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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9장. 앵벌이. (1,254/1,284)

1279장. 앵벌이.

파아아앗!

갑자기 거대한 검은 거울에서 새하얀 빛이 터졌다.

그리고.

“후훗. 생각보다 일찍 각성했군.”

운무가 발아래로 파도처럼 흐르는 꽤 높은 산의 정상.

단단한 절벽 위에 축조된 거대하고 장엄한 신전 같은 건물에서 한 남자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검은 머리칼이 눈에 띤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은 마치 전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깨를 덮은 새카만 망토를 둘렀다.

얼굴에는 환하게 터진 빛을 흡수하는 검은 가면을 썼고 코까지 완벽하게 가려졌다.

그의 주변으로 퍼지는 은은한 오라도 검은빛을 띠었다.

자연스러운 어둠과는 그 농도가 달랐다.

농밀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이 연신 풍겨 나왔다.

그 남자가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거울 속에 한 존재가 보였다.

무언가에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예정되어 선택된 자여……. 이제부터 너에게 또 다른 시련과 운명이 닥칠 것이다. 부디…… 승리하기를 기원하노라. 후후훗.”

남자는 거울 속을 향해 승리를 축원하면서 묘한 웃음을 날렸다.

감춰진 비밀이 많은 남자.

거울 속 얼빠진 표정의 인간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만 알고 있는 거울 속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것.

“미래를 바꾸거라. 네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네가 살던 세상과 이계…… 그리고 이곳까지!”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내뱉는 남자.

그때 거울 속 남자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혼란 속에서 고심에 빠진 인간 남자.

그의 눈빛에는 강렬한 분노가 넘실거렸다.

***

튜토리얼이라니! 뭔 참신한 개소리야!!!

믿기지 않았다.

인생이 레벨업 게임도 아니고!

- 뭔 개소리? 다시 살아난 특혜는 말이 되고?

알파닥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회귀 비밀을 알고 있었던 알파닥.

어! 그런데…… 왜 네가 보이냐?

정령활을 들지 않았음에도 알파닥이 눈에 보였다.

- 이제부터 본 게임이니까. 흐흐.

알파닥이 팔짱을 끼고 묘하게 웃는다.

비웃음과 조롱, 뭔지 모를 음모가 잔뜩 섞여 있다.

……넌 레벨이 얼마야?

드래곤 의념에 빙의된 8서클 마법사를 처리한 직후 레벨 100이 됐다.

오늘 하루 동안 때려잡은 마법사들과 귀족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폭렙 정도는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초보자 연습 코스란다.

- 이제야 내 레벨이 궁금해?

알파닥이 본 적 없는 미소로 피식 웃는다.

“…….”

조금 전처럼 함부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딱 봐도 고 레벨인 눈치다.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도(道)가 나타났다는 선사들의 말이 퍼뜩 뒤통수를 때렸다.

- 흐흐. 축하한다. 이제부터 몸으로 피로 눈물로 때워야 할 시간이다.

네?

하르케우스가 음흉한 목소리에 축하 메시지를 담았다.

-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하르케우스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 하르케우스 님을 뵙습니다.

알파닥은 이제야 하르케우스를 발견했다.

확인하자마자 공손하게 고개 숙이는 알파닥.

나를 대할 때와는 천양지차다.

내가 100레벨이 되는 순간 여러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 네 주인은 잘 계시더냐?

- 무탈하십니다.

- 조만간 놀러 간다고 전해드려라.

- 알겠습니다.

마신과 아는 사이인 듯한 하르케우스.

생각보다 사이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어차피 신계나 인간계나 비슷비슷하다.

수준이 비슷한 자들끼리 모이고 다 해 처먹는 거.

“무슨 일 있어요?”

아린이 묻는다.

보이지 않는 신급 존재들과의 대화를 그녀는 듣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어.”

“정말이죠?”

“그럼. 이제 다 끝났어. 마무리만 하면 돼. 나만 믿어.”

- 나만 믿어? 호호호. 우리 오빠신 아직도 착각하시네. 앞으로 더 빡시게 굴러갈 건데.

알파닥 난 괜찮은데 아린은 빼줘라.

- 걱정 마. 이곳에서는 이제 별일 없을 테니까.

이곳에서는? 그게 무슨 말이야?

알파닥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 그건…… 직접 경험하면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미리 겁먹지 마. 끽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것도 유경험자인데.

