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6장. 광룡 샨트리아
“???”
“이게 무슨…….”
“막아냈다!”
“갑옷?”
8서클 마법사와 최상급 정령사의 대결이다.
대륙에서 볼 수 없는 세기의 전투라 할 수 있다.
지켜보던 이들 모두 행동을 멈추고 석상처럼 굳었다.
언제 다시 구경하게 될지 모를 엄청난 실력자들의 생사가 걸린 대결이다.
결투는 그야말로 불꽃이 튀었다.
누가 봐도 마탑주가 호기를 부렸다.
황실수호공작도 사정은 마찬가지.
쉽게 뱉을 수 없는 마나의 맹약으로 두 사람은 묶인 상태다.
대결에서 패배하는 쪽이 상당한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내기에 걸린 조건이 대단했다.
대결의 패배자는 종의 신분으로 추락하거나 경지가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
먼저 마탑주는 절대 방어 주문을 펼쳤다.
황실수호공작도 정체 모를 정령 신성활을 꺼내 들었다.
창과 방패의 대결 구도를 보였다.
마탑주는 첫 번째 공격부터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난 두 번째 공격.
놀랍게도 베커 공작의 정령활이 방어마법을 꿰뚫었다.
마탑주가 위기 상황을 맞았다고 판단한 그 순간.
‘깡’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방으로 울려 퍼진 쇳소리.
“흐흐흐흐흐. 대단하구나!”
데오드란 마탑주가 짐작하기 어려운 괴소를 터트렸다.
새하얀 로브에 구멍이 뚫렸다.
마법을 꿰뚫고 해제해 버린 화살은 시원한 소리와 함께 소멸했다.
“이제 마지막 한 발이 남았다. 더 재주를 부려 보거라. 크크.”
데오드란은 물러서지 않고 베커 공작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사납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텐데 말투에서는 그런 내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죠?”
베커 공작이 물었다.
“궁금하더냐?”
“네.”
가볍게 장난처럼 대꾸했지만 무척 진중한 모습의 베커 공작.
“마지막 한 발 남았으니 알려줘도 나쁘지 않겠지.”
‘너와 나의 차이를 이번 기회에 똑똑히 각인시켜 주마!’
데오드란은 그동안 감춰왔던 마탑의 비밀 아이템을 보여 줄 생각이다.
베커 공작을 종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이번 전쟁은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되는 대승리다.
다른 왕국들과 마탑들은 그의 앞에서 찍소리도 못 할 것이다.
또 황실 마탑 서고까지 손에 넣게 되면 얻게 되는 이득은 엄청나다.
잘하면 마법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흐흐흐. 잘 보아라! 이게 바로 사르칸 마탑의 보물이다!”
촤아아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오드란은 자신의 로브를 찢었다.
지상에서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중에서 옷을 찢어발기는 변태 같은 대마도사.
파아아앗!
그 순간 거의 동시에 엄청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컥!”
“아악!”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눈을 강타한 강렬한 붉은 광채 때문이었다.
“허엇!”
“저, 저 갑옷은!”
잠시 후 시력을 되찾은 이들은 데오드란을 보며 다시 한 번 탄성을 터트렸다.
새하얀 로브에 완벽하게 가려져 있던 빨간 가죽 갑옷.
데오드란의 몸과 하나인 것처럼 밀착되어 달라붙어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그의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보이느냐?”
데오드란이 베커 공작을 보며 물었다.
“뭐, 뭡니까?”
베커 공작이 살짝 당황하며 묻는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가죽 갑옷이다.
“눈이 있어도 장식품에 지나지 않구나. 흐흐흐.”
데오드란이 베커 공작을 비웃었다.
“레드 드래곤의 갑옷! 샨트리아!”
“……전설의 갑옷 샨트리아가 왜 마탑에…….”
“오! 전설이 사실이었다니!”
그때 누군가 가죽 갑옷의 정체를 알아채고 소리를 질렀다.
과거 지상 최강의 고룡이었던 골드 드래곤 하르케우스가 직접 소멸시켰던 광룡 샨트리아.
레드 일족답게 성격이 급하고 파괴적인 샨트리아는 시간이 갈수록 포악해졌다.
드래곤 중에 가장 전투력이 강했지만 특유의 성격으로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레드 드래곤들이 많았다.
샨트리아도 그랬다.
길고 긴 생명을 이어가는 세월 속에 무료함은 광기로 변했다.
세상을 파괴하려는 망상을 품었고 그 욕망은 자꾸 커졌다.
중간계에 정해진 율법을 거부하고 인간들과 다른 생명체에 패악을 부리던 중 당시 드래곤 로드였던 하르케우스와 싸움이 벌어졌다.
지도자인 하르케우스를 무시하고 시비를 건 게 발단이 됐다.
그리고 치러진 대전투.
충격으로 중간계가 무너질 수 있어서 타차원으로 이동해 전투를 벌였다.
레드 드래곤 샨트리아는 그 전투 이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에 하르케우스가 그를 소멸시키고 샨트리아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중간계에서 힘을 과시하며 투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경고와 같았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져 온 전설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어떤 흔적도 중간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눈 있는 자들 모두가 샨트리아의 가죽을 알아봤다.
