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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4장. 절대 침 뱉지 않을게요 (1,269/1,284)

1294장. 절대 침 뱉지 않을게요

파아앗! 팟!

빛이 사정없이 터졌다.

그리고 등장하는…….

“어머! 정령들이네!”

나타샤가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내가 소환할 수 있는 4대 정령들이 한꺼번에 다 나타났다.

반갑게 나를 아는 체하다가 나타샤를 보고 모두 흠칫 몸이 굳었다.

“정령 처음 봐?”

“응! 나 처음 봐.”

“레드 드래곤은 불의 정령과 대단히 친하다고 하던데 아니야?”

“우리 샨 오빠는 싫다고 했어.

“왜?”

“불질이 시원찮대.”

“…….”

화염 브레스 전문인 레드 드래곤이 만족할 만한 불질 전문가는 정령왕밖에 없다.

드래곤들은 각 종족 특성에 맞게 정령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애들이 더 이상하다.

나타샤에게 두려움을 보였다.

드래곤 가문 핏줄을 알아본 듯했다.

“나타샤.”

“왜?”

“얘들한테 침 뱉으면 안 돼.”

“호호. 알았어. 이렇게 귀여운 동생들에게 어떻게 침을 뱉어.”

나타샤가 호의를 보였다.

침을 뱉지 않는다는 건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그제야 정령들의 얼굴이 좀 풀렸다.

나와 계약했지만 드래고니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다들 잘 지냈지?”

정령들과 인사를 나눴다.

진화했지만 전투력은 아무래도 떨어졌다.

소환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반드시 이들이 필요했다.

“나타샤 아공간 가방 있지?”

“응.”

“몇 개 줘.”

“여기!”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내주는 나타샤.

“얘들아. 부탁이 있다.”

정령들에게 지금껏 사소한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정령들은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들.

나와 친화력도 꽤 높았다.

“나타샤가 오늘 이사하는 날이야. 레어 안에 있는 물건들 이 가방 안에 싹 털어 넣어. 흙저씨와 돌이가 퍼 담으면 화룡이가 불질로 정화를 시켜. 그리고 인어가 깨끗이 씻어버려.”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

“원래 이사 나갈 때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나가야 복 받는 거야.”

이사를 들어갈 때나 나갈 때 깨끗하게 공간을 정리함이 예의다.

잘못하면 재수 옴 붙는다.

- 생각하는 게 완전 아재야.

옛 선인들 말 따라서 나쁠 것 없다.

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한 자와 함께 시간이 공존했던 장소다.

이별 후에는 깔끔해야 업이 생성되지 않는다.

“얘들아. 내가 도와줄게.”

나타샤의 기분이 좋았다.

- 여황제가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흐흐.

알파닥이 음흉한 웃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언제나 팩트로 심장을 찔렀다.

“…….”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나타샤는 지금 완전 신혼집 보러 가는 분위기다.

엄청난 지참금을 들고 말이다.

아린이 알면 심정이 상할 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타샤를 그냥 놔두기에는 불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륙과 제국의 안전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는 거다!

- 정신승리 오지고요.

가끔 알파닥은 사람 심리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 희생 맞습니다. 베커 님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다른 드래곤이 나섰을 겁니다. 중간계에 해악을 끼치는 드래고니아는 제거 1순위입니다.

샨트리아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오! 흙저씨 동생 힘 좋은데? 근육이 완전 짱이야!”

크르르르르.

땅이 울렸다.

나타샤의 격려를 받으며 대지의 정령의 힘을 썼다.

황금 동산을 흙저씨가 뭉텅이로 들어올렸다.

그사이 진화한 흙저씨.

입구가 확장된 마법 주머니에 포크레인처럼 퍼 담았다.

그렇게 시작된 이사.

센터 직원이 된 정령들은 쉬지 않고 이삿짐을 날랐다.

그리고 찾아온 마무리.

거대한 레어는 먼지 하나 남지 않았다.

