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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장. 어라 이건? (1,247/1,284)

1272장. 어라 이건?

“하르케우스 님…….”

아린은 베커의 손에서 빛나는 황금 광채를 보자 존경하는 드래곤을 떠올렸다.

어떤 이유로 하르케우스와 크로얀 제국이 관련되어 있는지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유희 중이던 하르케우스와 초대 황제가 친분이 두터운 친구 사이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그런 하우케우스 덕분에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제국의 위엄을 유지했던 크로얀 제국.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멸망했는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하르케우스의 절대반지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멸망했다.

그랬던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 다시 하르케우스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광룡 샨트리아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던 마법인지 알지 못했다.

드래곤들이 사용하는 9서클은 인간들이 감히 판단할 거리가 되지 못했다.

베커 공작은 계속되는 위기를 맞닥뜨렸다.

급기야 드래곤까지 등장한 상황이기에 이미 죽은 목숨이라 할 수 있었다.

신성한 힘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무척 약해 보였다.

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적일 수는 없었다.

특히 베커는 인간의 몸을 가진 산 사람이었다.

알면 알수록 많은 비밀을 갖고 있는 베커.

드래곤의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자로 보였다.

아린이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순간 하르케우스의 힘이 발현됐다.

그것도 절대반지에서 그 무시무시한 하르케우스의 가피가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하르케우스 님!’

아린은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베커가 직면한 위기에 심장이 터질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최상급 정령도 그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버젓이 사랑하는 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

대륙에서 드래곤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적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한 베커 공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늠름했다.

그는 모든 악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그리고 채 감동이 식지 않은 순간 또다시 반전의 상황이 연출됐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길지 않은 짧은 전투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전투로 제국과 왕국들의 미래가 결정됐다.

이제는 급기야 드래곤까지 나섰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승리만이 답이었다.

‘하르케우스 님! 도와주십시오. 이 제국은 온전히 당신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아린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국과 베커를 위해서 반드시 하르케우스의 힘이 필요했다.

평소 사용하던 절대반지 이상의 힘이 말이다.

그리고.

“하르케우스! 하르케우스스스!!!”

광룡에 빙의된 데오드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르케우스 때문에 좌절된 자신의 환상적인 계획.

죽은 줄 알았던 드래곤 로드의 등장에 샨트리아는 눈이 돌아갔다.

이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깊은 곳에 묻어둔 억눌렸던 광기가 폭발했다.

파스스스스스스스스스.

주변으로까지 팽창하는 붉은 마나.

“음흉한 늙은 도마뱀! 어디 있느냐! 썩 모습을 드러내거라!!!”

광룡 샨트리아가 절대반지를 보며 악을 썼다.

그만큼 빛의 정체가 하르케우스의 출현을 알린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자신이 마법을 사용해 하르케우스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비웃듯 갑자기 나타난 하르케우스의 기운.

데오드란의 눈동자가 빨갛게 타오르며 이글거렸다.

기억 속에 박혀 있는 하르케우스에 대한 절대 분노가 데오드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네놈이……더냐!”

샨트리아가 죽일 듯 베커 공작을 노려봤다.

***

- 자식 또 눈 돌아갔네! 누가 쌍또라이 아니랄까 봐…… 죽어서도 성격 안 변한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아. 쯧쯧.

하르케우스가 혀를 찼다.

아니 저기 골드 일족 어르신 지금 한가로운 상황이 아닙니다요!

파라라라라라락.

샨트리아의 포효에 주변은 마나 폭풍이 휘몰아쳤다.

옷자락이 미친 듯 펄럭였다.

눈깔이 회까닥 돌아가 있는 샨트리아.

눈동자가 완전 핏빛이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귀신 눈깔 저리 가라다.

- 오빠 신. 지금 누구하고 얘기 중이야? 누구 있어?

하르케우스와 소통하는 사이 알파닥이 궁금한지 채근해왔다.

그녀의 귀에 하르케우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쪼랩 마신 성녀 따위가 어찌 우리 대화에 낀단 말이냐.

마신 성녀 알파닥?

그녀를 두고 쪼랩이란다.

이 말을 들었다면 알파닥이 펄쩍 뛰고 난리가 났을 거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알파닥.

- 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순수하고 맑은 비비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락한 영혼체인 알파닥과 달리 하르케우스의 기운을 알아챘다.

- 신? 무슨 신?

알파닥이 다급하게 묻는다.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묻는 말에 그녀 역시 순순히 답한 적이 없다.

소심한 복수다.

- 어떻게 할래? 저 또라이에게 맞아 죽을래? 그게 아니면 내 의지를 받들래?

나름 준엄한 척 입을 열었지만 다분히 약장사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다른 인간이라면 벌벌 떨면서 넙죽 엎드렸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다.

