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장. 내 정령을 소개합니다!(2)
비비안?
아린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현재 최상급 정령사는 대륙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령계와 친밀도가 높았던 과거와 달리 현시대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마법이 판을 쳤다.
그렇다고 정령사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진 않았다.
정작 하급 정령사만 되어도 제국을 비롯해 각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중급 정령사부터는 대우가 파격적으로 달라졌다.
귀족 작위도 쉽게 받을 수 있다.
정령을 마법과 함께 사용하게 되면 그 효과는 몇 배로 상승된다.
그러다 보니 상급 정령사가 되면 7서클 마법사만큼 모든 면에서 대우를 받는다.
존재 자체가 희귀하다 보니 특별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최상급 정령사라고…….
“베커…….”
아린은 그렇게 말하는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공작의 최측근 사람으로 그를 가장 잘 알았다.
베커 공작은 정령사가 맞다.
그것도 특이하게 4대 정령 모두를 소환할 수 있다.
그의 그런 능력은 전투시에 엄청난 장점이 됐다.
몇몇 전투에서 그의 그런 능력으로 확실히 재미를 봤다.
중급 수준을 넘어가는 정령과의 친화력.
하지만 아무리 그들과의 친화력이 높다고 해도 8서클 마법사를 상대할 수는 없다.
정령왕의 후계자라 불리는 최상급 정령만이 대적 가능했다.
특히 인간들이 거주하는 중간계에는 정령왕이 강림할 수 없다.
정령계와 중간계의 마나 체계가 달라 균형이 무너진다.
마왕도 마찬가지.
중간계의 수호자인 드래곤만이 인간들 세계에서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베커 공작.
아린은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예 정신이 나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파아아아아아앗.
환한 빛이 터졌다.
데오드란의 이죽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사정없이 터지는 빛의 광채.
그리고.
“아!”
아린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베커의 앞에 연한 푸른빛의 오라를 두른 존재가 정말 나타났다.
“헛!”
“으허헛!”
“무, 물의 정령이다!”
지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으으으으.”
“최……상급 정령!”
정령의 등장만으로 삽시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8서클 마탑주 데오드란보다 더 대단한 마나의 위용을 드러냈다.
그것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여성체였다.
미모와 함께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매끈한 허벅지와 가는 팔이 보이는 푸른 정령의 갑옷만을 착용하고 있었다.
동그란 보호막이 아름다운 정령을 감쌌다.
주변으로 넓게 퍼져 있는 물의 입자들이 태양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였다.
마치 여신과 같았다.
감히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 나의 계약자…….
물의 상급 정령이 베커 공작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소환된 정령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듯한 시선이다.
“???”
아린은 둘 사이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물론 정령사와 정령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인간 형체는 물론 감정까지 다 드러낸다고 전해지는 정령들.
그런데 둘은 뭔가 더 특별한 게 느껴졌다.
“비비안……. 무사했군요.”
베커 공작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정령의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바라봤다.
- 당신 덕분에.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베커 공작과 최상급 물의 정령.
평범한 대화 같았지만 분명 달달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가 봐도 친밀도가 최상이었다.
“으으음…….”
그사이 데오드란 탑주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농담이거나 헛소리인 줄 알았다.
베커 공작이 정령사인 줄은 알았지만 최상급 정령까지 소환할 줄은 미처 몰랐다.
대륙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마법사이며 검사인 데다 동시에 정령사이기도 한 존재는 결코 없었다.
그러나 버젓이 현존하는 존재로서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미친! 이게 말이 돼?’
데오드란은 10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는 처음 맞닥뜨렸다.
마탑 서고에 보관된 기록에도 언급된 적 없는 대사건이다.
중간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본 상식이 파괴됐다.
꿀꺽.
데오드란이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최상급 물의 정령은 8서클인 자신과 버금가는 능력자다.
아니 수계열 마법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8서클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 마법사는 몇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정령들은 그 과정 없이 자유자재로 원하는 마법을 펼친다.
그 차이만으로도 금방 죽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
‘맞아!’
그때 데오드란은 오래된 지식 하나를 기억해 냈다.
정령왕이 될 후계자인 최상급 정령들은 중간계에서 살생을 할 수 없다.
신이 정한 인과의 법칙에 걸리는 조항이다.
“흐흐흐.”
만족스러워진 데오드란의 입가에 음흉한 웃음이 번졌다.
바짝 쫄았던 마음이 금세 풀렸다.
최상급 정령의 출현이 놀라웠지만 이제 두렵지는 않았다.
‘저놈을 반드시 내 종으로 만들어야 해!’
대신 더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베커 공작을 휘하에 묶어둘 수 있다면 상상을 초월한 이득이 될 것이다.
황실 마탑 서고부터 시작해 최상급 정령까지 부릴 수 있게 된다.
슥.
데오드란이 여황제를 힐끔 바라봤다.
최상급 정령의 등장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베커 공작과 여황제는 이미 서로 죽고 못 사는 관계가 분명했다.
‘저년을 납치한다!’
데오드란은 큰 결심을 했다.
마침 분위기도 좋았다.
서로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령과 정령사.
데오드란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마법을 준비했다.
***
- 너…… 너…… 도대체…….
