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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장. 쥐덫 (1,231/1,284)

1256장. 쥐덫

“저, 저자가!”

“아직 살아있었다니…….”

“허어어어.”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안전하게 자리잡은 일단의 귀족들.

각 왕국을 대표하는 귀족들과 힘이 강한 공작령의 주인들이었다.

국왕들은 혹시 모를 위험과 체면 때문에 무리와 함께하는 데 빠졌다.

그 대신 왕국을 대표할 만한 귀족들이 참전했다.

대귀족들은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우세한 입장에서 전투를 관전했다.

제국 부흥군의 멸망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을 선발대로 보내 철저하게 안전을 확보했다.

보호 마법이 걸려 있는 장막 안에서 술잔을 돌리며 축제 아닌 축제를 즐겼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무력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법사들이 난사하는 마법은 한눈에 봐도 화려했다.

죽기 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의 힘든 구경거리로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전쟁터에 출정한 것이 아니라 마치 파티장에 온 듯한 기분을 맛봤다.

감탄을 터트리며 구경하던 중에 제국 쪽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베커 공작…….”

“으음.”

귀족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전에 놈이 부린 패악이 장난 아니었다.

처음 결성됐던 연합군을 보란 듯이 해체시켰다.

빈집털이를 통해 느슨한 왕국과 대귀족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린 것도 저자였다.

놈이 사라진 뒤 고심 끝에 다시 결성된 연합군.

“걱정 마십시오. 놈만 처치하면 이 전쟁은 끝납니다!”

루베사 왕국의 오르트 공작이 호기롭게 외쳤다.

“맞습니다. 어차피 놈은 죽여 없애야 할 대상입니다.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이온 왕국의 샤를 공작도 말을 보탰다.

“동의합니다! 놈만 사라지면 제국 부흥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팰트론 왕국 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영지를 갖고 있는 하데인 공작이 목소리에 힘을 잔뜩 줬다.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제국 부흥군.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겪은 심리적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제국이 무너진 뒤 당당하게 왕국을 선포할 순간만을 노심초사 기다렸다.

공작 가문에 그치는 것과 왕국의 위엄은 명칭에서부터 대우가 달랐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후춧가루를 뿌린 제국 부흥군.

막강했던 황실수호공작으로 인해 강제 합병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여곡절 끝에 결성된 왕국 연합군.

전력 투입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제국 부흥군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왕국을 선포하려는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이 정도 투자는 필요했다.

‘이제는 물릴 수 없어! 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팰트론 왕성과 인접한 또 다른 대가문의 주인인 자론 공작도 베커 장을 노렸다.

다된 수프에 코를 빠트려 망치고 싶지 않았다.

거리상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이곳으로 공작 지상군 수만 명이 진군해 오고 있다.

하데인 공작과 팰트론 왕국 주변 땅을 먼저 선점하기 위한 모종의 협의도 맺었다.

계획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베커 장 공작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으음…….”

전투 욕구를 활활 불태우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테론 공작은 진한 신음을 토했다.

베커 공작이 나타난 순간부터 강한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냄새가 나……. 그것도 아주 강하게!’

대지의 상급 정령사이기도 한 테론 공작이었다.

옆에 있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진짜 실력을 가진 기사이기도 하다.

그런 테론 공작이 베커 공작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을 알아서라기보다 본능적인 위기감 같은 것이었다.

정령사로서 감지한 위기의식이 발동됐다.

‘놈도 정령사라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정령사들의 능력은 소환한 정령의 능력에 따라 결정됐다.

베커 공작이 정령사였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만큼 소문처럼 마족은 확실히 아니라는 걸 테론 공작은 알고 있다.

정령과 마족은 한 명의 정령사에게 공존할 수 없는 상극이다.

그런데 오늘 직접 마주하게 된 베커 공작은 테론 공작도 긴장할 만큼 숨겨진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보다 상급 정령사인 것으로 짐작됐다.

“지상군은 언제 옵니까?”

“반나절 거리까지 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너무 늦어요. 놈만 처리하면 바로 기사들을 투입합시다.”

“그러시죠.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귀족들은 호기롭게 투지를 불태웠다.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기사들도 1000여 명이 채워졌다.

오늘 투자된 마력석 규모만 해도 무시 못 할 정도다.

제국 부흥군의 금고를 털어야만 수지가 맞을 것이다.

‘멍청한 놈들!’

본래부터 중립을 유지하려 했던 테론 공작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공중에 떠 있는 마법사들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들리지 않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순간.

우르르르릉!

갑자기 웅장한 진동음이 들렸다.

“어!”

“저게 뭐, 뭡니까!”

호기부리던 귀족들이 당황했다.

제국 부흥군을 보호하던 구 팰트론 왕국 보호 마법진의 색깔이 바뀌었다.

반투명이던 마법진이 은은한 푸른색을 띠었다.

“이중 마법진!!!”

귀족들 옆에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이중 마법진이라면…….”

“설마 이게 함정???”

***

“이……중 마법진!”

“세상에!”

“아…….”

급변하는 상황에 마법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팰트론 왕성 마법진은 과거부터 유명했다.

이미 제국 시절 당시 설치된 마법진이다.

팰트론 국왕이 황실에 충성한 만큼 황제의 명에 의해 최고급 자재가 투입됐다.

