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6장. 거북아 간을 내놓거라!
- 입학 비리를 비롯해 여러 기업에서 수수한 뇌물죄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개새끼들! 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잘못한 게 뭐야! 나라를 위해 없는 시간 짜내서 열심히 일한 게 죄냐고!”
으드득.
주순자가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이를 갈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어어! 하는 사이 각종 의혹들은 사실화되어 거대한 눈덩이가 됐다.
문제는 의혹들 대부분이 진실이라는 것.
처음에는 쉽게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정권을 잡은 여당 의원들의 도움 없이는 대통령에 대한 법률 소추가 불가능했다.
탄탄한 기본 지지층도 버티고 있다.
바탕이 돼 주는 30%로만 넘기면 누구도 재임 대통령을 건들 수 없다.
그러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탄탄했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대통령의 입지가 흔들리자 권력 축이 덩달아 요동쳤다.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할 여당 의원들이 더 동요했다.
한동안 밀렸던 최병박 측의 패거리들이 때를 만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주순자를 사방에서 물고 늘어졌다.
권력을 잡고 휘두를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적이 너무 많았다.
같은 편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놈들이 더 잔인하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보수언론.
“이제 어떡하지……. 씨발! 아아악!”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악을 썼다.
욕을 퍼부어도 주순자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언론은 물론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치 때문에 청와대 출입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가 건물 주변으로 기자들이 몰려와 상주하다시피 했다.
우선 딸은 유럽으로 내보냈다.
어느 정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분위기를 봐서 불러들일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을 듯했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간과 쓸개도 빼줄 것처럼 굴었던 놈들이 대차게 등을 돌렸다.
막말로 측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청와대에서도 면이 안 섰다.
비서실장을 비롯해 중요 요직에 심어 놓은 수석들이 사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둔하다고 판단해 세워놓았던 총리까지 깜냥도 안 되면서 대권 욕심을 부렸다.
눈치 빠른 주순자는 대통령의 권력을 대신 활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주변 인물들 중에는 어리숙한 놈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 좀 했다는 외국 박사 놈들을 수석으로 붙여놔도 쓸모가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정치는 달랐다.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그나마 마음에 들었지만 그들은 욕심 많은 자들이다.
절대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부렸다.
똑똑한 자들의 눈치 빠른 순종만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건 없다.
다만 이런 순간에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단숨에 이 사건을 뒤집을 패가 필요해…….”
주순자의 머리가 어느 때보다 비상하게 돌아갔다.
언론을 잠재울 만한 먹잇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가령.
“연예인 스캔들 정도로는 힘들어. 좀 더 크고 쎈 거!”
주순자의 머릿속을 무한히 스치고 지나가는 음모 리스트.
“!!!”
그때 한 명이 퍼뜩 떠올랐다.
“그 개자식……!”
자신을 희롱하고 모욕하던 그놈.
놈만 생각하면 항상 천불이 났다.
조금만 도움을 줬어도 이렇게 사건이 크게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해.”
주순자는 다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놈은 섣불리 써서는 안 될 독종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충고했던 놈이었다.
그리고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놈은 분명 건들면 모조리 부숴버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 패로 남겨둬야 해……. 절대. 그렇다면.”
주순자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또 한 인물을 떠올렸다.
다른 자들과 달리 군인 출신이라 그나마 충성심이 남다른 자였다.
“장관진.”
그는 눈이 작고 날카로웠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다.
군 이권 개입을 두고 지속적으로 내려오던 관습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인사다.
“VIP가 무사히 퇴임할 수 있도록 지켜드려야 해. 그리고…… 버티면 돼!”
주순자는 국민들의 습성을 누구보다도 잘 꿰고 있었다.
한 번 타오를 때는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다.
하지만 그 기세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었다.
독재정권과 부정부패를 일삼던 집단을 쫓아냈다가 다시 불러들였다.
큰 도적놈들에게는 관대하고 작은 도적질에는 가혹했다.
적당히 양념만 잘해서 던져 주면 알아서 물고 뜯었다.
“아직 기회는 있어.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안 되면…… 장태산. 그 자식을 던지면 돼.”
안성맞춤이다 싶은 답을 찾은 주순자는 내심 흥분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차갑고 악독한 빛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
귀가 또 간지럽다.
누가 또 나를 욕하는 것 같다.
조용히 살고자 했지만 요즘 들어 귀찮게 하는 존재들이 늘고 있다.
고민에 잔뜩 빠진 눈앞의 고집불통 아저씨도 포함이다.
“으으음.”
오바마가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을 흘렸다.
가까이서 보니 많이 늙었다.
새치가 한가득이다.
이마 주름도 깊어졌다.
몸에서 발산되는 기도 많이 약해졌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대통령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짠한 마음도 든다.
나름 미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대통령이다.
퇴직 후에도 평이 나쁘지 않았던 인물.
다만 문제는 지금 나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의 당선을 위해 돈도 몰아줬던 나다.
그러나 접점을 계속 이어 나가기에는 한계성이 명확했다.
오바마의 애국심이 남달랐다.
