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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장. 문을 열라!!!

“올여름도 다 지나가는군……. 시간의 흐름이 왜 이렇게 빠른지…….”

대륙 3대 마탑 중 한 곳인 갈기오 마탑.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원형 마탑 최상층의 주인이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맥 꼭대기 근처의 나무들이 색색이 물들어 가고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봤던 세월과 계절의 변화.

남자는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새하얀 로브를 착용하고 뒷짐을 지고선 색색이 물들어 가는 먼 산맥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30대 중반 정도의 잘생긴 금발 청년으로 보이는, 마탑주 발몬은 깊은 눈길로 속절없이 흐르는 자연을 느꼈다.

마법사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마탑에서 살게 됐다.

고서클이 되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위대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법적 재능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도 무한한 재주가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아부와 배신이 난무했다.

마탑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과 다를 게 없었다.

치열한 조직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한 술수로 서슴없이 동료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

그렇게 이뤄낸 지금의 마탑주 위치.

“마나의 끝은 무상하다더니…….”

발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깃들었다.

9서클에 오르기 위한 노력은 진작 포기한 상태다.

과거 마탑주를 지낸 이들과 선배들 역시 부단히 시도한 과정이었다.

그들 모두가 끝내 마지막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마나로 돌아갔다.

고군분투하며 살아낸 그들이 남긴 마지막 유언은 대부분 원망이 아닌 무상(無常)이었다.

발몬은 그들의 말이 인생이 덧없음을 말하는 것인지, 정해지지 않음을 말하는 건지,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죽기 전에 누구나 깨닫게 되는 허무 정도로만 짐작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발몬은 간간이 느끼는 바가 있었다.

마법은 아니지만 인생무상의 깨달음 같은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무상이 결국은 둘 다였다니……. 허어.”

젊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입에서 한탄 섞인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눈동자 속에서 발산되는 텅 비어 있음의 실체.

그토록 발악해 가며 노력했던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無)로 돌아가고 공평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마나 샤워를 통해 육체는 젊은 시절의 상태를 유지했지만 이런 과정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명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수천 년을 넘도록 살아가는 드래곤이나 천 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는 엘프와 많이 달랐다.

8서클에 오른 대마법사도 인간의 육체로는 200년을 버티기 힘들었다.

발몬에게는 아직 몇십 년의 세월이 더 남아 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쿠아란의 유물만 손에 넣었다면 이런 괴로움도 없었을 것을.”

인간들 중 유일하게 9서클에 오른 대마도사 쿠아란.

비록 반쪽 인간이었지만 9서클에 대한 실마리를 쿠아란만이 알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미 타 차원으로 이동해 버린 지 오래인 쿠아란과 그가 쥔 유물을 찾기란 요원했다.

그때 쿠아란의 던전에서 사건만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 갈기오 마탑은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쯤 팰트론 왕성은 무참히 무너졌겠군.”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제국 부흥군 공격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마탑의 장로 상당수와 고위급 마법사 등을 파견했을 뿐.

그 정도라면 충분히 제국 부흥군을 처단하고 남을 위력이다.

과거처럼 제국에 속박당한 채 살고 싶지는 않았다.

황실이라는 자체가 마탑과는 껄끄러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갑자기 마나의 기이한 흐름과 진동이 느껴졌다.

발몬 탑주는 마탑과 관리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나의 작은 흐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발몬은 크게 당황했다.

마나 파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파아아아아앗!

마탑에서 엄청난 빛무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마나 감응 대응 마법진이 자동으로 발현된 것이다.

평소에는 전혀 가동되지 않는 가장 강력한 마탑 방어 마법진.

“어!”

“이, 이게 뭐야?”

마탑에 남아 있던 몇몇 마법사들도 화들짝 놀랐다.

파아앗! 파앗!

당황한 사이 마법진은 완벽하게 마탑 주변을 반투명한 빛으로 단단하게 감쌌다.

방어 마법진이 자동으로 펼쳐진 일은 거의 없었다.

누가 감히 대륙 3대 마탑을 겁도 없이 공격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파아아아아아아아앗!

마탑 주변 상공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며 투명한 광채가 또 한 번 터졌다.

거의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일단의 무리들.

마법사들이었다.

“저, 저들은!”

“으아아아! 습격이다! 습격!”

마탑을 경비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비명을 토했다.

대규모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나타난 이들은 아군이 아닌 적이었다.

손에 들려 있는 마법 지팡이에서 강력한 마나가 감지됐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수만 해도 대략 수백여 명에 달했다.

대부분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확실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싸늘하고 무표정한 데다 매서웠다.

“발몬! 어서 나와 죄를 고하고 참회하라!”

마법사들 무리 중 가장 앞에 선 이가 준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 자르반 라든 탑주!”

“라든 마탑이 공격해 왔다!”

둥! 둥! 둥! 둥!

정체를 확인하고 습격을 알리는 마법종이 둔중하게 사방으로 울렸다.

“자르반!!!”

넓은 창문으로 보이는 자르반의 모습에 표정이 어둡게 일그러지는 발몬.

갑작스러운 자르반의 공격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출현과 동시에 죄를 고하고 참회하라 외쳤다.

사실 자르반과는 자주 만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만남이라 해도 수십 년 전 일이다.

사르칸 마탑과 달리 친분이 없는 자르반 탑주.

팟!

순간 발몬의 몸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마탑 상공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느새 손에 들린 마나 지팡이.

“자르반 탑주,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준엄하게 자르반을 바라보며 발몬이 외쳤다.

“오! 겁쟁이 발몬 탑주. 이제야 모습을 나타냈구나.”

마탑주들은 이런 일이 아니어도 서로 기본 예의를 지켜왔다.

