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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장. 방 빼(2) (1,278/1,284)

1303장. 방 빼(2)

“재계약이라니…… 내가…….”

아정은 눈 앞에 놓인 계약서를 몇 번이나 살펴보며 파르르 손을 떨었다.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교훈을 이번에 뼈저리게 경험했다.

인간관계에서 느낀 부담과 조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어 떠났던 MTS.

함께했던 언니들이 각자 인생을 찾아 떠난 뒤에야 깨달았다.

인생은 누구에 의지해 기생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혼자의 힘으로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물며 부모와 형제 관계도 마찬가지.

오직 MTS 황연태 대표와 장태산 이사만이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해줬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얻게 된 계약서.

아정의 능력을 높이 사준 장태산 이사 덕이었다.

계약금만 해도 무려 7억.

각 곡들에 대해 먼저 3000만 원을 정산받기로 했다.

음반으로 제작되면 그때 저작료는 따로 정산받게 된다.

7년 전속 계약을 맺었다.

차량과 담당 매니저도 곧바로 배정해주겠다고 했다.

사인하는 순간 곧바로 MTS 가족으로 인정해 줬다.

바람에 흔들리며 뿌리째 뽑힐 지경에 처했던 아정이 단박에 중심을 잡고 섰다.

계약금은 그대로 회사에 맡겼다.

투자처는 물론 방향까지 모두 위임했다.

아정의 통장에 돈이 꽂히는 순간 가족들이 어떻게 나올지 불 보듯 빤했기 때문이다.

- 별빛 쏟아지는~♪

FOB 마지막 앨범에 담겨 있는 곡이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후우우…….”

아정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숨을 골랐다.

틱.

가볍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도대체 어디야?

받자마자 엄마의 까칠한 목소리가 터졌다.

“집.”

- 언제 왔어?

“방금.”

- 집에 와. 할 말 있다.

“나 피곤해 쉬고 싶어.”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와의 대화는 삭막하게 오갔다.

- 그럼 간단하게 말할게.

“어…….”

‘이번에는 아니겠지?’

아정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 말을 천천히 기다렸다.

- 통장에 남은 돈 있지?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왜?”

- 아빠에게 비밀로 하고 엄마 돈 좀 빌려줘.

“……왜?”

- 엄마 믿지? 엄마 아는 지인분이 좋은 투자처를 알려줬어. 1억만 빌려주면 한 달에 1000만 원씩 매달 이자를 준대.

“사기 아냐?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이자가 어딨어?”

- 아냐! 엄마가 시험 삼아서 5000만 원 넣어 봤는데 정말로 입금됐다니까. 아정이 너도 들어 봤을 거야. 희토류라고. 투자처에서 칠레에 있는 희토류 광산 계약금이 필요하대. 지분으로 들어가면 대박이 난다잖아. 그러니까 있는 돈 다 줘봐.

엄마의 목소리는 한층 들떠있었다.

평생 가정주부였던 엄마다.

커피숍까지는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에 이상한 부류의 아줌마들이 꼬였다.

그즈음 아빠는 사업한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빠는 아정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동거 중이라고 했다.

아정이 돈을 벌면서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린 집안이었다.

“내가 준 돈 다 어딨는데? 집도 사줬잖아.”

- 어머.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요즘 같은 세상에 그깟 몇억이 사업자금이라고 할 수 있니? 네가 엄마한테 통장 맡겼으면 이렇게 귀찮게 할 일도 없잖아!

도리어 화를 내는 엄마.

“……하아.”

아정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엄마지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엄마…… 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마.”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전화하지 말라고? 이 싸가지는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너 내가 배 아파서 낳아줬어! 열심히 뒷바라지했으면 대가를 내놔야지! 부모 자식 간에도 계산이 필요한 시대인 거 몰라?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다다다 퍼부었다.

“…….”

조용히 듣고 있던 아정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 아빠하고 엄마에게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돈 필요하면 내 돈 빌려 간 오빠한테 달라고 해.”

- 네 오빠가 돈이 어딨어!

“엄마가 말했지. 부모 자식 간에도 계산이 필요하다고……. 내가 할 계산은 다 끝났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화하지 마……. 나에게 가족은 더 이상 불필요한 거 같아.”

