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장. 저거 몇 대만 주십시오(2)
“캬아! 누가 무식한 불곰국 아니랄까 봐……. 헬기 포스 작렬이네.”
“저 자식들은 뭐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스텔스 헬기들이야.”
씨큐리티 소속 직원 두 사람이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두고 사담을 나눴다.
러시아 황제가 행차했다.
처음 구경하는 헬기들이 연달아 착륙했다.
스텔스 계열의 검은색 헬기들.
날렵한 공격헬기와 러시아 스타일의 큼직한 동체를 자랑하는 수송헬기들이다.
“스텔스? 그거 전투기만 있는 거 아냐?”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양반이 그것도 몰라? 미국에 있잖아. 빈 라덴 사살할 때 그거 타고 날아갔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그놈은 스텔스 공격헬기가 아니잖아, 블랙 호크 스텔스 버전으로 알고 있는데…….”
“오! 김 대리 똑똑한데.”
“내가 바보인 줄 알아.”
“KA-58. 카모프사에서 예전부터 개발한다고만 알려진 비밀 기체야. 나도 처음 봐.”
“조 대리 어디 있었다고 했었지?”
“항작사 휘하 제1항공여단 제 111항공대.”
“111항공대면…… 코브라 탔어?”
“어.”
“그거 늙어서 위험하지 않아?”
“무슨 소리! 정비하면 빵빵해. 북한 전차들 잡기에는 그만한 놈이 없어. 늙은 게 아니라 원숙하다고 해야지.”
“원숙해도 너무 원숙해서 문제지. 내가 아는 애도 그거 탔는데 풀무장 못 한다고 하던데? 진짜야?”
“……골다공증이 와서 그래.”
“골다공증……. 푸하하.”
김 대리가 시원하게 웃었다.
반면 조 대리는 쓴 입맛을 다셨다.
사골을 몇 번이나 우린 아파치 공격헬기.
아무리 매일같이 기름칠하고 닦아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노후된 기체는 제 기능을 못 했다.
부품 동류 전환은 기본이다.
매번 중고 부품을 구매해 갈아 끼우는 게 일이다.
풀무장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뼈대와 엔진 모두에 무리가 간다.
연로도 반절만 채워서 이륙했다.
조 대리가 조종했던 아파치도 그랬다.
기체 연식은 30년이 넘었다.
2030년까지 버텨야 했기에 훈련도 최소한으로 잡혔다.
탈 때마다 무사 안녕을 기도해야 했다.
공식적으로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작은 사고가 났다.
노인이 된 인간처럼 기계도 해가 거듭될수록 골병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정비사들의 실력이 완벽에 가까워 버텨내고 있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수리하는 정비사들의 노고는 눈물겨웠다.
하지만 매일같이 걱정을 붙들고 사는 아내의 성화에 결국 제대했다.
마침 기회가 좋았다.
씨큐리티에 취직한 아는 선배가 끌어줬다.
공격헬기가 아니라 회사 소속 민간 헬기를 몰았다.
일은 군에 있을 때보다 쉬웠다.
최신형 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했다.
각종 안전장치를 비롯해 최첨단 보조 장치들이 수두룩하게 장착돼 있다.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화되었기에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조종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3톤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에 고출력 엔진을 장착해 기동력이 매우 뛰어났던 코브라 헬기.
공격헬기답게 지면 밀착 비행도 훌륭했다.
최신형인 아파치에 비해 장갑은 약하지만 작은 체구와 뛰어난 기동력으로 전투력은 쓸만했다.
지속적인 개량으로 최신 무기도 장착 가능했다.
그런 녀석을 몰고 비행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공격헬기 조종은 조민찬이 어릴 때부터 품었던 꿈이었다.
‘너무 비교되네.’
아파치를 10년 동안 조종했던 조민찬은 스텔스 공격헬기를 보며 입이 쓸 수밖에 없었다.
공격헬기가 몰고 싶어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와 달리 러시아제 공격헬기가 여기 훈련장에 존재했다.
