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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장. 아정 (1,275/1,284)

1300장. 아정

“1팀 오늘 중요한 스케줄 있어?”

“아이니즈 새 앨범 녹화 말고는 없습니다.”

“반응은 어때?”

“……도대체 앨범 작업하시는 분이 누굽니까? 한 세대를 앞서보는 안목이 대단합니다. 이 바닥 좁은데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정체를 궁금해합니다.”

“영업 비밀.”

“……이번에도 흥행은 걱정 마십시오. 12월 되면 난리 날 겁니다.”

“말만 그러지 말고 잘하자. 올해도 보너스 받아가야지.”

“그럼요! 1팀은 완벽하게 준비 끝났습니다!”

“2팀도 마찬가지입니다. 넉넉하게 지원해주신 덕분에 소속 배우들 모두 활동이 활발합니다.”

“3팀도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바라쿤즈도 출격 준비 끝났습니다!”

MTS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황연태 대표와 임원들, 그리고 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월말 회의를 진행 중이다.

분위기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화기애애했다.

회사 대표 상품이 바뀌었다.

한때 잘나가던 FOB는 저물었지만 후속 걸그룹이 대박을 터트렸다.

아이니즈의 한나, 아서, 그리고 보라.

등장하자마자 견고하고 강력한 팬텀을 형성했다.

특히 한나는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얻으면서 급부상했다.

몇 년에 겨우 한 명씩 등장하는 국민 여동생.

그 타이틀만으로도 미래가 보장됐다.

거기에 노래와 춤 실력까지 출중했다.

아이돌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연기력까지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대활약했을 정도다.

종합방송 채널에서 드라마로 시청률 15%를 달성하며 얻기 힘든 성과를 이루어냈다.

대박 중의 초대박.

과거 FOB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 가수들도 그들 나름대로 대단한 활약을 선보였다.

압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내로라하는 실력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휩쓸었다.

그들의 활약으로 짧은 기간 내 대한민국 3대 연예 기획사에 들었다.

그것도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업계 최상위권.

소속 연예인들만 무려 100명을 넘었다.

그들을 관리하는 직원도 300명을 찍었다.

인원 규모는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벌어들이는 수익은 천문학적이다.

“이렇게만 달리자. 내가 확실히 내년에도 밀어줄게.”

“넵! 대표님!”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임원진들과 팀장들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다른 기획사와 달리 MTS는 소위 말하는 갑질이 없었다.

성 상납은 물론 서로가 불편한 행위에 대한 강요가 전혀 없다.

비등기 이사의 힘이 엄청났다.

안팎으로 깨끗하게 운영되다 보니 대기업들이 알아서 광고 협찬을 요청해 왔다.

방송국도 마찬가지.

얼굴 보기 힘든 국장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대신 가수든 배우든 그들의 실력이 우선 뒷받침됐다.

내부적으로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혹독한 트레이닝 교육이 따른 결과였다.

노래나 연기뿐만 아니라 시사 상식과 외국어도 장착해야 했다.

소속 연기자들이 학교에 다시 다니는 것 같다고 투덜댈 정도다.

대신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더 잘나갔다.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생방송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됐다.

상식이 뒷받침되지 못해 구설수에 오르는 소속 연예인은 한 명도 없었다.

“날 믿지 말고 애들을 믿어. 돈 벌어주는 걔들이 우리 회사 주인이야.”

황연태는 임원들과 팀장들을 상대로 편하게 말을 놓았다.

임원들 대부분이 그가 과거부터 알던 동생들이다.

장태산 이사의 검증까지 마친 믿을 만한 동생들.

그들 개개인의 인성이 기본으로 깔렸다.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갈 사람만 곁에 남아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사대부댁 도련님 아씨처럼 대우하고 있습니다.”

“연습생 4대 보험 들어주는 회사는 저희밖에 없습니다.”

팀장들의 표정이 한층 밝았다.

치사한 곳이 연예계 바닥이라지만 MTS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룹 차원의 법률 서비스부터 소속 연예인들과 직원들에게까지 각종 투자 사업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정직원이 되는 순간 살 집을 마련해주는 건 업계 중심으로 이미 자자하게 소문 나 있을 정도다.

아예 10년 동안 이직 없이 충성을 다하면 집을 상으로 받는 기행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다들 내 일처럼 일했다.

상납 없이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 MTS였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럼 월말 회의는 이걸로 끝내자고. 시간 나는 팀들은 법카로 월말 자체 회식 마무리해.”

“넵!”

“법카 한도는 얼마입니까?”

“양심껏.”

“흐흐흐. 그럼 소고기 먹겠습니다!”

“저희도요!”

“그래 배 터지게 먹어라. 먹는 게 남는 장사다.”

흐뭇한 모습으로 황연태가 웃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기업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다들 나가봐. 이 상무만 남고.”

“넵!”

모두들 가뿐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녀석들…….”

황연태는 동생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좋으세요?”

“어.”

“흐흐. 형님 덕분에 다들 호강하고 삽니다.”

황연태와 과거부터 둘도 없는 형제처럼 지냈던 이현수 상무.

“중국 쪽은?”

“……당분간 쫑 난 것 같습니다.”

“속 좁은 새끼들.”

“차라리 잘됐죠. 돈이면 다 된다는 그 새끼들 사고방식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우리 애들 접대 자리에 넣으라고 얼마나 더럽게 지랄했습니까.”

“그래서 장 이사님이 중국 사업은 절대 말렸잖아.”

“중국 진출했던 다른 업체들 다들 죽상입니다. 홍위병들도 아니고 애들이 기본 상식이 없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전부 퇴출당했습니다. 공연 기획이나 드라마 진출은 꿈도 못 꿉니다.”

“공산당이 달리 공산당이냐. 내가 상식적 인간이라서 중국이 싫다. 일본은 한국인이라서 더 싫고.”

