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장. 감춰진 비밀(3)
“영국? 아르노 백작과 클라라가 에버든 공항에 나타났다고?”
“그렇습니다.”
“그곳에 어떻게? 분명 기사단장이 납치했다고 하지 않았나? 멀린이라는 마법사한테 영혼을 강탈당한 채 말이야.”
“…….”
리장창의 물음에 제갈유량이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분명한 건 프랑스 별장 성에서 납치당한 클라라가 스코틀랜드 에버든 공항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기사단장 아르노 백작과 함께.
“장태산의 비행기가 그곳에 있었나?”
“그곳에 놈의 자가용 비행기가 나타났습니다. 추적 중에 발견했습니다.”
“흐음…….”
리장창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딸이 납치당한 뒤 식음을 전폐했다.
목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차마 클라라의 상황을 전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부쩍 심장 상태가 나빠진 아내.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이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장태산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에 클라라를 발견한 것이다.
“클라라가 언제 영국까지 갔단 말인가?”
“직접 아가씨에게 듣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갈유량의 예측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비비안도 함께였다고?”
“그렇습니다. 장태산과 교황청 소속 비밀 기사도 동행 중이라 합니다.”
“클라라의 몸 상태는?”
“겉보기에는 다 괜찮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리장창은 복잡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클라라와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답답할 때마다 바라보는 홍콩 바다.
‘장태산이 이번에도…… 구해줬단 말인가.’
씁쓸함이 밀려왔다.
한국인만 아니었다면, 아니 중국에 대해 적대감만 보이지 않았다면 장태산과 좋은 인연이 됐을 것이다.
장태산은 처음 볼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역시 이번에도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줬음이 확실했다.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장태산은 자신의 목숨도 살려줬다.
소리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서 클라라의 간곡한 부탁으로 실행을 멈췄던 장태산.
이번에는 딸이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무리 고마움이 있다 해도 중국몽을 위해서 장태산은 반드시 짓밟아야 할 원수다.
“최대한 보호조치를 취하도록.”
“넵!”
현재로서는 리장창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중국 요원과 인맥들을 동원해 클라라를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놓는 게 전부다.
‘차라리 홍콩으로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기사단도 안전하지 않다.
명분도 좋다.
유럽에도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위해 임신 기간을 친정에서 보내는 문화가 있다.
더욱이 백작이 영혼을 강탈당해 벌어진 사건이다.
‘그나저나 장태산 이놈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무술에 도술까지…… 끝을 알 수가 없어.’
과거 장태산을 처리하기 위해 무당파 은거 도인까지 나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장태산의 도술이 더 강했던 탓이다.
자신이 암살당할 뻔했던 날도 그랬다.
완벽했던 첨단 보안을 뚫고 침입했다.
1인 무적.
리장창은 딸의 귀환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장태산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교황청까지 설마?’
게다가 동행하고 있다는 교황청 비밀 요원이 마음에 걸렸다.
교황청은 생각보다 힘이 막강했다.
카톨릭을 믿는 신자들의 수가 말 그대로 그들의 힘이 됐다.
과거보다 못했지만 교황이 가진 힘이 대국과 맞먹었다.
그런 교황청과 인연이 닿은 것으로 보이는 장태산.
리장창의 구겨진 이마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장태산의 인맥이 두터워질수록 중국몽에 해가 될 게 빤하다.
얼마 남지 않는 장태산과의 휴전.
‘제거해야 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리장창은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장태산이 강해질수록 더 멀어지게 될 중국몽.
대한민국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을 다 합친 것보다 그놈이 더 골치 아팠다.
***
“다니엘……. 무슨 일 있어?”
“어?”
에버딘 공항의 VIP 라운지.
비비와 차를 마셨다.
기사단장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전화 한 통을 돌리자 철통 경계가 펼쳐졌다.
영국에 있던 기사단원들도 소집됐다.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전용 자가용 비행기가 곧 이륙할 예정이다.
짧은 시간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이 복잡했다.
멀린의 일기장에 기록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쿠아란이라는 마법사가 사용했던 9서클 마나 스탬프가…….
전 세계인 대부분이 아는 물건이다.
어디 가서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신성 모독으로 돌팔매질 당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니야.”
비비가 대화를 요청했다.
내 옆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비비.
“……고마워. 정말.”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익숙한 비비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곳까지 오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 안 해도 돼.”
웃으며 비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라락.
가만히 어깨를 기대는 비비.
“두려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세상에 너무 많아. 그리고 다니엘을 끌어들여 미안해.”
비비가 솔직하게 지금의 심정을 토로했다.
비비가 아니었다면 아사신과 이렇게 빨리 조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
아사신을 알게 되어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무방비 상태에서 놈들에게 공격당했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비비의 말처럼 세상에 모르는 비밀이 너무도 많다.
“나도 마찬가지야. 알면 알수록…… 모든 것들이 비밀투성이야.”
21세기 과학도 마법을 설명하지 못했다.
아사신이나 멀린의 능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이계와 지구가 연결되었다는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멀린도 이계에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놈의 목적은 더욱 명확했다.
