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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장. 반란(3) (1,226/1,284)

1251장. 반란(3)

“스승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하하하하하하하.”

왕실 연합군과 마탑들이 제국 부흥군을 공격하는 사이 라든 마탑은 줄곧 침묵을 지켰다.

베커 공작을 자르반 탑주가 뒤에서 도왔지만 그건 암중의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제국 황실과 관계 맺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베커 공작의 부재 상태가 벌어졌다.

이럴 때 괜히 제국을 도왔다가는 라든 마탑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자르반 탑주도 칩거에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마탑과 연관되어 있는 인구만 해도 100만이 넘었다.

제국 황실 측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섣불리 응했다가 멸망의 길로 접어들지도 몰랐다.

그런 기로의 상황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감쪽같이 사라졌던 베커 공작이 다시 돌아왔다.

헤어질 시점에 건넸던 통신구를 통해 뻔뻔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자르반 라든 탑주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때 보면 베커 공작은 자신과 성격이 무척 잘 맞았다.

그는 어느 면에서나 정치적이지 않아 좋다.

화끈한 데다 실력도 인정할 만했다.

그 능력이면 오만할 법도 하건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넉살도 좋다.

“이제 패를 감추지 못하겠어.”

한바탕 웃음을 토해냈지만 자르반 탑주는 눈빛을 냉정하게 빛냈다.

제국과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군과 적은 명확해진다.

한순간의 선택이 마탑의 미래를 좌우하는 건 당연하다.

제국에 붙어 승리를 거둔다면 만고의 영광이 되겠지만 그 반대가 된다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이성과 가슴이 다른 편이라니……. 후훗.”

자르반은 오랜만에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껴졌다.

8서클에 오른 이후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어차피 9서클은 전설의 경지.

인간으로서 9서클에 오른 자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과거 대마도사라 불렸던 9서클 마법사 쿠아란은 인간이 아니었다.

탑주들 몇 명 정도만 알고 있는 비밀.

쿠아란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다른 생명체의 핏줄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9서클에 오를 수 있었다.

다른 인간들은 그처럼 될 수 없다.

역사가 유구한 마탑에도 9서클 경지에 오른 자나 그들을 위한 마법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빈손으로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자르반은 8서클에 오른 후에도 어느 시점까지 부단히 노력했다.

9서클에 오르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예견했듯이 역대 마탑주들처럼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그렇게 보낸 시절이 벌써 100년 가까이 됐다.

마나 샤워를 통해 목숨줄은 연명하고 있었지만 지난한 9서클 경지에 열정을 쏟느라 이제는 힘이 다 빠졌다.

게다가 마탑주라는 위치도 갈수록 의미가 없어졌다.

두 어깨에 얹어진 짐의 무게가 무겁기만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귀찮은 일만 많아졌다.

그즈음 나타난 베커 장 공작.

자르반은 베커와 함께 왕국들을 공격했을 때 속이 뻥 뚫린 기분을 맛봤다.

오랫동안 답답하게 자신을 눌러오던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찼다.

“그런데 맛이 고약하군.”

자르반은 입맛을 다셨다.

베커 장 공작이 요청한 도움의 방법이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수백 년 동안 지켜져왔던 보이지 않는 규칙을 깨는 일이었다.

“발몬은 보기보다 성격이 더러운데…….”

베커 공작이 바라는 도움은 쉽게 결단 내리기 어려웠다.

갈기오 마탑을 공격해 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마법사들을 차출해 파견해 달라는 것과는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타 마탑을 공격하는 일에는 탑주가 직접 나서야 가능했다.

“흐흐흐흐.”

자르반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신선해. 아주 좋아!”

자르반 탑주의 눈동자에 일순간 광기가 돌았다.

“발몬 그 자식 110년 전에 날 무시했었어. 잘났다고 마법사 모임에서 무안을 줬지. 이제 그 빚을 받아낼 때가 됐어.”

100년도 지난 시절 무시당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자르반.

“그 정도면 명분은 충분해. 마법사들 쪼잔한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자르반은 억지 명분을 만들어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베커 공작.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에게 능력을 보여다오. 만약…… 놈들에게 패하면 네 뼈까지 화끈하게 박살내 불태워버리겠어. 크하하하하하.”

라든 마탑에 울려 퍼지는 탑주의 광소.

우르르르르릉.

덩달아 마나가 요동쳤다.

탑주와 연관된 마탑이 파동을 공유하며 진동한 것이다.

“이게 뭐야?”

“타, 탑주님!”

라든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갑작스러운 마나 진동에 몸을 떨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칠지 전혀 짐작도 못 한 채 말이다.

***

“이동 마법진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카이루 후작이 당황하며 외쳤다.

마음 착한 아린이 기회를 줬다.

자신이 황제라면 항복하자는 놈들을 감옥에 처넣거나 목을 베었을 것이다.

아린은 자비를 베풀었다.

자신의 무능이라 탓했다.

그럼에도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

떠나지 않고 병력들을 일으켜 공격해왔다.

