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6장. 따듯한 금융치료!
그게 최선은 아니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신의 반열에 오른 드래곤 로드 하르케우스.
자신이 몸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음흉한 레드 드래곤 샨트리아가 폭력에 굴해 가죽을 벗겠다 스스로 말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미 대사건이다.
인간에게 무릎 꿇은 최초의 드래곤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질 더러운 광룡이 눈물 콧물 흘렸다.
사실 이런 인간은 처음 본다.
드래곤의 의념에 감염된 인간 마법사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후드러팼다.
평범한 정신세계로는 절대 보일 수 없는 행동이다.
광룡 샨트리아가 비록 의념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라지만 엄연히 드래곤이다.
중간계의 여러 종족과 동물들은 드래곤에게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다.
드래곤 피어는 신이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인간 베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드래곤의 정신을 보란 듯이 박살냈다.
레드 일족에게 이 소문이 들어가면 하나도 좋을 게 없었다.
아무리 죽었어도 일족의 명예는 지켜져야 했다.
과거 하르케우스가 샨트리아의 가죽으로 갑옷을 남겼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였다.
드래곤들의 생사 대결에서 패배했다 해도 마지막 소원은 들어줘야 한다.
죽은 드래곤 일족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겁 없는 인간이 사정도 모르고 사건을 크게 쳤다.
레드 일족의 고룡이었던 샨트리아의 가죽 갑옷을 당당히 요구했다.
“그게 무스으 마이니까?”
샨트리가 뭉개진 입술을 움직여 겨우 묻는다.
마나가 통제돼 치료 마법도 펼치지 못하는 상태다.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교육이 더 필요한 거야?”
인간 베커가 묻는다.
“모라서 무는 거이다!”
샨트리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다급하게 답했다.
가죽 갑옷을 벗어주고 마나 품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하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비용이 빠졌잖아.”
“네에???”
부은 눈동자를 겨우 껌벅이며 샨트리아가 다시 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말뜻을 이해 못 한 것이다.
“1만 년씩 살면서 도대체 뭘 배웠어? 눈치도 없어?”
인간 베커가 차갑게 힐난했다.
“…….”
샨트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드래곤에게 눈치라는 게 있을 턱이 없었다.
일족의 강력한 보호를 받는 해츨링 시절을 빼고 성년이 되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적이 된다.
같은 일족이 아니면 중간계에서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다.
갑 중의 갑 드래곤에게 눈치를 못 배웠다고 채근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시간을 투자해 인력을 제공하면 인건비를 계산해줘야 해. 특히 너 같은 악룡을 교화시키는 데에는 교육비에 추가로 각종 수당이 붙어.”
“!!!”
샨트리아가 퉁퉁 부은 눈을 겨우 크게 떴다.
너무나 알아듣기 쉬운 설명이다.
바로 인간 베커가 원하는 바를 알아챘다.
하지만.
“지그므은 가지게 업으므이…….”
“아공간 같은 거 없어? 드래곤이라면 크기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툭 튀어나오는 아공간 이야기.
겁을 상실한 인간 베커가 드래곤의 아공간을 노리고 있다.
“마나 푸므로 도아가스니다.”
9서클 드래곤의 아공간은 그 누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차원이 달랐다.
웬만한 산도 거뜬히 품을 정도다.
드래곤은 그런 아공간에 각종 보물을 보관한다.
하지만 문제는 늘 안고 있다.
드래곤이 사망하면 아공간 역시 같이 소멸한다는 것.
아공간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마나 수준이 장난 아니다.
드래곤이 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아공간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다고?”
인간 베커가 험상궂게 인상을 썼다.
꿀꺽.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베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샨트리아.
드높던 드래곤의 자존심 따위는 뜨거운 특수 교육에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두 눈에 남은 소망이 있다면 단 하나.
지옥 같은 이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의식뿐.
‘이놈은 악마다! 뭐라도 줘야 해!’
샨트리아는 죽음보다 더한 이 자리를 뜨고 싶어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때 퍼뜩 떠오르는 생각 하나.
“있으므이다!!!”
샨트리아가 오랜만에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만족한 듯 웃는 베커.
‘그걸 넘기면…… 이놈은!’
샨트리아는 공포를 느끼는 와중에도 열심히 음모를 짰다.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는 아무래도 억울했다.
최대한 버텨서 이 인간을 처참한 꼴로 죽이고 싶었다.
물론 그에게 건넨 말에 거짓은 없었다.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 가능해?”
“물로이므이다!”
샨트리아가 자신 있게 외쳤다.
“……너 생각보다 착한 도마뱀이구나.”
스윽 스윽.
