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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장. 드래곤 VS 드래곤! (1,245/1,284)

1270장. 드래곤 VS 드래곤!

‘왕께서 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이었어.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소환자가 운명의 폭풍을 몰고 다닌다고 하더니…….’

비비안이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베커를 바라봤다.

지구에서 다니엘로 불리던 저 사내는 처음부터 신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사실 정령왕이라는 불리는 이들도 반신이었다.

드래곤도 마찬가지다.

마나를 복종시킬 수 있는 중간계의 절대자이자 죽음 뒤 신으로 예약된 존재들이다.

마신도 그러했다.

지구에서와 달리 이곳 세계에서 비비안은 특별한 정령이 됐다.

처형당해야 했던 마녀로 불리지도 않았다.

도리어 인간들에게 존경받았다.

등장만으로도 놀라움의 대상이 됐다.

최상급 정령은 중간계에 강림할 수 있는 정령들의 마지막 존재였다.

인간이었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하지만 과거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태어나기를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사람으로 살았던 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랑에 매번 배고팠다.

멀린에게 눈이 멀어 사기 결혼을 당한 것부터가 시작이었는지도 몰랐다.

목적을 숨긴 채 자신을 아내로 삼았던 사악한 마법사.

한때 그로 인해 인간들을 경멸했던 비비안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눈앞의 베커로 인해 진정한 용서를 배웠다.

접촉은 짧았지만 그가 전하는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불꽃 같은 찰나의 순간에 예상치 못한 깊은 사랑에 빠졌다.

계약과 동시에 나누었던 진한 입맞춤.

달콤했다.

영혼에 각인되어 버린 진짜 첫 키스.

비비안이 한때 인간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강렬한 매개가 됐다.

이곳 정령 세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베커가 그리웠다.

그를 한순간도 잊지 못했다.

가끔 그렇게 지옥 같았던 지구의 삶도 생각났다.

결코 정령들은 걸리지 않는 향수병이었다.

어느 날 반신인 정령왕이 비비안을 불렀다.

비비안을 말없이 지켜보던 물의 정령왕 아이디네.

비비안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물의 정령왕은 모든 물의 정령들의 어머니.

그 손길에 비비안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안을 맛봤다.

그녀를 괴롭히던 오랜 고민과 번뇌가 일순간 사라졌다.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길 때 느끼는 안정과 풍요로움과도 같았다.

그때 정령왕이 말했다.

비비안이 계약한 인간은 신이면서 인간인 특별한 존재라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함께하면 생각지 못한 고난을 받게 되는 순간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물의 정령왕은 비비안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 셈이었다.

최상급 정령은 정령왕이 될 후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정령이 상처받는 걸 정령왕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정령사와 정령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능이 정령왕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에도 비비안은 과감하게 계약자를 선택했다.

다시는 인간과 사랑의 감정을 교류할 수 없었다.

비비안에게 베커는 인간과의 마지막 교착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널 듬뿍 사랑해 주마.”

드래곤에게 영혼이 잠식당한 마법사의 눈빛은 잔뜩 붉어졌다.

“목을 뜯어 피를 삼키고 몸뚱이를 찢어 천천히 씹어주마. 아름다운 것들은…… 모조리 부숴버려야 해! 크하하하하하하!”

광룡 샨트리아는 죽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포악한 심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쿠구구궁!

주변의 마나가 덩달아 요동쳤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막아야 해!’

비비안은 힘을 모았다.

최상급 정령이지만 결국 태생은 정령일 수 없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상대해야 할 존재가 본체는 아니지만 드래곤의 의념 역시 못지않게 강했다.

급기야 마나도 복종했다.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는 비비안.

‘왕이시여 제게 힘을 허락하소서!’

비비안은 간절한 마음으로 왕께 청원했다.

파아아아아앗!

그 순간 비바안의 몸에서 터진 푸른빛.

정령왕의 가피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임하고 있었다.

그 순간.

“흐흐흐흐. 너도 파괴해 주마! 하찮은 물의 정령아!”

샨트리아가 빛을 뿜는 비비안을 향해 사악한 웃음을 터트렸다.

***

뭐라고? 비비안을 파괴해?

- 오빠……. 어떡해! 

뭘 어떡해! 저 변태 드래곤 새끼 패 죽여야지!

예쁘다면서 피를 빨아 먹고 찢어 씹어 먹는단다.

전신을 샅샅이 훑는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진상에 상 변태 싸이코다.

