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3장. 쥐 잡는 날 (1,228/1,284)

1253장. 쥐 잡는 날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찢을 듯한 울림이 외성 바깥까지 울렸다.

방어 마법진 때문에 내부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귀에 들리는 광포한 울음소리는 공격하던 마법사들을 공포에 빠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금빛이 연신 번쩍였다.

“이 소리는!”

“으헛!”

“드……래곤 피어!”

허공에 떠 있던 마법사들의 몸뚱이가 휘청였다.

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마나를 다루는 자들을 꼼작 못 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태곳적부터 영혼이 기억하고 있던 공포였다.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만들어내는 피어다.

“으으으…….”

신음을 흘리며 마법사들이 벌벌 떨었다.

그사이 금빛 광채는 사라졌다.

‘이것은!’

사르칸 마탑의 장로이자 2인자인 7서클 마법사 라피터 부탑주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의 판단에 드래곤은 아니었다.

진짜 드래곤이 나타났다면 마법과 관련된 모든 장치들은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허공에 뜬 마법사들이 휘청이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지상으로 추락해야 정상이었다.

“절대반지…….”

라피터 부탑주는 정확하게 절대반지를 떠올렸다.

크로얀 제국 황실의 수호 드래곤인 하르케우스의 가호가 깃든 마법 반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왕성 쪽에서 예상치 못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황실수호공작 각하가 돌아오셨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외침.

“!!!”

“헛!”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연이어 들려온 외침에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황실수호공작이 다시 나타난 게 확실했다.

마법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단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협적이다.

“음…….”

라피터 부탑주 역시 신음을 흘렸다.

베커 장 공작이 돌아온 게 확실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라피터에게 향했다.

이번 기습 공격의 핵심 설계자가 사르칸 마탑의 라피터였다.

마법사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아온 7서클 마스터.

각 왕국에서 파견한 마법사들과 기사들 역시 라피터 부탑주의 명령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탑주께서 반드시 무너뜨리라 명하셨다!’

라피터는 다시 한 번 의지를 불태웠다.

탑주의 명령은 왕명에 버금가게 지엄했다.

현재 탑주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9서클에 이르지 못하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한 탑주였다.

부탑주들이나 장로들 중에 가장 유력한 탑주 승계 예정자로 논의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라피터였다.

하지만 오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라피터라 해도 탑주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난 반드시 탑주가 될 것이다!’

8서클에 오르기 위해서는 탑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7서클까지는 의지와 노력으로 이를 수 있지만 비밀에 싸인 8서클에 오르기 위해서는 탑주의 강력한 마나가 지원되어야 했다.

“뭣들 하는가!!!”

마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라피터가 외쳤다.

“총공격하라! 방어 마법진만 무너지면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확신에 찬 공격 명령이었다.

펄럭.

라피터가 로브 자락을 펄럭였다.

그리고.

“분노하는 화염의 친구여! 너의 힘을 보여다오!”

그동안 아껴두었던 마법을 펼치는 라피터.

“볼케이노!!!”

7서클 화염계 공격 마법 주문이 완성됐다.

파아아아아앗!

거의 동시에 외성 상공에 등장하는 거대한 붉은 소용돌이.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릇.

라피터의 의지를 받든 화염계 마법이 폭포수가 되어 방어 마법진을 후려쳤다.

빠가가가가가가각.

방어 마법진에서 곧 무너져 내릴 듯한 소음이 만들어졌다.

“파이어 레인!!!”

“파이어 스톰!”

뒤를 이어 기다렸다는 듯 마법들이 쏟아졌다.

라피터 부탑주의 공격에 마법사들은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지금 모여 있는 마법사들의 전력은 옛 제국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마법진을 통해 속속 기사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제국 부흥군의 멸망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아무리 황실수호공작이 날고뛰어도 막을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퍼버버버벙!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붉은 화염의 불꽃이 하늘에서 작렬했다.