피차 싸워봐야 피곤해질 뿐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자르반 탑주가 작정한 듯 발몬을 겁쟁이라 놀렸다.

“지금 본 탑주와 싸우자는 것이오?”

발몬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누가 봐도 시비를 거는 모양새였다.

마탑 역사상 이런 수모는 처음이다.

과거 마탑과 사이가 좋지 않은 황실이나 왕국도 이렇게 무례하지는 않았다.

“발몬 탑주. 사과하라!”

다짜고짜 또 사과하라고 소리치는 자르반 탑주.

“무엇을 말이오!”

답답한 듯 크게 따져 묻는 발몬.

“과거 110년 전 그대는 신진 마법사 전국 모임에서 나에게 무안을 줬다!”

“???”

자르반의 외침에 발몬은 의구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110년 전 일은 까마득한 옛날이다.

당시 발몬은 4서클 정도의 마법 수준이었다.

마탑주들의 결정에 의해 마법사들끼리 서로 교류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다툼이 자주 벌어졌다.

특히 다른 마탑의 마법사들과의 사이에는 경쟁심이 치열했다.

그때의 일을 끄집어내고 있는 자르반.

‘저 자식 미친 거 아냐?’

무상을 느꼈던 조금 전의 허무한 감정이 싹 달아났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분노가 서서히 들끓기 시작했다.

“내가 탑주에게 뭐라고 무안을 줬단 말인가!”

발몬이 사납게 쏘아붙였다.

“크크크. 기억나지 않는 게 정상이지. 본래 때린 놈들은 기억 못 한 채 발 뻗고 자는 게 더러운 세상의 이치니까 말이야.”

“허어어.”

발몬은 어이가 없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당시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밝혀지는, 자르반이 느꼈다는 무안의 실제 내용.

마법사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마탑주가 110년이나 지난 일로 갑자기 나타나 사과하라 유고할 정도라면 대단히 치욕스러웠을 내용인 게 확실했다.

그리고.

“당시 4서클 마스터였던 넌……. 4서클 초짜였던 나에게 공식을 설명하며 뇌가 하얀 밀가루 면발처럼 순수하다고 잔인하게 속삭였다!”

쿠궁!

“면발 순수!”

“세상에! 그렇게 심한 욕을!”

“탑주님! 크으으으!”

자존심 강하고 똑똑한 마법사들에게 가장 심한 욕이 뇌가 밀가루 면발처럼 순수하다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멍청이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수시로 마탑에서 선배들이나 고서클 마법사들이 후배들을 교육할 때 던지는 말 중 하나다.

그걸 밑천 삼아 고서클에 오르는 마법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타 마탑의 마법사들이 뇌가 순수하다고 말했다면 그건 평생의 원수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만한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탑주님의 명예를 지켜드리자!”

“갈기오 마탑주는 사과하라!!!”

“잔인한 발몬 마탑주는 마나 앞에 용서를 구하라!”

라든 마탑의 마법사들이 분기탱천했다.

“미친…….”

발몬은 당시 장면을 기억해 냈다.

그는 뇌가 순수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타 마탑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시간에 라든 마탑의 마법사를 만난 건 맞다.

자르반이 그때 마법사였던 것까지는 사실 기억에 없다.

그때 그에게 웃으며 그 말을 한 것은 기억난다.

오늘 점심에 먹은 면 요리 맛이 순수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오해로 상황을 왜곡시키고 있는 자르반 라든!

“야! 이 쌍X의 새끼야! 내가 언제 그랬냐! 오늘 명찰 떼고 한판 붙자!”

금발의 미남자 발몬 탑주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료하고 삶의 이벤트가 없어 답답했던 발몬이었다.

고요했던 조금 전의 인생무상에 대한 깨달음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딱 하나.

“그래! 오늘 제대로 한 판 붙자! 내가 시원하게 개 값 한 번 물어준다!”

자르반 탑주도 자신의 기억을 무기로 눈동자가 돌아간 상태였다.

요원하기만 9서클 경지.

지금 필요한 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속 시원하게 마음의 체증을 뚫어 줄 주먹질밖에 없었다.

***

화르르르르르르르.

비명도 없다.

방금 전까지 내성 문을 부수던 반란군들.

모조리 화염 마법에 뼈까지 타 사라져 버렸다.

마법 갑옷마저 녹아내릴 정도로 화력이 강력했다.

황실 수호 드래곤 하르케우스가 제작한 절대 반지의 능력에 몸이 잔뜩 굳어버린 적들.

강력한 화염계 마법으로 태워버렸다.

“…….”

내성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봤다.

누가 봐도 잔혹한 장면이다.

쿵! 철컥.

도망가다가 그대로 불에 타 바닥으로 쓰러지는 말과 시체들.

마법으로 인해 순식간에 타고 녹아내렸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전쟁 중에 가장 위험한 놈들이 바로 내부에서 고개를 든 적이다.

국가의 성장을 방해하고 부정한 기운을 뿌려 성장을 저해하는 놈들.

죽어도 쌌다.

내성 문 앞에 섰다.

마법을 사용해 날아가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외성에 쏟아지는 마법들이 강력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철컥.

손에 들린 검을 검집에 넣었다.

황제가 머무는 내성.

아무리 고위 귀족이라 해도 검을 함부로 뽑아 들고 입성할 수는 없다.

그건 황제에 대한 예법이 아니다.

그리고 현 황제는 이곳 대륙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여인이 아닌가.

“문을 열라!”

당당하게 외쳤다.

그그그그그그그극.

단단하게 버티던 내성 문이 열렸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한꺼번에 터지는 엄청난 함성.

“황실수호공작 각하가 돌아오셨다!!!”

어느 기사의 마나 가득한 외침이 메아리치며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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