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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장. 어서 벗으라고! (1,249/1,284)

1274장. 어서 벗으라고!

‘드래곤 피어!’

아린은 갑작스럽게 터진 베커 공작의 포효에 화들짝 놀랐다.

심신이 뒤흔들리는 동시 일순간의 공포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최상급 정령의 보호 아래에 있지만 피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파장이 아니었다.

절대반지에 각인되어있는 하르케우스 드래곤 피어보다 강렬했다.

‘변했어. 갑자기.’

베커 공작의 눈빛이 변했다.

말투와 행동 역시 달랐다.

평소와 다른 도도한 위엄이 풍겼다.

오만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는 눈빛.

마주치는 순간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베커는 아린을 비롯해 주변인들을 한 차례 훑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샨트리아가 떨고 있어.’

데오드란 탑주의 몸을 차지한 광룡의 영혼이 떨었다.

피어만으로도 제압된 상태였다.

“대단해…….”

아린은 속으로 감탄했다.

자신의 바람대로 하르케우스가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설마 베커도……!’

아린은 마법사다.

그녀 역시 드래곤들의 심오한 9서클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상식을 파괴하는 마법이 대거 존재했다.

지금 베커가 보이는 모습이 그와 비슷했다.

데오드란처럼 몸을 빼앗긴다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러지 않을 거야. 하르케우스 님은 크로얀 제국의 수호 드래곤이니까!’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지만 아린은 믿었다.

크로얀 제국의 처음과 끝이라 할 수 있는 골드 드래곤.

그마저 배신하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스윽.

그때 하르케우스가 아린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녀를 평가하는 듯한 시선에 부담을 느낀 아린은 고개를 숙였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한 베커의 눈동자였다.

숨죽인 채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

- 오빠 눈빛이 왜 이래? 이 정도로 느끼하지 않았잖아!

알파닥 미안하다.

지금 내가, 내가 아니다.

하르케우스와 대화를 나눴지만 몸은 현재 공유 상태다.

드래곤과의 융합 상태.

전문용어로 말하면 빙의 상태다.

- 얼마나?

하르케우스 쪽에서 딜이 들어왔다.

상황이 역전됐다.

이제 내가 갑의 입장이 됐다.

대신 궁금한 게 생겼다.

골드 드래곤은 지혜를 탐구하는 성향이 발달했다고 들었다.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지적인 일족인 셈이다.

그런 성향은 신이 됐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전생에 쌓았던 성향은 그 전생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정신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하르케우스 님.

그를 불렀다.

- 포인트는 안 돼.

하르케우스가 연막을 쳤다.

포인트는 신들에게 생명유지장치와 같다.

포인트는 명예이자 목숨이었으며 신성을 유지하는 전부다.

갑자기 왜 그 바람둥이 신이 부러워지신 겁니까?

드래곤이 여색을 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길고 긴 세월을 거쳐 깨달음을 얻었을 존재다.

특히 신이 될 정도라면 특별한 정신 수양 능력이 요구됐다.

- ……자존심!

아! 자존심!

팍 이해됐다.

- 난 중간계에서 어떤 존재보다 잘났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어떤 것도 뛰어넘어서는 안 돼!

강박증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 강자와 갑질로 살아왔을 드래곤에게 노바 형님의 인기몰이는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접수가 됐다.

그럼 일단 계약금으로 저 녀석부터 처리해 주시죠.

피어 한 방에 쫄아버린 광룡 샨트리아.

“후후훗.”

입에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 오늘은 제대로 손을 봐주마.

스륵스륵.

말과 함께 공중 위를 걸어서 샨트리아에게 다가갔다.

우두둑.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파츠츠츠츠.

빙의가 된 상태여서 느낌이 제대로 전해졌다.

드래곤 로드는 죽어서도 드래곤 로드였다.

그가 공간을 걷자 마나들이 알아서 확산됐다.

언뜻 느껴봐도 샨트리아보다 농도가 더 진했다.

묵직하게 흐르는 마나.

살아있는 살기가 되어 샨트리아를 향해 촉수처럼 날아갔다.

샨트리아가 쳐놓은 마나의 장벽이 갈라졌다.

마나의 굴종.

“오……지 마! 가까이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샨트리아가 소리쳤다.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린 상태다.

드래곤 신에 빙의된 나와 겨우 가죽으로 의념이 전달된 데오드란이 같은 급일 수 없었다.

