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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9장. 뜨거운 동맹 (1,264/1,284)

1289장. 뜨거운 동맹

휘이이이이잉.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내성 앞으로 바람이 거칠게 불어왔다.

비가 오려는 듯 하늘빛이 심상치 않다.

먹빛 구름에 가려 달빛도 없다.

“비가 오려나…….”

“무릎이 쑤시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 봅니다.”

“성수 한 병 드려요?”

“요즘은 성수도 안 들어요. 신의 품으로 갈 때가 됐는지…….”

“갈디아 신관은 이제 겨우 100세입니다. 수십 년은 더 버텨야죠.”

“신께서 허락한다면 더 살 수 있겠죠.”

깨끗하고 화려한 사제용 로브를 착용한 이들이 조용히 담소를 나눴다.

나이는 중년에서 노년까지 다양했다.

야밤에 만나 잡담이나 나누는 것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 다 신분이 대단한 인물들이다.

크로얀 제국 임시 황도로 결정된 이곳 성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들이었다.

각 신전을 대표하는 대신관들.

멀찍한 거리에 그들을 섬기는 사제들이 시립해 있다.

대신관들은 그들 자체가 신전을 대표하는 신분이자 신전의 명예였다.

그런 자들 다수가 내성 앞에 섰다.

“진짜 날을 세야 합니까?”

“……저기 디아논 신관에게 물어보십시오.”

10여 명의 대신관들이 성문 제일 앞에 앉아 있는 듀에라 신전의 대신관을 바라봤다.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는 두 명의 대신관.

듀에라 신전의 디아논과 카빌라 선전의 푸쉬코 대신관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뱉지 않았다.

귀에 들리는 동료 대신관들의 이야기도 못 들은 척했다.

사실은 이 자리가 몹시 부끄럽고 창피했다.

같은 대신관 신분이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격이 달랐다.

신전도 신도의 수와 신빨에 따라 역량과 수준이 정해진다.

1급 신전의 대신관이 하급 신전 대신관들과 줄을 함께 선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참아야 했다.

베커 공작이 신마저도 무시하는 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레카 신전의 쥬셉이 배신을 때렸다.

‘쥬셉! 이 나쁜 인간!’

아직도 그 인간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생각할수록 열 받았다.

베커 공작과 쌍벽을 이룰 만큼 싫었다.

타다다닥.

그때 누군가 급하게 달려왔다.

빨간 로브를 착용한 중년의 신관.

머리칼이 몇 가지 색으로 곱게 물들었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외모.

“아, 아니 다들 이러실 겁니까! 헉헉!”

나타나자마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버럭 소리 질렀다.

“뭐가 말입니까?”

한 명의 대신관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배신입니다!”

“배신요?”

“선착순이라 말을 하셨어야죠!”

“그게 왜 우리 탓입니까? 평소 행동이 느린 카시노 대신관이 문제지요.”

“뭐라고요?”

“예술의 신 디아르소스 님을 모시는 신관들의 행동이 느린 건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에게 시비입니까?”

“지금 우리 디아르소스 님이 슬라임 같다고 놀리는 겁니까!”

카시노 대신관의 천연 염색 머리칼이 빳빳하게 섰다.

다름 아니라 예술의 신 디아르소스의 다른 이름은 시비의 신이다.

까칠한 예술의 신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신관들.

대신관 카시노도 다르지 않았다.

“됐습니다. 피차 피곤하니 입을 다뭅시다.”

대신관들 대부분 얼굴이 굳어 있다.

사담을 나누고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원래라면 느긋하게 최고급 성수를 마시고 어린 사제들에게 안마를 받으며 꿀잠을 청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지금 성문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그래요! 다들 얼마나 혜택을 받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카시노 대신관이 목청 높여 말하며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그 순간.

“줄.”

그동안 잠자코 있던 카빌라 신전의 푸쉬코 대신관이 눈을 번쩍 뜨며 한마디 던졌다.

찌릿.

전쟁의 신 카빌라의 대신관의 기세가 확 전해졌다.

“아니 같은 대신관들끼리 줄이 어딨다고…….”

카시노 대신관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짜증이 최고조로 치솟은 대신관들.

파바바바밧!

그들 무리가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지금 해보자는 거요!”

“여기 줄 안 보여요?”

“선착순!!!”

다다다 내뱉는 대신관들의 엄청난 압박.

살기가 실려 있었다.

“……섭니다. 서요.”

바짝 쫀 카시노 대신관.

대신관들의 가장 뒷꽁무니로 걸음을 옮겨 조용히 줄을 섰다.

번쩍!

그때 하늘에서 터지는 강력한 낙뢰.

콰르르르르르르릉.

천둥소리가 뒤를 이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리고 곧바로 쏟아지는 강한 빗줄기.