그 와중에 비비안까지 노렸다.

- 샨트리아는 마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어.

얼마나?

- 똘아이 개진상이라고.

“…….”

마족들이 개진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 진작 내 말 좀 들으라고 했지! 저 자식 보아하니 속임수를 썼어. 드래곤 로드 하르케우스를 속였다고!

그런 것 같다.

샨트리아 저 자식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힘 좋은 쌩 양아치다.

대화로 풀 상대가 아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 마신께 귀의하자! 

알파닥은 집요했다.

날 팔아서 떼돈을 벌려고 하는 것 같았다.

- 제가 막겠어요. 그사이 도망쳐요.

비비안의 목소리에 결의가 가득했다.

- 언니가? 못 막아! 의념으로 마법사의 몸뚱이를 잠식했어. 저 가죽도 수상해. 드래곤 하트 기운이 담겨 있어.

알파닥이 사태를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됐다.

비비안이 아무리 과거보다 강해졌고는 하지만 드래곤의 앞에서는 아니다.

- 정령왕의 가피가 임했어요.

가피?

놀라서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아린을 보호하며 뒤에 서 있던 비비안.

파아아앗.

찬란한 푸른빛의 오라에 휩싸여 있었다.

성스러움마저 감지되는 정령의 기운이다.

- 어림도 없어. 저 자식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

알파닥의 말처럼 실제 현실은 샨트리아가 비비안을 보고도 쫄지 않는다는 것.

- 오빠 튀자니까. 저 빙의 상태 별로 오래 가지 않아. 잘해봐야 며칠? 그 정도면 마법사 몸뚱이가 버티지 못할 거야.

우리가 도망치면 밑에 깔린 사람들은?

제국군과 백성들이 무수하다.

미친 드래곤이 저들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

당연히 피바다가 임할 거다.

- 저들의 정해진 운명이야.

알파닥은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냉정했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피도 눈물도 없다.

결론은 하나.

“어이! 샨트리아!”

어깨 쫙 펴고 드래곤의 이름을 불렀다.

- 오……빠! 미쳤어? 저 자식 자기 이름 부르는 걸 가장 싫어해! 샨트리아라고 부르면 눈 돌아간다고!

일찍도 알려준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알파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짜 눈동자가 회까닥 돌아갔다.

그래 봐야 붉은 눈동자가 전부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너부터 찢어주마!”

“닥쳐! 몸뚱이도 없는 빨간 도마뱀 주제에!”

- 오빠 미쳤어? 드래곤한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나 미쳤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끼릭.

활을 다시 들었다.

오늘 여러 번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마다 기적적으로 돌파구가 생겼다.

이번에도.

- 꿈 깨! 드래곤 의념에 빙의된 저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답은 드래곤밖에 없어.

이제는 최상급 정령으로도 부족하다.

정령활도 마찬가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피잉!

우선 화살을 날렸다.

카르마 포인트를 가득 안고 날아가는 정령 신성이 담긴 화살.

공간을 뚫고 드래곤의 가죽에…….

파삭.

깨졌다.

놀랍게도 놈에게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박살났다.

-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빨리 마족신께 귀의해! 아직 기회가 남았다고! 머리통 박살나고 심장 터지면 그때는 늦는단 말이야! 

알파닥의 절절한 꼬드김이 이어졌다.

- 저 인간 여황제 살려야지? 그리고 정령 언니도 마찬가지야. 지금 마나 벽 때문에 정령계로 돌아가지도 못해. 무능력 오빠 때문에 꽃다운 두 존재 파멸시킬 거야?

“…….”

조목조목 약점을 제대로 짚었다.

갈등될 수밖에 없다.

나 하나 희생해서 둘을 살릴 수 있다면…….

- 왜 둘이야! 나도 있잖아!

엥? 너까지???

- 살려줬더니 모른 척하기야? 내가 나 잘되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다 오빠신 위해서 이러는 거야!

말은 절절하지만 전해지는 느낌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알파닥과 나는 접점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막말하는 여성은 사양이다.

“어서 이리 와라. 목이 마르구나.”

샨트리아에 빙의된 데오드란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방법이 전혀 없다.

어쩔 수 없이 마신께 귀의할까 갈등하는 순간!

지이이잉.

갑자기 손가락에서 강한 진동이 왔다.

그리고!

팟!

눈부실 만큼 거대한 황금 광채가 느닷없이 찬란하게 터졌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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