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8장. 진정한 존경
“……이거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들을 너무 풀어줬어요. 과거처럼 수갑 채우고 몽둥이로 후려 패서 아가리를 닥치게 만들어야 하는데…….”
삼청동에 위치한 회원제 요정의 심처.
일송회의 핵심 간부 세 사람이 모였다.
조국일보 회장인 반종현과 다선 의원인 여당의 전운택, 리앤장의 손대균 이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됐다.
따끔하게 주순자와 조근영을 손보려 시작된 언론 작업.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바람이 거세지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대중들의 분노가 상상을 초월했다.
잠깐 모닥불 정도로 끝났어야 할 청와대 비리가 속속 까발려졌다.
물론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알려지는 순간 핵폭탄이 될 것들이 잔뜩 산재해 있다.
들키는 순간 청와대뿐만 아니라 일송회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힐 만한 내용들이 차고 넘쳤다.
그 무수한 건들을 선별해서 봉합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조용하던 손대균이 입을 열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이다.
한때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일송회의 핵심 두뇌를 맡고 있는 장로였다.
“묘수가 있습니까?”
반종현이 물었다.
“회주님의 지시가 따로 없습니까?”
손대균이 반문했다.
이 정도 사건이면 회주가 나서서 정리하는 게 나았다.
그러나 몇 달째 어떤 지시도 없이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만 하십니다.”
반종현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 비해 일머리를 잡는 능력이 부족했다.
평소 같았다면 상관없지만 이런 큰 사건에 있어서는 그만한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발화의 직접 책임자가 반종현이었다.
주순자와 고약하게 얽혀 있는 사적 감정이 이 같은 사태로 화를 키웠다.
자칫 미흡한 대응으로 대책을 세웠다가는 도리어 큰 화를 당할 게 뻔했다.
“손 장로. 말해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운택이 우려가 큰 눈빛으로 물었다.
독재 친일파 정치 가문에서 자라온 그는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다.
하지만 큰 태풍을 이겨낼 만한 지혜는 부족한 인물이다.
특히 손대균 같은 엘리트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정치적 자산으로 큰 장애 없이 오늘 같은 자리에 이르렀다.
그 같은 입장은 반종현도 마찬가지.
그들의 시선이 묵묵히 손대균을 향했다.
“전세가 불리합니다. 큰 거 하나를 내줘야 합니다.”
손대균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담담하게 입 밖에 내놓았다.
“뭘 말입니까?”
“우리가 내줄게…….”
“청와대 주인 자리 말입니다.”
“허억!”
“아, 안 됩니다! 그게 어떻게 잡은 자린데!!!”
반종현과 전운택이 크게 놀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삼권분립이 헌법상 보장돼 있지만 실체적으로는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대법관 자리의 주인을 대통령이 대법원장 재청으로 임명했다.
사실 알고 보면 대법원장 재청은 대부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정권 성향에 따라 대법관들 성향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헌법재판관들도 마찬가지.
중요한 행정을 처리하는 각부 장관과 여러 청장들 자리가 대통령 사람들로 채워졌다.
언론사들을 주무르는 방송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제어 수단으로 국회가 존재하긴 했지만 권력 행사 면에서 대통령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차기 대선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손대균.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사용할 때입니다.”
“음…….”
“허어.”
제 몸의 한 부분을 떼주고 위기를 모면하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한 계책.
“청와대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수방사 사령관을 비롯해 고위 장성들이 수시로 모이고 있습니다.”
손대균의 말투는 다분히 차가웠다.
“설마…… 계엄령을?”
전운택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을 언급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지금 조근영을 보좌하는 놈들이 다 외골수잖아요.”
반종현이 고개를 몇 차례 주억거렸다.
일송회에서 대한민국 권력 중 상당수를 주무르고 있지만 전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특히 군 권력은 더 파악되지 않았다.
독재 시대 임관한 장교들이 현재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장군들이다.
그들의 의식은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조근영은 그들이 모시던 왕의 딸이다.
“빠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내일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 숫자가 더 늘어날 겁니다. 자칫 그들이 청와대 경내까지 진입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건 막아야 합니다!”
“맞아요. 자칫 혁명이라도 일어난다면…….”
전운택과 반종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핼쑥해졌다.
혁명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에 돌입하는 것을 말했다.
한마디로 일송회의 기능이 먹통이 될 수도 있다.
“질서 있는 퇴진이 필요합니다.”
손대균의 설명을 이어졌다.
“그런데 조근영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을 전혀 파악 못 하고 있어요!”
전운택이 급기야 화를 냈다.