그사이 팰트론 왕성 방어 마법진은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얼마 남지 않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몸부림과 같았다.

***

저벅저벅.

내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추우웅!”

근위기사들과 병사들이 나와 눈을 맞추며 경례를 올렸다.

끄덕.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에 응답했다.

말보다 때로는 행동 하나가 더 힘이 되어 주는 법이다.

- 잘들 논다.

알파닥의 시비는 틈만 보이면 이어졌다.

철저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알파닥은 내가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할 독설가다.

- 하르케우스 님이 울겠네. 겨우 그깟 조무래기 정도를 상대하면서 반지의 힘을 남용해? 너 하르케우스 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

알파닥이 정확하게 ‘님’자를 붙여 호칭했다.

나에게 하르케우스는…….

호감 가는 도마뱀이다.

나에게 이것저것 선물해 준 마음씨 좋은 생명체 정도.

- 무식한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 그러나 기대해라. 나중에…… 제대로 뒤통수 맞을 수 있으니. 흐흐흐흐.

알파닥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사이 도착한 내성의 핵심부.

회의장으로 사용하는 장소는 단단하게 문이 잠겨 있다.

경호하는 근위기사들 수십 명이 그 앞을 수호하고 있었다.

“추우웅!”

근위기사들이 나를 확인하고 격동에 찬 목소리로 충을 외쳤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 그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격렬한 기쁨이 가득 넘쳤다.

“폐하는?”

“안에 계십니다!”

“고하라.”

“추웅!”

“들어오세요.”

고할 것도 없었다.

아린은 이미 내가 온 걸 알고 있었다.

그그그그극.

단단하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광경.

황좌에 앉아 있는 아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작은 떨림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눈에 박혀들었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아린.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카이루 후작을 비롯해 충성스런 귀족과 기사들 몇몇이 기쁨에 찬 시선을 보냈다.

뚝.

걸음을 멈췄다.

“신 베커 장 황실수호공작이 아린 하르케우스 크로얀 황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어느 때보다 당당한 음성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가 없는 동안 무척 두렵고 외로웠을 아린.

제국을 이끄는 황제가 된 몸이지만 그녀의 본 모습은 한없이 여렸다.

나만 알고 있는 그녀의 진짜 모습.

“……경을 기다렸습니다. 진심으로.”

아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미안한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신의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무슨 소립니까. 경은 제국과 본 황제의 가장 완벽한 충신입니다.”

“황송하옵니다!”

- 불충? 충신? 황송? 푸하하하.

알파닥이 그녀와의 대화를 비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립이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알파닥을 입 다물게 만드는 특효약이었던 장립이 이 순간 무척 그립다.

스윽.

아린과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렸다.

“귀환을 기다렸사옵니다. 각하!”

다음 차례로 힘든 기색이 역력한 카이루 후작이 나를 반기며 입을 열었다.

“다들 수고하셨소.”

한 사람씩 돌아가며 눈을 맞추고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쭉정이들은 빠지고 오롯이 알맹이들만 남아 있었다.

이들이 바로 진짜 제국의 저력이었다.

쿠우웅! 쿠우우웅!

그사이에도 마법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다시 왔음을 알렸음에도 그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면 오늘 제대로 된 살풀이가 필요했다.

내가 없는 사이 다들 간댕이가 많이 부었다.

탑주만 가담한 상황이 아니면 괜찮다.

나도 아직 8서클 마법사를 상대하는 일은 버겁다.

차자자장!

“막아라!”

“반란군이다!!!”

퍼버버벙.

“크아아악!”

“크하하하하하! 덤벼라! 어리석은 놈들아!”

그때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비명.

내성에 침투한 쥐새끼들이었다.

“폐하 적들을 일망타진하고 오겠사옵니다.”

“……승전보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린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 순간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용했다.

“폐하를 수호하도록!”

“추우웅!”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타다다닷.

