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4장. 오빠 신. (1,239/1,284)

1264장. 오빠 신.

“아!”

“허엇!”

“음!”

곳곳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졌다.

아공간을 열고 무기를 천천히 꺼내 드는 베커 황실수호공작.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이 베커의 무기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푸른 빛에 영롱하게 휩싸였다.

누가 봐도 대단한 무구다.

무구는 활이었다.

화살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활.

일반적인 활보다 크기는 꽤 컸다.

재질은 나무로 되어 있었으며 해석할 수 없는 각종 문양과 기호들이 하나하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이 만들어 낸 신물이 확실했다.

‘정령신의 활?’

비비안은 베커의 손에 들린 무구를 보며 진심으로 놀랐다.

그녀도 소유하지 못한 정령들의 최상급 정령 무기였다.

나무활은 물과, 바람, 불과 대지의 기운까지 가미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사대 정령들의 축복이 담겨 있는 활인 것이다.

‘어떻게? 누가?’

지구에서는 다니엘이라 불리고 이곳에서는 베커 공작이라 불리는 남자를 다시 천천히 살폈다.

마법사이자 정령사이며 기사였다.

정령들이 나눠준 기억의 파편으로 단시간에 무한한 지식을 습득한 비비안도 처음 보는 인간형이다.

유희 중인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이한 인간이었다.

분명

인간이지만 인간으로 단정 짓고 보기는 어렵다.

위기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그녀를 소환했을 정도로 배짱도 좋았다.

정령계에서 그의 모든 기행을 지켜봤다.

베커가 여기 이곳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감지했다.

최상급 정령 정도 되면 자신의 계약자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안타까웠다.

도와주고 싶어도 계약자가 소환하지 않는 이상 중간계에 강림할 수 없는 처지였다.

신들이 정한 규칙이 그랬다.

8서클 마법사에 의해 무력하게 목이 졸리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당장 구해내고 싶었지만 규칙에 갇혀 그럴 수 없었다.

그때 등장한 베커의 여인.

인간계의 아름다운 여황제가 베커를 구하기 위해 귀중한 보물을 내놨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비비안.

여황제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건지 너무 알았다.

그 직후 비비안이 소환됐다.

중간계 환경은 정령계와 달랐다.

어쩔 수 없이 힘의 제약이 느껴졌다.

인간 8서클 마법사는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다.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비비안도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베커는 비비안의 도움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겁도 없이 마법사에게 도전장을 내민 베커.

당황스러움도 잠시 놀랍게도 아공간에서 정령 무기를 꺼냈다.

비비안이 봐도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물의 정령왕 아이디네가 소유한 신성한 무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 저…… 오빠님. 뭐죠……. 어떻게 정령의 신성 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거죠?

마신을 섬기는 마족 여인도 놀라움을 토했다.

베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특이점이었다.

어둠보다 더 진한 새카만 로브를 입고 있다.

누구나 봐도 귀엽고 발랄해 보이는 미녀다.

입은 거칠었지만 자신의 계약자를 향해 보이지 않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 언니가 줬어요? 저 정도 무기라면 정령왕 정도는 되어야 소유할 수 있는 건데…….

마족이 비비안을 의심했다.

- 난 아닙니다.

비비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정령왕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신물까지 넘겨받지는 못했다.

- 그럼 저 신물은…… 훔친 거겠죠?

알파닥이 과감하게 추측했다.

이번에도 비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것도 아닙니다. 슬픔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숭고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정령이다 보니 정령무구에 담겨 있는 기운을 읽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아련한 아픔이 가득 배어 있는 활이었다.

활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비안의 심장은 아파 왔다.

- …… 그런데 저 활을 사용할 수 있나요? 저 무식한 오빠 놈이 제대로 사용 가능할까요?

알파닥이 의심의 눈빛을 보였다.

신성한 힘이 가미된 정령 활이 아닌가.

일반 인간은 절대 사용 불가인 무구였다.

활을 쓸 정도의 신성력은 선택 받은 자들만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 가능할 겁니다……. 그는 지구별에서 이미 신입니다.

- 네? 신이요? 저 오빠 놈이 신이라고요???

***

귀가 무척 간지럽다.

알파닥과 비비안의 대화가 귀에 자꾸 거슬린다.

나를 오빠 놈 신이라 부르는 알파닥.

그녀의 의심 속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정령 활이 실체를 드러냈다.

파르르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직접적 소환은 처음이다.

활을 통해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의심 많은 마탑주를 속이기 위해 마지막 한 수를 남겨 놓았다.

사실 이 활을 활용할 생각은 못 했다.

사건들이 창졸지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더 그랬다.

8서클 마법사가 갑자기 나타날 거라고도 생각 못 했기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도리어 아린의 깊은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나를 위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내어놓는 그녀다.

아린을 위해 크로얀 제국을 확실히 부흥시켜 주리라 마음먹었다.

연이은 도박이 벌어졌다.