카이루 후작은 통한의 피눈물을 마음으로 흘렸다.

배신자 귀족들 중에는 자신이 추천한 귀족들도 존재했다.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린이 카이루 후작을 보며 물었다.

“……크으.”

카이루 후작은 말을 잃고 신음을 흘렸다.

갈 곳이 없다.

이동 마법진이 봉쇄됐다.

외성 밖에도 적들이 나타났다.

반란군들을 내성을 공격해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안합니다.”

아린이 카이루 후작과 남아 있는 귀족들을 보며 사과했다.

“못난 저를 만나 경들의 목숨과 가문까지 위험에 처했습니다.”

아린의 자책 어린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귀족과 기사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군의 절절한 사과가 가슴을 쑤셨다.

제국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뛰어들었지만 적들이 너무 강했다.

“항복을 준비하세요.”

아린이 비장하게 결단을 내렸다.

“폐하!!!”

“크으으으으으.”

충성스러운 자들이 분루를 삼켰다.

쿠우우우우웅! 콰과과과과광!

우르르르르르.

작렬하는 마법 공격에 지축이 흔들렸다.

방어 마법진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안전을 보장할지 몰랐다.

“저, 적이다!”

“막아라!!!”

“크아아아악!”

차자자장!

그사이 내성에서도 요란하게 함성과 비명이 울렸다.

‘베커……. 당신이 보고 싶어요.’

아린은 마지막까지 버텼다.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했다.

베커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어젯밤 고뇌에 차 밤을 새우다 잠깐 선잠에 들었다.

그때 꿈속에서 베커가 나타났다.

황금 드래곤과 함께 나타난 베커 공작.

단박에 적들의 심장에 구멍을 내고 아린을 구해냈다.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그때!

“모두 멈춰라!!!”

마나 가득한 누군가의 외침.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연달아 거대한 울림이 내성을 강타했다.

“!!!”

아린이 놀라 밖을 바라봤다.

두툼한 마법 창문으로 보이는 광경.

“허어엇!”

“헛!”

귀족들과 기사들도 놀라 신음을 터트렸다.

황금빛 광채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포효하는 한 존재.

“골드 드래곤 하르케우스!!!”

황실을 상징하는 하르케우스의 등장.

“베커!!!”

아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

내성 문을 신나게 두들기던 반란군들의 몸뚱이가 그대로 굳었다.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등 뒤 창공에서 감지되는 어마어마한 기운.

“으으으으.”

귀족 반란군의 수장 얄튼이 신음을 토했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존재가 나타났음은 직감할 수 있었다.

마나와 함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쿠아아아아아아아!

귓가에 울리는 천둥 같은 포효.

‘드래곤 피어……!’

말로만 듣던 전설의 드래곤 피어 같았다.

이성적이던 사고도 멈춰 버렸다.

내성 문을 무기로 찍어내던 기사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감히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감히!”

그 상태로 들려오는 분노한 남자의 목소리.

어딘가 익숙했다.

한때는 든든함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공포로 귀를 울렸다.

“내가 수호하는 황실을 욕보이다니…….”

쿠아아아아아아아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곧바로 들려오는 분노로 가득찬 위대한 존재의 울부짖음.

덜덜덜.

얄튼은 사시나무처럼 떨며 간신히 뒤를 돌아봤다.

“!!!”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돌아선 그의 눈에 한 존재가 들어왔다.

거대한 황금 드래곤과 그 옆에 서 있는 한 남자.

“베, 베커…… 고오오오옹작.”

이가 제멋대로 달달 떨렸다.

그가 돌아왔다.

사라졌다던 황실수호공작 베커가 절대 반지 속 하르케우스를 소환해 자신의 건재함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었다.

“반란의 대가는 잘 알 것이다.”

스윽.

베커 공작이 손에 들린 검으로 얄튼 자작과 반란군들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얄튼 자작은 황실수호공작의 위명을 잘 알고 있었다.

홀로 팰트론 왕국을 멸망시킨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놈은 혼자다!’

얄튼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합류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작 각하가 돌아오셨다!!!”

내성을 비롯해 사방에서 베커 공작의 귀환을 알아채고 함성이 터졌다.

“뭐, 뭣들 하느냐! 흩어져라! 흩어져!”

얄튼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성안 곳곳으로 흩어져 제국군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만으로도 본래 받은 명을 다 수행한 게 된다.

여기서 더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쳐라!!!”

“산개하라!”

반란군들은 상황 파악도 못 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다.

베커 공작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준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걸음을 움직이려는 그 순간.

“너희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

냉엄하게 들려오는 베커 공작의 선포.

쿠아아아아아아아아!

골드 드래곤 하르케우스가 지상으로 강림했다.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며 하르케우스가 돌격해왔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그게 얄튼이 두 눈으로 마지막에 본 광경이었다.

어떤 수를 써도 막을 수 없었다.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 커졌고 입은 턱이 빠질 만큼 크게 벌어졌다.

드래곤의 무서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완벽한 공포.

몸에서 화끈한 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순간 온 세상이 피 같은 붉은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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