알파닥…….

생글거리며 웃는 귀엽고 깜찍한 마족 미녀.

예뻐서 참아 준다.

- 무슨 일 있나요?

잠자코 있던 비비안이 묻는다.

목소리에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하다.

그녀도 튜토리얼이 끝났다는 사실은 몰랐다.

오늘 도움 고마워.

비비안을 바라봤다.

신비로운 푸른빛 오라에 휩싸여 있는 최상급 정령.

그녀의 공이 적지 않았다.

-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왕께서 부르십니다.

비비안이 아쉬운 눈으로 나를 본다.

바쁜 일 끝나면 부를게.

- 알겠어요. 몸조심하세요. 저도…… 당신을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비비안의 결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강했지만 그건 인간들의 기준에서 본 힘이다.

강자들 틈에서 비비안은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비비안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 와아아……. 품에 애인을 안고 다른 여성체에 그런 눈빛 보내도 돼? 꿈이 하렘이야?

알파닥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수컷들이란 본래 그러라고 신께서 창조하셨다.

- ……네.

하르케우스가 한마디 뱉자 알파닥이 바로 꼬리를 만다.

그런데 진짜 꼬리가 있는 건 아니지?

- 성체가 되면서 꼬리는 다 떨어지거든!!!

진짜?

놀라서 되물었다.

마족에 대해서 아는 게 얼마 없다.

성격 파탄에, 생각하는 거라고는 싸움박질밖에 없다는 투신(鬪神) 종자들.

- 일반화의 오류는 치워주면 고맙겠어. 마족들이 얼마나 고상한 존재인데! 

너를 보면 답이 나오는데?

- 난 특별한 존재니까 그렇지! 마족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강렬하고…… 또…….

말을 하다말고 알파닥이 입을 다문다.

순수하고 강렬하게 무식하겠지.

- 오빠신!!! 

알파닥이 빽 소리지른다.

그때.

- 카르마 포인트가 입금될 예정입니다.

레벨업과 다른 카르마 포인트 정산 시간.

기대가 컸다.

오늘 획득할 포인트가 장난 아닐 거다.

- 광룡 샨트리아를 제압한 당신께 여러 신들이 포인트를 매우 많이 지급했습니다!

그렇지! 

샨트리아가 풀려나면 중간계가 어지러워진다.

신도 무서워하지 않는 샨트리아를 말 그대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 하르케우스 신께 계약대로 포인트가 분배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눠줘야 할 나의 포인트.

아쉽지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남는 장사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이 제국을 위해서…….

- 각 왕국과 고위 귀족들이 당신을 저주했습니다.

-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듬뿍 지급됐습니다.

어둠의 포인트도 포인트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모두에게 완벽할 수 없는 법.

인간들은 조금만 힘들면 자신을 창조한 주신에게도 욕을 하는 괘씸한 존재다.

- 최종 정산된 카르마 포인트 중에서…….

알림음이 이어지다 말고 잠시 멈췄다.

왜? 또 뺄 거 있어?

- 안전한 튜토리얼 제공 대가로 마신께 포인트가 대폭 지불됐습니다.

뭐, 뭐라고? 마신은 또 왜!!!

- 본 게임용 참전금이 지급됐습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 최종 포인트 정산이 완료됐습니다.

꿀꺽.

뭔지 모를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 포인트가 마이너스 됐음을 알려드립니다.

“허억……!”

심장이 그대로 멈출 것 같은 충격이 몰려왔다.

그동안 아등바등 살면서 알토란같이 저축해 놨던 나의 포인트!

지금껏 마이너스로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뒤통수 맞고 포인트를 다 빼앗겼다.

나 본 게임 안 할래! 그러니까 돌려줘!

- 신용 우수 고객 전용 마이너스 포인트 통장에서 이미 지불됐습니다.

“!!!”

난 마통 개설한 적 없어.

그러니까 무효야! 무효!

- 1년 이내 미상환시 포인트 신불자로 등록되어 신들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경고드리는 바입니다.

망삘이 느껴지는 차가운 알림음의 메시지.

나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대로 몸이 굳었다.

- 오빠신……. 방법은 딱 하나야.

알파닥이 가까이 다가오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 방법이 뭔데!!!

- 알잖아? 앵벌이! 호호호호호호.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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