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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장. 나……(2) (1,215/1,284)

1240장. 나……(2)

푸스스스스스스스스.

일본의 대표 활화산 중 하나인 후지산.

입산이 금지된 곳으로 천연동굴이 존재한다.

그 동굴 안에 뭉클뭉클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쳤다.

과거부터 성지로 여겨져 왔으며 왕실과 군부에 의해 통제되어왔다.

외부에는 활화산의 위험 때문이라 알려져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고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성지.

신국을 건설한 아자나기와 아자나미가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그 이유로 지금도 통제되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번쩍!

동굴 속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던 사내가 눈을 번쩍 떴다.

부글부글 끓어 수온이 높은 물도 뜨겁지 않은 듯 여유가 넘쳤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 상태.

눈을 뜬 남자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이 무슨!”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지금 남자의 발밑 지하에는 특별한 주술이 기록된 석판이 존재했다.

해석은 불가능했다.

고대로부터 선택된 자들만 이곳에 들어와 힘을 길러왔다.

파아아앗!

그 석판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불과 얼마 전보다 몇 배나 빛의 파장이 강력해졌다.

“크으으으!”

남자는 고통 속에서도 희열을 느꼈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드는 듯한 엄청난 기운.

눈에 핏발이 섰다.

으드득.

이가 갈렸지만 꾹 참았다.

이런 변화 자체가 화가 아니라 복이라는 걸 직감했다.

우르르르릉.

후지산이 가볍게 진동했다.

작은 석판 하나가 용암을 자극했다.

“신의 힘이다! 이건 잊혔던 신의 힘이야!!!”

선택된 자로서 이곳에 머물게 된 남자.

각성의 과정을 거쳤지만 강력한 적으로부터 공격당해 죽음의 무턱에 이르렀다.

그때 신의 선택을 받았다.

신의 힘으로 치료를 받고 난 뒤 육체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성장해 왔다.

그것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이자나기의 힘.

그 힘에 오늘 새로운 기운이 추가됐다.

“흐흐흐흐흐흐! 좋아 아주 좋아!”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눈처럼 변했다.

신의 힘이 강해질수록 사람의 것인 피와 감정은 차갑게 식어갔다.

인간의 육신이 점차 파충류의 것으로 변화됐다.

피부가 검은 비늘로 차차 뒤덮였다.

“기다려라…… 장태산! 네놈의 살을 뜯고 뼈를 씹어 먹으리라! 크하하하하하하!”

원한에 가득 찬 남자의 포효.

“하아아아.”

반대편 동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곳에는 나신의 여인이 있었다.

한때 아름다웠던 여인의 피부는 지금 신비한 황금 비늘로 온통 뒤덮여 있다.

황금빛 기운이 그녀를 온전히 감쌌다.

온몸이 충만해지는 기운에 몸을 떨며 신음했다.

절대 스스로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이 삶은 피할 수 없는 가문의 부름으로 시작되었다.

여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으윽.”

이를 악물고 몰려오는 고통을 참았다.

더는 강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기운은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들끓게 만들었다.

서서히 지배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는 육신.

과거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부지불식간에 떠올랐다.

순댓국과 소주를 먹으며 행복하게 보냈던 짧은 시간.

지금껏 이 고통 속에서 여인이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마음이 차가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도 희미해져 갔다.

가슴 속에서 살육과 파괴, 그리고 진득한 욕망이 피어올랐다.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결코 이런 식으로 육신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상대와 짝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태산ⵈⵈ 보고 싶어요. 절ⵈⵈ 지켜주세요.”

여인은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당장 강탈당할 것 같았다.

파아아아아앗.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짙어지는 황금빛 서기.

뽀로로로롱.

여인은 눈을 감고 온천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대편 동굴에서 기뻐하고 있을 괴물 같은 남자가 내지르는 포효의 파동.

여인을 고통에 빠뜨리고 괴롭히는 데 그 파장과 영향력이 충분했다.

***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게걸스럽다?

탐스럽거나 복이 넘치게 먹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며칠 굶은 암사자같이 요리를 쓸어 담았다.

그 와중에도 식사 매너는 칼같이 지켰다.

입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도 절대 입을 벌리고 쩝쩝거리지 않았다.

옴쏙옴쏙 먹는 모습이 기품이 넘치고 귀엽기까지 했다.

뜨거운 상상으로 환상을 품게 했던 손유리는 정작 나보다 요리를 더 원했다.

화끈하게 불타오르는 열정을 요리에 쏟았다.

식재료는 풍부하다 못해 넘쳤다.

어제 직원들이 사냥한 야생 암컷 멧돼지 앞다릿살로 달달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불고기를 만들었다.

맑게 우려낸 새우멸치육수에 몸에 좋은 각종 야생버섯과 무를 넣어 시원하고 칼칼한 버섯탕을 끓였다.

방목한 유기농 소고기를 이용해 버섯전도 부쳤다.

이곳에서 담갔던 김치도 꺼냈다.

시원한 지하에서 자연 숙성된 김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입맛을 돋우었다.

