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9장. 감춰진 비밀 (1,204/1,284)

1229장. 감춰진 비밀

“주여…….”

성전 기사단을 이끌고 어둠과 악의 세력에 맞섰던 기사단의 단장.

신과 지구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쳐온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신을 찾았다.

도저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보는 낯선 지하 공간.

출산일을 앞둔 배부른 며느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비비안은 무척 수척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봤다.

“엑스칼리버에 숨어있던 사악한 마법사 멀린의 영혼은 무척 강합니다. 마법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도의 과학적인 학문입니다. 물질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과 영혼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한국 청년 다니엘.

그는 며느리가 되기 전 클라라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

그런 자가 자신은 물론 며느리 클라라와 뱃속의 아기, 그리고 비비안을 구했다.

이번 사건에 관한 보고가 벌써 몇 건째 들어왔다.

각각의 보고 모두 다니엘이 아니었다면 성전 기사단과 가문이 아예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질투나 의심 같은 어설픈 감정 같은 건 품지도 않았다.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은 언제 어느 때나 냉정한 의식 상태를 유지해야 함이 원칙이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아르노 발루아 백작은 마음 한편으로 허탈함을 느꼈다.

교황청에서 금지한 품목이 보관된 창고를 열어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려 했는데 그게 독이 됐다.

자신의 영혼이 침탈당하고 육신을 빼앗긴 사실도 전혀 몰랐다.

분명한 건 마법사가 하늘을 날고 번개를 소환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한순간 공간 이동도 시전했다.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현실이었다.

아주 어릴 적 접했던 상상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교황청에서 파견한 백색기사단의 가브리엘 기사도 다니엘의 말에 동의했다.

백작은 그를 알고 있었다.

젊은 기사들 중에서도 교황청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기사다.

거짓말할 인물이 아니었다.

“아빠. 믿어야 해요. 아사신만큼 멀린도 위험한 자예요.”

딸 비비안도 다니엘의 말에 힘을 실었다.

“루이스는…… 흐으윽.”

며느리 클라라는 남편 루이스를 걱정하느라 근심이 가득했다.

자신의 몸을 차지했던 사악한 마법사가 아들 루이스를 어딘가로 보냈다고 했다.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이해의 한계를 넘는 쏟아지는 정보에 대응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멀린이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영혼체 자체가 그렇게 쉽게 소멸될 리 없습니다. 지옥에 끌려가는 것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럼…… 그 마법사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백작이 다니엘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나이를 떠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미 오래 전 암중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해 버린 다니엘.

“모릅니다.”

다니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다니엘 말처럼 살아있어요. 느낌이 말해줘요.…….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게 확실해요.”

미래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비비안이 확언했다.

“으음…….”

백작은 답답한 마음에 신음을 흘렸다.

아사신 말고 새로운 강력한 적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솔직히 이전 상황만으로도 힘들었다.

이번 사건을 겪고 난 뒤 한 번 더 확인하게 된 자신과 성전 기사단의 무능함.

뼈아픈 절망감이 밀려왔다.

다만.

“다니엘…….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비비안이 용감하게 다니엘에게 물었다.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멀린이 당분간은 도발하지 못할 게 확실해. 육체 전이 마법은 나도 방법을 모르는 고도의 정신계 마법이야. 이치를 거스른 대가가 작지 않아.”

“그렇다면…….”

“스스로 강해지는 방법밖에 없어.”

자강에 대해 당부하는 다니엘.

백작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교황청에서 획득한 마법은 배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아예 해석이 불가능한 게 대부분이다.

또 마법을 가르쳐 줄만 한 스승도 없는 상태다.

긴 세월 동안 마녀사냥으로 꾸준히 정통 마법사들을 제거해왔고 이로 인해 진짜 마법사는 거의 사라졌다.

어느 정도의 마법을 알고 있는 교황청에서 배출하는 백색기사단 숫자도 한정돼 있다.

“그야 너무 잘 알지만. 그렇다고 단시간에 마법을 배우기는 어렵잖아.”

애가 타는지 비비안이 다니엘을 보며 우는소리를 했다.

백작의 모습에서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발루아 백작은 비비안의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속으로 삼켰다.

가문과 기사단이 먼저 살아야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다니엘이 말끝을 흐렸다.

“그게 뭡니까!!!”

발루아 백작이 다급하게 물었다.

적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이나 호기로운 배짱 같은 건 불필요했다.

살아남는 게 최우선의 지상 과제가 된 상황이다.

“일단 마나를 조금이라도 알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마법 아이템? 그걸 어디서?”

비비안이 의문스런 눈빛을 보냈다.

이전에도 다니엘을 통해 마법무구 수십 개를 구입했다.

그에 따른 상당한 가격이 지불됐다.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었지만 그 역시 시가가 존재하지 않는 무기들이었다.

“내가 잘 아는 마법사 집단이 있는데……. 다들 까칠해.”

“집단? 지금 같은 세상에 그런 집단이 있어?”

비비안이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자신의 예지력으로도 전혀 파악 못 한 집단이다.

“마법서도 쉽게 해석해서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주십시오! 가격이 어떻게 되었든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은 급한 만큼 재빨리 대답했다.