러시아에서 로켓과 총알도 공급해줬다.
지정된 장소로 날아가 폭격하고 오는 날에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사달라고 해봐.”
김 대리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뭘?”
“저거.”
“헬기?”
“어.”
“에이 말도 안 돼.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에서도 극비로 취급하는 녀석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도 밖으로 알려지지 않을 정도라면 엄청난 놈일 거야. 그런 걸 사달라고?”
“사줄걸.”
“누가?”
“보스.”
“……진짜?”
김 대리의 호언장담하는 말투에 조민찬은 솔깃했다.
‘안 될 거야.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현재 러시아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될 때처럼 엉망이 아니었다.
나름 경제력을 회복한 상황.
차르의 지도력으로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았다.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의 무기들을 쓸어 담을 때와 달랐다.
더욱이 보스는 한 개인이다.
아무리 차르와 우정이 두텁다고 해도 최신 군사용 무기를 구입하는 건 불가능했다.
“못 믿는 것 같은데 내기할까?”
“내기?”
“보스가 사준다에 다음 달 보너스.”
자신만만한 태도의 김 대리.
“콜! 무르기 없기야.”
“흐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내기가 성립됐다.
조민찬은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보스가 차르와 무슨 말을 주고받고 있는지 말이다.
***
‘몇 대?’
푸틴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다니엘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농담 같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대신 헬기를 달라고 말하는 다니엘의 태도가 엉뚱하게 생각됐다.
“저게 뭔 줄 아나?”
“러시아에서 개발한 최신형 헬기들 아닙니까?”
“…….”
푸틴은 간단하게 대답하는 다니엘의 답변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냥 최신형이 아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헬기 제조 회사 두 곳이 몇 년 전에 합병해 탄생시킨 헬리콥터즈사의 역작이다.
미국 정보부에서도 얼마 전에서야 파악했을 정도로 극비에 진행된 사업이었다.
전장의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회심의 무기 수준은 됐다.
이번 성과가 과거처럼 미국과 유럽을 긴장시켰다.
그 정도 효과면 충분했다.
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우방인 중국 측에 제공하면 당장 카피해서 팔아먹기 바쁠 것이다.
대내외적인 과시용으로도 이용가치는 충분히 확인됐다.
지지율이 하락할 때 국내용으로 사용해도 효과는 만점이다.
오늘 이 자리에도 다니엘에게 자랑하려고 대동했다.
남자들 세계에서 자랑거리인 자동차처럼 푸틴에게는 러시아의 무기가 그런 것이었다.
무기 연구소에는 천재들이 무척 많았다.
오래전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린 기초 연구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완성시키는 최첨단 무기들을 러시아에서는 천채들이 커버했다.
그렇게 탄생한 S급 무기를 다니엘이 가볍게 요구했다.
“어디에 쓰려고?”
다니엘의 요구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 정부도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집단 중 하나다.
휴전 국가로 군 무장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요즘 들어 선진 분야인 전투기나 헬기, 로켓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판매 루트가 다르다 보니 과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차관 상환 대금으로 군사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중국처럼 대놓고 카피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기술 습득력은 전 세계적으로 특출났다.
로켓 엔진뿐만 아니라 공대공 유도 미사일과 최신 전차 등에 러시아의 기술이 이용됐다.
“스텔스 기체 같은데 우리 직원들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 녀석 몰고 사냥 가면 폼 날 겁니다.”
‘겨우 사냥?’
몇 대만 완전 무장하고 공격에 투입되면 중소 국가 연대급 육군 정도는 금방 박살 낼 화력이다.
그런데 고작 사냥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다니엘.
“진심이지?”
“넵! 형님 저거 몇 대만 주십시오!”
다니엘이 다시 한 번 힘 있게 말했다.
달리 생각하면 미국 대통령보다 귀하게 대접받는 공격형 헬기.
다니엘이 러시아에 투입하고 있는 천문학적 투자금에 비하면 대단한 요구도 아니었다.
값은 기껏해야 대당 1억 달러 정도밖에 안 나간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기술 유출이 마음에 걸렸다.
