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4장. 야간비행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떠오르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러시아 황제는 등장했을 때처럼 떠나갈 때도 비밀스럽게 사라졌다.
대신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저 녀석은 뭐야?”
헬기 한 대가 처음 내려앉은 자리에 덩그러니 남았다.
KA-58로 추정되는 최신형 스텔스 공격헬기.
함께 왔던 차르에게 버림이라도 받은 듯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보스가 해냈어!”
조민찬이 넋을 잃은 채 헬기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김 대리가 주먹을 움켜쥐며 웃었다.
“말도 안 돼! 저거 고장 나서 잠깐 놔둔 걸 거야.”
조민찬은 김 대리의 호들갑을 믿지 않았다.
다른 물건도 아니고 무려 군용 헬기였다.
특히 서방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갖으려 애쓰는 러시아의 최신형 스텔스 헬기.
“고장은 무슨. 보스가 선물로 받은 게 확실해.”
김 대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게 정말 가능해?”
“보면 몰라?”
“그러니까 보고도 믿기지 않으니까 그렇지!”
“조 대리. 그럼 당신이 조종하는 군용 헬기들은 말이 되고?”
“…….”
김 대리의 팩트 폭격에 조민찬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이곳이 아무리 러시아 영토 안이라고 해도 일반인에게 군용 헬기와 비행기, 그리고 군용 장비를 허가해 준다는 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보스는 그것들을 태연하게 받아 사용했다.
“이제 알겠어? 우리 보스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말이야.”
김 대리가 뿌듯한 표정으로 스텔스 헬기 앞에 서 있는 보스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존경심이 가득 담겼다.
나이 같은 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계급장이 깡패다.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스는 그저 보스일 뿐이다.
“나……. 어, 얼굴 좀 꼬집어봐.”
조민찬이 스텔스 헬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콰득.
조민찬의 볼을 힘차게 꼬집는 김 대리.
“아얏!”
조민찬이 비명을 터트렸다.
“조 대리 좋겠다. 저거 조 대리 아니면 탈 사람이 없잖아.”
김 대리가 부러운 듯 조민찬을 쳐다봤다.
맞다.
러시아 헬기 조종법은 직원들 중 조민찬과 몇몇 인물만이 습득하고 있다.
그것도 현재 이곳에서는 조민찬이 유일한 적격자였다.
“으흐흐흐흐흐흐.”
조민찬이 마치 몽유병을 앓는 환자처럼 웃음을 흘렸다.
눈동자가 반쯤 풀린 상태다.
제대할 당시까지 최신형 기체라고는 본 적이 없었다.
올해 들어 한국에 아파치 몇 대 공급된 게 전부다.
죽을 때까지 최신형 공격헬기를 몰아 볼 기회가 없을 거라는 사실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조민찬 대위.
내기로 걸었던 보너스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스텔스 헬기를 몰아 볼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
“어? 그런데……. 보스 지금 뭐 하는 거야?”
“!!!”
덜컹.
보스가 공격헬기 조종석의 문을 열었다.
공격헬기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문이 오픈됐다.
웬만해서는 일반인은 사용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보스는 어렵지 않게 헬기 문을 개방했다.
“태산!”
뿐만 아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보스의 여자친구가 달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손유리.
야외 스포츠라도 즐기려는 듯 가벼운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타.”
“와아! 이거 뭐야?”
보스가 여자친구에게 공격헬기 뒷좌석 문을 열고 안내했다.
처음 보는 공격헬기에 탄성을 터트리는 손유리.
“헬멧 착용해.”
“이거 막 타도 되는 거야?”
“어.”
“조종은?”
“타보면 알아.”
“알았어!”
겁도 없이 손유리가 공격헬기 뒷좌석에 앉았다.
“아무것도 만지면 안 돼.”
“걱정 마. 무릎에 착한 손 하고 있을게.”
터엉.
문이 닫혔다.
헬기 앞자리 조종석에 앉는 보스.
“뭐, 뭐야!”
상황을 지켜보던 조민찬의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러시아 군용 헬기는 편의성이 지랄인 물건이다.
잘못 만졌다가는 바로 황천길로 직행하는 수가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교육 없이 바로 최신형 기체를 조종하려는 보스.
“폼만 잡고 말겠지. 아무리 보스라고 해도…….”
김 대리도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에 시동이 걸렸다.
“헛!”
“어!”
조민찬과 김 대리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졌다.
헬기에 시동을 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조민찬도 조종 교육을 받고 나서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장애 없이 단박에 시동을 켜는 보스.
두두두두두두두두둣.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서히 이륙하기 시작하는 헬기.
“……!!!”
조민찬과 김 대리의 입이 거짓말처럼 떡 벌어졌다.