“샨트리아. 내가 경고했지. 다음에 또 나쁜 짓 하면 영혼까지 태워버리겠다고 말이야.”

“닥쳐! 네가 뭔데! 네놈이 뭔데에에에에!”

샨트리아가 발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팡!

샨트리아가 번개처럼 공간을 압축해 달려왔다.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놈의 손에 엄청난 힘이 담겼다.

돌산도 부숴버릴 것 같은 농밀한 마나의 압축.

공포에 질린 와중에도 레드 일족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하르케우스와 빙의되지 않았다면 한 방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귀엽기는.”

다가오는 샨트리아를 진하게 비웃는 하르케우스.

눈에 훤히 보였다.

하르케우스와 한몸이 되자 샨트리아의 모든 수법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속도가 느렸다.

인간들의 시선에는 빛과 같은 속도로 보였지만 하르케우스의 눈에는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주먹과 다르지 않았다.

“죽어어어어엇!”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응축된 마나 주먹을 내지르는 샨트리아.

하르케우스 님 뭐 하십니까!!!

심장이 거칠게 뛰고 벌렁거렸다.

맞으면 가루가 될 게 확실했다.

그때!

팟!

하르케우스의 주먹, 아니 내 주먹이 움직였다.

턱!

“???”

그게 끝이었다.

놀랍게도 샨트리아의 광포한 주먹이 내 손 안에 잡혔다.

느낌이 이상했다.

무섭고 두려웠던 샨트리아의 일격이 미풍같이 가볍게 느껴졌다.

방금 전 느껴졌던 엄청난 마나의 농축이 모두 사라졌다.

“놔! 놓으란 말이야!!!”

손에 주먹이 잡힌 샨트리아가 발광했다.

놈의 붉은 눈동자에 담겨 있는 공포.

“내가 주먹질 함부로 하지 말랬지.”

조용하면서도 잔잔한 훈계.

그리고.

우두두두둑.

샨트리아의 주먹을 잡은 손이 천천히 강한 압력으로 쥐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귀청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처절한 비명.

주르륵.

천천히 데오드란의 손이 뭉개지더니 피가 흘러내렸다.

의념에 지배당하고 있어도 결국 육신은 인간에 불과했다.

강한 힘에 압착되니 즙처럼 피가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뜨거운 피와 살점이 그대로 전달됐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지 않는 하르케우스의 잔인함.

이거…… 위험한 짐승이다.

***

- 드래곤이야……. 드래곤 신!!!

알파닥은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무시하던 이계 인간이 드래곤이 됐다는 걸 말이다.

- 신이 강림했어요.

- 말도 안 돼요! 오빠도 신이라면서 신이 어떻게…….

알파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인간이 보여준 기이한 행동은 마족들에게도 불가사의다.

인간이 신이라 불렸다.

최상급 정령이 사랑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드래곤 신이 강림했다.

- 하르케우스 님이에요. 확실해요.

- 오…… 마신님이시여!

비비안의 말에 알파닥은 마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전대 드래곤 로드였던 골드 드래곤 하르케우스.

그의 위명은 마족들에게도 유명했다.

중간계에서는 누구도 대적하지 못했다.

자존심 강한 최상급 마족들도 꺼려 했다.

알파닥은 긴 세월 동안 마주한 적은 없다.

다만 소문은 익히 들었다.

과거 뭣도 모르는 최상급 마족 셋이 중간계에 강림했다가 하르케우스에게 가죽이 벗겨졌다고 했다.

그랬던 하르케우스는 죽어서 신이 됐다.

소문만 무성했던 일이다.

알파닥도 신의 영역은 감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계 쓰레기 오빠에게 하르케우스가 강림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베커가 샨트리아의 의념에 중독된 인간의 손을 뭉개버렸다.

주르륵 붉은 피가 허공에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잔인했다.

- 꿀꺽.

알파닥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오빠 신 놈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드래곤 신 하르케우스는 마신과 거의 동급이 됐다.

그런 드래곤 신에게 선택받은 오빠 신 놈.

“벗어라.”

그때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 ???

알파닥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 손으로 샨트리아를 한 방에 완벽하게 제압한 오빠 신.

벌건 대낮에 샨트리아에게…….

“어서 그 가죽을 벗으라고!!!”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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