“없습니까?”
오바마를 몰아세웠다.
전에 찾아왔을 때 경고한 덕에 핵심 보좌관들과 경호원들은 밖에서 대기 중이다.
누가 뭐라고 딴지 걸 인간이 없다.
“뭘 원하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오바마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물건을 팔려고 왔으면 목록이 있을 것 아닙니까. 속 시원하게 보여주시죠. 그중에 혹시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을 줄 누가 압니까.”
배짱을 부렸다.
오바마가 날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기를 잡는 게 어려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힐러리가 당선되지 않으면 미국이 어떻게 될지 오바마는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나의 편이다.
“……당신은 너무 무섭습니다.”
이전에는 곧잘 말도 놓았던 그가 오늘은 아니다.
꼬박꼬박 예의 바르게 존칭 표현을 썼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바마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이들이 세상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여기도 내로남불이다.
“뭘 원하십니까?”
협박 뒤에 찾아온 본격적인 협상.
“뭘 주실 수 있습니까?”
밀당은 모든 협상의 기본이다.
“사드를 철회해 주죠.”
겨우?
웃기는 소리다.
손익 계산에 따라 멋대로 설치하더니 이제는 빼겠단다.
갑질이 눈꼴사나울 지경이다.
이번 사드로 인해 중국이 제대로 뒤통수 친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내 눈에는 별반 다르지 않은 이익만 따지는 국가다.
“저와 나눌 협상이 아닙니다.”
사드 문제가 뼈아프지만 예방 주사 차원에서는 확실한 건이다.
예방 주사 맞고 중국 공산당과 인민들의 음험한 이중적 사고방식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악재인 사드로 인해 얻는 이점도 있다.
미군의 존재만으로도 적절한 평화가 가능했다.
싼값이 아닌 용병.
분단국가이자 주변에 러시아와 중국 같은 강대국과 맞대고 있는 입장에서는 필요한 공생관계다.
“기술을 넘겨주겠습니다.”
“기술요?”
이건 흥미가 생긴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핵심 기술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오바마가 선심 쓰듯 말을 이었다.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후훗.”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다니엘!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퇴임 직전의 대통령이 뱉기에는 무게감이 남다릅니다. 상하원에서 허락해 줄까요? 본래 계약에 있던 내용도 삭제해 버린 핵심 군사 기술인데 말입니다.”
“…….”
오바마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그런 잡 기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잡…… 기술?”
오바마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못 믿을 거다.
AESA를 비롯해 4세대 이상 전투기에 들어가는 각종 첨단 무기 기술은 군사 선진국들만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난 이미 그 모든 기술을 낱낱이 알고 있다.
다만 합법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일 뿐.
“뭐 인심 쓰고 싶다면…… 22형 전투기를 1억 달러 정도에 공급해 준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애국을 위해 인심 한번 썼다.
하지만.
“다니엘!!!”
오바마가 버럭 하며 이름을 부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워낙 성능이 좋아 판매 금지 규정을 걸어놓은 미군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안 되겠죠?”
“……절 희롱하는 겁니까?”
맞다 희롱.
꿀잼이다.
내 목숨을 가지고도 흥정하던 미국 대통령의 날 선 감정이 흥미롭다.
그러니까 어디서 약을 팔아!
“한국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로로록.
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다.
오늘 같은 장면에 딱 어울릴 만한 전래동화.
“바다를 다스리는 왕이 병에 걸입니다. 치료약은 오직 지상에 사는 토끼의 간입니다.”
오바마가 뜬금없는 나의 이야기에 눈을 껌벅이며 쳐다본다.
한국의 전래동화를 알 리 없다.
꿀꺽.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다.
“신하들은 선뜻 나서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다들 물고기 종류라 지상에 나가는 게 불가능했으니까요.”
이야기를 살짝 각색했다.
“왕의 충성스러운 부하인 거북이가 나섰습니다. 그도 두려웠지만 왕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여겼습니다.”
오바마를 똑바로 바라봤다.
심각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그나마 거북이는 육지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해양동물이었니까요. 그렇게 육지에 도착한 거북이가 토끼를 만납니다. 그리고 온갖 감언이설로 토끼를 끌어들입니다. 파티와 미녀들이 넘치는 해상 왕국에 토끼만 초청한다고 말하고 무수한 거짓 약속도 뿌립니다.”
와인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잔뜩 기대를 안고 찾아간 토끼는 모든 게 거짓임을 알게 됩니다. 간을 내놓으면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고 온갖 금은보화를 내리겠다는 왕의 말에 기가 막혔습니다. 죽은 뒤에 그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오바마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
침묵하는 오바마.
“토끼는 자신의 귀한 간을 집에 놓고 왔다고 거짓말합니다. 연기의 달인이었기에 모두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위기를 돌파하고 지상으로 돌아온 토끼가 간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거북에게 뭐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
오바마가 눈을 껌벅이며 나를 본다.
씨익 한번 웃었다.
그리고.
“야! 내 간을 가져가고 싶으면 네 간 먼저 내놔!!!”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