신들과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요?

- 뭐라고? 지금 이 상황이 우습게 보여? 샨트리아 저 자식 쌩양아치야. 살았을 때 미친 집구석이었던 레드 일족에서도 내놓은 놈이야. 같은 일족도 눈빛 마음에 안 든다고 패 죽였어. 그런데 안 두려워? 마족도 벌벌 떠는 저놈이?

하르케우스가 공포심을 돋우기 위해 밑밥을 깔았다.

솔직히 나도 두렵다.

정령신의 화살도 샨트리아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전혀 대항하거나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하르케우스의 의지를 받드는 것이다.

하지만 본능이 소리치고 있다.

미끼를 물면 평생 노예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죠.

- 뭐???

한 번이나 두 번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죽는 순간 바로 신이 됩니다.

굵게 살아봐서 아쉬운 것도 없습니다.

- 한 번이나 두 번? 죽어본 것처럼……. 헛!

말을 하다말고 뭔가를 발견한 듯 입을 다문 하르케우스.

- 음…… 그랬군. 그랬어.

곧 뜻을 알 수 없는 추임새가 이어졌다.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딜이 들어올 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법이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죽는 건 매번 두렵다.

그리고 다음 생이 이번 생보다 더 완벽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최대한 뽕을 뽑고 싶은 이번 생.

- 특혜 우려가 있지만……. 반반하자.

반반?

양념에 후라이드 반반도 아니고 갑자기…….

- 저 자식 소멸시키고 들어오는 포인트 반땅.

반땅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오케이 대답이 바로 나올 뻔했다.

누가 봐도 내 입장이 불리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반반은 아니죠. 직접 움직여 땀 흘리는 것도 나고 자칫 죽을 수도 있는데. 생명수당 추가해 주셔야죠.

조건을 걸었다.

- ……좌우지간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니까. 크로얀 그놈도 그렇더니. 구해줘서 감사하다고는 못할망정 포인트에 욕심을 부려……. 에잉.

하르케우스가 진심으로 짜증냈다.

크로얀 제국 초대 황제와의 사이에도 모종의 비밀이 있었던 모양이다.

- 6 대 4! 그 이상은 못 해! 아니 안 해! 나도 이것저것 수수료니 인건비니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 저 미친놈 때려잡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하르케우스가 한 번에 최후통첩을 던졌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의 협상은 무리다.

상대는 한때 잘나갔던 중간계 최강자.

자존심을 세워줄 필요가 있다.

- 콜! 6대 4 받겠습니다!

바로 꼬리 내리고 조건을 받아들였다.

어설픈 놈들이야 여기서 한 번 욕심 더 부리겠지만 난 아니다.

하르케우스와 길게 갈 필요성이 감지됐다.

인연이 되면 여러모로 써먹을 수 있는 전생 드래곤 로드.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계산은 꼭 필요하다.

- 어째 내가 손해보는 것 같다만…….

하르케우스도 아주 계산을 못 하지는 않았다.

이럴 때를 위해 말발 좋은 입이 존재하는 것.

장사 한두 번 할 것도 아닌데 합자 기념으로 통 크게 쏘십시오.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도 영원히 하르케우스라는 이름이 남지 않겠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황실수호공작입니다.

재건한 황궁 중앙에 떡하니 하르케우스 님의 황금 동상을 세워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드워프들의 작품으로 큼지막한 놈으로다 말입니다!

내 돈 안 드는 선심을 썼다.

드워프들이야 하르케우스 이름만 팔면 유노동 무보수로 일할 게 뻔했다.

제국 황실도 마찬가지.

황실 수호 드래곤 동상을 세우는 건 이래저래 따져봐도 남는 장사다.

- 뭐 그렇게 해주면 고맙게 받겠지만…….

하르케우스도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 신이다.

은근히 명예욕을 자극하자 바로 굳은 목소리를 풀었다.

하르케우스 님~

- 응?

제가 무척 존경합니다! 하하하.

- 싱거운 인간 같으니라고……. 큼큼.

존경한다는 말에 하르케우스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풀렸다.

민망한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기분이 꽤 좋아졌다는 의미로 들렸다.

“하르케우스! 이 오크만도 못한 똥양아치 새끼야! 모습을 드러내! 내가 오늘 친히 네놈의 아구창에 마법창을 박아주마!”

- 오크만도 못한 똥양아치? 저 새끼가! 살려달라고 눈물 콧물 흘리며 빌 때는 언제고! 야! 샨트리아! 너 기다려! 너 오늘 피똥 싸게 만들어 준다!!!

쑤욱.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지를 타고 들어오는 무지막지한 기운.

어라 이건?

“흐흐흐.”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진득한 살인 미소가 번졌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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