싱싱한 쪽파와 넉넉하게 잘라 넣은 오징어, 달걀로 코팅한 널찍한 파전도 제공했다.

“크으.”

한국에서 직원들을 위해 가져온 막걸리를 시원하게 비워내는 손유리.

젓가락으로 파전을 쭉쭉 찢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맛있고 빠르게 씹어 넘겼다.

미녀는 아무렇게나 먹어도 아름다웠다.

“태사씨이. 마있더ⵈⵈ. 머ⵈⵈ머거.”

손유리가 파전을 한 점 집어 건넸다.

고개를 저었다.

“됐어. 선배 많이 드셔.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러.”

어느 순간부터 말이 편해졌다.

마지막 그녀와 함께했던 그날 밤 이후 손유리는 나를 더 편하게 대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배시시.

손유리가 웃는다.

아무리 이곳이 좋다 해도 한국이 무척 그리울 거다.

특히 고국 음식.

소소한 일을 봐주는 러시아 아줌마들한테 고국 음식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직원들도 요리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만든 음식은 차원이 달랐다.

중급 레벨을 훌쩍 넘는 수준.

그 음식을 몇 번 먹어봤던 손유리는 나의 음식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꿀꺽.

손유리가 남은 파전을 꼭꼭 씹어 삼켰다.

“하아아아. 이제 살 것 같아.”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어?”

“아니.”

“???”

“경호원분들 모두 요리 고수야.”

“그런데ⵈⵈ 왜 이렇게 과식하는 거야?”

“손맛이 그리웠어.”

손유리가 눈웃음친다.

“손맛?”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해 요리해줄 수 있는 남자는 눈앞의 장태산밖에 없어. 그리고 요리 솜씨도 환상이야. 세상 누구보다도 더.”

손유리의 눈빛에 정이 듬뿍 넘쳤다.

기분이 좋았다.

꿀꺽.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요즘 들어 와인이 입맛에 맞았다.

“칭찬 고마워.”

“진짜야. 정말 정말 태산 씨가 해주는 요리가 먹고 싶었어.”

정이 많이 고팠던 손유리.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파바밧.

시선이 부딪쳤다.

사르르 얼굴을 붉히는 그녀.

내가 보내는 뜨거운 신호를 눈치 못 챈다면 바보다.

“서, 설거지할게.”

아직도 부끄러움을 탔다.

“도와줄게.”

“아니야. 요리했는데 설거지까지 맡길 수는 없지. 남녀 간에도 공평한 가사분담이 필요해.”

어감이 좀 이상했다.

가사분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심장함.

기분이 묘했다.

“가, 갑자기 왜 덥지.”

손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시를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오래된 성이었지만 현대식으로 개조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달그락.

빈 접시가 부딪쳤다.

음식은 거의 남지 않은 상황.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운 손유리의 먹성은 대단했다.

차라랑.

널찍한 싱크대에 접시를 담그는 손유리.

촤아아아앗.

유난히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돌아선 채 손유리가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요리하고 아내는 설거지하는 그런 광경.

“후우 우우음~♬”

물소리에 섞여 허밍으로 콧노래를 부르는 손유리.

뒷모습만 봐도 무척 즐거워 보였다.

하룻밤 아름다운 꿈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계로 떠나기 전 잠시 이곳을 찾았다.

지금 지구에서 이곳만큼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차르 형님의 보호막이 가장 짱짱하고 믿음이 갔다.

미국도 유럽도 믿지 못할 상황.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씨큐리티 직원들의 충성심은 겪을수록 남달랐다.

지금으로서는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이계에서도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른 때와 달리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챙그랑.

그때 요란한 소리가 평온한 공기를 깨뜨렸다.

“아야!”

손유리의 짧은 비명이 뒤를 이었다.

“선배 괜찮아?”

다급하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던 손유리.

미끄러웠던지 접시와 유리컵이 부딪쳐 깨졌다.

그러다 손가락을 베인 상태였다.

차락.

급히 고무장갑을 벗겼다.

붉은 피가 뭉클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베었네.”

“ⵈⵈ괜찮아. 이 정도는 밴드 붙이면 금방ⵈⵈ.”

“내가 안 괜찮아.”

손유리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힐!”

가볍게 내뱉은 마법 영창.

파아앗.

손유리의 베인 상처에서 노란빛이 터졌다.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와!!!”

손유리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탄성을 질렀다.

과거 괴물을 상대할 때 한 차례 마법을 목격했던 손유리지만 아직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ⵈⵈ.”

두근두근.

붙잡힌 손을 타고 전해지는 그녀의 맥박.

순간적으로 맥이 빨라졌다.

다시 마주친 눈빛.

사르르 손유리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신혼 때 수시로 벌어진다는 설거지하다 눈 맞기.

분위기가 완벽하게 무르익었다.

그사이 밤도 깊었다.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둘만의 공간.

스으윽.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ⵈⵈ.

“태산 씨ⵈⵈ. 나ⵈⵈ.”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여는 손유리.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마.”

손유리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손유리는 부끄러움에 그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손유리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갑자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헬기 프로펠러 소리!

또 뭐야!!!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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