미리 교육이라도 받은 듯 거리낌 없이 공중으로 헬기 몸체가 떠올랐다.
스텔스 헬기라 그런 듯 소리도 조용했다.
그리고.
두두두두두둣.
헬기가 어둠 속을 비행하며 날아갔다.
반짝반짝 야간 식별 장치를 가동한 채 날아가는 스텔스 헬기.
“……대체 보스 정체가 뭐야?”
조민찬이 얼 빠진 채 김 대리에게 물었다.
“몰라……. 나도.”
김 대리도 떠나가는 헬기를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일반 병기도 최소한의 교육 이수가 필요했다.
그런데 다른 물건도 아니고 처음 보는 최신형 헬기를 몰고 사라져 버리는 보스.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김 대리…….”
“말해 조 대리…….”
“그런데…… 보스 지금 음주운전 아니야?”
“!!!”
두 사람은 분명히 봤다.
차르와 독한 보드카를 몇 병이나 마시고 헤어진 보스.
그럼에도 헬기에 여자친구를 태우고 사라졌다.
“음주단속 없겠지?”
조민찬이 얼빠진 상태로 어이없는 물음을 던졌다.
“어떤 미친놈이 무장한 공격헬기를 단속하겠어.”
“어……. 그렇구나.”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 버린 두 남자.
어느새 그 어떤 소리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헬기 쪽을 바라보며 선뜻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벌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타닥타다다닥.
모닥불이 불티를 날리며 타올랐다.
차가운 러시아 사하 공화국의 이름 모를 벌판.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오두막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휘이이이잉.
밤이 되자 불기 시작한 바람 소리가 어설픈 오두막 외벽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춥지 않아?”
남자가 다정하게 물었다.
“따뜻해…….”
모포를 둘러쓴 여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넓은 남자의 어깨에 작은 머리를 가만히 기대었다.
그녀의 두 눈은 모닥불을 보며 불멍에 젖었다.
‘꿈만 같아.’
손유리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장태산이 조종하는 헬기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군용 헬기를 타고 인적 없는 벌판을 날았다.
영화에서나 봤던 둘만의 야간비행.
하늘에서는 온통 별이 쏟아졌다.
평소에 봐왔던 밤하늘의 별과 달랐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비행하며 본 별들은 오늘따라 더 밝고 선명했다.
그리고 도착한 오두막.
태산은 마법을 사용해 불을 피웠다.
언제봐도 신기한 마법.
단 한 번의 손짓에 장작이 활활 타올랐다.
먼지 수북한 공간도 태산의 몇 마디에 깨끗하게 바뀌었다.
게다가 텅 빈 허공에서 깨끗한 양털 담요를 꺼냈다.
처음 보는 와인병과 잔도 등장했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모닥불과 와인,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완벽했다.
“보고 싶었어.”
남자의 달콤함 목소리가 마주한 눈빛을 타고 전달됐다.
“나도…….”
손유리가 수줍게 대답했다.
이런 시간이 올 줄 몰랐다.
러시아 차르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던 태산이었다.
“미안해.”
“뭐가?”
“앞으로도 몇 년은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아.”
“괜찮아.”
가끔 부모님이 그리워졌다.
그래도 다른 그리움에 비해 견딜만했다.
불효녀라 하겠지만 사랑하는 이가 더 사무치게 그립다 보니 나머지는 참을 만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손유리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괴물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가끔 흉몽으로 찾아왔다.
잊을 수 없었다.
“……고마워.”
“응?”
손유리가 고개를 들어 태산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남달랐다.
“무슨 일 있어?”
여자의 촉이 주는 경고.
“아니.”
태산이 손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손유리는 태산의 마음을 읽어보려 애썼다.
스윽.
태산이 손유리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만지며 쓸어 넘겼다.
머리칼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온전한 마음.
파르르르.
손유리의 몸이 저절로 떨렸다.
머리칼을 타고 전달되는 태산의 마음은 여러 가지 색깔을 갖고 있었다.
또 태산의 눈길이 서서히 타올랐다.
“하아.”
손유리는 몸이 녹을 것 같은 태산의 시선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보고 싶었어…….”
귓가에 다가와 속삭이는 남자의 뜨거운 목소리.
“…….”
손유리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느새 입술은 뜨거운 입술로 막혀버렸다.
“으음.”
손유리는 신음을 흘리며 두 눈을 감았다.
스르릇.
덮고 있던 모포가 바닥에 자연스럽게 떨어지며 깔렸다.
‘나도…… 보고 싶었어. 장태산.’
손유리는 두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손으로 남자의 단단한 허리를 천천히 둘렀다.
이 순간 다시 시작될 또 다른 야간비행을 기대하며…….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