게 첫 번째 고언입니다.”

“???”

***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쓴 말을 뱉겠다더니 ‘하고 싶은 일 다 하라’는 말만 했다.

쉽게 이해 못 할 건 당연했다.

그러나 진심이다.

- 이게 고언 맞습니까?

샨트리아가 묻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현재 대표 역시 묻는다.

“말 그대로입니다. 대통령이 되시면 하시고 싶은 일 다 해보십시오.”

“음…….”

짧은 신음을 흘렸다.

“회장님 진심이십니까?”

양우석 의원도 묻는다.

“5년이지만 일국을 경영하는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당연히 그동안 소망했던 일들 다 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싱긋 웃었다.

“당황스럽습니다.”

김현재 대표가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청와대 근무 중에 보고 배운 바도 있지 않습니까. 설마 아무런 비전 없이 입성하려는 건 아니시죠?”

가벼울 말들로 넌지시 물었다.

고언이라고 해도 무겁게 의미를 담을 필요는 없다.

“…….”

김현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

양우석 의원도 마찬가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진짜 하고 싶은 일 다 해보십시오. 조언하시던 분들 뽑아서 수석이나 장관, 관료로 임명하십시오. 썩은 웅덩이 같은 관피아를 비롯해 법조계 카르텔 등을 휘저어 물갈이도 하십시오. 추진하고 싶은 경제나 복지사업들도 밀어붙이시면 됩니다. 대한민국을 개혁하고 싶어 지금껏 준비하신 거 아닙니까?”

간단명료하게 핵심만 짚어 물었다.

“…….”

입을 닫고 묘한 시선으로 김현재 대표가 날 바라봤다.

- 머리가 복잡한 표정입니다.

샨트리아 당신 눈은 도대체 어디에 달린 거야?

- 흐흐. 지금 기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시는 모든 것들이 제 시선입니다.

안전을 위해 착용한 드래곤 가죽.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침묵하고 있던 김현재 대표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눈치가 빠른 분이다.

“어차피 하실 생각이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네?”

김현재 대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한고집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제 말씀대로 하지 않을 걸 알고 있습니다.”

“회, 회장님.”

이번에는 양우석 의원이 당황했다.

“지혜 있는 자는 은둔하지 않는 법입니다. 준비가 되셨으면 마음껏 지르고 써보십시오. 그래야 깨닫게 되실 겁니다.”

마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 그렇죠! 힘이 있다면 지르고 보는 겁니다! 

드래곤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김현재 대표가 묻는다.

“그러려고 살아오지 않으셨습니까. 모진 인내를 통해 깨닫고 다짐한 바를 이 조국에 펼치고자 버텨오셨습니다. 해보십시오! 그리고…….”

말을 줄였다.

2020년, 그 해를 살다 왔다.

대통령이 되고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가.

대통령과 국민의 밀월 기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나름 철저하게 여론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기생하는 토착왜구들과 기득권들은 수시로 대통령을 흔들었다.

아무리 대통령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싶어도 주변에 인재가 드물었다.

권력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옮겨 다니며 세를 넓혔다.

“말씀해 주십시오.”

김현재 대표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나를 본다.

감춰진 말의 의미를 갈구하는 듯 빛나는 눈빛.

상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아려왔다.

고언이라 말했지만 내 마음이 더 쓰렸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진실로 말해주고 싶은 고언.

“버텨주십시오……. 이를 악물고……. 반드시 버텨주십시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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