감히 인간이 샨트리아의 의념이 가득한 마법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래곤의 가장 큰 금기 중 하나가 상대의 머리를 만지는 것이다.
중간계 최강자로 군림하는 지배자는 누구에게도 두상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샨트리아는.
“헤에에.”
주인에게 사랑받는 반려견처럼 불어터진 얼굴로 헤헤거리며 웃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악마 같은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었다.
인간은 입으로는 착하다고 말하면서 손은 여전히 멱살을 잡고 있었다.
꼼꼼하게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요구했다.
“그래 거기가 어디야? 나에게만 살짝 얘기해봐.”
귀를 가까이 가져오는 인간.
“그곳은 루미오 산맥 중간 골짜기에…….”
샨트리아가 분위기를 맞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자신이 한때 사용하던 드래곤 레어.
아공간에 넣을 필요가 없는 하찮은 황금들과 8서클 마법서 따위가 쌓여 있었다.
그래도 엄연히 드래곤의 레어였다.
그곳은 감히 누구도 침범하지 못했다.
그런 곳을 오늘 샨트리아가 최초로 인간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고 친절하게.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
- 설마 지금 드래곤에게 삥 듣는 거야?
어!
대답은 간단하다.
드래곤을 협박해서라도 인건비는 청산해야 하지 않겠나.
광룡 샨트리아가 자신이 과거 살던 집 주소를 실토했다.
말로만 듣던 드래곤 레어.
속으로 입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 미쳤어! 당장 멈춰!
싫다.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정산받는 거다.
이놈의 드래곤 때문에 오늘 스트레스 만땅 받았다.
이럴 때는 따뜻한 금융치료를 받아야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 샨트리아 일족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일족? 누구?
- 누구긴 누구야! 레드 드래곤 일족이지!
알파닥이 발악하며 소리쳤다.
레드 일족이 왜?
- 왜긴 왜야. 지금 드래곤의 명예를 엄청나게 실추시켰어.
이 미친 드래곤에게 명예가 남았어?
- 드래곤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위명이나 악명이야. 그런데 오빠가…….
팼다.
그것도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악명 대신 이제 샨트리아는 코찔찔 드래곤으로 불릴 거다.
- 보는 눈이 너무 많았어. 오빠가 몰라서 그러는데 저들 입이 가만있을 것 같아?
알파닥의 말에 지상을 내려다봤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벌벌 떠는 인간들이 정말 많긴 많다.
저들의 입을 다 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지만 마음은 저들 수만큼 수천수만 가지로 갈릴 것이다.
눈과 입이 저렇게 많은데 소문이 안 퍼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저들을 다 죽일 수도 없는 일이다.
- 패는 것도 모자라 삥까지 뜯었으니……. 에휴.
알파닥이 한숨을 푹푹 쉰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이 와중에 웃음이 나와? 오빠가 신이라고 해도 레드 일족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난 정당하고 떳떳하게 처신했을 뿐이다.
- 안 무서워?
응. 전혀 안 쫄려.
- 진짜…… 간이 부었구나.
나도 내 간이 부은 건 인정한다.
어차피 오늘 몇 번 죽다 살아난 몸 아닌가.
지구에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가 연속으로 닥쳤다.
간이 붓고 미치지 않으면 여기서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다.
“레어에 남은 것 좀 있어?”
샨트리아에게 더욱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신 교육을 받고 금세 개과천선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믿지는 않는다.
“화그과 마버서가 마이 나마스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황금은 지구에서나 이곳에서나 융통이 가능한 물질이다.
아공간도 뱉어내지 않는 기특한 효자 광물.
마법서도 마찬가지다.
드래곤이 사용할 정도라면 설명이 필요 없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쁜 동물은 없어. 살다가 더러운 감정에 오염되어 그러는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스미다!!!”
꼬리가 있다면 먼지 날리게 흔들어 대고 있을 샨트리아.
눈빛은 죽고 싶어 하는 내적 갈등이 강하게 엿보였다.
“죽어서도 미워하지 말아라. 때가 되면 모두 다 스쳐 지나는 것들일 뿐이야.”
“넵!”
“그래 교육은 이 정도면 됐다.”
슥슥.
드래곤에 감염된 마탑주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었다.
누가 봐도 싸가지 없는 노인 학대 현장이었다.
“그럼 마무리하자.”
괜히 시간 더 끌면 사건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 버스까요?”
다분히 공손한 태도로 묻는 샨트리아.
씨익 놈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너 내가 바보로 보이지?”
“???”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샨트리아.
쫘아아앗!
놈의 싸대기를 강하게 한 번 날렸다.
“아아악!”
샨트리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억울함 가득한 눈길로 다시 날 본다.
“비번을 안 알려줬잖아! 비번!!!”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