온통 붉은색의 가죽으로 제작된 것은 유일무이한 드래곤 샨트리아의 가죽 갑옷밖에 없었다.
어떤 마수나 마물로도 저런 가죽 갑옷을 만들 수 없었다.
데오드란이 그만큼 자신만만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데오드란은 로브를 찢으며 자신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모두 무릎을 꿇어라! 나 데오드란 사르칸 마탑의 주인이 너희들을 종으로 받아주겠노라!!!”
레드 드래곤의 포효를 터트리는 데오드란.
성격이 변했다.
어느새 눈동자도 붉게 충혈됐다.
레드 드래곤 가죽 갑옷을 완벽하게 활성화시키며 거침없이 오만하고 광포한 성격을 드러냈다.
파바바바밧.
터지듯 사방으로 뿌려지는 붉은 마나.
“으으으…….”
“광룡 샨트리아!!!”
***
- 미쳤네. 미쳤어……. 겁도 없이 드래곤의 원념을 깨우다니…….
알파닥이 어이없다는 듯 데오드란의 행태를 꼬집었다.
겨우 가죽 갑옷 하나 착용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야?
- 바보 오빠 보면 몰라? 보통 갑옷이 아니잖아!
알파닥이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이며 화를 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갑옷이다.
붉은 색감이 유난히 도드라진 비싸 보이는 가죽 갑옷.
마수나 마물 갑옷과는 많이 달라 보이긴 했다.
- 이름값이 틀리잖아!
이름값?
그래 봐야 죽은 드래곤 가죽으로…….
- 명품! 그것도 이 중간계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일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명품 가죽 갑옷이라고!
명품 가죽 갑옷…….
그렇게 말하니까 빨리 이해됐다.
데오드란이 착용하고 나와서 자랑하며 뻐길 만했다.
- 뻐겨? 그 정도가 아니야! 저 갑옷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없어!
내가 들고 있는 이 활도 안 돼?
- 오빠가 행위무능력자잖아. 활의 능력을 완벽하게 끌어낼 수 없다고!
법학도로서 완벽하게 이해되는 내용이었다.
뼈를 때리는 알파닥의 목소리에 인상이 절로 일그러졌다.
- 왕께서도 말씀하셨어요. 혹시 소환되더라도 드래곤과 관련된 일에는 절대 나서지 말라고 말이에요.
비비안도 가죽 갑옷에 대해 두려움을 내비쳤다.
“…….”
이렇게 되면 일이 꼬이게 된다.
반전과 반전 속에서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마탑은 그냥 유지되어 온 게 아니었다.
드래곤과 관련된 유물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소유해 봐서 안다.
하르케우스의 권능이 아주 쬐금 담겨 있는 절대반지도 마법사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저 물건은 통가죽 갑옷이라…….
- 이제 좀 쫄려?
알파닥이 다시 묻는다.
갑옷을 파괴할 방법은 진정 없는 거야?
- 있어요……. 그런데…….
비비안이 말을 하려다 말고 말끝을 흐린다.
- 언니 까놓고 말해요. 거의 불가능하다고요. 드래곤이 괜히 중간계의 수호자겠어요. 마족들도 이 동네에서는 드래곤 앞에서 몇 수 양보해야 해요. 무능력자 오빠가 드래곤의 뼈로 만든 무기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 강한 알파닥이 몇 수 접는다는 표현을 썼다.
그 소리에 가만히 데오드란을 지켜봤다.
“너도 꿇어라! 그럼 살려주마!”
레깅스와 비슷한 차림의 가죽 갑옷을 입은 데오드란은 기고만장했다.
다시 보니 일반 갑옷과 많이 달랐다.
생체공학이 가미된 듯 알아서 착용자의 몸에 완벽 밀착됐다.
내심 부러우면서도 눈길은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빨간 쫄쫄이 가죽 갑옷이라니…….
- 가격을 매길 수 없어. 저 갑옷에는 그리고…….
이번에는 알파닥이 말을 흐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 강한 원념이 깃들어 있어요. 지금 저 인간 마법사는 레드 드래곤의 원념에 의해 오염되고 있어요. 자칫 하다가는…….
비비안도 말을 다 뱉지 않는다.
딱 봐도 데오드란 탑주가 제정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온몸으로 발산되는 강렬한 파괴적 기운.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박살내 버리겠다는 패도적 기세를 발산했다.
- 오빠……. 이제 어쩔 수 없어. 일단 살고 보자. 저 자식의 종이 될 수는 없잖아.
응?
뭔가 방법은 있고?
아무래도 알파닥한테 계획이 있는 것 같다.
- 마나의 세계를 버리자.
마나의 세계를 버려?
그게 가능해?
- 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오빠는 그분께 선택받았어. 그러니까……. 마나 버리고 마력의 세계로 가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도를 아십니까’의 새로운 버전 같았다.
알파닥 정확하게 말해. 무슨 세계를 말하는 거야!!!
- ……인간이 아닌 마족이 되라는 말인 것 같아요.
뭐라고? 나보고 마족이 되라고???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