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3장. 고집불통 아저씨
“오래된 나무 지팡이를 왜 교황청에서 찾습니까?”
다니엘은 떠났다.
장기 렌트 운운하더니 확답도 듣지 않고 갔다.
가브리엘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난 다니엘의 의도가 궁금했다.
“흐음…….”
부단장 브리토는 자신이 받은 성수를 쳐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진짜 성수다.’
이 물건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성수는 교황청에도 있다.
신의 은총으로 만들어지는 성스러운 액체.
교황도 사용 불가능한 물건이다.
남아 있는 것은 고작 작은 병 하나가 전부.
그것도 깊숙한 보물 창고에 보관 중이다.
그 작은 병에서 발산되는 성스러운 기운만으로도 오래 묵은 피로가 풀릴 정도다.
지금 브리토가 선물 받은 성수가 딱 그 정도 크기다.
“부단장님.”
가브리엘이 넋을 놓고 있는 부단장을 불렀다.
가브리엘은 성수의 효능에 대해 브리토만큼 알지 못했다.
사실 본 적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저 작은 병에서 성스러운 기운을 감지하는 정도가 전부다.
“응? 나 불렀나?”
‘왜 저러시지?’
평소와 달리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브리토.
가브리엘은 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다.
“다니엘 경이 말했던 오래된 나무 지팡이가 무엇인지요?”
다시 물었다.
“…….”
브리토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마녀들의 물품입니까?”
“아니네.”
브리토가 단박에 부인했다.
“그럼 뭡니까?”
가브리엘은 대수롭지 않게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던 두 사람이었다.
브리토가 바로 가브리엘의 멘토이자 스승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극비 사항인데.”
브리토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진짜 교황청에 그런 물건이 있습니까?”
가브리엘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 되물었다.
다니엘은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마법사다.
그런 그가 찾는 지팡이의 정체.
“있어.”
“오! 진짜요? 그럼 빌려주죠. 다니엘 경이 섭섭지 않게 대가를 줄 겁니다.”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다니엘이 소유하고 있는 마법서가 탐이 나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마음 같아서는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었다.
“불가능해.”
브리토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왜요?”
“교황 성하께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물건이야.”
“그게 뭔데요?”
교황청의 주인인 교황에게는 전권이 많았다.
웬만한 선에서는 교황청에 속한 물질들 전부 신의 대리자인 교황에 의해 사용될 수 있었다.
“모르겠나?”
“……네???”
“모세.”
“헛!!!”
모세라는 말에 가브리엘이 기겁하며 놀랐다.
‘설마 그 모세?’
머리에 떠오르는 위대한 성물.
교황청의 몇 개 안 되는 진짜 보물들 중 하나다.
다니엘이 그걸 두고 오래된 나무 지팡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장기 렌트까지 운운했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 모세의 지팡이가 마법 물품이라고?’
가브리엘 역시 모세의 지팡이를 실물로 영접한 적이 없다.
교황청 지하에 고이 모셔져 있는 성물.
그걸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니엘이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극비였는데…….”
브리토는 미심쩍은 기분에 입맛이 썼다.
선물이라며 건넨 성수가 그냥 뇌물 수준이 아니다.
한번 맛을 알면 빠져나올 길이 없다는 성수의 매력.
다니엘이 제대로 된 미끼를 남기고 떠났다.
“진짜 빌려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물은 절대 빌려줄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태연히 빌려달라 요구한 다니엘.
“진심이었어. 다니엘 그자는.”
브리토는 장기 렌탈을 말하던 다니엘의 눈빛을 분명하게 읽었다.
생각지 못한 큼지막한 선물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다니엘 경은…… 예측이 불가능한 분이시니까요.”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존경심을 함께 드러내는 가브리엘.
동행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다니엘은 가브리엘의 영혼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
“성수는 공짜가 아니야. 흐흐.”
당연히 악당 웃음이 흘러나왔다.
부단장 브리토에게 던지고 온 미끼는 훌륭했다.
눈치가 부족한 가브리엘보다 더 극적인 효과를 가져올 게 빤하다.
물욕이 없는 교황님도 성수 맛을 보면 헤어 나오기 힘들 거다.
“모세의 지팡이가 9서클 마나 스태프라니…….”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가른 모세.
총애를 받는 신의 대리자가 분명했지만 다른 기록에는 그가 위대한 마술사였다는 기록도 있다.
모세가 사용했던 지팡이가 바로 멀린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쿠아란의 마나 스태프였다.
홍해를 가르고 당대 무적 이집트 군을 수장시켜 버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취하고 싶었지만 뜸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훔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받아낼 작전이다.
그러려면 계획이 필요했다.
“보스!!!”
막 도착한 로버트 라이언이 다가왔다.
그리고!
와락.
“…….”
반가움은 눈빛과 말로 표현해도 될 텐데.