지구 정복!
멀린의 충격적인 일기장에는 여러 가지 다른 것들도 기술되어 있었다.
마법진이 활성화되면서 쿠아란의 보물 상당수가 같이 이동해 왔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기이한 고대 무기 상당수가 쿠아란의 아이템이었다.
나도 탐이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9서클 마법사가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평범한 물건일 리 없다.
엘프들이 제작한 것보다 뛰어난 물건도 많을 것이다.
제국의 부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마법 물품들.
“다니엘은 걱정하지 마.”
“???”
“다른 건 모르겠고 다니엘은…… 오래 살 거야.”
“예지력으로 그게 보여?”
“아니.”
“그럼?”
“내가 항상 신께 기도하고 있어. 다니엘의 안녕을.”
비비가 눈을 반짝였다.
이것도 진심이다.
“그 마음 변치 마.”
“걱정 마. 내 마음은 온전히 다니엘 거니까.”
“…….”
비비 많이 컸다.
대놓고 사랑 고백이다.
“난…….”
“됐어. 말 안 해도 알아.”
비비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내 입을 막았다.
미래 예지력뿐만 아니라 감도 좋은 비비다.
내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선물을 주고 싶어.”
“선물?”
“아빠와 새언니,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조카까지 구해줬잖아.”
“그것도 우리 사이에…….”
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에 느껴지는 비비의 부드러운 입술.
사라락.
비비의 손이 목을 감아왔다.
정열의 프랑스 여인답게 키스도 뜨거웠다.
말릴 사이도 없이 입술이 함락당했다.
“음.”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아.”
비비의 뜨거운 신음이 귓가에 들렸다.
눈을 감고 몰입하는 비비.
그녀의 달콤한 숨결이 느껴졌다.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VIP 미팅 룸.
비비의 뜨거운 선물은 매우 흡족했다.
다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비행기 이륙할 시간입니다.”
성전 기사단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비비가 아쉬운 신음과 눈빛을 보냈다.
“이제 떠날 시간이야.”
“프랑스에 오면 연락해.”
“그래.”
비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라라와 백작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먼저 인사를 마쳤다.
“진짜 고마워…….”
와락.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 비비가 아쉬워하며 안겼다.
“수련에 최선을 다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야.”
토닥이며 비비를 달랬다.
“응…….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할게.”
비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전 기사단에 쉽게 풀이한 마법 수련서를 넘겼다.
기초 마나 응용편과 기본 마법들 몇 개가 전부다.
그것들을 수련하는 일도 벅찰 것이다.
비비에게는 특혜를 줬다.
그녀만 특별히 마나에 민감하도록 마나 샤워를 펼쳐줬다.
오성이 뛰어나 깨우침이 남다를 게 확실했다.
“아가씨…….”
밖에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게.”
비비가 품에서 벗어났다.
밝게 웃는 그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빨리 찾아갈게.”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
스르르륵.
문이 열리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비비를 보내고 창밖을 봤다.
VIP룸답게 활주로가 시원하게 보였다.
“안전한 곳이 필요해.”
느낌이 이상했다.
꼭 이계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과거처럼 아무 곳에서나 이동해서는 안 되는 상황.
결계가 깨졌다는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지금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 경. 접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기사처럼 대하는 가브리엘.
“들어오십시오.”
짧은 사이 부쩍 가까워졌다.
처음 만날 때 자신감 넘치던 가브리엘은 진작 사라졌다.
나만 보면 눈에 존경심을 담았다.
스르르륵.
문이 열렸다.
저벅저벅.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두 개다.
스윽.
고개를 돌렸다.
가브리엘을 따라 한 사내가 들어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유럽 남자.
깔끔한 감색 슈트에 코트까지 걸쳤다.
파밧.
눈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에 힘이 넘쳤다.
가브리엘보다 강단 있어 보였다.
“다니엘 경. 인사하십시오. 백색 기사단의 부단장님이신 브리토 님이십니다.”
성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이름만 밝혔다.
역시 가브리엘도 이름만 알고 있는 상태.
“브리토라고 합니다.”
부단장이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교황청 비밀 집단의 부단장답게 눈빛이 맑았다.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손을 맞잡았다.
꾸우욱.
강하게 느껴지는 악력.
나를 시험했다.
손에 힘을 더했다.
“윽!”
짧게 신음을 흘리는 브리토.
“부단장님. 다니엘 경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가브리엘이 웃으며 사실을 말했다.
“그런 것 같군…….”
힘을 풀자 브리토 경이 손을 털며 빼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가용 비행기가 대기 중이다.
나도 바로 떠나야 할 상황이다.
“사악한 마법사를 처단해 주신 것에 대해 교황청을 대신해 고마움을 전하는 바입니다.”
가브리엘이 보고한 모양이다.
“아닙니다. 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게 공짜가 아니다.
얻은 게 많다.
스윽.
브리토가 한 장의 황금 명함을 건넸다.
“???”
“교황 성하께서 보내신 정식 초청장입니다.”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