알파닥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버거린다.
충격에 말이 뚝뚝 끊긴다.
내 정령을 소개하자 일순간 사방이 침묵에 잠겼다.
모두들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광경에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도박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비비안은 물의 정령왕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존재다.
지구에서 이곳 세상으로 차원 이동한 비비안.
물의 정령왕이 사랑한다는 말만 남기고 데려갔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호수의 여왕 비비안은 특별한 존재가 됐을 거라 생각했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독학해 마법사에서 정령이 된 그녀다.
이곳 시간이 몇 년이 흘렀음을 감안할 때 그녀 역시 레벨 업했을 거라 판단했다.
보지 않아도 느낌이 팍 왔다.
비비안은 최상급 정령이 되고도 남았을 거라는 묘한 믿음이 발동했다.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무모한 도박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
진정 비비안은 최상급 물의 정령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흐뭇한 마음만큼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이게 말이 돼! 네가 어떻게 최상급 정령사가 될 수 있지? 이곳에서 네 모든 것들을 지켜봤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알파닥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악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씨익 웃었다.
그리고.
오빠라고 불러라.
- 흐으으으윽. 우아아아아앙.
알파닥이 흐느껴 운다.
전혀 안타깝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 마신님! 이건 반칙이잖아요? 인간이 어떻게 저래요? 고서클 마법사에 최상급 정령사에……. 이런 특혜가 어떻게 있을 수 있죠? 저 인간 나이 때에 전……. 젖을 먹고 있었단 말이에요! 우아아아아아앙.
알파닥이 정말 서럽게 운다.
그녀가 울수록 왠지 마음은 더 따뜻해졌다.
운 좋은 계약으로 알파닥을 옭아맸다.
앞으로 쓰레기네 뭐네 하는 소리는 들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알파닥!
그녀를 불렀다.
- 왜!
오빠라고 불러봐.
마신의 이름으로 약속했잖아.
- ……이 쓰레기…… 사기꾼!
뭐라고? 쓰레기 사기꾼?
어허! 오빠한테 말버릇하고는!
대놓고 알파닥을 훈계했다.
- 흥! 그래 너 잘났다. 쓰레기 오빠 새끼야!
헛!!!
오빠 새끼?
- 오빠라고 불러주면 됐잖아. 이 사기꾼 오빠놈아!
성질 고약한 알파닥 같으니라고.
나중에 두고 보자!
오빠 소리를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을 뻔했다.
알파닥의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 ……마족이네요.
그때 비비안의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비비안, 알파닥이 보여?
- 네. 아주 잘 보여요. 예쁘고 깜찍한 마족이네요.
알파닥이 예쁘단다.
장립 귀신도 같은 말을 했었다.
알파닥의 미모가 엄청나다고 말이다.
이상하게 나한테는 안 보였다.
귀신이나 신도 볼 수 있는데 왜 알파닥은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다.
- 언니. 몇 살이에요? 내가 정령들이랑 별로 친하지는 않아도 정령왕님과 최상급 정령 정도는 알고 지내는데……. 처음 봐요.
언니?
알파닥이 생각보다 넉살이 좋다.
- 몇천 살 안 먹었어요.
- 그래요? 보기보다 어리네요.
“…….”
몇천 살이 어리단다.
정령과 마족의 시간 개념은 인간의 상식을 한참 넘어섰다.
- 그런데 정령 언니는 왜 그랬어요?
- 네?
- 저 쓰레기 오빠가 뭐가 좋아 계약을 맺어 준 거죠? 그냥 혼자 편히 살아도 될 능력자인데 왜 그랬어요.
뭐라고? 알파닥! 너 지금 말 다했어!!!
- 그게…….
비비안이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비비안! 내가 당신을 구해줬잖아!
- 언니도 저 오빠 사기꾼 새끼에게 당한 거죠? 순진한 여성체 꼬셔서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악덕 제비 오빠 놈에게 말이에요.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르면서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알파닥이 얄밉다.
보이기만 하면 당장!
- 좋은 분이에요.
그때 비비안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총평했다.
- 에엑? 조, 좋은 인간요? 저 변태 오빠 녀석이요?
- 네. 마음이 따뜻해요. 그리고……. 잘생겼잖아요.
……정령도 얼굴을 따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게다가 비비안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듣는다.
흐흐.
알파닥으로 인해 치솟던 분노 게이지가 빠르게 내려갔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나의 정령.
미안하지만 나도 얼굴 따졌다.
- 얼굴 그거 금방이에요. 마족 중에 얼굴 잘난 놈들도 나중에 그 값을 하더라고요. 뭐니뭐니 해도 얼굴보다는 성실함과 진실성이죠.
-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경험해 보니까 진실한 남자가 최고더라고요.
“…….”
지금 둘, 이 분위기는 뭐지?
사악한 마법사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정령과 마족의 사담 나누는 자리가 돼 버렸다.
저기 지금 두 분.
그녀들을 불렀다.
비비안이 날 본다.
저기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치고 난 뒤에 따로 시간을 내 드릴 테니…….
- 어! 저 자식 뭐야!
그때 알파닥의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터졌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광경.
“흐흐흐. 베커 공작. 항복해라! 움하하하하하하하하하!”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