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장. 아정(2)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울구치소 독방.
발작적인 비명소리가 터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 않는다.
수감된 이후 매시간마다 악을 썼다.
다른 수감자였다면 교도관들이 수시로 찾아와 주의를 줬겠지만 이 수감자는 감히 소장도 건들지 못했다.
수감되기 전 그녀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권력 서열 1위였다.
그야말로 대통령을 쥐고 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말 그대로 정권 실세였다.
여론에 등 떠밀리듯 내몰리며 검찰에서 움직이긴 했지만 지금도 그녀의 위세는 장난 아니었다.
무려 이 정권 실세가 임명한 인사 중 하나가 법무부 장관이다.
교도관은 상대하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접견 변호사가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고위층에서 수시로 그녀의 편의를 봐주라고 압력 전화가 걸려왔다.
독방에 수감되어 있지만 그녀는 아직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 대통령의 막후 실력자였다.
오늘도 변호사 전화를 통해 대통령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은막의 대통령 조근영.
“이것들이 죽으려고 날 끌어내려? 조국일보! 네놈들이 날 엿 먹였다 이거지!”
주순자의 악독한 눈빛이 살벌하게 번득였다.
조국일보에 철저히 밀렸다.
원한이 심장 깊숙이 쌓였다.
“……기다려! 아직 주순자 안 죽었어!”
으드득.
주순자는 후일에 되갚아 줄 것이라 마음을 다지며 이를 갈았다.
“변호사 면회 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개시된 오후 면회 시간.
여자 교도관이 조심스럽게 면회를 알려왔다.
“알았어.”
“네…….”
주순자가 교도관을 제치고 앞장섰다.
그러고 보니 독방 수감자인데도 불구하고 수갑도 차지 않았다.
“소장한테 전해.”
“네?”
“요 며칠 영 음식이 입에 안 맞아.”
“…….”
삼십대 중반의 여자 교도관은 주순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수감된 상태에서도 보란 듯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순자.
어떤 말로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장이 당부한 말이 있었다.
최대한 그녀의 편의를 봐주라는 것.
“내 말 못 알아들었어?”
“아, 아닙니다.”
“나 무시하는 거야?”
“절대 아닙니다!”
“잘해. 조만간 풀려날 거야. 그때…….”
주순자의 싸늘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뚜벅뚜벅.
그사이 변호사 면회실에 도달했다.
비밀 접견이라 교도관도 배석하지 않는 자리다.
덜컹.
문이 열리고 주순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꾸벅.
40대 후반의 머리가 벗겨진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다.
일반적인 시간 때우기 정도를 위해 찾아온 접견 변호사가 아니다.
무려 청와대 민정실에서 파견한 A급 변호사였다.
“커피 가져왔어?”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가 당연하다는 듯 가방에서 아이스 커피를 꺼냈다.
대기업 금수저와 상류층들은 변호사 접견 시 커피를 비롯해 각종 음식물을 제공받는다.
담배도 피울 수 있었다.
교도소의 묵시적 허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정수석실에서 뭐라고 그래?”
“……정확하게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뭐야? 아직도 정리를 못 했어? 내가 항복한다고 전하라고 했잖아! 겨울을 여기서 나라는 거야? 이 더럽고 추운 곳에서!”
주순자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악을 썼다.
변호사가 눈을 아래로 깔며 입을 다물었다.
오후 담당인 만큼 저녁 시간까지는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면 이 일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 시절 모시던 민정수석의 명령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자리였다.
현 민정수석은 검사들 사이에서 천재로 통하는 인물이다.
민정수석이 된 이후 법무부까지 움직여 요직에 자신의 후배들을 심을 정도다.
짧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검찰을 장악한 민정수석.
검찰총장보다 더한 권한을 행사했다.
‘곧 죽을 줄도 모르고……. 미친년.’
검사 시절 주먹 좀 날렸던 변호사는 주순자의 앞에서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주순자는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몰랐다.
밖에서는 불태워 죽이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마음 같아서는 싸다귀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보이지 않는 연줄로 얽히고설킨 대한민국.
변호사로서 탄탄대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검사 선배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소문 한번 잘못 나면 큰돈 되는 형사 쪽 수임은 아주 날아간다.
“라샤~♫.”
그때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민정수석의 전화였다.
- 어디야?
“구치소에 왔습니다.”
-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긴 말이 필요 없는 선배의 위로.
- 옆에 있으면 바꿔줘.
“넵!”
변호사는 대답과 함께 스마트폰을 주순자에게 건넸다.
“민정수석이십니다.”
“그래?”
귀를 세우고 엿듣고 있던 주순자가 스마트폰을 받았다.
“당신! 도대체 일을 어떻게…….”
- 주순자 씨.
“뭐! 주, 주순자?”
상대의 갑작스러운 반말에 주순자는 순간 얼이 나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 지키는 개처럼 굴던 민정수석이었다.
청와대에서는 눈도 못 마주치던 새끼가 또박또박 이름을 불렀다.
- 협상은 결렬됐어.
“뭐라고 결렬? 너 미쳤어?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주둥이를 놀려!!!”
주순자가 눈을 부릅뜨며 악을 썼다.
- 누구긴 누구냐. 미련한 사기꾼이지. 후훗.
전화기 너머에서 민정수석이 야비한 웃음을 터트렸다.
“너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당장!!!”