자금이 문제가 아니다.

아사신과 사악한 멀린을 상대할 수 있다면 기사단의 비밀 금고도 개방할 수 있었다.

그때.

“교황청에서도 매입하고 싶습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

“7서클 마법 아이템이 둘이라……. 그 동네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어디서 구입한 거야?”

손에 들린 마법 무구를 살폈다.

엑스칼리버는 마나 스태프와 은신 마법 망토에 비하면 중저가 상품이다.

내가 망치 들고 설쳐도 바로 만들어 낼 수준이다.

“마력석만 갈아 끼우면 대박 상품이다.”

그러나 마나 스태프와 마법 망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영혼만 빠져나간 멀린에게서 획득한 마법 무구.

지하 동굴에는 비밀 창고가 존재했다.

저서클 마법사들은 결코 탐지할 수 없다.

백작과 클라라, 비비안은 지하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다.

눈치를 채고 가브리엘이 따라오려고 했지만 거절했다.

멀린은 7서클 마법사다.

아직 능력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마법진 응용력만으로도 짐작 가능했다.

그리고 이곳은 멀린의 수련실.

아공간에 마나 스태프와 망토를 챙겨 넣었다.

누구도 욕심내지 않았다.

사용 방법을 모르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일 뿐이다.

흥미가 돋았다.

던전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고서클 마법사의 수련실은 처음이다.

“해제!”

의지를 머금은 마나가 일순간 스며들었다.

파아앗!

빛과 함께 감춰졌던 문이 시야에 드러났다.

평범한 동굴 벽.

여러 마법진이 중첩되어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나가 부족했는지 완벽하지는 않았다.

5서클 마나에 가볍게 해제됐다.

마법진에 설치된 마력석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르륵.

가볍게 손을 대자 문이 열렸다.

“오!”

눈에 들어온 광경에 가벼운 탄성이 터졌다.

“이 자식 부자였네!”

아서 왕 때 제법 땡긴 것 같다.

상당히 큰 공간에 금화를 비롯해 황금과 각종 보물들이 잔뜩 쌓였다.

시세보다 역사적 유물로써 더 가치 있어 보였다.

세계 경매 시장에 내놓으면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갈 게 분명했다.

“일당은 나오겠어.”

한국에서 프랑스를 거쳐 영국까지 행차한 몸이다.

기름값에 인건비까지 계산하면 값이 만만치 않다.

“마법 아이템은 거의 없는 것 같고.”

멀린에 대해 정체를 정확히 파악한 게 아니다.

마법 무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마법서가 제법 있네.”

서가에 꽂혀 보존 처리된 마법서들이 100여 권 정도 존재했다.

스윽.

그중 한 권을 뽑았다.

“마법 축성방법 길라잡이?”

작명 센스 제법이다.

촤르르릇.

“필체가 똑같아. 멀린이 작성한 게 확실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곳에 기록해 놓은 게 분명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룬어야!”

필이 팍 왔다.

멀린이 작성한 마법서는 그야말로 술술 읽혔다.

알지 못했던 심도 있는 마법 학술 서적이 꽤 됐다.

멀린의 마법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란 걸 의미했다.

“흐음……. 이런 방법도 가능하군.”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빠져들었다.

특히 마법진 응용 분야에서는 참고할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공격이나 방어, 치료 마법에 특화된 내 마법 지식과 많이 달랐다.

그리고 엘프들의 마법과도 달랐다.

나름 체계적인 조직에서 공부한 게 확실했다.

“뭔가 더 있는데…….”

멀린은 키메라나 기타 연구에서는 특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법서적 말고 다른 시설 상태는 빈약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지구 과학 수준에서 멀린이 원하는 마법 재료나 공구들을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스윽.

사방을 훑었다.

“빙고!”

그리고 발견한 또 하나의 비밀 장소.

멀린이 사용했던 책상 뒤로 미세하게 마나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작동했다면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벅저벅.

마나의 흐름이 감지된 곳으로 다가갔다.

“온 힘을 다해 설치했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 감춰져 있을 멀린의 그 무엇.

던전은 이런 맛에 터는 것 같다.

“해제!!!”

강력한 의지를 발휘해 마나를 쏟아부었다.

마법진 해제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차원이 다른 고서클 마법사의 마나 자체가 문을 여는 열쇠인 셈이다.

아무리 멀린이 복잡한 구조로 마법진을 완성했다 해도 해제를 위해 투입된 마나량이 달랐다.

멀린의 능력이 온전히 회복된 상태였다면 이마저도 해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파아아앗.

빛과 함께 열리는 소형 마법 금고.

끼리릭.

벽 자체가 얼렸다.

“이게 뭐야?”

의외로 열린 공간에는 별게 없었다.

오래돼 보이는 두툼한 책 한 권이 전부였다.

“7서클 마법사라도 되는 거야?”

책을 집어 들었다.

조심스럽게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문장.

“사르칸 마탑의 7서클 부탑주 멀린이 기록한다……. 뭐! 사……르칸 마탑이라고!!!”

회귀의 전설 3부

0