당시 8서클이었던 황실 마탑의 탑주가 방어 마법진을 직접 설치했다.

제국 황도에 설치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방어 마법진이다.

그것이 마탑의 마법사들이 대거 출동한 이유이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마법이 펼쳐져도 잘 막아냈다.

투사된 마력량이 한계치를 넘어 부서질 듯하면서도 유지됐다.

그 마법진이 사실은 단일 마법진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마법진의 고유색이 변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정확한 상황은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마탑의 장로들이 혼란에 빠진 것도 당연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마법사들을 이끌고 있는 라피터 부탑주도 경황이 없었다.

탑주 데오드란에게 베커 공작이 다시 나타난 것은 이미 알렸다.

탑주는 짧게 알겠다고만 말했다.

주변 마나들이 끊임없이 들끓은 탓에 길게 대화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주한 이중 마법진.

파르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전신에 몰려왔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야.’

이게 놈이 미리 놓은 덫이었다면 피해가 엄청날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수백 명이 넘어가는 고서클 마법사들을 어떻게 할 만한 마법은…….

“왜 다들 쫄리시나? 후훗.”

급기야 놈이 비웃는다.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악랄하고 가증스런 마족놈아! 이딴 수작으로 우리가 물러날 것 같더냐!”

호기로운 마법사 하나가 베커 공작을 꾸짖듯 소리쳤다.

“수작? 무슨 수작일 것 같은데?”

베커가 소리친 마법사를 정확하게 쳐다보며 여유롭게 되물었다.

의기양양한 태도 하나만은 본받을 만했다.

이렇게 대단한 전력 앞에서도 베커 공작은 결코 기죽지 않았다.

“…….”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던 마법사가 입을 다물었다.

어떤 수작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하나는 확실하게 알려주지.”

베커 공작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마치 적이 아닌 친구를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롤러코스터 안 타 봤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내뱉는 베커 공작.

“그게 말이야 아주 짜릿해. 갑자기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면서 영혼이 오락가락해지거든.”

알 수 없는 뭔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베커 공작.

“맛을 보여줄게. 화려한 덫에 제 발로 찾아온 그대들을 위해!”

그리고 가볍게 씨익 웃는 베커 공작.

스윽.

그런 다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

- 뭐 해! 당장 마법을 펼쳐!

알파닥이 길길이 날뛰었다.

- 악랄하고 가증스러운 마족? 저 새끼 아가리를 확 찢어버려! 제깟 놈이 마족에 대해 알아? 겨우 6서클 마법사 주제에 성스러운 종족을 입에 담다니! 열 받아서 진짜!

알파닥은 마족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방방 뛴다.

대충 느낌이 왔지만 이번에도 무시.

파바바밧.

마법사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모두 반신반의한 표정들이다.

이중 마법진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마법진이 아니다.

아린이 살아있기에 가능했다.

황실 마탑의 탑주가 키워낸 마법사가 다름 아닌 아린이다.

이곳에 설치된 마법진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팰트론 왕국에 설치된 방어 마법진은 감춰진 약점이 존재했다.

그 약점은 오직 황실 마탑의 탑주만이 알고 있다.

제국에 저항하면 일거에 무너트릴 비장의 한 수.

이곳 왕성 마법진을 개조하며 아린이 나에게 알려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 제대로 세상을 향해 그 비밀이 알려질 것이다.

“사악하고 치졸함의 대명사와 같은 마족놈아! 어찌 거짓으로 우리를 우롱하려 한단 말이냐! 이중 마법진이라 해도 두렵지 않다! 어서 펼쳐 보거라!”

마족이라 확신하는 듯 마법사가 침을 튀겨가며 삿대질을 했다.

- 사악? 치졸? 으아아아아아! 뭐 해! 저 자식 입을 찢어버려!

이번에는 알파닥의 뚜껑이 확실히 열렸다.

아니꼬우면 니가 찢어.

-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맹약 때문에 그게 안 돼! 아오! 환장하겠네!

알파닥의 분노에 찬 외침은 아쉽지만 나에게만 들렸다.

내가 너 대신 저놈 입 찢어주면 뭐 해 줄 건데?

- 지금 이 상황에서 거래를 하자는 거야?

어.

답은 간단했다.

맹약에 매인 몸들은 함부로 약속하면 안 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알파닥을 상대로 미끼를 던졌다.

“오크보다 무지하고 음흉한 겁쟁이 마족놈아! 어서 펼쳐 보거라! 어서!”

마법사가 적절한 타이밍에 알파닥의 염장을 제대로 질렀다.

- 오, 오크! 야! 베커! 저 자식 죽여! 그러면 나중에 소원 하나 반드시 들어준다!

정말?

- 당연하지! 나는 한 번 뱉은 말로 두말하지 않는다.

못 믿는다.

요즘 초딩들도 타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 그럼! 어떻게 하라고!

네가 모시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해봐.

그럼 확실히 믿어줄게.

- 그래 맹세한다! 마신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마신…….

알파닥은 마신을 믿는 존재다.

벌써 몇 번 확신할 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역시 조심해야 할 알파닥이다.

“다들 준비됐지?”

알파닥에게 원하는 맹세를 받았다.

이제 시간 끌 필요가 전혀 없었다.

쥐덫을 가동할 시간.

마나에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리버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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