푸틴도 러시아에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내적 갈등이 일었다.
그리고.
“몇 대면 돼?”
빠른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이 정도 선물은 언제든 줄 생각이었다.
특히 다니엘은 공짜로 선물을 받지 않는다.
“공격헬기 3대에 수송헬기 2대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생각해 놓은 듯 즉시 답하는 다니엘.
“좋아. 올해 안에 공급해 주지.”
오늘 몰고 온 헬기들은 현재 운용 가능한 기체 전부였다.
러시아가 과거보다 안정적인 상태지만 아무래도 서방의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주 수입원인 유가 가격도 낮게 유지 중이다.
“한 대만 놓고 가주십시오. 몰아보고 싶습니다.”
“조종이 쉽지 않을 텐데?”
“걱정 마십시오. 형님이 주신 헬기들 제가 조종하고 다닙니다.”
“……정말?”
“쉽던데요.”
‘괴물 같은 녀석.’
어떻게 보면 전투기보다 더 까다로운 게 헬기 조종이다.
요즘 기체들은 자동 기능들이 많지만 과거 기체들은 조종사들의 역량에 의해 안전이 좌우됐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헬기들은 조종사의 안정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헬기 조종이 쉽다고 말하는 다니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틴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도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자신이 던진 미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다니엘에게 도리어 헬기를 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얄미울 만도 한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다니엘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동생은 괴짜야.”
푸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님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푸틴은 기행 전문가다.
대놓고 아부하는 다니엘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러시아인이었다면 다음 황제 자리를 넘겨주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한 잔 더 드십시오.”
다니엘이 보드카 병을 들었다.
쪼로로록.
잔에 술이 채워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뭘 말인가?”
“형님 덕분에 이곳이 안전가옥이 됐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어디 멀리 떠나는 사람 같은 말투야.”
첩보원으로 양성된 푸틴의 감은 예민했다.
다니엘의 말에 담긴 의미들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멀리 떠날 곳이 있습니까?”
맞는 말이다.
오지라 불리는 아마존 밀림을 비롯해 대다수 지역들이 개발되고 있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다.
위성으로 위치추적도 가능하다.
“그건 맞아. 그래서 여행하는 맛이 없어. 낯선 곳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흥분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한데 말이야.”
러시아에도 알려지지 않은 오지가 많다.
그런 곳들을 누비며 사냥하는 푸틴.
점점 야생의 맛이 사라지는 시대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도 인간들이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며 대답하는 다니엘.
“진짜?”
“넵.”
“초대해 주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
반 정도는 농담 같은 대화가 오갔다.
“저만 갈 수 있는 진짜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지구를 벗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빙긋.
다니엘은 대답 대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형님.”
다니엘이 푸틴을 불렀다.
“말하게.”
잔을 든 채 두 남자의 시선이 부딪쳤다.
“제가 존경하는 거 아시죠?”
싱겁지만 듣기 좋은 말이었다.
“물론이지. 나도 동생을 깊이 존경한다네.”
푸틴도 솔직한 감정을 전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신은 저 나이 때 결코 얻지 못했던 업적과 능력을 소유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황제도 거저 오른 자리가 아니다.
능력 있는 자들을 추려 요직에 기용했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자는 보스가 될 수 없다.
설령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런 자리의 주인인 푸틴의 눈에 다니엘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처음 보는 천재였다.
“미국 대통령은……. 형님 뜻대로 정하십시오.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듣고 싶었던 말이 다니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니엘이 방해하면 푸틴이 정한 이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킬 수 없다.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위해!”
푸틴이 먼저 잔을 들며 외쳤다.
“형님과의 영원한 우정을 위해!”
뒤따라 외치는 다니엘.
티잉!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잔.
마주한 채 두 남자의 눈빛이 뜨겁게 섞였다.
그렇게 사하 공화국에서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음모가 탄생하고 결실을 맺었다.
세상을 지배할 만한 킹 카드를 들고 있는 두 남자에게서!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