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6장. 나타샤
화씨?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황금빛에 흔들리던 영혼이 바짝 긴장했다.
이곳은 드래곤 레어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특히 내가 목표로 했던 보물창고.
- 나타샤!!!
그때 샨트리아가 목소리의 주인인 듯한 여성의 이름을 크게 말했다.
아는 분?
- 가디언입니다.
아! 가디언…….
설마 리치?
드래곤 레어를 경비하는 가디언들 상당수가 리치라고 들었다.
불로불사의 리치는 드래곤의 훌륭한 종이다.
심장을 소유만 하고 있어도 리치는 조종 가능했다.
그런 리치는 레어 담당 경호원으로 1순위 취급됐다.
- 드래고니아입니다.
드래고니아라면 드래곤의 피가 섞인 그 존재?
- 맞습니다.
“아!”
나도 이 동네 와서 말로만 들었던 존재다.
드래곤만큼이나 마주치기 힘들다는 생명체가 드래고니아다.
설마…… 딸?
- 아닙니다. 머리 색이 다르지 않습니까.
드래고니아는 드래곤들이 인간 유희 중에 창조한 생명체를 말한다.
지루한 기간 동안 인간을 비롯해 여러 종족의 모습으로 유희하는 드래곤.
보이는 모습은 완벽하게 해당 종족의 모습을 띤다.
생물학적 유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드래곤은 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드래곤 유전자를 이어받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너 뭐야? 방어 마법진은 어떻게 뚫었어?”
팟!
보물창고는 황금산이다.
대충 봐도 10층 높이 정도 되는 황금이 산처럼 쌓였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황금 왕좌에 앉아있던 드래고니아가 순간이동 마법을 펼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후욱 하고 엄청난 위압감이 감지됐다.
숨이 턱 막혔다.
딱 봐도 나보다 강하다.
- 마지막으로 볼 때 8서클 마법사였습니다.
요즘 개나 소나 8서클이다.
“내가 묻잖아. 너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들어왔어? 여기 온 목적이 뭐야? 너도 우리 오빠 보물 노리고 온 거야?”
오빠? 누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오빠라 호칭할 만한 존재는…….
- ……접니다.
미친!
샨트리아 너 그런 취향이야?
- 아, 아닙니다! 저 블랙 드래곤에 알레르기 있습니다. 걔들 침 뱉을 때마다 독이 나오는데…….
샨트리아를 우리 오빠라고 부르는 여인.
미소녀다.
TV에서나 볼 법한 세계 유명 축구 선수 여친으로 등장하는 서양 모델처럼 그냥 늘씬하다.
검은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를 입었다.
몸에 가죽이 피부처럼 착 달라붙었다.
게다가 이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검은 머리카락이다.
눈동자도 같은 빛깔이다.
다만 피부는 더할 나위 없이 하얗다.
마치 1000년 동안 햇빛 한번 못 본 것처럼 말이다.
- 맞습니다. 1000년 전에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드래고니아 나타샤.
허리에 척 손을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과 호기심이 번갈아 비친다.
바로 손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성격이 그나마…….
- 더럽습니다.
응?
- 안 보입니까?
뭐가?
- 나타나면서 동시에 독을 뿌렸습니다.
독? 어디에?
- 가슴 중앙요.
샨트리아의 말에 가슴팍을 봤다.
치이이이익.
세상에!
언제 독을 뿌렸는지 새카만 독에 옷이 탔다.
샨트리아 가죽이 아니었다면 피부와 뼈, 심장까지 독이 침범했을 것이다.
“어? 안 녹네?”
검은 눈동자를 사악하게 반짝이는 나타샤.
샨트리아! 당신 미쳤어!
저런 성격 더러운 여자를 왜 가디언으로 삼아!
- 그래야 집 잘 지키죠.
“…….”
할 말이 없다.
팩트다.
광룡 샨트리아를 오빠라 부르는 블랙 드래곤이 탄생시킨 드래고니아.
이 정도로 차갑고 악독해야 레어를 확실히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너 진짜 정체가 뭐야? 나와 같은 블랙 일족 드래고니아? 그것도 아니면 마족?”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묻는 나타샤.
남자라면 단박에 사랑에 빠질 만큼 매력이 철철 넘쳤다.
독을 제대로 품은 검은 장미 같달까?
“그게…….”
“반가워. 난 나타샤라고 해.”
훅 손을 내민다.
누가 봐도 순수한 행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심스러웠다.
나는 조금도 쫄지 않았다.
“크로얀 제국 베커 장 황실수호공작입니다.”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빠지지지직!
“아아아아악!”
***
‘어라? 안 타네?’
나타샤는 오늘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신기한 동물을 만났다.
마법 도감에서나 보았던 인간이다.
1000년 전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이곳에서 생활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모습 그대로다.
얼굴과 몸, 옷도 바뀐 적이 없다.
드래곤 샨트리아가 주인이다.
그를 볼 때마다 무서움을 느꼈다. 공포 그 자체.
본능이 알았다.
오빠라고 부르라며 명령했다.
그대로 따랐다.
마법도 샨트리아에게 배웠다.
매일 수련하며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샨트리아는 조금도 친절하지 않았다.
내내 구박하면서 이것저것 잡다한 일거리를 지시했다.
마법을 배워 엄청난 크기의 레어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썼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공간에는 샨트리아와 자신밖에 없었다.
유일한 친구라고는 벽에 꽂힌 수만 권의 마법서와 여러 분야의 책이 전부였다.
각종 언어도 마법을 통해 습득했다.
말할 대상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책 속의 존재들과 대화를 나눴다.
외롭다거나 고독하다는 등의 감정이 어떤 건지 몰랐다.
마법서를 통해 자신이 드래고니아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단한 능력자로 불린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이곳을 경호하고 청소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늘도 말끔히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에서 쉬는 중이었다.
한때 샨트리아가 차지했던 황금상의 권좌.
몇백 년 전부터 비어 있었다.
최근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보관 창고에 쌓여 있는 엄청난 식재료를 이용해 맛있는 요리도 만들어 먹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는 요리책도 여러 권 있다.
일을 끝내고 왕좌에 앉아 요리한 음식과 함께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
식재료 보관 창고에는 각종 술도 구비되어 있다.
9서클 드래곤이 걸어놓은 마법 때문에 영구적으로 보존된다.
그렇게 일상의 여유를 누리는 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
한편 이 변화가 신기했다.
인간 남자가 확실했다.
자신보다 키가 크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인사로 가볍게 독을 뿌렸다.
기분과 명령 이행은 별개다.
오빠 샨트리아가 항상 말했던 게 있다.
이곳에 나타난 모든 침입자들은 나쁜 것들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독을 뿌려도 죽지 않는 인간 남자.
악수를 청했다.
멍청하게 아무 의심 없이 손을 잡았다.
순간 마법을 펼쳤다.
8서클 압축 전격 마법.
당하는 순간 온몸의 뼈와 세포들이 모조리 타들어 갈 것이다.
“왜 안 죽는 거야? 너 나보다 강해?”
나타샤가 진심으로 순수하게 물었다.
독과 마법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인간 남자.
씨익.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리고.
“나타샤.”
“어! 내 이름을 알아?”
“물론이지.”
“어떻게?”
나타샤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 순간.
“왜냐하면…… 오늘부터 내가 너의 새로운 오빠니까.”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