머리와 눈치가 없다 보니 허울 좋은 허수아비로 쓰기 위해 세웠던 조근영.
그게 이렇게 큰 화근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사이비 무당 같은 주순자에게 세뇌를 당해 온 세월이 길어 처음부터 자기 주관이 없었다.
본인 스스로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 머리 손질 하나도 불가능했다.
“여당 의원들을 투입하십시오.”
“그 말씀은…….”
“혁명이나 하야를 던지기 전에 국회에서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 총리를 이용해 분리한 증거들을 모조리 대통령 기록 보관물로 봉합해야 합니다. 지저분한 것들이 밝혀지면……. 다음은 고사하고 그다음도 없습니다.”
손대균은 정확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
일시에 침묵이 찾아왔다.
반종현과 전운택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5년만 참으면 됩니다. 그리고 권력을 빼앗겨도 잠깐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오래 묵은 소나무가 흔들릴 것 같습니까?”
손대균이 입술을 치켜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렇죠! 그깟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맞아요! 그리고 야당에 우리가 뿌려 놓은 씨앗들이 적지 않습니다.”
결심한 듯 얼굴이 밝아진 반종현과 전운택.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자처럼……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당하면 그때 뜨거운 맛을 알겠죠. 흐흐흐.”
전운택이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역사가 증명하듯 놈들은 분열로 망할 겁니다. 그때 다시 잡는 것으로 하죠……. 이번에는 10년으로 그치지 말고 100년 동안 길게!!”
반종현이 이를 드러내놓고 야망에 찬 눈빛을 빛냈다.
“그래야죠. ……커다란 변수가 없다면…….”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읊조리는 손대균.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빛이 돌았다.
속내는 전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살기 위해 그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팔았다.
그리고.
‘태산아 보고 싶구나…….’
***
“무슨 일 있습니까?”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물었다.
- 뉴스 안 보셨습니까?
“세상 인연을 끊고 영혼을 재충전하고 있었습니다.”
- 아…… 그러셨구나.
양우석 의원은 나의 농담 같은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큰 사건이라도 터졌습니까?”
- 대통령이 저지른 비리로 지금 대한민국은 시민들이 든 촛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양우석 의원의 목소리가 살짝 들떴다.
국민적 분노가 조근영과 여당을 향했다.
그 덕에 살판 난 야당.
“그래요?”
- 회장님 선견지명이 대단하십니다! 말씀하시던 큰 사건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습니다! 존경합니다!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여당에 엄청난 정치적 위기가 닥칠 거라 언급했었다.
그에 대비해 만만의 준비하라 오래 전부터 누누이 당부해 왔다.
“뉴스를 살펴봐야겠군요.”
-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사하 공화국입니다.”
- 사……하 공화국이요?
양우석 의원이 크게 당황했다.
지식인이라면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어딘 줄 알 것이다.
“휴가를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 언제 오실 수 있으십니까?
“왜요?”
이 또한 알면서도 물었다.
양우석 의원이 이 시점에서 연락할 일은 불 보듯 빤했다.
- 대표님이 뵙고자 청하십니다.
“건강은 다 회복되셨습니까?”
- 물론입니다! 신이 도우셨는지 예전보다 더 건강해지셨습니다.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신이 바로 나다.
성수와 마법으로 깔끔하게 낫도록 했다.
앞으로 다가올 5년.
요구 많은 국민들 치다꺼리하다가 머리가 하얗게 셀 것이다.
“내일 오후에는 도착할 거 같습니다.”
- 그럼…….
“늦은 저녁이라도 시간 괜찮으면 예전 그곳에서 9시에 뵙도록 하죠.”
- 알겠습니다! 바로 시간 잡도록 하겠습니다.
양우석 의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누가 봐도 엄청난 사건이다.
야당에서는 누가 나와도 대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장 유력한 주자인 김현재 대표의 측근이 된 양우석 의원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 넵! 기다리겠습니다!
띠릭.
통화가 끝났다.
- 흐흐. 이곳에서도 바쁘십니다.
샨트리아가 아는 체를 해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창밖을 봤다.
산봉우리에 눈이 쌓였다.
어느새 찾아온 겨울.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태산 씨?”
유리 선배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끼릭.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 언제 왔어?”
손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눈빛에 담겨 있는 깊은 그리움과 뜨거움.
“지금.”
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손유리를 향해 팔을 벌렸다.
타닥.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가슴에 푹 안기는 그녀.
산뜻한 그녀만의 체취가 깊게 맡아졌다.
- ……진짜 존경합니다! 행님!!!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