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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9장. 반란. (1,224/1,284)

1249장. 반란.

“멍청한 계집 같으니라고! 크로얀 제국의 적통도 아니면서 무슨 황제야!”

“그러게 말입니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역시 어리석은 계집입니다.”

“빨리 빠져나갑시다. 성문이 닫히면 꼼짝없이 이곳에서 죽어야 합니다.”

“선발대가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회의장에서 속속 빠져나가는 크로얀 제국의 귀족들.

그들의 발걸음이 매우 빨랐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그들 중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폐하라 칭하던 여황제 아린을 두고 욕을 퍼부었다.

과거 팰트론 왕국의 귀족이었거나 개국공신 자리를 노리고 찾아온 허울만 그럴싸한 귀족들이었다.

세력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백작급 인사들도 없었다.

자작과 남작으로 중소 귀족이 전부였다.

손 하나가 아쉬웠던 아린 황제가 조건 없이 그들을 받아줬다.

찾아온 목적이야 빤했지만 없는 것보다 나아서 선택한 일이었다.

제국 황실수호공작의 극적인 활약 이후 소문을 듣고 여러 귀족과 기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황실수호공작 홀로 왕국과 대귀족들을 벌하였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그 소식에 마탑도 두려워 떨었다.

더욱이 아린은 크로얀 제국의 마지막 남은 황족이었다.

황제에게 크로얀 제국의 보물 창고가 남겨졌을 거라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돌았었다.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한밑천 잡으려는 심산으로 속속 모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요인인 황실수호공작이 사라져 버렸다.

그 때문에 왕국 연합군이 재결성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시 분위기가 수상해지자 몰려들었던 자들 중 도망자들이 속출했다.

충성심 따위는 개한테 던져주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잠깐!”

그때 앞장서서 도망치던 귀족이 소리쳐 외쳤다.

“얄튼 자작님 무슨 일입니까?”

팰트론 왕국에서 망명한 얄튼 자작이 외치는 소리에 모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왜 도망가야 하지?”

얄튼 자작이 음흉하게 눈빛을 빛내며 도리어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망치지 않으면 죽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하는 아니지 않습니까.”

“황제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릅니다.”

“카이루 후작의 성격이 장난 아닙니다. 놈이 뒤통수치기 전에 가솔들을 이끌고 영지로 돌아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귀족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황궁을 바라봤다.

아린 황제의 자비심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팰트론 왕국 왕성의 성문은 단단했다.

방어 마법진도 그만큼 강력했다.

“흐흐흐.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오?”

얄튼 자작이 귀족들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다른 방법이라 하심은…….”

“자작님 속 시원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귀족들이 답답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얄튼 자작을 바라봤다.

주변은 이미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곧 닥칠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성문을 열어 줍시다.”

조용한 목소리로 의견을 내는 얄튼 자작.

“그, 그 말씀은!”

“지금 반역을 일으키자는 말입니까?”

귀족들이 크게 놀라며 다시 물었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황실에는 근위기사들이 상당히 포진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충성스러운 귀족과 기사들이 제법 섞여 있다.

“지금 중요 전력들은 외성 쪽에 대거 나가 있는 상태지 않소. 우리 귀족 가문에서 파견한 기사들 상당수가 내성 쪽 경비를 맡고 있소.”

얄튼 자작이 재빨리 잔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우리가 도망친다 해도 왕국 연합군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선물을 들고 간다면……. 흐흐흐.”

얄튼 자작이 뒷말을 생략했다.

“오!”

“맞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귀를 쫑긋한 채 듣고 있던 귀족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여기 있는 가문의 기사들 수를 합치면 족히 수백은 될 것이오. 충분히 황제를 제압할 전력은 되오.”

얄튼 자작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연합군 쪽에서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황제와 달리 우리는…….”

진짜 전쟁이 선포됐다.

연합군은 장거리 원정을 떠나온 만큼 한밑천 챙기려 할 게 빤했다.

그런 점에서 귀족들의 영지와 창고는 만만한 포상금이 돼 줄 것이다.

“그건 걱정 마시오.”

얄튼 자작이 어깨를 쫙 펴며 말했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으십니까?”

모두 기대에 찬 시선으로 얄튼 자작을 쳐다봤다.

“연합군 쪽에서 파견한 인물이 내 저택에 머물고 있소. 그를 통하면…….”

“!!!”

얄튼 자작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자작은 진작부터 연합군에 포섭된 게 확실했다.

“역시! 얄튼 자작님이십니다!”

“안전만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귀족들이 얄튼 자작의 말에 서서히 휩쓸렸다.

‘멍청한 새끼들. 니들은 어차피 다 제물에 불과해. 흐흐흐.’

얄튼 자작은 철저히 속내를 감추었다.

그는 진즉부터 연합군의 세작 노릇을 해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왕성 마법진은 위협적이었다.

깔끔하고 빠른 승리를 위해서 연합군은 진작 뒤에서부터 작업을 펼쳤다.

이제야 얄튼 자작이 움직여줘야 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황제가 성문을 개방하는 그 순간.

계획대로 이곳은 연합군에 함락될 것이다.

***

파아앗!

환한 빛이 터졌다.

그리고 앞이 밝아졌다.

“아직은 조용하군.”

왕성 지하에 위치한 비밀 이동 마법진.

