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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장. 무너진 결계 (1,220/1,284)

1245장. 무너진 결계

“으으음…….”

아침인 것 같다.

눈꺼풀 사이로 비집고 들오는 햇살에 기분 좋은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온몸이 나른했다.

따뜻한 사냥꾼의 오두막.

귓가에 들려오는 장작불 타는 소리가 기분 좋은 음악으로 들렸다.

그리고 따스하게 자신을 품어주던 남자.

스르릇.

손유리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동이 트도록 야간비행은 멈추지 않았다.

굶주린 조종사는 격정적으로 자신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늦게까지 들리던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코로 맡아지는 익숙한 냄새.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번쩍.

손유리가 급하게 눈을 떴다.

“!!!”

방이다.

자신이 그동안 지내왔던 성, 그리고 자신이 쓰던 방 안 침대였다.

“태산 씨?”

손유리는 다급하게 장태산을 불렀다.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곳으로 돌아온 기억이 없다.

아무리 깊은 잠에 취했어도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왔을 테니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옷차림도 지난밤 그대로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태산 씨!”

손유리는 다시 한 번 크게 장태산을 불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차랏.

급하게 쪽지를 읽었다.

- 돌아올게.

내용은 짧고 간단했다.

“떠난 거야……. 벌써.”

손유리는 울컥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또로록.

금방 눈물이 흘러내렸다.

절대 붙잡을 수 없는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러나 희망까지 저버릴 필요는 없었다.

그가 남긴 약속의 메시지.

다른 누구도 아닌 태산의 말이었기에 믿을 만한 보증수표와 같았다.

“기다릴게. 당신이 돌아오는 그 날이 언제가 되었든 기다리고 또 기다릴게.”

쪽지를 손에 쥐고 손유리는 속으로 그를 기다리겠노라 다짐했다.

또로로.

그럼에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손유리는 벌써 절절한 그리움을 차곡차곡 가슴에 쌓기 시작했다.

이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손유리는 이제 너무 잘 알았다.

***

파아앗!

눈 부신 빛이 터졌다.

“으윽.”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차원 이동의 순간이다.

짧은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휘이이이이잉.

뜨거운 기운이 잔뜩 섞인 바람이 느껴졌다.

뜨거운?

재빨리 눈을 떴다.

그 순간.

“!!!”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뭐……야!”

바뀌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다녀갈 때만 해도 늦은 가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라니…….”

곳곳은 녹음이 짙어져 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에 달궈진 대지는 숨 막힐 듯한 습기를 연신 뿜어냈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떠봐도 분명 여름이 확실했다.

“……왜?”

쉽게 납득 가지 않는 상황이다.

지구와 이계의 계절은 나름 비슷한 흐름으로 맞물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믿었다.

지난 몇 년간 분명 이계는 내가 없는 동안 만큼 시간이 멈췄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든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상황은 뭔가 달랐다.

우려했던 대로 이곳에도 변수가 발생했다.

“설마…… 몇 년씩이나 시간이 지난 건 아니겠지?”

섬뜩한 기분이 엄습해왔다.

마지막 이계 방문 당시 영지 순찰을 하다 지구로 귀환한 상태다.

지금 시간은 늦은 오후.

새빨간 석양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불행을 예견하듯 핏빛으로 물들었다.

- 쯧쯧.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그 순간 들려온 알파닥의 혀끝 차는 소리.

“알파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급히 그녀에게 물었다.

- 왜! 마성녀라고 놀려보시지? 그 잡귀신은 어디로 보낸 거야? 살던 곳으로 떠난 것 같은데 다시 데려온 건 아니지?

장립 귀신의 안부를 묻는 알파닥.

마음이 다급해졌다.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지금으로서는 알파닥밖에 없다.

- 네가 살던 곳에서 경고의 목소리 못 들었어?

“소리라면……. 아!”

퍼뜩 생각났다.

“경계가 무너졌다는 게 무슨 의미야?”

- 똑똑한 척하다니 그것도 몰라? 대충 짐작은 할 것 같은데 아니야?

“!!!”

알파닥의 말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길했던 예상이 현실이 됐다.

설마가 사람을 제대로 잡았다.

- 누가 그러니까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래? 혼자 오는 것도 아니고 여러 잡것들까지 데리고 다니더니 우주의 인과가 작동해 버렸잖아.

알파닥이 나무라는 말투로 말했다.

“그 인과,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확인이 필요했다

- 당연하지. 우주 법칙은 네가 살던 곳이나 이곳이나 똑같이 돌아가.

“지금까지는 안 그랬잖아?”

따지듯 물었다.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네가 살던 지구에서 낯선 자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았어? 이곳에서 넘어간 자들의 흔적 말이야.

알파닥은 놀라울 정도로 전지전능했다.

단박에 지구에서 있었던 일들을 짚어냈다.

“그럼…….”

- 여기서 사고치고 네가 살던 곳으로 튄 놈이 있었어. 아주 골치 아픈 놈이었어. 이곳 중간계뿐만 아니라 마계까지 어지럽히고 난리도 아니었지.

마계까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마계는 인간들이 감히 어찌 해볼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마족이 넘어오면 중간계에 대전쟁이 벌어진다.

그런 중간계와 마계를 휘저었다는 정체 모를 그놈.

“쿠아란?”

- 오! 맞아. 쿠아란! 

알파닥이 확인해 준 그 이름.

“으음.”

쓰디쓴 신음이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 네가 이곳에 온 건 우연이 아니야. 한 번 열렸던 차원 이동 통로를 타고 들어왔을 뿐이지. 그것도 선택을 받아서 말이야.

“선택? 누구한테?”

이해할 수 없는 얘기에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제는 모든 정황을 확실히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 아직 알려줄 수 없어. 넌 자격이 안 돼.

“자격? 그 기준이 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알파닥이 말한 자격 기준은 모호했다.

이곳에서 난 거의 적수가 없는 강자다.

그런 나를 두고 지금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 100레벨 찍어. 그럼 알려줄게.

“100레벨이라니…….”

지금까지 거의 잊고 살았던 상태창이다.

지구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돈과 포인트를 모으면 알아서 레벨이 올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상태창을 소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상황을 대충 알고 있었다.

지금은 70대 중반 정도에 걸쳐 있다.

- 그것도 최소 기준이야.

알파닥은 냉정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답답했다.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거야?”

- 흐흐. 지금 그런 한가한 걸 따질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알파닥의 웃음소리가 마치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네가 없는 동안 결계가 무너졌지.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땡땡땡땡땡!

그때 요란한 종소리가 귀를 때렸다.

번쩍!

거의 동시에 빛도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뒤이어 들려온 폭음.

분명 마법진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 시작됐네! 빈집털이!

다소 즐거워하는 듯한 알파닥의 목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헉!”

반사적으로 다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습격.

이곳은……. 내 영지였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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