- 한때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오우거 힘줄 씹어가며 마법을 배웠는데…….

유아기 시절을 회상하는 샨트리아.

죽음은 모든 종족에 공평한 조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년을 넘게 살아왔던 드래곤도 과거의 일이 엊그제처럼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굳이 시간을 나눠 기억할 필요가 없는 과거.

선지자들이 그 모든 걸 싸잡아 전생이라 말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오빠! 다 됐어!”

나타샤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1000년이 넘는 동안 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는 나타샤.

센터 정령 직원들은 모두 돌아갔다.

“좋아?”

“……행복해.”

나타샤가 활짝 웃는다.

슥슥.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줬다.

“빨리 가자.”

나타샤가 손을 잡는다.

이삿짐은 아공간 가방에 담겨 나타샤의 아공간에 보관됐다.

“그럼 집에 가볼까.”

좌표를 떠올렸다.

-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샨트리아가 대답했다.

내 전용 워프 머신 샨트리아.

파아아앗!

빛이 다시 한 번 터졌다.

그리고.

***

“……아담하네? 별장이야?”

“아니.”

“그럼 집?”

살짝 실망하는 목소리다.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는 거 아니래.”

“누가?”

“우리 어머니가.”

“호호. 그렇다면 인정할게.”

큼지막한 드래곤 레어에 살던 나타샤의 눈에 왕성 크기는 시골집 별장 수준일 거다.

“골드 드래곤 깃발도 펄럭이고 오빠 왕이야?”

임시 황성으로 사용하는 왕성의 탑을 보고 하는 소리다.

붉게 밝음이 찾아오는 새벽에 성으로 돌아왔다.

“공작.”

“왕 하자.”

“…….”

“내가 만들어줄게. 내가 침 좀 뱉으면…….”

“침은 안 돼!”

“그래 알았어. 난 순수하게 복종하는 나타샤니까.”

순수한 복종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사용되고 있다.

“나타샤.”

“응?”

“말할 게 있어.”

“뭐?”

“사실 난…….”

타다다닥.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템포다.

그리고.

“베커!”

아린이 나타났다.

밤새 기다렸던 듯 수척해 보이는 아린의 얼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다…….

나타샤를 봤다.

- 으흐흐흐흐! 시작됐다!

알파닥이 음흉한 웃음을 흘린다.

본격 개봉하는 삼류 막장 드라마 전개다.

파바밧.

두 여자 사이에 불꽃이 튀겼다.

“누구…….”

아린이 먼저 물었다.

나타샤와 난 아직 손을 잡고 있다.

아린도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묻는 예쁜 언니는 누구?”

나타샤가 되물었다.

“…….”

아린이 날 보며 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지금 손잡고 있는 여인은 누구냐고.

- 이 분위기를 뭐라고 합니까? 가죽에 소름이 돋습니다!

- 다음 장면 궁금해?

- 뭔지 모르지만 폭발할 것 같은데…….

- 마계에서 이러면 끝장을 봐.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

- 나타샤가…… 승리하겠군요.

“아린. 소개할게. 여기…….”

“아린 언니? 와아! 만나서 반가워요!”

“???”

나타사갸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아린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어, 언니요?”

아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정말 예뻐요. 나타샤라고 불러줘요.”

“나타샤?”

“헤에. 베커 오빠 동생이에요.”

“아!”

- 동생? 언제부터?

알파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작스런 반전 전개다.

나타샤가 갑자기 아린을 언니라고 부르며 자신을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잘 부탁드려요.”

“네? 네에…….”

아린이 나타샤의 말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우리 기다렸어요?”

“네에…….”

“제가 머물 방은 어디에요?”

“???”

“성 구경시켜 주세요. 제가 이런 곳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

아린이 당황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나타샤의 예측 못 할 대사와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이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나탸사가 묘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리고.

“언니에게는 절대 침 뱉지 않을게요.”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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