나의 명에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겁도 없이 감히 내성을 쳐들어온 쥐새끼들.

오늘 제대로 쥐약을 먹여볼 참이다.

다시는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

“푸우욱!”

“컥!”

마법에 의해 몸이 묶인 기사의 심장에 검이 박혔다.

제대로 된 마법사가 드문 제국 부흥군.

마법사들 상당수가 반란군에 합류했다.

근위기사들과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7서클 마법사와 함께 나타난 마탑의 마법사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공격력을 자랑했다.

손짓 한 번에 모든 게 불타고 재가 되었다.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내성에 침투한 갈기오 마탑의 앙주앙 장로는 오랜만에 맛보는 합법적 살인에 쾌감을 느꼈다.

그는 과거부터 손속이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다른 마법사들보다 한층 더한 살육을 즐겼다.

그만큼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둔감했다.

도리어 사람들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에 피가 끓어올랐다.

‘흐흐흐. 황제의 비명은 어떤 맛일까?’

백마법사였지만 흑마법사 못지않게 잔혹한 앙주앙 장로.

그의 발걸음이 마음만큼 바빴다.

라피터가 방어 마법진을 부수기 전에 황제의 목을 따고 싶었다.

여황제 목에 거대한 현상금이 걸렸다.

중요한 건 돈이 문제가 아니다.

과거 제국 마탑과 사이가 안 좋았던 앙주앙이다.

그는 마탑에 들어가기 전 제국 황실 마탑에서 공부했다.

당시 뛰어난 실력만큼 무서울 것 없이 오만했던 앙주앙.

우연히 황실 마탑에 견학 온 귀족과의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오만한 이들끼리 벌어진 흔한 싸움 수준이었다.

가볍게 마법으로 화상을 입혔다.

평소라면 유야무야 넘어갔을 일이었다.

그 정도로 앙주앙은 황실 마탑에서 촉망받던 인재였다.

사실 일반 귀족 자제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화상을 입은 귀족에게 황족의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모든 죄를 앙주앙이 뒤집어썼다.

그 일로 황실 마탑에서 쫓겨났다.

게다가 마법도 폐쇄당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앙주앙은 복수를 다짐했다.

이름을 바꾸고 모아두었던 모든 자금을 투입해 갈기오 마탑에 입문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크로얀 제국 황실과 귀족들에게 불벼락 내릴 그날을 기다리며 마법 수련에 정진했다.

그러나 황실이 거짓말처럼 어느 날 무너져 버렸다.

결과는 바라는 대로 됐지만 복수심은 쉬이 꺼지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황족의 씨를 말려야 직성이 풀릴 일이었다.

하늘이 외면하지 않았는지 기회가 찾아왔다.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황족이 제 발로 나타났다.

당연히 앙주앙은 선봉을 자처했다.

여황제 아린.

산 채로 마법에 불태우고 심장에 검을 꽂을 생각에 온몸의 세포들이 흥분했다.

“다 왔습니다!”

배신자 하루하틴이 앞장을 섰다.

지하에서 곧장 이어진 황제 회의장.

멀지 않은 곳에 일단의 근위기사들이 방어진을 펼치고 대기 중이었다.

“하루살이 같은 놈들. 흐흐흐.”

7서클 마법사에게 웬만한 수준의 기사들이 아니고서는 한입거리도 안 됐다.

앙주앙이 마법 지팡이를 들고 기사들을 응시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루하틴이 나섰다.

차자자작.

그 뒤를 이어 반란군에 합류한 마법사들이 나섰다.

마탑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모두 투항하라! 갈기오 마탑의 앙주앙 장로님께서 자비를…….”

마나를 담아 큰 소리로 아부와 협박을 동시에 날린 하루하틴.

“!!!”

하지만 말을 채 다 뱉지 못했다.

쇄애애앳.

느닷없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온 날카로운 창 때문이었다.

그리고!

퍼어어어어억!

회귀의 전설 3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