팰트론 왕국 점령 당시 발견한 장소다.

왕국 멸망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밀 이동 마법진 주변으로는 전혀 인적이 없었다.

오직 아린과 나만이 알고 있는 장소다.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죽었다.

스윽.

회색 로브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아직은 내가 다시 출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영지를 공격하던 마법사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한 명도 없다.

여전히 영지에 첩자들이 존재하겠지만 나의 귀환 소식을 공유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전에 이곳 사정을 더 상세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 보기보다 소심하고 꼼꼼한 인간이라니까.

알파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장립이 무척 아쉽다.

알파닥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귀신만 한 존재가 없었다.

- 그런데 그 혼령은 어디 갔어? 혹시 신이 된 거야? 그것도 아니면 지옥행?

알파닥도 장립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입을 다물었다.

굳이 답해줄 이유가 없다.

- 쪼잔한 새끼. 삐쳤냐?

나를 자극하려는 알파닥의 말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열려라!”

스르르릇.

왕족들이 최후에 사용하는 비밀 공간답게 마법 시설들은 꽤 쓸만했다.

자동으로 열린 문을 몇 개 지나왔다.

나와 아린의 마나 파장이 각인되어 있어 둘만 열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서 대비해 요긴하게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맞았다.

- 마음대로 해봐. 네가 아무리 특혜를 받은 존재라 해도 쉽지 않을 거다. 인간들이 생각보다 집요하거든. 흐흐흐.

알파닥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흠씬 패주고 싶을 정도로 밉상이다.

최대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집중했다.

투둑.

마지막 문을 열었다.

두툼한 돌문이다.

내성에서 외성으로 연결돼 있다.

마법진뿐만 아니라 비상 탈출구 역할도 담당했다.

폐쇄된 공간.

비어있는 외성의 한 건물 지하 시설로 연결되어 있다.

철컥.

내가 나가자 돌문은 언제 열렸던가 싶게 다시 단단하게 닫혔다.

일반인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는 문이다.

매캐한 먼지가 쌓여 있는 건물 내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듯한 공간이 나를 반겼다.

공간은 크지 않았다.

겨우 사람 두 명이 서 있을 정도의 협소한 공간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두툼한 돌문이 보였다.

그르릇.

마법 문양에 손을 대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외성의 뒷골목이 나타났다.

오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더러운 오물과 쓰레기들이 주로 주변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헤치며 밖으로 나왔다.

타다다다닥.

간간이 병사들이 바쁘게 오가는 게 보였다.

“성문이 열린다면서?”

“우리도 나가야 하는 거 아냐?”

“귀족들이 도망치는 거래.”

“나쁜 놈들. 황제 폐하를 버리고 꼬리를 말다니.”

“도망친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어제도 정찰 나간 기사하고 병사들, 수백 명이나 도망쳤대.”

“……제국은 끝났어. 연약한 황제 폐하가 어떻게 버티겠어.”

골목 앞을 서성이던 백성들이 수군거렸다.

모두 초조하고 불안한 낯빛이었다.

“왕국 연합군이 언제 공격해 온대?”

“곧 오겠지. 듣자 하니 바디움 요새도 항복했다더군.”

“바디움 요새라면 이틀 거리잖아.”

“마법사들과 기사들이라면 하루도 안 걸려.”

“우리를 다 죽일까?”

“뭐하러? 우리 같은 평민들 죽여봐야 빵이 나와 돈이 나와. 성문이 열리면 바짝 엎드려 ‘살려주십쇼’ 목숨 구걸하면 끝이야.”

“맞아. 차라리 이럴 때는 평민으로 태어난 게 복이라니까. 귀족들과 기사들처럼 털릴 게 없잖아.”

그들에게서 전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민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전쟁이 터진 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백히 팰트론 왕국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에게 아린과 제국에 대한 충성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그런데…… 그거 알아?”

“뭐?”

“조금 전에 우리 딸이 그러는데 귀족들 분위기가 수상하대.”

“딸이라고 하면……. 귀족가에 하녀로 들어간 애나 말하는 거야?”

“어. 우리 애나가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험악하다잖아.”

“짐 싸기 바쁜 거 아냐?”

“전혀 아니래.”

“그럼?”

“……전투라도 벌이는 것처럼 기사들이 전부 완전 무장하고 대기 중이래.”

“무장이라면……. 헛! 설마 반…….”

“쉿! 입 다물어. 잘못 놀렸다가는 죽을 수도 있어.”

골목 앞에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던 평민 남자 둘이 서둘러 마주한 상대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어진 황제 폐하의 뒤통수를 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귀족 놈들이 언제는 사람 같았어?”

“그거야 그렇지만…….”

“이게 다 황실수호공작님 탓이야. 그분만 계셨다면 이런 난리는 안 났을 거야.”

“맞아. 다 공작님 탓이야. 헛된 꿈만 품게 만들고 사라져 버렸으니…….”

“마족이라는 말도 있어.”

“에이 설마. 마족은 아니지.”

“모르지. 외모부터 범상치 않잖아. 머리칼도 검고 나이도 어린데 엄청난 마법도 부리고 말이야.”

“그건 그래…….”

- 마족? 힘도 쥐똥만 한 네가?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알파닥이 사정없이 비웃었다.

마치 마족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연달아 터지는 함성.

그리고.

“으아아아아! 바, 반란이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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