“요즘 너무 바쁘신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이 은근 서운함을 표했다.
품에 안긴 채 로버트가 속삭였다.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이다.
“일이 많았습니다.”
그를 억지로 떼어놨다.
아직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그와의 만남.
“알고 있습니다. 보스께서는 항상 폭풍의 눈이시니까요.”
아부가 갈수록 레벨을 갱신한다.
나도 쉬고 싶다.
그 폭풍의 눈.
그러나 주변 상황이 날 지속적으로 폭풍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앉아서 얘기하죠.”
“넵!”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왔다.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곳만 한 곳이 없다.
“와인?”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앉아 계십시오.”
와이너리는 장점이 많다.
개인 활주로에 편안하고 널찍한 공간, 그리고 맛있는 와인이 널렸다.
안주도 필요 없다.
“요정님이 일은 잘하는 것 같습니다.”
“네?”
와이너리 와인 맛이 갈수록 좋아진다.
이곳 터줏대감이 로버트처럼 일을 아주 잘한다.
또로록.
깨끗한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곳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비행기에서도 할 일이 많았다.
과거와 달리 가볍게 떠날 수 없었다.
일이 제대로 터졌다.
준비 없이 갔다가는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투자 방향성은 유지하고 있습니까?”
“보스께서 지시한 대로 보수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가는 앞으로도 원만한 상승세를 보일 겁니다. 곡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계절적 영향으로 천연가스와 구리 같은 일부 선물 품목이 오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슥슥.
로버트 라이언은 들고 있던 수첩에 부지런히 필기했다.
구닥다리 같지만 저 방법이 딱 맞는 사내다.
“다우지수도 폭락은 없습니다. 주식 시장에 장기 여유 자금을 투입하십시오.”
“장기로 말입니까? 대통령이 바뀌면 기대 심리가 떨어져 폭락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넵!”
오늘의 만남은 비즈니스가 주다.
여러 투자 방향성을 체크했다.
아사신 때문에 잠시 흐름이 바뀌었지만 과거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세계 경기가 흘러갔다.
아직은 다행이다.
“유로화는 연말에 저점을 찍을 겁니다. 엔화도 비슷합니다. 투입 자금을 조율하십시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메일을 통한 지시도 편했지만 가끔 기회가 될 때마다 이렇게 직접 대화하며 업무를 체크하는 것도 좋았다.
로버트 라이언이 굴리는 자금 규모가 내 선에서 움직이는 규모보다 작았지만 반드시 그의 활약이 필요했다.
능력 있는 부하는 언제나 상사를 편안하게 하는 법이다.
“기업들 투자 상황은 어떻습니까?”
“1차로 보고한 바처럼 보스께서 지시한 기업들에 투자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대형 반도체 업체가 아닌 소규모 파운드리 반도체 업체에 투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레드오션 시장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로버트.”
“말씀하십시오. 보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입니다. 동양에서는 그걸 태극이라고 표현합니다.”
“태극요?”
“아침과 저녁에 변하는 해와 달처럼 만물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레드오션 시장으로 불리지만 어느 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자동차는 물론 가전제품을 비롯해 전 산업적으로 반도체들이 집약 투입될 겁니다. 업체들이 난립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며 시장 파이를 키워나갈 겁니다. 미리 선점해서 나쁠 게 없습니다.”
“……역시 보스이십니다!”
선견지명까지 갈 것도 없다.
순간 원자재가 폭락한다고 해서 한정 없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바닥이 언제였냐는 듯 상승 기류를 타고 훌훌 날아갈 때도 있는 법.
어리석은 농부는 올해 가격을 보고 내년 재배할 품종을 결정하지만 현명한 농부는 생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 씨를 뿌린다.
자본과 시간이 넘치면 시야가 넓어진다.
풀 코스 식당에서 배고픈 자는 당장 눈앞에 놓인 식전 빵으로 배를 채우지만 여유 있는 자는 메인요리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힐러리 당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월가 쪽에서도 힐러리 당선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네?”
“도박판에 판돈이 쏠리면 배당받을 게 줄어들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로버트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로버트에게 말입니까?”
“보스를 뵙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요?”
“어떻게 할까요?”
오바마는 지금 속이 무척 탈 거다.
내가 던져 놓은 말들을 무시할 수 없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나 하나를 잡겠다는 마음으로 나의 조국 한국에 더러운 똥을 던진 오바마.
“거부합니다.”
“알겠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은 이런 분위기에 두 번 묻지 않아 좋다.
과거와 달리 미국 대통령은 패스해도 된다.
하지만.
두두두두두두두두.
밖에서 들려오는 몇 대의 헬기 로터 소리.
촤아아아아앗.
고개를 돌렸다.
활주로로 들어오는 낯선 비행기가 보였다.
고집불통 아저씨가 등장했다.
“……보스 거부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