- 마음대로 해. 나 사표 냈어.
“…….”
민정수석의 말에 주순자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사표를 냈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 나가는 김에 고급 정보 하나 알려줄게.
“마, 말해.”
주순자가 말을 아끼며 귀를 열었다.
중요한 정보일 게 확실했다.
- VIP 며칠 후면…… 짤려.
“뭔 개소리야! 내 허락 없이 누구 마음대로 짤라!”
주순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무리 권력이 누수되는 대통령이라지만 일국의 대통령이었다.
가진 권한부터가 엄청났다.
분명 자신이 직접 끝까지 버티라고 명령했다.
비서실장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야를 외치는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위기를 넘기기 위해 여러 인사들을 포섭했다.
적당히 권력을 넘겨준다는 식으로 말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기로 입을 맞췄다.
여당 쪽 의원들만 단속하면 3분의 2를 막을 수 있다.
계획대로 되면 대통령 탄핵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동안 지지해준 열성 지지자들을 앞세워 여론전을 펼치면 국민들의 분노가 금세 누그러질 거라 장담했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촛불로는 버티기 힘들 것은 자명한 일.
그런 마당에 민정수석이 확고한 말투로 헛소리를 지껄였다.
- 네가 믿던 놈들이 다 등을 돌렸어.
“누구? 도대체 어떤 새끼들이야!”
주순자가 물어뜯어 죽일 듯 으르렁거렸다.
당장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무수한 자들의 명단.
- 그건 직접 알아서 해. 오늘 이후로 당신과 난 절대 모르는 사이니까. 흐흐흐.
민정수석이 끝까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주순자가 임명해 그 자리에 앉혀 주었건만 보란 듯이 배신을 때리는 민정수석.
“야! 너 이 새끼 말 다했어!”
- 주순자……. 조용히 살아라. 네 딸년과 아들까지 감옥에서 썩히고 싶지 않으면.
민정수석의 차가운 경고가 이어졌다.
“…….”
주순자가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독한 주순자도 새끼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다른 집보다 더 독하고 치열하게 아꼈다.
- 조 변. 퇴근해. 그년 끝났어.
“넵! 선배님!”
조용히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변호사가 대답했다.
통화는 종료됐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주순자.
스윽.
조 변이라 불린 변호사가 스마트폰을 그녀의 손에서 빼앗았다.
“뭐 하는 짓이야! 내놔! 지금 VIP에게 전화할 거야!”
주순자가 조 변을 죽일 듯 노려봤다.
그 순간.
촤아아아앗.
조 변호사가 아이스 커피잔 뚜껑을 열어 그대로 주순자의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이렇게 멍청한 년이 그동안 대한민국을 쥐고 있었다니……. 쯧쯧.”
“너…… 너!”
주순자가 놀라 벌벌 떨며 손가락으로 변호사를 가리켰다.
파악!
급기야 들고 있던 빈 커피잔을 주순자의 얼굴에 던져버리는 변호사.
“아악!”
얼굴을 맞자 크게 놀라며 손으로 뺨을 감싸는 주순자.
“까불지 마라.”
변호사는 말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덜컹.
그대로 문을 닫고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악! 다 죽여버릴 거야! 모조리 다아아아아아아아아!!!”
닫힌 문 안에서 주순자의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
“식감이 완전 쫄깃해요!!! 역시 자연산은 다르다니까요. 으흐흐흐.”
영종도에 위치한 횟집.
선주가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잡은 자연산 회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정은 연신 젓가락을 부지런하게 놀렸다.
김포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태산.
FOB 시절 멤버들의 우상이었던 인물이다.
잘생겼고 분위기도 신비하다.
그의 능력은 두말하면 입만 아팠다.
서련이 자신의 남자친구라 주장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 그냥 잘해줬을 뿐이었다.
장태산은 언제나 바빴다.
대단한 능력으로 투자 회사를 세워 돈을 쓸어 담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MTS의 실질적 주인이기도 한 장태산.
언제나 신비에 싸여 있는 남자다.
공항에 주차돼 있던 스포츠카를 타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횟집으로 왔다.
회가 먹고 싶다는 아정의 말을 그 자리에서 들어줬다.
스으윽 스윽.
자신의 작곡집 노트를 말없이 살피는 장태산.
‘떨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노트였다.
언니들에게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일기장처럼 감춰왔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장태산에게 들켜 버렸다.
“대단해.”
장태산이 마지막 장까지 살핀 후 노트를 접으며 한마디했다.
“네?”
“……아정아.”
장태산이 더없이 따뜻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아정은 긴장한 채 대답했다.
회를 먹으면서도 내내 그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였다.
장태산이 자신의 작곡에 대해 어떻게 평가 내릴지 궁금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지?”
“네? 네에…….”
대답은 했지만 사실 없다.
해체 전 마지막 파티 때 다들 남자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밝혔지만 아정은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남자친구는 오직 한 명뿐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그가 있다.
“곡들이 전부 발라드야.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
“그, 그게 보여요?”
“그럼. 기호나 문자에 작성자의 마음과 무의식이 담기는 법이다. 음표도 마찬가지야.”
“아…… 그렇구나.”
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붉어졌다.
맞는 말이다.
장태산에 대한 마음이 온전히 곡에 담겨 있었다.
“계약하자.”
“네???”
“MTS와 재계약하자. 오빠가 확실히 밀어줄게!”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