비비안을 소환하면서 본격적인 도박판이 벌어졌다.

임기응변의 태세 전환이 계속됐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모습을 드러낸 정령의 활.

아마존 여왕이 선물한 물건이다.

지구의 눈물이 오롯이 담겨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사용하게 될 거라고 여왕께서 말했었다.

최상급 정령이 아니라 최상급 정령신의 축복이 들어 있는 활이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으로 도박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결정한 한 수.

미끼를 깔고 마법사를 유혹했다.

욕심 많은 마탑주답게 최상급 정령사인 나를 노렸다.

성현들의 말씀이 옳았다.

욕망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과 같았다.

똑똑한 마탑주가 의심 없이 걸려들었다.

알파닥을 비롯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신의 한 수를 제깟 놈이 알 턱이 없었다.

“그…… 활은…….”

마탑주 데오드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8서클 마법사답게 활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눈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대단하신 마탑주께서 정령 무기 처음 봅니까?”

비웃음을 살짝 가미해 자존심을 건드렸다.

“……. 비겁한 놈!”

누가 할 소리!

“쫄리시면 도망치세요. 마나의 맹세 따위는 마탑 지키는 개새끼들한테 던져 버리고 말입니다.”

“닥쳐!!!”

마탑주가 분노했다.

원하던 대로 판이 커졌다.

“도망가기는 그렇죠? 방금 전에 기습한 짓도 있는데 천하의 사르칸 마탑의 탑주가 마나의 맹세까지 저버리고 꼬리를 말고 도망치면……. 집 지키는 똥개만도 못한 거죠.”

푹푹! 자존심에 구멍을 뚫었다.

화르르르르르.

마탑주 주변으로 분노의 오라가 휘몰아쳤다.

마탑주답게 감정을 표출하자 바로 마나가 반응했다.

데오드란 마탑주가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혼란이 더해졌다.

“이 잡놈의 XXX가! 어디서 주둥이를 나불거려!”

욕이 찰지다.

벗어나려고 파닥거리는 꼴이 우습다.

상황의 반전을 통해 여유를 되찾았다.

이제 두렵지 않다.

놈은 맹약으로 인해 세 번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후후훗.”

냉정한 비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놈이 광분할수록 나는 더 냉정해졌다.

뒤바뀐 공세.

“유언은 없습니까?”

누가 봐도 깔끔한 예의를 차렸다.

마탑주를 상대하는 자리다.

지켜보는 관중들도 많았다.

저들이 후에 나의 영웅적 일대기를 세상에 널리 퍼트려 줄 것이다.

- 와아아아…… 오빠 새끼. 진짜 잔머리 하나는 끝내 준다.

알파닥이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인정했다.

알파닥……. 너 조심해라.

- 흥! 뭘 조심해. 날 볼 수도 없으면서!

과연 그럴까?

말과 함께 활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나의 우측 3시 방향.

- 헉!

알파닥의 낮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 그녀를 조준했다.

- 내…… 가 보여?

알파닥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어! 아주 잘 보여.

새카만 로브의 마족 아가씨.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난 마신의 결계로 중간계에서는 거의 볼 수 있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네가…….

알파닥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활을 든 순간 곧바로 그녀가 보였다.

장립 귀신이나 비비안의 말처럼 알파닥은 귀엽고 깜찍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모가 뛰어났다.

도도하면서 또 차갑다.

동시에 정열적인 기운이 감지됐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 칼칼한 성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검은색 머리칼과 특이하게 붉은빛을 띠는 눈동자.

인간이 아닌 마족임을 분명하게 증명했다.

그것도 하급이 아닌 상당히 높은 계급의 마족으로 보였다.

- 계약자는 신입니다.

비비안이 답했다.

- 말도 안 돼! 그럼 저 쓰레기가 오빠 신이라고???

오빠 신?

그거 참 듣기 좋다.

이제야 확실히 찾은 나의 정체성.

패닉에 빠진 알파닥과 달리 가슴 깊이 흐뭇함이 밀려왔다.

알파닥에게 완벽하게 완승을 거둔 첫날이다.

활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 보이는 마탑주.

활이 다시 자신을 향하자 흠칫 놀랐다.

“마탑주님. 이제 시작해 보죠.”

끼릭.

화을 당겼다.

스으으으읏.

그 순간 화살이 나타났다.

정령신의 축복을 듬뿍 받은 반투명한 화살.

“앱솔루트 실드!!!”

마탑주는 항전을 결정했다.

절대 방어 주문을 걸었다.

파아아아아앗! 팟!

마탑주 주변으로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됐다.

마나의 치밀함이 가히 엄청났다.

내가 가진 어떤 마법으로도 부술 수 없는 방어 마법이었다.

파바바밧.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씨익.

입가에 번지는 냉소적인 미소 한 자락.

“하나요!!!”

힘찬 외침이 터졌다.

그리고.

핑!

화살이 맹렬한 속도로 시위를 떠났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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