- 야! 이아정! 너 말 다했어? 너 지금 어디야! 기다려! 네 버르장머리를 당장…….

띡.

아정은 엄마의 말이 끝나기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마침 회사가 내준 숙소로 들어온 터였다.

이제부터 그간 혼자 지내던 집에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 별빛 쏟아지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엄마는 이대로 아정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할 것이다.

번호를 차단했다.

“이아정. 앞으로 너만 보고 살자! 이 인생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거야!”

아정은 주먹을 쥐며 마음을 다졌다.

그동안은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가족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정은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가족 때문에 공황장애까지 올 뻔했던 아정이었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혈육까지 팔아먹으려는 부모와 형제.

더 이상 천륜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싶지 않았다.

티디딕.

스마트를 들고 빠르게 번호를 누르는 아정.

- 오올~! 우리 막내. 오늘 어쩐 일이야? 언니가 보고 싶었어?

아정은 다시 용기를 냈다.

그동안 양보만 했던 자신의 인생.

“언니. 나 계약했어.”

- 진짜? 축하해! 

“고마워.”

- 어디랑 계약했어? 괜찮은 곳이야? 조건은?

서련이 빠르게 물어왔다.

“어……. 좋은 곳이야.”

- 어느 회사?

“MTS.”

- 뭐? 우리 회사랑 계약했다고???

서련이 크게 놀라며 재차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정의 답변에 서련은 당황했다.

“응. 태산 오빠가 계약해줬어.”

- 태산…… 오빠가?

서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동안 연락 한번 없었던 장태산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아정과 계약을 했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이제 우리 한식구잖아.”

아정이 힘을 내 다시 말했다.

과거에는 늘 제 감정을 속으로 묻고 삭혔다.

이제는 감추지 않을 생각이다.

어떤 감정도 감추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인생은 각자가 주인공인 한 편의 영화라는 걸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

- 이게…… 뭡니까? 저게 다 인간들과 촛불입니까?

창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엄청난 함성을 듣고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광화문 광장 주변으로 넘실거리는 촛불의 바다.

100만이 훌쩍 넘어가는 수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그들이 외치는 ‘방 빼’라는 함성이 서울을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하고 장엄한 풍경이다.

시민들의 한데 모아진 진심이 거대한 기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묵직하게 퍼져나갔다.

- 엄청난 마나입니다! 오오…… 세상에!

이계에서 넘어온 드래곤이 놀랄 정도다.

방송 화면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상공에 떠서 바라보는 모습은 더욱 장관이다.

촛불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 일절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침묵에 싸인 청와대가 보였다.

선한 힘 앞에 악이 숨을 죽이며 이를 가는 게 눈에 선하게 보였다.

국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개인과 사적인 주변인들의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한 여인의 독기가 스멀스멀 풍겨 나왔다.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에게 배운 것이 독재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다스리는 무지한 종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무의식까지 박혔기에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 방 빼!!! 당장!!!

외침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울렸다.

- 도대체 누구보고 방을 빼라고 하는 겁니까?

샨트리아가 물었다.

“이곳을 다스리는 왕.”

- 네? 와, 왕요? 반역입니까?

군주와 귀족들이 판치는 대륙에서 살던 드래곤의 눈에는 이 모습도 반역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아니 혁명.”

-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왕에게 방을 빼라고 할 수 있는지…….

드래곤은 진심으로 경탄했다.

“상식이 파괴되면 결국 고달파지는 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이제 안 거야.”

민심에 귀를 닫아버린 최병박으로도 모자라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이었다.

주무형 대통령이 닦아놓은 민주주의 고속도로를 달려본 경험 덕분에 독재가 인도하는 비포장 도로를 답답해하고 숨 막혀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직접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는 이치와 같았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깊숙이 박혀 있는 기득권층의 악랄하고 비열한 뿌리들이 너무 많다.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을 뛰어넘어 허를 찌르는 반격을 가할 것이다.

띠리리리릿.

스마트폰이 울렸다.

친숙한 이름이 떴다.

스륵.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어? 전화 받을 수 있는 거야???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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