황연태는 말 몇 마디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다.

“장태산 이사님…… 선견지명이 대단합니다. 우리는 중국 쪽 사업 작년부터 다 접었지 않습니까.”

“그래 대단한 분이시지.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 여기에 없다.”

황연태는 다시 한 번 장태산 이사에 대해 고마움을 내비쳤다.

“빅토리스타와 계약한 윤나와 미나 개밥에 도토리 됐습니다. 계약금도 제대로 정산 못 받고 붕 떴습니다.”

“……자업자득 아니겠냐. 우리가 얼마나 잘해줬냐. 그런데…… 에휴.”

“부모들이 문제입니다. 자식들이 조금만 떠도 왜 그렇게 돈에 눈이 돌아가는지…….”

“다른 애들은?”

“선미는 남자친구하고 잘되는 거 같고 조아는 인터넷 방송 쪽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정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니들 때문에 아정이가 마음고생이 심했지.”

“그랬죠. 아정이가 제일 착했잖아요.”

“연락해서 챙겨줄 것 있으면 힘 좀 써줘라. 그래도 한때 우리 새끼 아니었냐.”

“그래야죠.”

“…….”

FOB 얘기만 나오면 침울해지는 두 사람.

완벽한 결별이라 포장됐지만 이 바닥에서 소속사와의 깔끔한 이별은 없었다.

황연태에게 FOB는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다.

특히 언니들 틈에서 무던히 애썼던 아정이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

- 이 아름다운 여성분은 또 누구십니까?

샨트리아가 부러운 듯 묻는다.

미모의 여성이 날 보고 오빠라고 불렀다.

긴 생머리와 무척 신경 쓰고 관리한 듯한 몸매.

성형 같은 건 하지 않은 깔끔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아정아…….”

“와아! 오빠가 왜 여기에 있어요? 출장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그게 아니면 여행?”

FOB 맴버 중 막내였던 아정.

작은 백을 메고 모자로 반쯤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날 보며 반가워했다.

“출장.”

“언제나 바쁘신 우리 태산 오빠. 지금도 여전하시네요.”

아정이 활짝 웃는다.

- 성격이 통통 튀네요. 귀엽고 깜찍합니다.

샨트리아의 말대로 상큼하고 발랄한 아정.

과거 FOB 막내였던 그녀도 이제 이십대 중반의 어엿한 성인 여성이 됐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바람 쐬러 제주도에 갔다 왔어요.”

“제주도?”

“불러주는 곳도 없고 언니들도 다들 바쁘니까 시간이 남아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국내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그룹 활동할 때는 마음껏 눈에 담지도 못했잖아요.”

밝게 대답했지만 현재 그녀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말.

듣다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은 다른 멤버들과 입장이 달랐다.

언니들과 친하게 지냈던 막내 아정.

리더나 센터는 아니었지만 자기 몫은 꾸준히 잘 해냈다.

하지만 회귀 전 기억에 의하면 아정은 이대로 사라졌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소문없이 연예계 바닥을 떠났다.

대립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속이 상했던 멤버다.

더 챙겨주고 싶었지만 스스로 사양했다.

언니들 사이에서 그만큼 많이 지쳤을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뭐야 FOB 아정 아냐?“

“맞네. 아정.”

“연예인이 저렇게 대놓고 다녀도 돼?”

“언제적 연예인이야. FOB 시절에도 그냥 병풍이었잖아.”

“그래?”

“별 매력이 없었잖아.”

“맞아. 실제로 보니까 얼굴도 나보다 별로네.”

지나가던 여성 둘이 자기네끼리 떠들며 곁을 스쳐 지나갔다.

관리 안 된 몸매에 성형까지 잔뜩 한 얼굴의 두 여성.

- 뭡니까? 자신들과 이 미녀를 비교하는 겁니까?

샨트리아가 어이없는 듯 물었다.

“하.”

아정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세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예인들의 삶이 대부분 이랬다.

잘나갈 때는 하늘의 별이었어도 한 번 추락하면 진창에 박힌 돌이 돼 버렸다.

꼬로록.

아정에게서 들린 소리였다.

“시간 있지?”

“네?”

“밥 먹자.”

“밥요?”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잠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국내선은 기내식 없잖아.”

“……바쁘신 거 아니세요?”

아정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FOB가 활동할 당시에도 자주 볼 수 없었던 친구다.

서로가 워낙 바빴기에 가끔 안부 전화가 다였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와아아아아! 좋아요!!! 오빠가 사주면 언제나 오케이!”

아정이 팔짝팔짝 뛰며 좋아라했다.

“어디로 갈 거예요? 나 회 먹고 싶어요. 요즘 주머니가 가벼워서 싱싱한 회 먹은 지 오래됐어요. 사주실 거죠?”

“제주도에 가서 뭐 했어?”

“라면 먹고 올레 코스 돌고…… 그리고 악상이 떠오르면 작곡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작사도…….”

“작곡도 할 줄 알아?”

“네. 어릴 때 꿈이 잘나가는 작곡가였어요.”

“그런데 지금껏 말 안 했어?”

“……언니들이 저 보고 작곡 재능이 없다고 했었거든요.”

“누가?”

“그게…….”

FOB 멤버들은 연습생 시절과 달리 뜨고 나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정은 그사이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기죽은 채 언니들 사이에 흠 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손에 들려 있는 노트가 그거야?”

“네…….”

비행기 안에서도 작곡을 한 모양이었다.

“볼 수 있어?”

“부족한데…….”

“잠깐만 보고 줄게.”

“네…….”

아정이 작곡 노트를 내밀었다.

스륵.

두툼한 노트 첫 장을 넘겨 음표들을 살폈다.

그리고.

“아!!!”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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