“하아아아…….”

대신관들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

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샨트리아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아.”

짧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드래곤이 저렇게 유치할 줄 상상이나 했던가.

중간계의 절대자이자 만년 이상 살아온 지적 생명체.

고귀한 존재라 불리며 엘프를 비롯해 모든 종족들이 두려워하고 추앙했다.

그러나 실상은…….

- 쯧쯧. 저런 유아적 정신세계로 살아가니 미쳤지.

알파닥이 혀를 찼다.

공감 100이다.

- 닥쳐 마성녀야! 너도 내가 보기에 만만치 않은 똘녀야!

- 똘녀? 너 말 다했어! 8서클 가죽만 남은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 내가 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에 너 같은 마족 따위는 단박에 브레스로 태워 죽였어!

- 흥! 나도 마찬가지거든! 너 같은 광룡은 잡아서 포를 뜨고 가죽으로 현관 앞 발판을 만들었을 거야!

- 와아아! 이 마성녀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 꼬우면 덤비시든가!

- 그래! 맞짱 뜨자 떠!

“…….”

드래곤 가죽과 마족 성녀의 대화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수천 년을 살았는데도 대화가 어떻게 저리도 유치할 수 있을까.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이런 식으로는 안 싸운다.

둘 다 닥쳐!!!

강하게 의식을 담아 외쳤다.

- …….

그렇게 입을 다문 똘아이와 똘녀.

수천 년을 넘게 살아온 존재들이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대놓고 증명했다.

“뭐야? 우리 샨트리아 오빠 소식 아는 거야?”

간절하게 묻는 나타샤.

“어……. 알아”

“어떻게? 우리 오빠 지금 어딨어? 살아있는 거야?”

다다다 묻는 나타샤.

샨트리아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절절하게 음성에 묻어났다.

“그게…….”

샨트리아가 죽어 이제는 가죽만 남겼다는 걸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준 샨트리아에 대한 정이 남다를 게 빤했다.

“말해줘. 진실을 알고 싶어.”

나타샤가 정색하며 다시 묻는다.

품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고 묻는 그녀.

거리는 약 30센티.

나타샤의 떨리는 숨결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나타샤를 지켜주고 싶은 보호 본능이 강하게 일었다.

- 수컷들이란…….

알파닥의 포기한 듯한 목소리.

- 그게 아닌데…….

샨트리아가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샨트리아는……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어.”

어렵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마음이 아려왔다.

“그럼…… 죽은 거야?”

나타샤가 죽음을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했다.”

“아!”

나타샤가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파르르르.

어깨를 떠는 그녀.

“나타샤…….”

안타까움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버린 드래고니아 나타샤.

샨트리아와 정이 상당히 들었던 모양이다.

광룡이라 알려진 샨트리아지만 나타샤에 대해서만은 각별했던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하게 나쁜 존재는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 그게 아닌데……. 정말 아닌데.

샨트리아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읊조렸다.

뭐가 아냐?

“으흐흐흐흐.”

그때 낯선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

품에 안겨 있던 나타샤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

나타샤가 갑자기 창고가 떠나가라 광소를 터트렸다.

콰르르르르르르.

레어가 들썩였다.

귀가 아플 정도였다.

샨트리아가 죽었다는 소리에 아예 미쳐버린 것 같았다.

- 그게 아니라고요!!!

샨트리아가 답답한 듯 외쳤다.

도대체 뭐가 아닌데!

“아오 썅!”

그때 귀에 들려오는 거친 말투.

스윽.

그제야 나타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눈빛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애절하고 간절하던 눈빛은 어디로 가고 거칠고 까칠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1만 년은 끄덕없다고 구라치더니 벌써 뒈진 거야? 세상에 믿을 드래곤 새끼 하나 없다니까.”

껌만 안 씹었지 불량기가 철철 넘치는 나타샤의 목소리.

“…….”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입이 떡 벌어졌다.

-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샨트리아의 말이 이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내가 잠시 착각한 거 같다.

- 당해봐야 맛을 알지. 쯧쯧.

알파닥이 혀를 찼다.

그래 나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남이다!

- 순수남 다 얼어 죽었어? 순수의 다른 말이 바로 바보 멍청이 쪼다라는 말이야!

팩트 폭력에 심장이 아프다.

“오빠~.”

그 순간 나타샤가 날 부른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스으윽.

동시에 허리 쪽에 느껴지는 단단한 손길.

나타샤가 날 부드럽고 강하게 껴안았다.

나타샤를 봤다.

뜨겁고 끈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타샤의 눈빛.

스륵.

그녀의 긴 오른쪽 다리가 내 다리를 감싸왔다.

그리고

“우리…… 뜨겁게 동맹 한번 맺어볼래?”

ㅜ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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